"文정부 2년, '다원성' 없고 '정파'만 강해졌다"
2019.05.17 09:09:23
[윤여준-강원택 대담 ①] 문재인 정부 2년 평가
"해질녘 산길에 접어든 형국".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3년차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를 이렇게 묘사했다. 

3년차 임기에 접어든 문재인 정부가 6개월 뒤 반환점을 돈다. 적폐청산이 요란한 가운데에도 제도적 개혁은 그닥 성과를 보지 못했다.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간판을 내렸고, 북미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져들어 남북 관계도 발이 묶였다. 인사 실패 논란이 반복되며 도덕성에도 금이 갔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 프레시안 좌담에서 '촛불의 절대화'를 경계하며 통합을 통한 제도적 개혁을 제언했던 윤 전 장관을 다시 만나 지난 2년을 돌아보고 남은 3년을 내다봤다. 언론 칼럼 등으로 현실 정치에 조언을 아끼지 않는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가 대담에 함께 했다. 윤 전 장관과 강 교수의 대담을 2회로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양극화된 정치…협치의 공간을 스스로 좁혔다"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다짐했던,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약속했던,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라며 손을 내밀었던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옛말이 됐다.

두 사람은 우선 개헌 실패에 큰 실망감을 표했다. 강원택 교수는 "국가적 규범인 헌법을 바꾸려한다면 매우 포용력 있고 세심하게 추진했어야 하는데, 마치 대선 공약 사항이니까 추진할 뿐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며 "개헌안을 거부한 국회에 책임을 넘기며 '버리는 카드'처럼 써버렸다"고 아쉬워했다.

윤 전 장관도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는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인데, 만악의 근원을 고치지 못하고 완전히 뒷전으로 미뤘다"고 비판했다. 

권력 운영에 대한 평가도 신랄했다. 윤 전 장관은 "권력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은 도덕성과 효율성인데,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간판 정책, 즉 효율성은 너무 일찍 무너졌고 장관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국민들은 진보의 도덕성의 실체를 봤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적폐 청산은 최고 책임자 선에서 신속하게 끝내고 국민들에게는 새 시대를 열자고 호소했어야 하는데, 온 사회가 2년 동안 인적청산에만 매달렸으니 피로도가 어떻게 안 생길 수가 있나"고 했다. 윤 전 장관은 "이 정부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감, 도덕과 윤리를 독점한 사람들처럼 행세하는 게 위험해 보인다"고도 했다.

강 교수도 "이념적으로는 매우 강한 진보성을 가진 사람들로 똘똘 뭉쳐갔다"며 "적폐란 이름으로 특정인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다 보니 격한 반발이 반대급부로 나타나 양극화된 정치로 이어졌다. 야당과 협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좁혔다"고 비판했다.

윤 전 장관은 또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방향성을 긍정하면서도 남남갈등을 너무 쉽게 간과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DJ가 남북 관계를 살얼음 밟듯이 하면서 남남갈등 막아보려 얼마나 신경을 썼나. 그런 과거를 다 겪어보고도 문재인 정부는 남남갈등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면서 "상황을 급진전시켜서 저항과 갈등의 여지없이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아닐까 추측한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또 최근 이슈로 떠오른 대북 식량지원 문제와 관련해 "밀가루와 옥수수는 장기적 보관이 어려운 반면, 장기적 보관이 가능한 쌀은 군량미로 전용될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며 "면밀하게 검토해 추진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강원택 교수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이어지고 있는 역사 문제의 정치화를 경계했다. 그는 "(3.1 운동 100주년 기념사에서 밝힌) 친일 청산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정치가 아니라 민간과 학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지금이 반민특위 시절이라면 정치가 개입해 처단하는 게 맞지만,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이 개입해서 정치화시키는 것은 실용적인 해법이 아니다"라고 했다.

다음은 지난 15일 박인규 프레시안 협동조합 이사장이 진행한 윤여준 전 장관과 강원택 교수의 대담 전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좌)과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요즘 문 대통령 발언 들으면 IMF 때 생각이 나"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 출범 때 기대감이 컸기 때문인지 2년을 보낸 지금, 실망도 크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987년 이후와 2016년 이후의 정부가 비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87 항쟁 이후 정권교체는 되지 않았지만, 북방정책이 추진되고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소득분배가 달라지고 4당 체제에 따른 새로운 정치 기운이 생겨났다. 2016년 촛불 이후는 정권까지 바뀌었는데 이른바 촛불 정부가 시대적 과제에 잘 부응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정치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한마디로 더불어민주당은 실망스럽고 자유한국당은 절망스럽다. 한국당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선 주도권을 쥔 세력에 대한 책임을 따져보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 2년은 왜 국민들 소망에 부응하지 못한 시간이 되었는지 여쭙고 싶다.

윤여준 :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 들어간 지 3개월 지나면 현실로부터 유리된다. 사람의 좋고 나쁨이 아니라 매커니즘 때문에 그렇게 된다. 대통령은 공식라인에서 올라오는 보고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 보고는 관료들이 올리는데, 관료들은 대개 자기 책임을 모면하려는 심리가 앞선다. 책임 모면성, 변명성 보고가 올라가기 마련이다 보니, 대통령이 현실인식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이다. 

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든 이를 극복해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주말에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보더라. 그걸 민심 파악으로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내가 '그걸 민심이라고 생각하시면 착각입니다. 대통령이 물어보는데 누가 잘못됐다고 하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다. YS 집권 초기에는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서 세상 얘기를 듣기도 했는데, 그게 소문이 나버렸다. 대통령 참모들은 외부 사람들이 대통령 귀를 잡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권청탁이 생긴다는 보고가 올라가니 YS가 깜짝 놀라서 중단하기도 했다. YS도 그랬듯이, 대통령이 현실에서 멀어지지 않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다. 내가 보기엔 딱 석 달 걸린다. 

주변에서 '청와대 참모들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정직성이라고 답한 일이 있다. 능력은 대부분 엇비슷하고 모자라면 보완하면 되지만 정직성은 보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해야 하는데, 청와대 수석은 대부분 부처 출신이거나 다음 자리로 장관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상례라서 부처 입장을 고려하게 된다. YS 때 (공보수석을 했던) 나와 박세일 수석은 고려해야 할 부처가 없었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굉장히 많은 얘기를 했다. YS는 그런 얘기들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다 듣는 장점이 있던 분인데도 현실에서 멀어졌다. YS는 집권 말년에 매주 수석회의를 할 때마다 한국경제가 연착륙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주 회의에서 한국경제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고 보고를 하더라. 그 뒤가 어떻게 됐나. 

YS를 모시며 봤던 사람으로서, 요즘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들을 때마다 IMF 때 생각이 난다. 대통령이 경제를 꿰뚫어 알기는 어렵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문 대통령도 경제 원리를 잘 아는 분이 아니다보니 전적으로 보고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경제 상황이 그때 같지는 않다. 전문가들도 그때처럼 단기적 유동성 위기는 없기 때문에 그 정도 위기는 아닐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위기가 아니더라도 위기를 향해 빠른 속도로 가라앉고 있다고들 말한다.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도 먹고사는 게 어려워진 부분이 제일 크다. 

ⓒ프레시안(최형락)


강원택 : 촛불 집회에 진보적인 사람들만은 나온 것은 아니었다. 보수도 있고 중도적인 분들도 있었다. 이들이 집합적으로 거대한 정치적 전환을 요구했기 때문에 촛불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촉발된 계기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정과 스캔들이었지만, 87년 체제의 구조적 문제와 사회경제적 모순을 극복해보자는 것이 근본적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취임사를 들으며 새로운 시대적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야당도 만날 것이고, 지지하지 않은 사람도 포용할 것이고, 퇴근하고 시장에서 시민들도 만나겠다고 했다. 

그러나 취임사와 달리 실제에선 매우 정파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졌다. 이념적으로는 매우 강한 진보성을 가진 사람들로 똘똘 뭉쳐갔다. 인사를 통해 동질성이 매우 강한 집단이 청와대와 주요 보직을 장악하다보니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들어가기 어려워졌다. 대통령이 현실에서 멀어진 이유 중에는 생각이 다르지 않은 사람들만 모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논쟁이 일어날 수 없는 구조다. 다원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회가 위험한 것처럼 통치기구 역시 다원성이 보장되고 논쟁도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정보가 대통령에게 전달될 수 있는데, 근원적으로 생각의 차이가 없는 사람들끼리 모여 있는 게 문제점이라고 본다.

그러다보니 우리가 바랐던 개혁, 즉 시스템 전환을 요구한 개혁과 멀어졌다. 개헌을 통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고, 법원에 문제가 있다면 사법 시스템을 바로잡는 것이 촛불이 원한 개혁이다. 검찰 개혁도 처음부터 중요한 의제를 제시해서 추진됐다면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오직 상대편과 사람에 대한 처벌 위주로 가버렸다. 적폐란 이름으로 특정인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다 보니 시스템 개혁은 실종된 것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됐지만, 사법부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사람에 대한 처벌 위주로 가다보니 격한 반발이 반대급부로 나타나 양극화된 정치로 이어졌다. 야당과 협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스스로 좁혔다고 본다.

"버리는 카드로 써버린 개헌…정치개혁 고민 없어"

정치학자로서 무엇보다 헌법 개정 문제를 다루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개헌, 즉 87년 체제 개정은 시대적 과제였다. 나는 '8인 정치회담'(※87년 6.29 선언 뒤 여야 정치인 4명 씩 참여해 진행된 개헌 협상 회담. 편집자)에 참여했던 분들 인터뷰를 많이 했다. 그분들에게 '8인 정치회담이 한 달 만에 모든 그림을 다 그리고 개헌 타결을 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될 수 있었냐'고 물었더니 정답이 이미 있었다고 하더라. 그 정답이라는 건 유신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87년에는 주요 정치행위자들은 유신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민주화로 생각했다는 얘기다. 그렇게 따져보면 지금 우리의 헌법은 1962년 헌법체제인 것이다. 62년 헌법은 군인들이 권력을 잡고 만든 것이어서 태생부터 가장 강력한 대통령제다. 

이것을 바꾸는 일이 대단히 중요했다. 문 대통령이 국가적 규범인 헌법을 바꾸려한다면 매우 포용력 있고 세심하게 추진했어야 하는데, 마치 대선 공약 사항이니까 추진할 뿐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줬다. 개헌안을 거부한 국회에 책임을 넘기며 버리는 카드처럼 써버렸다. 촛불 같은 사건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겠나. 그런데도 매우 중요한 집권 초기에, 진정성과 무게중심을 두면서 개헌을 추진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그때부터 꺾였다. 경제는 누가 집권해도 하루아침에 좋아지기 어려운 것 아닌가. 결국 문 대통령이 보여줄 수 있는 것은 정치적 개혁인데 그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았다.

윤여준 : 87년 이후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기대한 건 민주주의의 공고화였다. 그 후 등장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 집권기에는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과정으로 갔다. 그러다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갑자기 반민주로 회귀한 결과로 23회에 걸쳐 연인원 1700만 명이 참여한 촛불이 나온 것이다.

내일신문이 현대경제연구소에 의뢰해서 촛불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왜 참여했냐고 여론조사를 한 게 있다. 가장 많은 대답이 '민주적 가치가 훼손된 데 대한 분노'라고 답했다. 결국 촛불이 요구한 것, 촛불정신이라는 것 역시 민주주의 공고화다. 이 정권은 촛불의 결과로 등장한 것이고 스스로 '촛불 정권', '광화문 대통령'이라고 했으면 무엇보다도 민주주의 공고화를 지상과제로 삼았어야 했다. 취임사에는 그런 의지가 있었지만 현실에선 반대로 갔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적폐는 대통령 1인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이다. 만악의 근원이라는 이것을 고치치지 못하고 완전히 뒷전으로 미뤘다. 지금 어떤가. 여전한 권력집중에 대한 비판을 받지 않나. 제1야당에서 민주화 때 외치던 '독재 타도' 구호가 등장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당이 말하는 '독재 타도'가 합리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 용어를 구호로 내걸었다는 건 그런 분위기가 있다는 뜻이다. 정부를 지지했던 민심이 빠르게 이탈하고, 흩어진 보수 세력이 뭉치는 것이 눈에 보이니까 마땅히 성찰하고 참회해야 할 세력이 목청을 높이는 일이 벌어졌다. 한국당이 옳다는 말이 아니다. 그 원인제공을 어디에서 했느냐는 얘기다.

"인적 청산에 매달린 '적폐청산'…악순환은 반복된다"

프레시안 : 문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진 데에 먹고 사는 문제가 가장 컸다고 했는데, 민생경제 정책을 돌아보면 어떤가.

윤여준 : 권력의 정당성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은 도덕성과 효율성이다. 둘 다 튼튼하다면 이상적이지만, 하나가 부족해도 다른 하나가 튼튼하면 보완이 가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18년이 대표적이다. 쿠데타로 집권했으니 도덕성이 치명적이었지만, 고도성장을 통한 산업화라는 효율성으로 버틴 것이다. 

문재인 정부를 보자. 효율성은 초장에 망가졌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간판 정책, 즉 효율성이 너무 일찍 무너졌다. 국민들에게 소득주도성장은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이 돼 있다. 이렇게 무능할 줄 몰랐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대통령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이미 끝난 얘기다. 효율성은 본전도 찾기 어려워졌다.

그러면 도덕성으로 버텨야 하는데, 장관 인사청문회를 통해서 국민들은 진보의 도덕성의 실체를 봤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뭐가 다른가. 그토록 보수의 도덕성을 공격하던 사람들도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도록 한 것은 사실 아닌가. 대통령은 인사청문보고서가 채택되든 말든 임명을 강행했다. 심지어 과거 정권과 달리 헌법재판관까지 그렇게 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청문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은 채 임명된 장관이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고까지 말했다. 

문 대통령은 그런 행위들이 정권의 도덕성에 얼마나 심대한 타격을 주는지 알아야 한다. 그나마 남북관계가 교착국면 속에도 희망적이기 때문에 지지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 국정지지도는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호감도다. 엄밀하게 따지면 국정지지도가 아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고 겸손해 보이는 문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한 호감도로 40%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2년밖에 안됐지만, 해질녘 산길에 접어든 형국이다.

프레시안 : 전직 대통령 두 명과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상황은 자신들의 허물이 초래한 일이지만 초유의 일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전 정부에서 시작한 수사라고 항변하면서도 적폐청산은 여전한 시대적 과제로 여기는 것 같다. 이 적폐청산 논란을 어떻게 봐야 할까. 

윤여준 : 적폐라는 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 9년 동안만 쌓인 것이 아니다. 정부수립 이후 한국사회 폐단이 뭉쳐있는 것이다. 최고 책임자에 대한 응징 없이 새 시대로 갈 수 없다는 말은 논리적으로 인정한다. 그렇다면 최고 책임자 선에서 신속하게 끝냈어야 한다. 나머지는 지시에 의해 한 것이니 불문에 붙였어야 한다. 그렇게 국민들에게는 새 시대를 열자고 호소하고 공무원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했어야 했다. 그런데 일반 부처 실무자들까지 1년을 시달렸다고 한다. 관료들 반발 심리가 생기지 않겠나. 온 사회가 2년 동안 인적청산에만 매달렸으니 피로도가 어떻게 안 생길 수가 있나.

강원택 : 도덕적 규범과 정치적 현실에는 괴리가 있다. 개인의 문제와 함께 관행과 제도, 구조의 문제도 있다. 적폐 사건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적 개선인데, 인적청산, 사람의 문제에만 집중해버렸다. 예컨대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정농단의 여러 실마리를 제공했기 때문에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또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다스 실소유주 문제 등 국정과 관련되지 않은 아닌 개인적 사건 위주다. 

이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던 데 대한 보복 아니냐고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정말 우려되는 것은 권력이 바뀌면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만큼 피해자인 사람이 또 어디 있나. 그러나 나는 보복하지 않겠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된다. 악순환을 한 번 끊어줘야 하는데, 이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강조가 현실정치를 고려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해 보이는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조국 수석은 촛불의 상징이기 때문에 못 바꾼다?"

윤여준 : 이 정부 사람들이 도덕적 우월감, 도덕과 윤리를 독점한 사람들처럼 행세하는 게 위험해 보인다. 정의는 자로 줄긋듯이 규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대적으로 쓰는 개념인데, 마치 절대적 정의감에 빠져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균형을 잡아주지 못하면 나중에 대가가 따를 수 있다. 

프레시안 : 강 교수는 청와대에 생각이 같은 사람들 중심으로 뭉친 것이 다양한 현실 인식을 어렵게 한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인사 분야에서 무슨 이유로 포용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보나.

강원택 : YS나 DJ는 핵심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상당히 열어 놨다. 핵심인사들은 오히려 당으로 많이 갔다. 지금은 청와대나 어떤 결정을 내리는 자리에 권력 핵심들이 많이 있다. 이것은 권력을 잡았을 때 무언가를 바꿔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기 때문으로 보이는데, 5년은 생각보다 짧다. 3년차 들어가면 힘이 빠지고 마지막 1년은 레임덕을 피하기 어렵다. 

차라리 YS 때처럼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YS는 하나회 척결 등 군부청산 프로그램을 인기 있고 신뢰가 높을 때 상징 정책으로 추진했다. 집권에 대한 매우 치밀한 준비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문재인 정부는 촛불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촛불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분명히 내리지는 못했다. 촛불은 넓고 다양한 생각들이 반영된 건데, 특정 사람들이 독점하다보니 국무회의조차 중요성에서 2차적 지위로 밀려났다.

윤여준 : 김태우 비서관 사건이 났을 때 조국 민정수석 문책 논란이 있었다. 그때 내가 방송에서 읍참마속, 즉 기강 문제가 있으니 인사 조치를 하는 것이 옳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때 민주당 중진 의원이 "조국은 촛불의 상징이기 때문에 못 바꾼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촛불은 민주적 가치에 대한 분노다. 민주적 가치는 추상적이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설계가 있었던 건 아니다. 그러면 촛불에 의해 탄생한 정권은 자기들이 생각하는 촛불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촛불의 명령인지를 제시하고 동의를 얻었어야 한다. 그런데 일방적으로 자기들이 곧 촛불 행세를 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 총론에 국민 주권 얘기가 여러 번 나왔다. 대의제도를 부정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통치 시스템인 대의제를 우회하거나 뛰어넘고 싶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니, 국민에게 물어봐서 하겠다는 건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남북관계 급진전이라는 기차가 앞에서 끌고,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기차가 뒤에서 밀어 속도를 붙이고 변화의 폭을 키우면,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에너지가 생겨서 무언가를 확 바꿀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했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이 일찍이 망가진 탓에 상당한 동력을 잃었다. 남북 관계도 급진전했지만, 결국 북미 관계 문제로 접어들면서 교착, 숨고르기 국면이 됐다. DJ가 남북 관계를 살얼음 밟듯이 하면서 남남갈등 막아보려 얼마나 신경을 썼나. 그런 과거를 다 겪어보고도 문재인 정부는 남남갈등을 별로 걱정하지 않는 것 같다. 남남갈등이 필연적으로 올 것을 알면서도 왜 대비를 안 하고 걱정을 안 했을까 생각해보면, 상황을 급진전시켜서 저항과 갈등의 여지없이 관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아닐까 추측해본다.

강원택 : 대일 관계를 보면서도 왜 저렇게 갈까 의아하다. 3.1운동 100주년 대통령 연설에 기대를 많이 했었다. 식민지 국가였던 나라가 100년 뒤 경제적으로 부유한 국가가 됐다는 자긍심과 함께 아시아 평화 차원에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에 대한 메시지를 기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친일 청산을 말했다. 친일 청산은 중요한 과제이지만, 정치가 아니라 민간과 학계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지금이 반민특위 시절이라면 정치가 개입해 처단하는 게 맞지만, 몇 십 년이 흐른 지금 대통령이 개입해서 정치화시키는 것은 실용적인 해법이 아니다.

프레시안 : 역사 문제나 대일 관계가 정치화된 배경을 국내정치적 유혹 때문이라고 보나?

강원택 : 문 대통령은 1948년 이후의 한국 정치와 사회의 흐름이 매우 불공정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니 일본과 관련된 부분에서 명쾌하게 선을 그으려하고 적폐 청산을 도덕적이고 이념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부정된다. 하지만 자신이 부정하려는 것의 연속성 위에 대통령이라는 직도 있는 것이고 민주당이라는 정당도 있는 것이다.  

대통령은 현실을 보는 속에서 넘길 건 넘기고 집중할 건 집중하며 20~30년 후의 미래를 연구해야 한다. 노태우 정부 연구를 했던 입장에서 비교해보자면, 북방정책도 그렇고 서해안고속도로, 인천공항, 경부고속철도 등 인프라도 노태우 정부가 다 추진됐다. 문 대통령도 긴 안목에서 국가미래를 위한 투자를 하고 과거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는 정도로만 하면 좋았을 텐데, 정치화한 것은 답답하다. 

"국가안보는 상대방 선의에 의존해선 안 돼"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남은 임기 중에 업적을 남긴다면 북핵 문제가 유력한데, 어떻게 전망하나. 

강원택 : 문재인 방식이 아닌 대안이 무엇인가. 늘 한반도 전쟁가능성이 있던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인가. 그건 지난 10년 동안 경험을 한 것 아닌가. 북한이 가진 핵무기 폐기가 절대적 과제인데, 과거 같은 일방적 압박으로 가능한지, 한반도 위기를 고조시키는 방식이 현명한지에 동의하기 어렵다. 긴장 고조 없이 평화로움이 유지될 수 있는 정책이라면, 오래 걸려도 그런 방향이 맞지 않겠나. 그렇다면 한국당도 냉전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서 좀 더 현실적으로 북한을 바라봐야 한다. 북한 문제로 남남갈등이 격하게 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방법론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떻게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고 평화번영을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선 정파적, 이념적 갈등에서 벗어나야 한다. 

윤여준 : 전쟁 위기가 고조된 상황을 평창 올림픽을 통해서 이 정부가 풀었다. 그건 높이 평가한다. 다만, 그 이후 남북관계를 풀어가는 과정은 너무 단순한 낙관론에 의존했다고 본다. 초기에는 남북 관계의 급진전이 가능하다. 하지만 본질은 북미 관계다. 우리 의지로만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한계를 너무 가볍게 봤다. 한반도 질서는 강대국들이 만든 질서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 관계의 진전은 북미 관계의 부속물이 아니며 남북 관계 진전으로 북미 관계를 견인하겠다고 했다. 이것은 미국과 일본이 참을 수 없는 것이다. 대통령이 마음속에 그런 마음을 품는 것은 백번 이해한다. 그러나 속을 드러내는 말을 내뱉으면서 이 고차방정식을 풀어내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문제를 너무 단순하고 쉽게 봤다. 그로 인해서 한미 간 불신이 얼마나 커졌나. 

물론 남북 관계는 진전시켜야 하고 화해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는 상대방 선의에 의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선의에 의존하는 모습을 자꾸 보이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이다. 의도와 방향의 긍정성을 모두 인정하더라도, 그런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대북 인도적 지원은 유엔 식량기구도 지원하자는 쪽이니 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세심하게 계획해서 해야 한다. 예컨대 쌀을 지원할 것인지, 밀가루나 옥수수를 지원할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굉장한 차이가 있다. 밀가루와 옥수수는 장기적 보관이 어렵다. 장기적 보관이 가능한 쌀은 군량미로 전용될 수 있다는 오해의 소지가 생길 수 있다. 그런 것부터 면밀한 검토를 해서 추진하기를 바란다. 

프레시안 : 최근 이인영 원내대표와 김수현 정책실장의 비공개적인 대화가 우연히 마이크를 타고 공개되면서 관료들을 비판한 이야기가 새어나오기도 했지만, 관료사회와 청와대 관계를 어떻게 보나. 

윤여준 : 권위주의 시절 국가권력이 관료들에 대한 수직적 통제를 엄격하게 했다면, 국가권력이 약해진 민주화 이후에는 통제력도 많이 약해졌다. 그렇다면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민주적 시대에 맞는 관료들에 대한 통솔 방식을 고민해야 했다. YS, DJ도 그런 고민은 하지 않았다. 상도동, 동교동 가신들이 대거 청와대 들어와서 부처를 지휘했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보면 평생 1급 달지 못하고 퇴임하는 사람들이 다수인데, 갑자기 가신들이 1급으로 날아와서 자기들을 지휘한 것이다. 이러면 관료들이 승복하지 않는다. YS 때 1급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상도동 가신들 때문에 1급이 개값 됐다'는 농담까지 했다. 그런 일을 겪은 공무원들에게는 자기 직무에 충실해봐야 출세에 도움이 안 되고 청와대에 줄을 대야한다는 학습효과가 생겼다. 관료사회가 급속도로 정치화되고 지역주의 인사로 인해 지역화 됐다. 공직사회의 윤리와 기강이 무너졌음에도, 어떤 지도자도 그 문제를 고민하지 않았다. 

새 대통령이 아무리 훌륭한 그림을 그려도 색칠은 관료들이 한다. 색칠을 엉망으로 하면 그림이 아무리 좋은들 무슨 소용인가. 청와대가 무슨 수로 정책을 다 집행하나. 관료들은 새 정부가 들어오면 정책 집행 능력을 가늠해보려고 몇 달을 기다린다. 그러니 청와대가 관료사회를 지배하려면 관료사회로부터 인정받는 사람들을 장관이나 수석에 기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능동성과 자발성을 전혀 끌어낼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와서 관료들 탓이다? 아직도 문제의 본질을 모르는 것이다. 

강원택 : 한편으로는 관료집단도 적폐로 생각하는 것 같다. 고위관료들을 기득권으로 보는 것 같다. 머리는 청와대가 하더라도 수족은 관료들일 수밖에 없는데, 수족을 스스로 쳐내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예컨대, 이명박 정부에서 녹색성장 정책을 잘한 공무원이 있었다고 치자. 이 사람은 박근혜 정부에서는 과거정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관료는 움직이지 않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게 된다. 업무적 평가가 아니라 다른 기준으로 평가받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관료들은 움츠러든다. 관료들을 청와대가 부정적으로 보고 틀어쥐려고만 하면 인센티브 위주로 가지 못하고 윽박지르는 형태로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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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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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