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나눔의 집' 찾아 "위안부 합의 무효"

더민주, 의원총회 규탄대회…"정부가 100억에 혼을 팔아넘겨"

더불어민주당이 한일 외교당국 간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비판의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당 지도부가 나서 합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다. 일본이 소녀상 철거를 10억 엔 출연의 조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며 여론이 악화된 가운데, 문재인 대표가 직접 '일본 돈을 거부하고 우리가 모금을 하자'는 제안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와 소속 의원들은 31일 경기 광주시에 위치한 위안부 피해자 쉼터 '나눔의 집'을 찾아 할머니들과 대화를 나눴다. 문 대표는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합의 보시고 놀라셨지 않느냐"며 "할머니들께서 '우리를 왜 두 번 죽이냐'며 우셨다는 보도를 보고 정말 마음이 아팠고, 우리 당도 어제부터 '아주 잘못된 합의이고 국회 동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다. 새롭게 협상해서 할머니들이 받아들일수있는 합의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제 어머니가 89세로 할머니들과 비슷한 연배"라며 "49분만 남은 지금 이 순간까지 위안부 문제 해결을 못해서 정말 죄송스럽다"고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게끔 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번 합의는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도의적 책임이라는 '립 서비스'만 했다. 총리 사과를 대독으로 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이런 합의를 용납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10억 엔은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할머니들에게 "그것이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적인 배상금으로 내놓는 것이라면 우리가 받을 수 있지만, 배상금이 아니라 위로금조로 내놓고 그마저 소녀상을 철거하는것을 조건으로 내놓는다는 것 아니냐. 그걸 어떻게 받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우리는 오늘 '그 합의가 다 무효다. 그 돈도 받을 수 없다. 우리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을 일본 돈이 아닌 우리 돈으로 설립하자'며 재단 설립을 위한 100억 원 모금 운동을 제안했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할머니 "아베가 사과 못하면 일본 왕이 사과하라"

문 대표와 만난 할머니들은 정부에 대해 섭섭함을 토로하며 야당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합의 당일 '정부가 하는 대로 따르겠다'고 말했던 유희남(87) 할머니는 이날은 문 대표에게 "여기 계신 양반들은 여자로서의 인권을 짓밟히고 구사일생으로 살았다"며 "저희는 나이도 많고 죽을 날 가까워지니 '정부에서 잘 해주겠지' 믿고 있었는데 요즘 실망해서 밥도 못 먹는다"고 했다.

유 할머니는 "늙고 병들어서 오갈 데 없으니까 정부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 줘서(나눔의 집은 후원으로 운영되는 시설이다 : 편집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는데 이번 일은 잘못한 것 같다"며 "이번에 일 처리를, 정부에서 할머니들을 무시하고(했다). 남의 할머니가 아니라 내 할머니, 내 엄마라고 생각해 보라. 그렇게 무관심하게 남의 일처럼 끝내고 말겠느냐"고 정부를 비판했다. 유 할머니는 또 일본의 법적 책임 인정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이 법치국가 아니냐"며 "법치국가로서 법적으로 배상하고 또 사과하(도록 하)고, 아베 총리가 사과 못하면 그러면 덴노(일본 국왕) 밖에 더 있나. 덴노가 그렇게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 할머니는 문 대표와 야당을 향해서도 "바쁘겠지만 국회에서 이 늙은이들을 위해 말을 해 달라"며 "도저히 저희 힘으로는 할 수 없다. 국회에서, 정부에서 해야 하니까 이번에 민주당(더불어민주당) 덕 좀 봅시다"라고 당부했다. "우리가 늙고 병들어 우습지만 민주당에서 어떻게 하는지, 한나라당에서 어떻게 하는지 다 알고 있다. 힘 좀 많이 써달라"고도 했다. 문 대표가 "그러겠다"고 약속하며 "할머니,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나라가 부끄러워야지"라고 위로하자, 유 할머니는 "이제 부끄럽지 않다. 부끄러운 것은 대한민국 정부이고 남자들"이라고 답했다.

이옥선(88) 할머니는 "일본에서 할머니들 죽기를 기다리니깐 우리 정부도 할머니들 다 죽기를 기다린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정부를 향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우리가 (일제시대) 사형장에서 죽지 않고 어떻게 빠져나와서 이렇게 사는데…"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저는 기역(ㄱ) 자도 모르니까 그저 그놈들한테 끌려갔는데, 60년만에 오니까 아버지 엄마 다 돌아가시고 저도 국적이 없다"며 "이렇게 됐는데 왜 또 우리가 일본 사람한테 말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되는 건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 할머니는 "꼭 법적 배상을 받게 해 달라"고 강조했다.

강일출(87) 할머니는 울먹이면서 "우리 할매들이 다 늙었다고 그러지 말고 이 문제를 똑바로…(해결해 달라). 우리는 속에 말이 있어도 삭히는 것"이고 했다. 이날 문 대표의 나눔의 집 방문에는 당 소속 이미경(5선), 남윤인순, 신경민, 이학영, 홍익표(이상 초선) 의원이 동행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1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대화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더민주, 규탄대회 열고 결의문 채택…'재협상 촉구 결의안'도 당론발의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굴욕적인 위안부 협상 규탄 대회'를 열고 당 소속 국회의원 일동 명의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는 협상 실패를 인정하고 무효임을 즉각 선언할 것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대국민사과를 할 것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사퇴할 것 △한일 양국 정부는 즉각 재협상에 나설 것 등 4가지를 결의문을 통해 촉구했다.

규탄 대회에서 문 대표는 "박근혜 정부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며 "국민의 분노가 땅을 치고, 할머니들의 절규가 하늘을 찌르고 있는데 오직 정부만 잘한 협상이라고 한다"고 꼬집었다. "온 국민이 반대하는데 정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한다"는 것. 문 대표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지난 24년간 그 고단한 몸을 이끌고 싸워온 결과가 너무나 허무하고, 너무나 굴욕적"이라며 "사상 최악의 외교적 참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문 대표는 "일본에서는 소녀상 철거가 10억 엔 지급의 전제조건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며 "일본은 10억 엔이 배상이 아니라고 분명히 못박았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굴욕"이라고 비판을 이어갔다. 그는 그러면서 "정부가 10억 엔에 우리의 혼을 팔아넘긴 것"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며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이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는 면이 있다.

문 대표는 "10억 엔에 할머니들을 팔아넘길 수 없다"며 "우리는 굴욕적인 협상 결과로 얻는 10억 엔을 거부한다. 정부는 그 돈을 받지 말 것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 설립을 일본 돈이 아니라 우리 돈으로 하자"며 "국민이 나서서 할머니들을 지키고, 소녀상을 지키고, 역사를 지키자.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재단 설립자금 100억 원 국민 모금운동을 제안한다"고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박근혜 정권은 8가지 국민적 의혹에 대해 명확히 대답해야 한다"며 "△위안부 기금 10억 엔 지원이 소녀상 이전의 대가인가? △위안부 자료 관련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보류(에 대한) 이면합의가 있었는가? △우리 측이 비판 여론을 우려해서 합의문 작성을 하지 말자고 요구했는가? △한국 정부는 일본 측 요구에 따라 앞으로 국내외적으로 '성노예'라는 표현을 자숙할 방침을 암묵적으로 전달했는가? △일본의 '책임 통감' 문구에 합의한 것이 '법적 책임을 부정'하는 일본 측 입장을 사실상 수용한 것인가? △일본 측 사죄의 주체와 형식이 총리가 아닌 외무대신 '대리 사죄'에 그친 것은 일본 측을 과도하게 배려한 것 아닌가? △졸속 합의에 대한 국회 동의를 회피하는 편법을 쓰면서 '최종적이며 불가역적 해결'이라고 선언한 것은 아베 총리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인가?△급작스러운 졸속 합의를 낳기까지, 미국 국무부 등에서 말하는 '적절하고 건설적인 역할'은 어떤 작용을 했으며 이에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과 군사정보보호협정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관련 기사 : 위안부 굴욕 협상의 배후에 미국이 있다)"라고 종합적으로 의혹을 제기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같은 당 유승희 의원은 이날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국 정부 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무효 확인 및 재협상 촉구 결의안'을 당론으로 대표발의했다. 이 결의안은 대표발의자인 유 의원 외에 당 소속 국회의원 119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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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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