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독약 '유럽중심주의'란 무엇인가?

[인문견문록] 강철구의 <역사와 이데올로기>

필자가 일하는 단체의 이름은 '민족미래연구소'다. 가끔 어디서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어 '민족미래연구소'라고 대답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의아해한다. 마치 "요즘 세상에 민족이라니 너무 촌스러운 것 아니야?"라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한국 사회에서, 최소한 지식인의 담론세계에서 '민족'은 과거 유물처럼 취급받는다. 한국을 대표하던 문학인단체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민족이 없어진 지 한참이다.

한국 사회가 발전했기에 '민족'이라는 말이 어색한 것일까?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숙해져서 전근대(?)적인 '민족'을 찾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담론세계에서 민족이 사라진 것은 한국 사회 '건강함'의 징표가 아니라, '퇴락'의 표식에 지나지 않는다. '민족'의 실종은 우리의 자의적이고 주체적 결단일까? 한국 사회에서 민족이 사라진 것은 한국인들의 정신세계가 '유럽중심주의'란 질병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강철구 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다. 강철구 교수는 자신의 책 <역사와 이데올로기>(용의숲 펴냄)를 통해 고고학부터 시작하는 유럽중심주의의 일관된 계보를 역추적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가 문제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뜬금없다고 할지 모르겠다. 보통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다수의 지식인에게 유럽중심주의에 세뇌(?)되어 있는 상황이라서 그렇다. 물고기가 자신을 둘러싼 물의 저항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듯 지식인들은 유럽중심주의를 계몽된 사회의 교양으로 체화하고 있다. 그래서 본인의 주체적 사유가 유럽중심주의의 산물인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다. 유럽중심주의가 무서운 까닭이다. 자신의 '객관'이 이미 '객관'이 아닐 때 지식인의 지적 근거는 어떻게 성립하는가? 지식인 대부분은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날 생각조차 못 한다. 지식인의 정신적 기반이 '근대 계몽주의'에 기초하고 계몽주의는 유럽중심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유럽중심주의란 무엇인가? 강철구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그것은 유럽을 세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태도이다. 다른 말로 하면 비유럽 문명에 대한 유럽 문명의 독특성과 우월성을 주장하는 가치, 태도, 생각, 나아가 이데올로기적 지향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아시아인은 아시아 중심적 사고를, 아프리카인은 아프리카 중심적 사고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당연하지 않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만이 아니라, 유럽 이외의 존재에 대한 '전략적 무시'를 병행하기 때문이다. 유럽중심주의는 유럽예외주의와 오리엔탈리즘으로 구성된다.

유럽예외주의는 이런 것이다. "유럽은 사유재산권을 발전시킴으로써 경제발전이라는 개념을 유럽의 발명으로 만들었고 자율적인 도시를 만들어 기업활동과 시민적 자유를 확보했으며, 지역적 종교적 분열로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단일지배체제가 불가능하게 됨으로써 정치적 자유를 만들어냈다. 또 중세의 비약적인 농업발전은 신석기시대 이래 세계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다." 유럽이 자신들을 자랑스러워하든 말든 그게 무슨 문제일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유럽예외주의는 꼭 오리엔탈리즘을 동반한다는 사실에 있다. 오리엔탈리즘은 비유럽지역에는 발전도, 계몽도, 인권도 없다는 생각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의 무서움은 그런 생각이 서구인들만이 아니라 비서구인의 내면까지도 장악한다는 점이다. 서부영화를 보면서 인디언이 아니라 기병대에 감정이입 하는 것은 서구인만이 아니었다. 바그다드 폭격을 서구인의 관점으로 비디오 게임처럼 바라보던 사람에 비서구인들도 포함된다. 비서구인조차 비서구인의 후진성을 당연한 듯 인식하며 자란다. 벌써 오래전 일이라고? 그럼 최근 '제주난민'으로 주목받은 예멘 문제는 어떤가? 예멘 문제는 예멘 내부의 갈등이 본질이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멘 침공과 봉쇄가 예멘 사태의 핵심이다. 사우디는 핵심동맹국인 영국, 미국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다. 예멘 난민을 앞에 두고 사우디아라비아나 사우디아라비아를 지원하는 영국, 미국을 비난하는 대신 우리는 난민만을 비난하고 있다.

유럽중심주의가 학술적으로 구축되는 데에는 역사학의 역할이 지대했다. 이런 역사학에 대해 강철구 교수는 우리들이 "비판적 검토 없이 (유럽중심주의를-필자주)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서양인들이 만든 역사 인식의 포로가 되어왔다"고 혹평한다. 역사학이 유럽중심주의란 이데올로기의 첨병 노릇을 한 것은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근대 역사학은 객관성을 담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근대 역사학의 비조인 독일 역사가 랑케(L. Ranke)는 19세기 초 역사학을 학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주관적 요소를 가능한 배제하고 '객관적'일 것을 주장했다. 랑케 이후 역사학이 '객관'의 외피를 쓰고 발전해 왔지만 역사 서술에는 역사가 개인의 편견이 많이 작용했다. 근대역사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랑케조차도 "국가와 민족을 신화화함으로써 19~20세기 독일 국가와 사회의 권위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정당화했다"란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객관성을 바탕으로 근대 역사학을 개척한 랑케조차 편견과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때 일반 역사가들의 삐뚤어진 시각이야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유럽중심주의의 궤적을 추적해 들어가면 고고학이 등장한다. 독일 고고학자 빌저(L. Wilser)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출발한 독일인이 세계를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고고학자 코시나(G. Cossina) 역시 독일 인종의 우수성을 고고학을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심지어 트로이를 발굴한 슐리만조차 "트로이인이 아리안족이라서 만족스럽다"고 안도했다. '신석기 혁명'으로 유명한 비어 고든 차일드(V.G Childe)는 유럽 문명을 독특하게 기초 짓는 힘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했다. 그는 여타 지역과 다른 유럽의 독특한 독립성, 창의성은 청동기시대부터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크레타문명과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비교한 후 유럽(크레타)의 청동기 금속노동자는 오리엔트(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자유로워서 자신의 창의성을 표출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청동기시대부터 백인이 정신적으로 우월했다는 주장을 학문의 이름으로 서슴없이 하고 있다.

고고학에서 출발한 유럽중심주의는 그리스문명에 대해서도 독점권을 행사하려한다. 강철구 교수는 "로마 말기부터 중세시기의 근 천년 동안 유럽은 그리스문화와 거의 차단되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자신의 철학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일 때 사람들의 비난을 각오해야 했다. 당시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독교세계보다는 아랍세계에 속하는 철학자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라고 강철구 교수는 설명한다. 그런데 어떻게 연결된 걸까?

강철구 교수는 연결고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18세기 말까지도 교육받은 서유럽인들은 그들의 문화가 로마적이고 기독교적인 기원을 가졌다고 믿었으므로 이교적인 고대 그리스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상황은 18세기 후반 독일 출신 미술평론가였던 빙켈만(J. Winckelmann)이 미술평론을 통해 그리스에 대한 열정을 불러일으키면서 바뀌게 된다. 그는 그리스 미술을 '고귀한 단순성과 조용한 숭고함'으로 표현하며 유럽 문명의 기원을 그리스에서 찾고자 했다. 그의 그리스에 대한 찬탄은 당대의 많은 유럽 교양인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이들 중에 괴테, 헤르더, 헤겔 같은 1급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리스는 마침내 유럽의 기원이 되었다.

그리스가 유럽의 기원으로 격상되면서 그리스인들이 만든 '문명인 헬레네스와 미개인 바르바로이'의 이분법은 근대에 들어와서 유럽인과 비유럽인의 구도로 부활한다. 강철구 교수에 따르면 “18세기 계몽사상 시대에 유럽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그 정체성을 고대로까지 확장해가는 과정”에서 이분법적 구도가 정착되었다고 한다. 서구의 거의 모든 정치사상은 그리스로 귀속된다. 유럽인들은 비유럽인을 향해 자신들의 그리스적 민주주의, 그리스적 인본주의를 자랑해왔다. 과연 그리스는 유럽적이었던가? 코넬 대학교수 버널(M. Bernal)이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1987년 버널 교수의 책 <블랙아테나>(오흥식 옮김, 소나무 펴냄)는 지식인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제목은 아테나 여신의 신격이 이집트에서 왔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 책은 고대 그리스에 대한 이집트와 페니키아의 영향을 다루고 있다. 버널 교수는 그리스 문명이 자생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기존 학설에 도전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감추지 않았다. 외부의 영향을 인정하지 않고 독자 문명이라는 틀로만 바로 본 것은 정작 근대유럽인들이었다. 그리스에 대해서 유럽인은 편집증적으로 매달려왔다. 유럽인들은 그리스의 아름다움, 그리스의 민주주의, 그리스의 창조성을 강조한 후 그리스적 특성이 유럽으로 독점적으로 이어졌음을 주장했다. 버널의 작업은 지난 200년간 이어져 온 그리스의 우수성과 독창성 그리고 그 위에 구축된 근대 유럽 문명을 뿌리부터 흔드는 것이었다.

유럽중심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자신들의 욕망을 휴머니즘으로 포장한다는 점이다. 후진적인 비유럽지역을 어떻게 해야 할까?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서구의 양심은 비서구 지역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병훈 서강대 교수의 논문 '존 스튜어트 밀의 위선'이란 논문에 의하면, 근대 영국의 탁월한 지식인이었던 밀은 '선의의 제국주의'를 주장했다고 한다. 밀은 식민지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제국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했다. 친한 친구였던 토크빌은 밀의 이런 주장을 위선이라고 비난했다. 박동천 전북대 교수는 논문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밀이 당시 인도인의 정치적 역량을 영국인이나 아일랜드인보다 전체적으로 낮게 잡았고, 자신처럼 선의를 가진 자유주의 계몽주의자 영국인들이 인도의 개명을 이끌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토크빌의 비판처럼 영국 제국주의의 남다른 점은 다른 국가의 제국주의보다 질적으로 좋다기보다 자신들의 행동이 '선의'에서 나왔음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는 데에 있다. 조반니 아리기는 미국의 패권이 영국만큼 오래 유지되기 힘들 것이라 예상하는 데 그 이유가 독특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의 꿀단지였던 인도 같은 존재가 미국에는 없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1차 대전에 영국을 위해 참전한 인도 군인만 130만 명이었다. 인도는 영국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그런데도 영국은 자신들이 인도를 위해서 통치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인 밀의 위선을 비난하던 토크빌도 마찬가지였다. 서병훈 교수의 또 다른 논문 '유치한 제국주의'에 따르면 미국 민주주의를 찬양하던 민주주의자 토크빌은 아프리카 대륙에 프랑스 식민지를 구축할 것을 앞장서 주장했다. 또한 알제리를 식민지로 만드는 일에 적극적이었다. 계몽사상가 로크 역시 비슷했다.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을 뺏을 때 원용된 것은 로크의 '시민정부 제2론'이었다. 로크는 토지보다 노동이 더 중요한 요소이므로 땅을 자연 그대로 놀려두는 인디언들보다 울타리를 치고 경작하는 사람에게 재산권이 귀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의 표준 논리가 되었다.

유럽중심주의는 위대한 사상가들조차 비껴가지 않았다. 헤겔은 "세계 정신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그런 민족(지배민족-필자 주)이 갖고 있는 절대적인 권리에 대해 다른 민족의 정신은 아무 권리도 갖지 못 한다"라며 제국주의를 옹호하는 발언을 남긴다. 피억압자의 동지였던 초기 마르크스조차 자본주의를 가져오는 한 비록 식민주의라 해도 역사적 진보의 계기라고 보았다. 베버는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자본을 축적하려는 프로테스탄트들의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자본주의는 프로테스탄트만이 가져올 수 있는 특별한 축복인가? 동북아시아가 성장하자 유교 자본주의가 주목받았다. 급성장 중인 인도 덕분에 힌두 자본주의.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덕분에 이슬람 자본주의가 등장해야 할 차례다. 1급 지식인들조차 유럽은 특별한 존재라는 신념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 신념은 그들의 이론으로 포장되고 담론 시장에서 유포된다.

밀, 토크빌, 로크 같은 지식인들의 눈을 막아버리고 식민 지배를 긍정하게 만든 힘은 '유럽은 문명이고 비유럽은 야만'이라는 이분법이다. 그리스인들이 자신들을 문명인 헬레네스, 비그리스인을 야만인 바르바로이로 구분했던 이분법이 유럽중심주의 역사학을 만나 여전히 힘을 떨친다. 지식인 자신은 그런 이분법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처럼 자신만만해 하지만 이분법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프랑스의 쟁쟁한 지식인 중 프랑스가 2차 대전의 피해자인 것만이 아니라 알제리 식민지배의 가해자임을 지적한 것은 사르트르가 유일했다. 레지스탕스를 한 프랑스 공산당조차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대해 침묵했다. 서구의 유고, 코소보개입을 반대한 지식인이 있는가? 한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가라타니 고진은 하버마스가 서구세력의 코소보 공습을 공공적 합의에 의한 것이란 이유로 지지했다고 비판한다. 한국 지식인들이 추앙하는 세계 정상급 지식인들의 수준이 이런 정도다.

강철구 교수는 유럽중심주의가 단순한 이론, 그 이상임을 지적한다. "유럽중심적인 서양사는 단순한 이론 이상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수많은 사실에 대한 진술과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들로 짜 맞춘 하나의 거대한 신념체계이다." 어느 지식인이 있어 혼자 단독적으로 "나는 유럽중심주의를 벗어날 거야"라고 결단한들 쉽지 않다. 자기가 추종하는 지식이론의 상당 부분을 재점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분법에 근거한 유럽중심주의는 결국 '인종주의'로 발전한다. 인종주의에 대해서 강철구 교수는 "인종주의는 지난 500년간 유럽 국가들이 힘을 전 세계로 확대해나가며 다른 대륙의 사람들을 죽이거나 노예화하고 착취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이념"이라고 비판한다. 인종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수행하는가? 인종주의는 사회의 자원 배분과 부, 권력, 특권의 불평등을 정당화한다. 현재 세계는 이런 인종주의를 벗어났는가? 세계가 '식민주의시대'로 접어든 이래, 인종주의를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세계가 불평등하게 심층적으로 구조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지젝은 책 <새로운 계급투쟁>(김희상 옮김, 자음과모음 펴냄)에서 콩고 내전의 숨은 비밀을 파헤친다. 지젝은 400만 명이 희생된 20세기 말 최악의 비극은 콩고 내부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콩고 내전은 5개 광물에 대한 독점권을 노린 프랑스와 미국의 대리전이었다고, 지젝은 단언한다. 백인 몇 사람이 희생당하면 휴머니즘에 대한 도전인 양 전 세계가 나서서 호들갑을 떨지만, 광물자원 때문에 제3세계인 수백만 명이 죽어 나가는 것은 그들의 '미개함' 때문이라며 외면한다. 인간을 비인간(unpeople)으로 만들면 매우 편리하다. 그들의 고통에 공감할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인종주의는 인간을 비인간으로 만드는 도구다.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은 인종주의를 거쳐 식민주의조차 미화하는 '주변부 중심론'으로 발전한다. 홉슨이든 레닌이든 기존 제국주의 이론의 논지는 중심부제국의 내부적 필요에 의해 제국주의를 확장해 갔다는 것이다. 제국주의는 중심부가 주도했고, 따라서 책임도 중심부 국가에게 있다. 기존의 상식을 반박하는 이론이 등장한다. 갤러거(J. A. Gallagher)와 로빈슨(R. E. Robinson)이 제시한 '주변부 중심론'은 유럽 내부의 경제적·정치적 요소보다 비유럽지역의 정세 변화가 주요 동기라고 말한다. 즉, 비(非)유럽인들이 식민주의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들이 거론하는 예는 이런 것이다. 1881년 이집트의 아라비 파샤가 일으킨 민족주의적 반란이 영국과의 협력관계를 위태롭게 해서 영국은 수에즈 운하와 투기자본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이집트를 직접 점령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동학동민운동으로 어수선해진 틈을 타 일본인 보호라는 명분으로 출병한 일본군과 비슷한 논리다. 강간범보다 예쁜 여자가 문제라는 도착적인 논리가 학문의 탈을 쓰고 전개된다. 이런 논리는 아프리카에도 청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나쁜 제국주의도 문제지만, 결정적 원인 제공자는 비유럽 현지인들이라는 것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책임도 현지인에게 넘어간다.

유럽중심주의에 제3세계인은 무엇으로 대항할 수 있을까? 유럽중심주의의 대립항은 결국 민족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 유럽중심주의를 제어하는 힘은 현지인의 자기 보호 원리인 민족주의로부터 나온다. 한국을 살펴보자. 한국은 '민족주의'가 소멸 중인 사회다. 민족주의의 잔불이 축구경기 동안에나 튀어나올 뿐이다. 정서로서의 민족은 존재하되 이념으로서의 민족주의는 사라지고 있다. 민족주의가 힘이 있으러면 지식인 담론으로 유통되어야 한다. 유학의 지식유통경로가 사라지면서 유교가 종적을 감추었듯이 민족주의 담론이 담론경로에서 사라지면서 민족주의도 따라서 소멸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불어 닥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이념을 백안시했다. 주된 공격대상은 민족주의였다. 그런데 민족주의가 공격을 받던 그때 세계는 공정했고 서구의 군사적 개입주의는 줄어들던 시점이었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유고, 콩고 내전, 이라크, 리비아 등 세계는 더욱 불공정해졌고 서구의 군사적 개입은 더욱 지독해지던 시점이었다. 이때 왜 한국의 민족주의만이 유독 문제가 되어야 했을까? 한반도만을 보아도 북한은 국제적 봉쇄로 인민 전체가 거덜 날 지경에 이르렀고, 남한은 IMF의 가혹한 강요로 중산층이 붕괴해 가고 있었다. 왜 민족주의적 감정이 가장 필요했을 때 민족주의는 그토록 조롱당한 것일까?

유럽의 현대성, 비유럽의 후진성은 자명한 진리가 아니다. 사실 나이토 고난(內藤湖南)이 주장한 '송대 이후 근세설'을 접하면, 근대가 도대체 서양에서 시작된 것인지? 동양에서 시작된 것인지 헷갈린다. 고난에 따르면 북방 금나라에 쫓겨 남쪽으로 밀려난 송나라(宋, 960년~1279년)가 근세의 시작이다. 왜 그럴까? 송나라는 봉건제 대신 군현제를 채택했고 귀족제를 철폐했다. 과거제를 채택하여 유능한 관료를 선발했다. 또한 시장경제까지 발달했다. '송대 이후 근세설'에 따르면, 송나라는 이미 국민국가였다고 한다. 유럽이 생각하는 것만큼 비유럽은 미개하지도 야만적이지도 않았다.

유럽중심주의의 최종 목표는 유럽의 제국주의와 식민지배에 대한 면죄부를 발부하는 것이다. 강철구 교수는 "이런 의미에서 식민주의는 결코 지나간 과거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오랜 기간 계속 제3세계인들을 괴롭힐 악몽이다. 우리가 식민주의라는 주제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비판적인 대응을 강화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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