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직업병 해결한다던 文대통령 약속은 어디로?"
2018.07.02 18:32:51
[현장] 故 문송면 산재 사망 30주기 및 반올림 노숙 농성 1000일 회견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던 15세 소년, 고(故) 문송면. 중학교도 마치지 않은 채 돈을 벌어야 했던 소년은 어느 날 머리가 몹시 아팠다. 감기몸살인가 싶어서 병원을 찾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의사도 이유를 몰랐고, 결국 무당을 불러서 굿까지 했다. 그래도 머리가 아팠다. 어느 날, 의사가 물었다.


"너, 무슨 일하니?"

그제야 모든 게 명확해졌다. 그는 수은 중독이었다. 일터에서 그는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수은을 다뤘었다. 수은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주는 어른도 곁에 없었다. 병명이 밝혀지고 얼마 뒤, 문송면 소년은 세상을 떠났다.

그게 딱 30년 전, 1988년 7월 2일이다. 그 해 7월은 915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230명이 사망한 '원진레이온 직업병'이 처음 알려진 때이기도 하다. 문송면 소년의 사망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사건은 산업재해 방지 운동의 불씨가 됐다. 그 흐름 속에서 산업재해 전문 병원이 문을 열었고, 직업환경의학전문의(옛 산업의학전문의) 제도가 도입됐다.

그래서 우리네 일터는 얼마나 안전해졌나? 성적표는 참혹하다. 삼성 계열사에서만 118명이 직업병으로 사망했다. 이는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반올림)이 지난 10여 년 동안 확인한 숫자다. 반올림이 확인한 삼성 계열사 전체 직업병 피해자는 320명이다. 피해자와 사망자 대부분은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및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나왔다. 이는 반올림이 확인한 숫자일 뿐이므로, 알려지지 않은 피해자는 더 있을 수 있다. 


긴 소송 끝에 법원이 산업재해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뚜렷한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최고 기업이 산업재해 대책을 외면한 가운데 중소 규모 사업장에선 사고가 빈발한다. 위험한 일이 비정규직과 외주업체에게 쏠리는 구조라서, 피해 역시 약자에게 몰린다.

이런 상황에 항의하기 위해 반올림은 서울 강남구 삼성 본관 앞에서 노숙 농성을 진행해 왔다.

고(故) 문송면 30주기인 2일은 반올림이 노숙농성을 한 지 1000일째다. '문송면·원진 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 추모조직위원회'와 민중공동행동, 반올림 등은 이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에 걸려 지난 2007년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도 2일 회견에 참가했다.

"30년 전 오늘 사망한 문송면 소년은 화학약품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우리 유미도 학교에서 이와 관련한 어떤 교육도 받지 못했다. 전체 학생 가운데 90%가 졸업 이후 노동자가 된다. 미래 노동자인 학생들에게 학교는 노동교육이나 화학약품 교육을 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당장에라도 노동환경교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병들지 않고 죽지 않는다."

황 씨의 발언이다. 수은 등 중금속과 산업현장에서 쓰는 화학물질의 위험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 없이 일터로 내몰린 고(故) 문송면 소년, 먼지가 없으니 깨끗하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반도체 공장에서 쓰는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없었던 고(故) 황유미 씨. 30년 터울에도 두 사람 사이엔 차이가 없다는 설명이었다.

아울러 황 씨는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삼성 직업병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서명한 데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도 반올림과 대화하겠다고 약속했지만, 2년이 지나도록 어떤 것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외쳤다. 삼성 직업병 문제에 관한 한, 정부 안에서 삼성 경영진 입장을 두둔하는 목소리는 거센 반면, 직업병 피해자 편에 선 목소리는 안 들린다는 지적이다.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도 회견에 참가했다. 그의 말이다.

"재작년 삼성과 LG의 휴대전화 부품 하청공장에서 일하던 비정규직 청년 7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했다. 19살 청년이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홀로 수리하다 사망하고, 현장 실습 중 특성화고 학생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 젊은 청년들의 죽음이 지금도 반복된다. 국회는 중대재해를 양산하고 노동자 목숨을 위협하는 기업에 대해 분명한 처벌법을 만들어야 한다."

아울러 이날 회견 참가자들은 △생명안전권의 헌법 명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화학물질 알 권리 완전 보장 △청소년 노동자의 건강권 △위험의 외주화 금지 등을 요구했다.

이날 회견을 마련한 단체들은 7월 첫 주 내내 산업안전 관련 행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오는 4일 저녁에는 '삼성 포위의 날' 행사가 열린다. 산업재해를 외면하는 삼성 경영진에게 항의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을 시민이 둘러싸는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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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석 기자
mendram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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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 복지, 재벌 문제를 주로 취재했습니다. 복지국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삼성을 생각한다>를 내려고 김용철 변호사의 원고를 정리했습니다. 과학자, 아니면 역사가가 되고 싶었는데, 기자가 됐습니다. 과학자와 역사가의 자세로 기사를 쓰고 싶은데, 갈 길이 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