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평화체제 빅딜 기회, 박근혜 정부가 막았다"
2018.05.11 15:57:19
[토론회] 남북미중 모두 '쌍궤병행' 호랑이 등에 올라 탔다

역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가운데,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의 성패가 여론의 집중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북한의 '진정성'과 의도를 의심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북미 회담을 비롯한 비핵화·평화체제 협상 전망을 낙관한다.


특히 이같은 낙관론의 근거로 북한의 입장 변화와 함께 한국의 정권교체를 주요 요인으로 제기한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끈다.

북한 전문가인 이정철 숭실대 교수는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인영 의원실과 코리아컨센서스연구원(KCI) 공동주최로 열린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경제정책과 평화체제 구상' 토론회에서 낙관론의 이유로 "지난 201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운을 뗐다.

이 교수는 "2015년 (남북 고위급 접촉 결과인) 8.25 합의 이후 일련의 협상 국면이 있었는데, 김양건의 사망과 북한의 2016년 1월 4차 핵실험으로 끝날 때까지 오간 물밑 협상의 실체가 중요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취임식에서 말한 "과거 대북협상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과거 20년의 역사가 아니라 바로 이 2015~16 연간의 일을 의미한다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북한·중국은 비핵화-평화체제의 동시적·단계적 추진을, 보수정부 당시의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선(先)비핵화를 요구했다'는 일반적 인식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협상을 가장 잘 알려주는 것은 2016년 2월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가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칼럼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음의 몇 단락이다.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1월 6일 핵실험을 강행하기 불과 며칠 전 미국과 북한이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하기로 비밀리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핵실험 이후 미국이 회담을 없었던 일로 포기했다는 것이다. WSJ의 보도에 대해 국무부는 보도가 잘못됐다며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워싱턴은 핵실험 전에 평화조약 회담에 합의하지 않았다. 사실은 이렇다. 평양이 평화조약 회담을 제안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평화조약 회담이 비핵화 회담과 병행해 이뤄져야 한다는 미국의 요구를 평양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 대한 국무부의 발언은 이번 달 초 내가 베를린에서 들은 것과 일치한다.

(중략) 국무부가 본질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북한과 평화조약을 위한 회담을 할 준비가 됐다는 것이다. 단 평화조약 회담에는 비핵화가 구성 요소로서 포함돼야 한다. 이런 형국을 표현하는 미국 속어는 'flipping the script(판세 뒤집기)'다. 즉,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지난 25년간 유지돼온 대북(對北) 협상의 형판(形板.template)이 점진적이지만 상당한 정도로 바뀌고 있는 현장이다. 94년 제네바 합의나 일련의 6자회담 합의들이나 우선순위의 핵심 목표는 비핵화였다. 오직 비핵화 과정이 빠른 속도로 진행된 다음에야 관련 당사국들이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논의에 착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중략) WSJ 보도에 대한 국무부의 반응은 사실상 대북 대화에 새로운 선례를 남긴 것이다. 핵무기가 단지 한 요소에 불과한 포괄적인 평화협정을 위한 협상의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은 휴전협정을 대체하는 평화협정이 협상의 필요조건이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을 틀림없이 만족시킬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이 '법적인(de jure) 핵보유국으로서 미국과 평화조약을 맺는다'는 북한의 목표 실현이라고 보는 사람들을 틀림없이 격분시킬 것이다. - 2016.2.26. <중앙일보> '대북 외교의 판이 바뀌고 있다'

이 교수는 "빅터 차는 지금의 상황을 너무나 잘 예측했다. 그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즉 북한은 (병행이 아니라) 선(先)평화협정을 주장했고, 미국과 중국은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병행을 주장했다"고 2015~16 연간의 물밑 협상 상황을 분석했다.

그럼 한국은? 이 교수의 말이다. "한국 정부(당시 박근혜 정부)는 선 비핵화를 주장했다. 그러다 판이 결렬되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자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을 닫았다."

그는 토론회 자료집에 실린 발제문에서도 "미국이 선 비핵화 대신 병행론을 요구했다는 점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나, 그것은 빅터 차에 의해 이미 한국 정부에 공공연하게 전달됐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을 닫고 사드(THAAD) 배치를 수용한 것이 그 즈음"이라고 지적했다. 즉 2016년 중국이 공식 중재안으로 제안한 '쌍궤병행'은 사실 미국 정부가 2015년 전후 대북 협상에서 견지했던 태도와 사실상 같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은 협상이 (잘) 될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변수는 한국 정부가 선 비핵화를 고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판문점 선언은) 9.19 공동성명과 다르다'고 말한 의미가 바로 그것"이라며 "북한도 2015년 10월 이후 내세우던 '선 평화협정론'을 포기하고 그 이전의 '병행론'으로 회귀했다는 간단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북미중이 모두 병행론이라는 호랑이 등에 탄 상황"이라며 "여기서 내리는 자는 실패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게 됐다. (이는) 비핵화 협상 낙관론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토론에 나선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북한의) 병행론으로의 회귀가 중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며 과거 북한이 '선 평화체제'를 주장한 배경과 관련해 "북한이 '평화협정을 입구에서 얘기하자'는 입장을 유지하며 핵·미사일 능력 강화에 '올인'한 시기는 김정일이 죽고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강화되지 않았던 상황"이라며 향후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확고히 다져지면서 자신감을 얻은 김정은 정권이 유연하게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는 취지의 분석을 내놨다.

"완전한 비핵화, 평화적 핵시설 해체까지 포함하는 것"


이남주 교수는 이어 "북한의 핵 폐기와 평화체제의 동시 진행에 있어서, 북한이 취하는 조치는 어느 단계가 지나면 역진 불가능한 측면이 있지만 (미측이 취할 조치인) 평화협정이나 수교 등은 언제든 역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비대칭적"이라고 지적하며 "짝을 맞추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짚었다. 이정철 교수도 이 지적에 동감을 표하며 "병행론의 전제는 '등가성'을 재계산하는 것인데,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새로운 등가관계를 만들 변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정철 교수는 "비핵화 프로세스는 5단계로, 지금은 조건 없이 (핵·미사일 실험을) 잠시 안 하는 '중지(suspesion)' 단계다. 다음 단계인 '동결(freeze)'로 가면 반드시 사찰이 돼야 하고, 그 다음(3단계)이 2.13 조치 당시 합의한 '불능화' 단계다. 4단계가 '해체'이며, 마지막 5단계가 우크라이나 모델에서 나온 '포괄적 위협 감소조치(CTR)'로, 이 단계에서는 핵과학자들을 전직·이주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10일 일본 <아사히> 신문이 '미국이 북한 핵 기술 인력들의 해외 이주를 요구했다'고 보도한 것이 바로 CTR을 의미한 것인데, 5단계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고 설명하며 "각 단계에서 안보재(財) 대 안보재를 교환하면서 등가관계를 제대로 계산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정철 교수는 판문점 선언에 명시된 '완전한 비핵화'라는 개념에 대해 "무기용뿐 아니라 평화적 핵시설까지 포함한 모든 핵시설의 해체를 의미한다"며 "9.19 공동성명 이래 북한이 비핵화 대가로 핵발전소를 요구해온 협상의 역사에 따른다면,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동의한 것은 영변의 모든 핵시설, 발전용 원자로, 신포 원자로 요구까지 모두 폐기하는 중요한 조치에 동의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현실가능한 비핵화의 최대치이자 개념적 비핵화의 최소치 이상을 담지하는 합의라는 점에서 북한의 중요한 양보이고 우리로서는 위기의 임계치를 되돌린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또한 판문점 선언에 담긴 '북측의 주동적 조치를 높이 평가하고, 남북이 각기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는 내용에 대해 "남측의 역할이라는 것은 아마도 '쌍잠정중단'에 대한 대응 조치가 될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연습을 중단함에 따라 우리 측도 그에 맞춰 미 전략자산의 동원을 폐기하는 식으로 한미군사연습의 축소를 단행해야 하는 부분일 것"이라고 짚었다.

이 교수는 판문점 선언 3조의 군축 항목과 관련해서도 "향후 주목해야 할 것은 결국 유엔군사령부 문제"라며 "주한미군이 유엔사라는 모자를 벗었을 때 한미동맹과 미일동맹 간의 관계, 한미동맹과 북한의 관계 및 그에 대한 중국의 입장 등의 문제가 (판문점 선언에서) '3자 또는 4자'라는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토론회 후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유엔사 문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차원의 문제이고, 주한미군은 한미동맹 차원의 문제로 이 둘은 별개"라고 말했다.

"외교부 패싱? 외교·통일부 역할 할 때, 얼마 안 남았다"


이정철 교수는 한편 '병행론으로의 북한의 회귀와 한국의 정권교체' 외에도 이번 협상을 낙관할 수 있는 근거로 "협상의 주체가 인텔리전스(정보기관)들이라는 것"을 들기도 했다. 그는 "한국의 국가정보원, 미국 CIA, 북한 정찰총국 간에 협상을 해왔고, 정보기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단위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깊은 수준에서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와 관련, 한국 고위관료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외교부·통일부 소외론'이 거론되는 상황을 비판했다. 그는 "외교부 엘리트들은 사석에서 '외교부는 passing, 통일부는 nothing, 국정원은 something, 청와대가 everythig'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 담론은 굉장히 낡은 엘리트주의에 기반을 둔 것"이라며 "우리 외교는 '오래된 신(新)노선'인 '남북관계 진전과 4강 외교 균형발전'(노무현 정부 당시의 개념)으로 회귀하고 있는데, 4강 외교 균형발전은 외교부가 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가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윤병세 장관 5년 치세를 누린 외교부 분들은 왜 4강 대사에 외교부 출신이 하나도 없는지 이해가 안 될 것"이라며 "'외교부 패싱' 담론이나 만드는 엘리트주의를 극복하지 않는 한 한국 외교가 가야 할 길인 '신 문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보기관이 국면을 주도하는 시기가 지나고) 외교·통일부가 역할을 해야 할 때는 남북관계 정상화와 4강 외교 균형발전 노선이 자리잡는 시점이 될 것"이라며 "그것이 불과 한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변화를 빨리 따라가야 한다. 물에 빠지지 않으려면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왼발을 내딛어야 한다는 농담을 생각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토론회 사회를 맡은 백준기 KCI 소장도 "이전 정부의 스타일은 '관리형 외교'였고, 윤병세 장관 당시 외교부는 평온했지만 실제 국면이 긴장으로 갈 때는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꼬여 버렸다"며 "요즘은 외교의 정무적 측면이 부각되는 때"라고 이 교수의 비판에 힘을 실었다.

향후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남북관계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토론이 이뤄졌다. 이남주 교수는 "남북이 체제가 다르고 이념·문화적 차이가 커서 막상 만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남북관계의 틀을 어떻게 만들고 접근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철 교수는 "사실상의 국가연합으로 가야 한다"며 "(변화될) 남북관계의 2가지 축은 (남북 간의) 기본협정과 (한국 국내의) '통일 국민협약'이 돼야 한다. 문 대통령이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이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우리 정부도 기본협정으로 국가연합 단계를 거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남주 교수는 북한의 개혁개방 전망과 관련해 "북한은 중국, 베트남 등과 달리 미국과의 군사적 문제가 해결돼도 체제 위협이 있다. 그것은 남한"이라며 "남한이 있어 개혁개방이 잘 될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경제적 격차가 크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 위협적인 존재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남북 양자관계가 어떻게 가느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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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기자
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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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팀에서 '아랍의 봄'과 위키리크스 사태를 겪었고, 후쿠시마 사태 당시 동일본 현지를 다녀왔습니다. 통일부 출입기자 시절 연평도 사태가 터졌고, 김정일이 사망했습니다. 2012년 총선 때부터는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