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경제학자들의 '토지 몰이해'를 비판한다
2017.12.01 17:24:22
[기고] 성태윤 교수의 칼럼 비평
주류 경제학은 토지를 다루지 않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토지 공개념의 원류인 헨리 조지 사상에 기초해서 '지대개혁'을 주창한 이후, 헨리 조지에 대한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긍정적 평가보단 비판 혹은 비난이 훨씬 많다. 그런데 비판을 들여다보면 하나 같이 '토지 몰이해'가 발견된다. 이것은 아마도 토지의 중요성과 독특성을 (고의적으로) 간과한 신고전주의 경제학이 오늘날 경제학의 주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좌파 혹은 진보 경제학에서도 토지를 주택 문제로 축소시키는 경향도 문제지만 말이다. 이렇듯 헨리 조지에 대한 경시 풍조는 토지 몰이해에 기반하고 있다고 하겠다.

주류 경제학은 토지를 다루지 않는다. 주류 경제학이 가정하는 생산함수는 '자본'과 '노동'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믿기지 않으면, 지금 가까이에 있는 경제학 교과서를 찾아보라. 토지는 책 앞의 목차에는 없고 맨 뒤 색인표(index)를 통해서 겨우 찾을 수 있을 뿐이다.

토지 투기로 인한 고(高)지가가 물가 상승에 영향을 미치는데도 미시경제학의 가격이론은 토지를 취급하지 않는다. 토지 투기로 인한 고(高)지가가 총수요와 총공급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데도 거시경제학에서는 토지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토지불로소득이 소득불평등의 요인임에도 소득분배론은 토지를 가볍게 취급한다. 토지 거품의 붕괴로 인해 금융기관이 마비되는데도 금융경제학에서는 토지를 잘 다루지 않는다.

이렇게 경제학원론, 미시경제학, 거시경제학, 소득분배론, 금융경제학 등에서 토지가 다뤄지지 않게 되면, 그것을 통해서 경제 분석의 기본기를 다지는 학생들과 전문가들은 토지 때문에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반인들은 토지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헌법 122조에 나와 있듯이 토지가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라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의 토지 몰이해, 혹은 헨리 조지 사상 경시 풍조는 최근 성태윤 연세대 부교수의 언론 기고문1)에 잘 드러난다. 그의 글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헨리 조지의 사상은 토지가 불변적이고 조건이 고정적인 농업 주류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다. △ 토지에 자본 투자를 하면 토지의 생산성이 높아지는데, 이것은 노력의 결과이기 때문에 '불로소득'이라 할 수 없다. △ 그러므로 토지에 대한 과세는 기타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와 균형을 맞춰야 한다. 요컨대 토지라고 해서 특별히 다룰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래에서는 성 교수의 이런 주장이 학계에 일반적 견해라고 보아 하나하나 검토해보도록 한다.

첫째, 헨리 조지가 문제 삼은 토지는 농업용이 아니다.

주류 경제학 훈련을 받은 학자들은 토지는 농경시대에나 중요했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성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리카도와 조지가 농업시대 혹은 산업화 초기 단계에서나 통할 수 있는 지대 환수를 주장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헨리 조지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지는 농업에서 중요한 '비옥도'가 아니라 '위치'가 중요한 도시의 상업용․공업용 토지를 집중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산업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토지투기가 어떻게 분배를 왜곡․악화시키고 경제 비효율을 초래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이 무엇인지를 정의론과 경제학을 융합하는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했다. 그리고 당시 많은 경제학 교과서들이 리카도의 농업 편중성을 지나치게 답습했기 때문에 지대 법칙의 중요성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둘째, 토지의 개량가치와 미(未)개량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토지에 생산적 투자가 만들어 낸 개량가치와 미(未)개량가치, 즉 실제 토지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데, 성 교수도 마찬가지다. 그는 토지에 "다양한 투자와 혁신"을 가하게 되면 "생산성이 달라"질 수 있는데, 이 높아진 생산성은 결국 투자, 즉 노력의 결과이므로 토지를 불변의 생산요소로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본 투자나 혁신을 통해서 만들어진 가치는 '개량 가치'다. 다시 말해서 개량 가치는 토지 가치에 포함되지 않는다. 조지는 성 교수와 마찬가지로 노력의 산물인 개량 가치를 존중한다. 반면 토지 소유자 혹은 사용자가 아닌, 사회가 만든 가치인 토지 가치는 환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지 가치의 핵심은 위치인데 좋은 위치는 정부의 정책 변화나 사회 공동체가 만든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개량 가치와 토지 가치를 구분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미 한국은행은 미(未)개량 가치인 토지 가치를 매년 평가해서 발표하고 있다.

셋째, 토지 가치는 우선적으로 환수해야 할 불로소득이다.

개량 가치를 토지 가치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즉 토지 가치가 자본 투자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기 때문에 성 교수는 토지 가치 전체를 불로소득으로 보는 것, 그래서 우선적으로 환수하는 것에 반대한다. 토지를 이용하려는 투자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未)개량 가치, 즉 토지 가치에 고율의 세금을 매기면 성 교수가 원하는 효과, 즉 생산적 투자는 더욱 활성화된다. 고율의 토지세가 토지의 효율적 사용을 촉진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이미 입증되었고 경험적 사례도 널려 있다.

넷째, 토지 불로소득을 우선적으로 환수해야 "경제적 자유"가 증진된다.

토지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토지투기는 '비생산적 경제활동'의 전형이다. 개인적으로 이익일 수 있지만, 조셉 스티글리츠가 말했듯이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낭비 활동일뿐만 아니라 오히려 타인의 경제활동을 방해하기까지 하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성 교수의 말, 맞다. 그러나 소득도 소득 나름이다.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시장경제를 훼방하는 불로소득부터 환수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누군가가 불로소득을 누린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노력소득이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불로소득을 추구하는 지대 추구 행위가 줄어들고 생산적 투자가 증가하며 혁신의 분위기가 경제 전체에 확산된다. 요컨대 토지 불로소득 환수가 성 교수가 중시하는 "경제적 자유" 증진에 큰 도움이 된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스티글리츠에게서 배워야 한다!

토지 몰이해와 헨리 조지 사상 경시는 맥을 같이 한다. 헨리 조지 사상을 비판하는 학자들 대부분은, 농경 사회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는 토지의 중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필자가 몇몇 연구자들과 함께한 연구에 따르면, 2007~2015년 동안 GDP의 21~27%의 토지 불로소득이 발생했다.2) 극도의 토지 소유편중을 고려했을 때 막대한 토지 불로소득은 소수의 토지 과다보유 개인 혹은 법인이 향유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소득 불평등의 주된 원인이 토지에 있다는 것을 능히 짐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주류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토지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학자들은 조셉 스티글리츠에게서 배워야 한다. 스티글리츠가 최근 논문3)과 한국어로 번역된 책 <불평등의 대가>(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펴냄)에서 밝혔듯이 경제학은 토지를 경제의 주요 독립 변수로 다뤄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불평등의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뿐만 아니라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시장 친화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헨리 조지의 사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경청할만하다.

각주

1) 11월 25일 자 <서울신문> '地代 철폐, 조세가 아닌 경제적 자유로부터'

2) <사회경제평론> 54호 107~140쪽 '부동산과 불평등 그리고 국토보유세'(남기업․전강수․강남훈․이진수).

3) Joseph E. Stiglitz. 2016. "New Theoretical Perspectives on the Distribution of Income and Wealth Among Individuals." in Inequality and Growth: Patterns and Policy, Volume I: Concepts and Analysis. Kaushik Basu and Joseph E. Stiglitz (eds.). IEA Conference Volume No. 156-I. Palgrave Ma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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