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영은 노무현이 키운 '박정희 적폐'
2017.08.11 13: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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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이제 '박기영 카드'를 내려놓아야 할 때
박기영을 믿고 키운 사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황우석 사태가 불거지기 이전인 2002년에 이미 박기영은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과학기술 분야 인수위원으로 참여했다. 2003년에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미래전략분과위원장에, 2004년에는 대통령비서실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 임명됐다.

노무현 정부 과학기술 정책의 설계자이자, 지근거리에서 대통령의 귀를 잡은 과학계의 '문고리 권력'이 박기영이었던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정부 시절 박기영의 역할을 추켜세우며 '과보다 공이 많다'고 평가한 배경으로 보인다.

2005년부터 시작된 '황우석 사태'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금의 문 대통령 만큼이나 박기영을 감쌌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의혹이 불거지고 박기영의 거취 문제가 논란이 되던 2005년 11월 27일 노 전 대통령은 직접 <청와대 브리핑>에 게재한 글을 통해 "과학기술보좌관이 MBC <PD수첩>에서 난자기증 문제를 취재하는데, 그 과정에서 기자들의 태도가 위압적이고 협박까지 하는 경우가 있어서 연구원들이 고통과 불안으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보고를 하면서 대책을 의논해왔다"고 밝혔다.

당시 과학기술보좌관이던 박기영이 '<PD 수첩>의 취재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 부정적 투의 보고를 그대로 믿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언론의 논점도 덩달아 춤을 춰 <중앙일보>는 'PD수첩 취재과정서 협박까지'라는 기사를 1면에 싣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12월 5일 수석보좌관 회의를 통해 "황 교수팀의 연구 성과에 대한 검증 문제는 이 정도에서 정리되기를 바란다"면서 '황우석 파문'을 덮으려 해 또 다시 거센 반발을 샀다.

이처럼 대통령이 두 번이나 전면에 나서 여론의 뭇매를 맞는 동안, 주무 보좌관인 박기영은 기자들의 전화조차 받지 않고 침묵했다. 자신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2004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과 난자 기증 과정의 윤리적 의혹들이 사실로 밝혀질 때에도 그랬다. 

그토록 대통령 뒤에 꼭꼭 숨었던 박기영은 11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말했다. "황우석 사건이 터진 당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기에 아무 말 하지 않고 매 맞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그의 한참 늦은 사과가 진정성에 의심을 사는 이유다.

박기영의 공과 과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분리 접근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박기영이 황우석 '사태'를 '사건'이라고 언급한 데에서도 드러나듯, 박기영과 청와대의 상황 판단에는 황우석 사태가 국가 정책의 정당한 시행 과정에 불거진 우발적 사건이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규정하면 황우석 사태는 어느 비뚤어진 양심을 가진 과학자 한 명의 사기극에 국한되고 만다. 국민도 속고 박기영도 속고 정부도 속았다는 허무한 결론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아가 "일 할 기회를 달라"는 박기영에게 재기의 명분이 된다. 

박기영은 이미 지난 2005년 <헤럴드 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논문에 대해서는 일단 황 교수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책임을 떠넘긴 바 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의 본질은 '논문 조작' 같은 양심의 문제를 뛰어넘는다. 

노무현 정부는 일찌감치 줄기세포 기술을 포함한 생명공학(BT) 산업을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설정하고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2월 황 교수 팀의 광우병 저항소 연구개발 보고회장을 방문해 "기술이 아니라 마술이라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북아시대, 2만 달러 시대의 가능성과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지가 문제였는데 확실한 증거를 발견했다"고 했다.

심지어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6월 "윤리적으로 나쁜 방향으로 간다는 우려 때문에 탐구를 막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황 교수를 향한 연구 윤리 논란을 일축하기도 했다. 과학계는 생명 윤리에 관한 대통령의 상식 이하의 발언에 고개를 떨궜다.

대통령의 무지에 힘입어 황우석 연구팀에 지원된 재정은 2004년 65억 원에서 2005년에 265억 원으로 4배 이상 뛰었다. 물론 이 연구비 몰아주기가 누구 작품이었는지는 다시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당시 최장집 고려대 교수는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과 황우석 사태에 관해 "신자유주의가 확산되고 민주주의 퇴행하는 시점에서 노무현 정부가 무언가 업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빚은 결과"라며 "신자유주의에 기울어진 성장 모델의 필연적 산물"이라고 했다. 

과학기술을 경제 성장의 도구로 간주하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노 전 대통령의 눈에 '황우석'이라는 그럴싸한 카드가 들어왔다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 정치인으로 일생을 보내 과학기술 분야에 정통하지 않은 대통령에게 밑그림을 제시하고 황우석 카드에 돋보기를 들이댄 이가 누구인지도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국가와 자본의 결합을 통한 상품성, 생산성 위주의 과학기술 정책이 추진되던 박정희식 '과학입국' 패러다임이 황우석을 통해 노무현 정부에서 고스란히 반복된 것이다. 

박기영이 공동간사와 내부기획단장을 맡은 '대통령 소속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는 황 교수의 연구 성과를 시장화하는 데 주력했다. 요즘 말로 '과학 적폐'의 상속자가 바로 박기영이란 얘기다.

문 대통령은 누차 "우리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정부까지, 지난 20년 전체를 성찰하며 성공의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적 과제로 격상된 '4차 산업혁명'의 조타수로 박기영을 발탁하고 민주 정부에 대한 성찰을 증명할 수는 없다. 박기영에게 해명의 기회를 준 것으로 임명권자의 도의적 역할은 다 했다고 본다. 이제, 조속한 결론을 기대한다.
임경구 기자
hilltop@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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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