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 소각' 공약 논란... '약탈적 금융'부터 비판해야
2017.05.19 16:40:30
[기자의 눈] 정밀한 채무 소각 프로그램, 사회적 이득 더 크다
문재인 정부의 소액·장기 연체 채무 소각 공약이 화제다. 해당 공약은 국민행복기금이 보유한 연체 채권 중 1000만 원 이하 소액이면서 10년 이상 연체된 채권을 완전 소각하는 내용의 정책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회수 가능성 없는 채권이 살아있어, 채무자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못 한다"며 공약 실행 의지를 내보인 바 있다. 

이전 정부가 빚 일부만 탕감해준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 공약은 원금까지 완전 소각한다는 데서 규모가 다르다. 약 11조 원이 드는 이 사업으로 100여만 명이 오랜 기간 시달린 빚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금융위원회는 대통령 공약 이행을 위한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마련해, 조만간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반발이 만만치 않다. 핵심은 도덕적 해이 우려다. 채무자의 빚을 정부가 대신 갚아주면 그들의 책임을 물릴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일견 일리 있어 보이지만, 이런 주장이야말로 도덕적으로 나쁘다. 1000만 원의 빚을 10년 동안 갚지 못한 이들 대부분의 삶은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짐작 가능하다. 이른바 서울권 중산층 인구가 곧바로 갚을 수 있는 돈을 10년째 갚지 못한 이들이라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이들이 진 채무의 원금까지 탕감해 준다면, 상당수 사람을 다시 경제활동인구로 끌어올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빚의 성격이다. 이들 소액 채권 대부분은 이미 대출 금융기업에서 고위험 채권으로 분류해 파생금융상품으로 쪼갠 후, 헐값에 거래했다. 10년의 시간이 지났다면, 대부분은 이미 해당 기업이 손실로 처리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채권자와 채무자의 빚 거래는 종료됐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채무자는 왜 10년 간 이 빚을 갚으라는 추심에 시달렸나. 그의 빚이 포함된 저가 파생금융상품을 사들인 대부업체 등 악성 채권자로부터 추심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회계상으로는 채무자가 갚을 필요가 이미 사라진 빚을 추심받는 상황이 이어졌다는 소리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에 일리가 전혀 없지는 않다. 채권 소각 기준액이나 기준 시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 제안은 정부가 더 전향적으로 고려해 봄직하다. 채권 소각에 따라 연체기록까지 모두 없앤다면, 개인파산 신청자와 형평성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금융위는 이 같은 우려까지 고려해 프로그램 세부 사항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공약 이행은 사회적으로 실보다 득이 많을 것이다. 이미 채권 소각 프로그램은 지자체별로 가동 중이기도 하다. 대표적 사례가 주빌리은행이다. 이미 외국에서도 효과를 본 채권 소각 은행 개념을 들여온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변인과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중심이 되어 설립된 이 은행은 기부 등을 통해 소각 자금을 모은 후, 연체 10년 정도의 소액채권을 매입 후 소각해 상당수 소액 채무자의 재활 기반을 마련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서울,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서서히 도입되고 있다. 

비단 문재인 정부가 앞장서 나서지 않았더라도 악성 채무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지자체 차원의 시도가 일찌감치 이어졌는데도, 이번 공약을 두고 새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 셈이다. 

더 중요하게 짚어야 할 사안이 있다. 지금 중요한 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묻는 것이 아니다. 금융기업과 관련 이해관계자의 도덕적 해이를 물어야 한다. 

회계상 채권자와 채무 관계가 청산된 이에게 초고금리 이자를 덧붙여 10년 간 추심하는 이들의 악랄함을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채무자의 원금 상환 능력이 부족함을 뻔히 알면서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빌려준 후, 고금리 이자를 매겨 돈을 갚으라고 윽박지르는 이들의 투자 판단 능력 부족 혹은 고금리 이자를 노린 서민 등골 빼먹기 영업 방식을 지적해야 한다. 신용도가 낮은 이도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며 유혹하는 광고를 무비판적으로 내보내는 미디어를 비판하고, 대부업체의 야비한 영업 방식을 규제하지 않는 금융감독 당국을 비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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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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