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창업자 이재웅은 왜 '기본 소득'에 꽂혔나?

[기본 소득 뜯어보기] 자존감 망치는 노동을 거부할 권리

전 세계 바둑 팬이 떨고 있다. 프로 바둑 기사 이세돌 9단이 오는 3월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와 한판 붙는다. 이 대국은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알파고는 구글이 지난 2014년 1월 인수한 기업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다. 최근 유럽 바둑 챔피언 판 후이 2단과 대결해서 '5승 무패'를 기록했다.

전문가 예상보다 빨리 발전한 인공 지능

바둑 팬이 불안해할 만하다. 이세돌 9단은 판 후이 2단보다 몇 단계 위의 고수다. 세계 최정상급이다. 컴퓨터가 판 후이 2단을 꺾었다고 해서, 기계가 사람을 이겼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이세돌 9단에게 이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사람은 바둑으로 기계를 이길 수 없다.

불안은 계속 이어진다. IBM이 개발한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꺾은 게 지난 1997년이다. 이 사건은 엉뚱한 후폭풍을 낳았다. 프로 체스의 인기가 급락했다. 아무리 용을 써봐야 기계를 이길 수 없는 게임에 사람들은 흥미를 잃었다. 전통적인 퀴즈 프로그램의 인기가 줄어든 것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보를 놓고 경쟁하는 건 재미가 없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진다면, 전 세계 바둑 산업 자체가 타격을 받는다. 바둑 팬들이 떠는 건 그래서다. 이세돌 역시 그걸 잘 안다. 그 불안감이 대국에서 약점이 될 수 있다.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겪는 문제다.

최정상급 기사와의 승부가 남아 있을 뿐, 어지간한 기사들은 이미 기계를 이길 수 없다. 유럽 챔피언은 다섯 차례 대국에서 한 번도 못 이겼다.

딥블루가 세계 체스 챔피언을 이겼을 때만 해도, 컴퓨터가 바둑으로 사람을 꺾는 날은 까마득할 줄 알았다. 컴퓨터 전문가들도 그렇게 봤다. 정해진 경로를 따라 말을 움직이는 체스와 달리, 바둑은 경우의 수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체스와 바둑은 복잡도의 차원이 다르다.

그런데 20년이 채 안 돼서 컴퓨터가 따라잡았다. 문제는 따라잡는 속도가 점점 가파르게 올라간다는 점이다. 일본에선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가 대학 입시 모의고사에 응시한다. 지난해에는 도쿄 대학교 합격권 점수를 받아서 화제가 됐다. 인공 지능의 발전 속도가 전문가의 예상보다 빠르다.

스스로 학습하는 컴퓨터

'딥 러닝(Deep Learning)' 기술이 최근 10년 사이 급격히 발전한 덕분이다.

종전의 인공 지능은 사람이 먼저 컴퓨터를 가르쳐야 했다. 강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컴퓨터에게 알려준다. 컴퓨터는 그걸 기초로 여러 동물 가운데서 강아지를 골라낸다. 그런데 딥 러닝은 그 단계를 생략한다. 강아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양한 데이터를 조합하고 분류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저렇게 생긴 동물을 강아지라고 부른다, 라고 추론한다. 컴퓨터가 스스로 학습하는 셈이다.

이런 변화가 일반인들에겐 아직 낯설다. 그러나 정보 기술(IT) 업계 종사자들은 예민하게 반응한다. 예전에는 기계가 단순 반복 작업을 대체할 따름이었다. 공장에서 자동화 기계가 사람을 밀어낸 건 이미 오래 전이지만, 고학력 엘리트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지식과 사고력이 많이 필요한 일자리는 자동화 흐름 속에서도 안전했으니까.

이제는 달라졌다. 무질서하게 쌓여 있는 이미지들을 컴퓨터가 스스로 분류하고, 폴더에 이름을 달아 정리한다. 사람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진을 판독해서 이름을 알아낸다. 컴퓨터가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하고, 문서를 요약하며, 직접 글을 쓴다. 도쿄 대학교 입시를 통과한 소프트웨어라면, 머지않아 사법 시험도 붙지 말라는 법이 없다. 판사보다 더 판결문을 잘 쓰는 소프트웨어가 나올 수 있다. 의사보다 더 진단과 처방을 잘하는 로봇 역시 가능하다. 어지간한 개발자보다 프로그래밍을 더 잘하는 컴퓨터도 나타난다.

예외 없는 고용 불안

물론, 판결문을 컴퓨터가 써 줘도 사형 선고를 하는 건 인간 판사다. 의료 사고, 전산 사고에 대한 책임 역시 사람이 져야 한다. 로봇이 정신 노동까지 담당하는 세상에서도, 인간의 역할은 있다. 다만 고용의 총량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전에는 다섯 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 할 수 있다. 임금이 높고 자존심이 센 전문직 채용이 고용주에겐 부담이다. 고학력 전문직도 고용 불안을 비켜갈 수 없다.

고용 불안은 이제 약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문제가 됐다. 이는 대응 역시 '보편주의' 방식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예컨대 치안 서비스는 '보편주의' 방식이다. 만약 범죄를 겪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계층이 있다면, 치안 서비스 운영 방식은 꽤 달랐을 게다. 왜 내가 낸 세금으로 남의 집 도둑을 잡느냐고 따지는 이들이 나왔으리라. 그러나 누구나 범죄 피해를 볼 수 있으므로, 세금으로 경찰 월급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부자건, 가난한 사람이건, 착한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조건을 따지지 않고 정부가 세금으로 보편적인 치안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조는 그래서 정착됐다.

녹색당과 벤처 캐피탈이 한목소리

그렇다면, '보편적 고용 불안'에 대한 '보편적 해법'은 뭘까.

미국 벤처 캐피탈 '와이컴비내이터(Ycombinator)'는 최근 기본 소득 연구를 지원하기로 했다. 신기술 등장에 따른 일자리 파괴에 대한 한 해법으로 기본 소득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다. 기계가 정신 노동까지 담당하는 현상을 탐구한 <제2의 기계 시대> 저자들이 기본 소득 또는 마이너스 소득세(역소득세) 도입을 거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기본 소득이란,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조건 없이 일정한 금액을 나눠주는 것이다. 일종의 시민 배당 개념이다. 주식회사의 주주라면 무조건 배당을 받듯, 공동체의 주권자 역시 마찬가지 권리를 지닌다는 뜻이다. 다만 주식회사는 '1주 1표'의 원리이므로 보유한 주식에 비례해서 배당을 받는다. 민주 국가는 '1인 1표' 원리로 운영되므로, 모든 시민은 똑같은 금액을 배당 받는다. 이재명 성남시장이 추진하는 청년 배당이 이런 원리다.

'와이컴비내이터'의 사례를 국내에 널리 알린 건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다. 그는 지난 28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IT 관계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던 내용이다.

"미국 초기 벤처 인큐베이터인 Ycombinator가 자동화에 따라 줄어드는 일자리를 비롯한 미래 경제 체제에 대비하기 위한 기본 소득 연구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저도 기본 소득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에서는 녹색당이, 미국에서 벤처캐피탈이 기본 소득 제도를 지지하고 지원하는 것이 좀 이상해보일지 모르지만, 일자리가 줄어들고 소득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미래 사회를 예측해보면 당연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세상은 생각보다 빨리 변해가고 있으니까요."

▲ 다음 창업자 이재웅 씨. ⓒ연합뉴스

기본 소득, '양날의 칼'

이재웅 씨의 글처럼, 기본 소득이 과연 '유일한 대안'인지는 따져볼 대목이 많다. 기본 소득은 '양날의 칼'이다. 일부 시장주의자들은 공공 부문 축소와 기본 소득 도입을 맞바꾸자고 한다. 정부가 운영하는 사회 복지 시스템을 줄이는 대신 현금을 나눠주겠다는 게다. 유럽 사회민주주의 진영이 기본 소득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했던 것도 그래서다. 보육 등 사회 서비스 부문에 대한 정부의 정치적 책임을 희석하고 시장에 떠넘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반면, 녹색당 등 생태주의 진영과 일부 좌파들은 기존 복지 국가가 제공한 것보다 더 강력한 사회 안전망을 원한다. 앞서 소개한 기술 변화 등 구조적 이유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이 대폭 늘었다. 노동 운동과 진보 정치의 결합으로 탄생한 기존 복지 국가 모델은 그들을 충분히 배려하지 않았다. 조건 없이 일정한 현금을 나눠주는, 기본 소득이 이런 한계를 메울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액수가 문제다. 기본 소득의 규모가 충분히 크다면, 예컨대 실업 급여 혹은 최저 임금과 비슷한 금액이라면, 강력한 사회 안전망이 된다.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적은 액수의 기본 소득을 주장한다면, 사회 서비스 운영에 대한 정부의 책임도 함께 거론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기본 소득은 사회 서비스를 시장에 떠넘기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충분한 규모의 기본 소득'을 주는 경우라고 해도, 질문은 남는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정이 조성돼야 한다. 그게 실제로 가능하다면, 꼭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을 택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충분한 규모의 기본 소득'이 가능한 재정이 확보됐다면, 수준 높은 무상 보육, 무상 교육 역시 가능하다. 이 경우 현금을 나눠주는 대신,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학교 등을 정부가 인수해서 운영하는 게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물론, 기본 소득을 내걸면 증세가 쉽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우리가 낸 세금을 기본 소득이라는 현금으로 돌려받으니까 증세 거부감이 적다는 뜻이다. 무상 보육 등을 내걸면, '충분한 규모의 기본 소득'을 줄 수 있을 정도의 재정 확보 자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정 규모가 같다는 조건에서 무상 복지와 기본 소득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은 비현실적일 수 있다.

로봇에겐 '궂은 일'이 더 어렵다

기본 소득이건, 혹은 다른 대안이건, 구조적인 실업에 대한 안전망이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최악의 경우에도 생존은 보장해야 한다는 차원만이 아니다. 자존감을 꺾는 일자리에 대한 거부권이 갈수록 절실해지기 때문이다.

'모라벡의 역설'이라는 개념이 있다. 사람에게 쉬운 일이 로봇에겐 어렵고, 사람에게 어려운 건 로봇에게 쉽다는 뜻이다. 예컨대 사람은 걷기보다 수학 문제 풀이가 더 어렵다. 로봇은 반대다. 자연스런 걷기 동작을 구현하는 건, 로봇 공학자들에게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의사의 진단, 경제학자의 분석 등을 로봇이 대체하는 건 오히려 쉽다. '딥 러닝' 기술의 발달, 관련 데이터의 축적 등이 동시에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관공이나 요리사, 간병인의 노동을 로봇이 대체하기란 매우 어렵다. 문서로 남기기 힘든 지식(암묵지)에 주로 의지하는 탓이다. 사람들은 간병인보다 의사되기가 더 어렵다고 하는데, 로봇은 다르다는 뜻이다. 흔히 '궂은 일' 취급 받던 직업이 로봇에겐 더 어렵다.

로봇 시대에도 인간의 몫으로 남겨진 일자리는 꽤 있다. 그렇다면, 자식들에게 의사 대신 간병인이 되라고 권하면 될 게 아닌가.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로봇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게, 높은 소득을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제2의 기계 시대> 저자들은 학력 간 소득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봤다. 중간 수준의 사무직, 기술직이 쪼개진다. 뛰어난 소수는 위로 도약하는 기회를 얻는다. 나머지 다수는, 그간 했던 것과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이들은 새로운 경쟁에 휘말리고, 경쟁은 일자리의 질을 떨어뜨린다. 위로 올라갔던 소수 역시 안심할 수 없다. 그들도 계속 물갈이 된다.

'궂은 일'이 존중받는 사회

원치 않는 일을 하게 된 다수가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가 절실하다. 조건 따지지 않고 현금을 지원하는 기본 소득은 이 대목에서 빛이 난다. 자존감을 망치는 노동이냐, 굶어죽는 길이냐, 라는 갈림길에서 제3의 선택지를 주기 때문이다. 오로지 먹고 살려고 하는 일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도 생존은 가능하다.

다들 거부권을 쓰면, '궂은 일'은 누가 하느냐고? 걱정스럽다면, 지금 '궂은 일' 하는 이들과 어깨를 걸어야 한다. 그들에게 급여를 더 주는 걸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궂은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궂은 일'을 미리 배워두는 것도 권할 만하다. '궂은 일'이 머지않아 당신의 직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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