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이 토로하는 '용산의 기억'

[화제의 책] 용산 참사를 기억하는 <내가 살던 용산>

추방의 장소가 더욱 넓어져 간다. 그러나 추방자의 절망은 기억되지 않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는 소리는 바람 속에 희미해진다.

이것은 다만 용산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용산에서의 이 형언할 수 없는 비극이야말로 은폐되어왔던 개발주의의 폭력이 잠시 동안이나마 폭력의 맨얼굴을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이 맨얼굴을 증언하고 망각하지 않기, 색조화장한 자본의 야만적 폭력에 미학적으로 대항하기, 망각을 강요하는 미디어 앞에서 대항 기억을 형성하는 것. 우리 시대의 젊은 만화작가들이 <내가 살던 용산>을 출간한 것은 이런 까닭일 것이다.

<저항의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에드워드 사이는 지식인이 임시로 거하는 집은 후퇴하거나 해결책을 찾을 수 없는 긴급하고 저항적이며 비타협적인 예술의 영역이라고 말했다. 불안정한 추방의 장소야말로 지식인의 존재 상황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런데 용산에서 우리가 발견했고, 지금 이 순간 철거 계고장이 붙어있는 전국의 모든 도시에서 확인하게 되는 것은, 이 불안정한 추방의 장소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지 저항적 지식인의 내면을 비추는 수사가 아니다. 오히려 정주할 거처를 잃고 추방당하고 있는 철거민들 편에서 보자면, 예술이 아닌 날 것의 현실이야말로 저항적이며 비타협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인 것이다.

용산 참사 앞에서 예술가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시어(詩語)가 현실에 가닿지 못하고 서사가 현실을 재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의 절규가 미학적 행동주의(activism)를 낳았다. 시인이 목울대를 울리며 거리에서 시를 읊고, 화가는 아틀리에를 박차고 나와 부서진 담벼락에 벽화를 그렸고, 노래가 은둔했던 공연장에서 빠져나와 부서진 잔해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예술가들의 행동주의는 용역들과 진압 경찰들과 관료화된 언어들을 중계하는 비대 언론들의 행태주의 앞에서 자주 절망해야 했다.

ⓒ뉴시스

사회사적 사건이 된 용산 참사는 무엇보다도, 죽어간 망자들이 품었음직한 현실에 대한 다채로운 열망과 절망을 냉동고에 넣어버렸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안간힘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인간다운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고자 했던 삶의 개별성들에 대해 누구도 들여야 볼 엄두를 내지 않았다. 긴급하고 비타협적인 추방의 장소에서 예술가들이 진행했던 표명의 욕망이 이제 대항기억의 작업으로 이어지는 것은 그런 점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동 만화집인 <내가 살던 용산>을 통해서 우리들은 죽어간 망자들이 소박하게 꿈꾸었던 삶에의 정열과 그것을 가로막았던 비정한 개발주의의 문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와 같은 젊은 만화가들은 용산 참사의 문제를 죽어간 망자들의 생애사적인 맥락에서 복원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만화가들의 붓칠이 반복적으로 가 닿는 대상은 사람이고, 그들이 생전에 품었을 것으로 판단되는 희망의 언어들이다. 그 희망은 대지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소박하지만 절실한 하나의 명제로 요약된다. <상현이의 편지>에서 나레이터인 상현은 "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다.

용산에서 죽어간 고인들의 삶에 대한 연대기적 초상을 만화가들이 추출하면서 반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주하고 싶었지만, 뿌리 뽑히고 추방당하고 결국은 땅을 떠나 망루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지속적인 추방과 유랑의 궤적들이다. 추방과 유랑은 이 만화에서 재현되고 있는 등장 인물들의 삶의 가장 거대한 규정력이고, 이들이 개발주의라는 체제의 비정하고 거대한 압력에 대항하여 거의 비타협적으로 희망을 고수하는 근거는 추방된 자들의 이심전심의 연대감이다.

▲ <내가 살던 용산>(보리출판사 펴냄). ⓒ프레시안
용산 참사의 와중에 희생된 고 윤용현, 한대성, 이성수 씨의 경우가 그것을 보여준다. 이들은 함께 희생된 고 양회성, 이상림 씨가 처해진 추방의 현실이 바로 자신의 현실임을 자각하고 있었고, 공유된 상황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감적 연대감 탓에 용산의 망루에 올랐다. 이들을 추방하는 세력들은 노골적으로 권력의 카르텔을 형성하지만, 추방자들은 오직 그들이 살아온 생애와 삶에 대한 경험적 진실에 정직하게 조응하여 추방자들의 연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것이다.

<내가 살던 용산>에 수록된 만화를 읽으면서 확인할 수 있는 분명한 진실은 추방자들의 연대를 공권력을 통해 무력진압하고 있는 바로 이 사태가 오늘의 민주주의의 분명한 파괴적 상황의 은유로 읽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의 자본과 체제는 연결된 시민들의 공감적 협동과 연대를 노골적으로 단절시키고 분열시켜, 무력한 개인으로 고립시키는 것을 법적·제도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반면 용역과 경찰들을 포함하여, 자본과 권력을 통해 집단화된 세력은 강력한 추방자들의 이해관계 동맹을 형성해, 노골적인 폭력은 물론 은폐되고 제도화된 압력을 통해 더 많은 추방자들을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내가 살던 용산>은 죽어간 망자들이 생전에 꿈꾸었던 희망과 그들이 직면했던 절망의 풍경들을 때로 직설적으로 혹은 회고적으로 생생하게 재현함으로써, 만화적 리얼리즘이 가 닿을 수 있는 미학적 작업의 본연의 영역인 대항기억을 매우 생생하게 활성화시키고 있다. 용사에서 죽어간 망자들은 사람이되, 사람에게 가할 수 없는 공권력에 의해 희생당했으며, 역시 명백하게 존재하는 열망의 존재이되, 유령화되어 공적 기억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던 비극의 생생한 현실이다.

만화가들은 마치 복화술사처럼 죽어간 망자들의 입을 빌어, 생전의 육성을 들을 수 없었던 우리 시대의 독자들에게 가장 단단한 희망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살려고 망루로 올라갔다가 죽어서 내려오게 만든 것인지, 추방당한다는 것이 왜 뿌리뽑힘이며 인간다움의 박탈을 의미하는 지를 통렬하게 자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내가 살던 용산>을 보고 읽는 일은 단순히 사회사적 사건에 대한 일회적 기억이 아니라 망각에의 비타협적인 저항, 인간다운 삶의 존엄을 꿈꾸는 모든 보통 사람들의 기억의 연대, 그리고 이를 촉구하는 예술가들은 저항기억의 미학적 실천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동시에 <내가 살던 용산>은 오늘날 소설과 영화가 주저하고 있거나 배제하고 있었던 재현의 정치적 성격에 대해 묻고 있는 만화적 리얼리즘의 한 분명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언어는 인물에 내면적 깊이를 부여하지만 행동을 그려내기 어렵고, 영화적 언어는 행동을 확대시키지만 내면에 도달하기 어려운데 반해, 만화는 소설과 영화의 장점들을 두루 결합해 행동주의적 내면성 또는 내면화된 행동주의를 리얼리즘적으로 심화하고 확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순정과 환상, 그리고 스펙터클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만화적 실천의 주류적 경향을 거슬러, 발군의 지적·미학적 역량으로 무장된 만화가들이 추방의 장소에서 그려낸 치열한 대항 기억의 작업을 더 많은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용산 1주년 맞아 <내가 살던 용산> 헌정식 열려

"이분들은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 이웃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달픈 오늘을 견뎌내며 내일을 꿈꾸기 위해,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던 것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경찰특공대의 강제 진압으로 목숨을 잃은 고인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만화가 여섯 명이 '용산'에 모였다. 만화책 <내가 살던 용산>을 발간 한 것. 이것을 내는 데 1년이 걸렸다. 그 사이 망루에 올랐다 살아서 내려온 철거민 7명은 징역 5~6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망루에 올랐다 죽어서 내려온 다섯 명은 지난 9일 '겨우' 장례식을 치렀다.

여전히 사람들은 철거민을 두고 '도시의 테러리스트'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다. 김성희, 김수박, 김홍모, 신성식, 앙꼬, 유승하 등 6명의 만화가들은 그들이 왜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알리고, 이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 만화를 그렸다.

"정직하게 산 게 죄라서 지금 벌을 받고 있다"

용산 참사가 발생한지 1년이 되는 20일, 용산 참사 현장에서는 출판 헌정식이 열렸다. 여섯 만화가가 그려낸 <내가 살던 용산>에는 화염병을 던지며 시민에게 위협을 가하는 '도심 테러리스트'는 없다.

▲ 만화가들이 유가족에게 책을 헌정하고 있다. ⓒ프레시안

야구 선수인 둘째 아들을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없는 복집 사장님(고 양회성). 아들 부부와 함께 오래된 가게를 손수 고치며 부푼 희망을 꿈꾸던 레아호프 사장님(고 이상림).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이들은 철거민으로 전락한다. 서울 시내 한복판 순화동에서 10년 넘게 한식당을 운영했던 사장님(고 윤용헌)은 어느날 불어 닥친 재개발과 강제 철거로 자신의 터전에서 속수무책으로 밀려난다. 고향을 떠나 수원 신동에서 20년 넘게 살다 동네가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졸지에 철거민이 될 위기에 놓인 세입자(고 한대성)는 1월 19일 몸이 아픈 부인이 걱정할까봐 연락도 하지 않고 같은 처지의 철거민을 도우러 간다.

<내가 살던 용산>에서 만화가 앙꼬가 그린 '상현이의 편지'에는 철거민으로 밀려난 가장(고 이성수)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아버지는 아들 상현에게 "평생 정직하게 살려고 했다. 정직한 게 죄라면 우리가 지금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구나"라고 한숨을 내쉰다.

고 이성수 씨는 살던 집이 철거당해 천막에서 식구들과 살며 노점상을 했다. 집이 철거당하고 나서부터 아버지가 망루에 오를 때까지 감당하기 버거운 현실에 너무 일찍 철이 들어야 했던 아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버거웠던 아들 상현의 눈을 통해 아버지 고 이성수 씨가 느껴야 했던 철거민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용산이 잊혀지지 않기를 바란다"

<내가 살던 용산>을 기획하고 용산 참사 당시 상황을 그린 '망루'를 맡은 김홍모 씨는 "1년 전 인터넷을 보면서 너무나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며 원통하고 분해하던 일이 생각난다"며 "하지만 1~2달 지나면서 용산은 우리 기억에서 멀어지게 되었다"고 밝혔다.

김홍모 씨는 "이들이 왜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유가족들이 왜 진상규명을 외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잊혀 지지 않도록 하고자 책을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재개발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라며 "이 책이 이러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풀어낼 수 있으면 감사 하겠다"고 밝혔다.

고 양회성 씨 부인 김영덕 씨는 "용산을 잊혀 지지 않게 해줘서 감사하다"며 "책을 보니 작년 1월 20일에 희생된 남편을 찾고자 이곳에서 발만 동동거렸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영덕 씨는 "1년을 싸우며 겨우 장례식을 치렀다"며 "하지만 아직 마음은 허공에 떠 있어 뭐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고 1년을 맞이하는 심정을 밝혔다.

김영덕 씨는 "아직 고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진상이 규명되고 고인의 명예가 회복될 때까지 계속 싸워나가겠다"고 말했다. /허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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