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중앙대는 "두산그룹을 새로운 법인으로 영입하고 나서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대학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학문 단위 재편성과 대학 경영의 틀을 바꾸는 개혁안을 공개한다"며 '구조 조정안'을 언론에 발표했다. 이 안에는 18개 단과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 40개 학과(부)로 재편하고 경영 계열을 국내 최대의 경영학부로 만드는 방안 등이 담겼다.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일제히 언론은 이를 '박용성식 개혁'이라며 극찬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은 사설을 통해 이번 중앙대 개혁이 '대학 개혁의 모델'이 될 것이라며 바람잡이를 자처했다.
그러나 정작 중앙대 내부는 요동치고 있다. 총학생회가 지난달 31일 반박 기자회견을 한데 이어 구조 조정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본격적으로 대응한다고 밝혔다. 중앙대 단과대학 교수들로 구성된 계열위원회 역시 하루가 멀다 하고 대책 회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이대로 구조 조정이 진행되는 것은 학교를 말아먹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박용성 추켜세우기'에 바쁜 언론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구조 조정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진통이라 여겨서일까? 그렇게 보기엔 납득할 수 없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누구를 위한 구조 조정인가"
"본부에서 새터(새내기 새로배움터)를 갑자기 안 간다고 했다. 이해할 수가 없다."
지난 14일 찾은 중앙대 총학생회실은 분주했다. 하루 전날, 학교 측에서 매년 2월 총학생회가 신입생들을 맞을 때 재학생들과 함께 어울리도록 준비하는 행사인 '새내기 새로배움터'를 올해 하지 못하겠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학생회 간부들은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학교 측이 새터를 못 하겠다며 내세운 이유는 "새터의 문제점이 계속 발견되고 있고, 다른 학교들도 하지 않는 추세"라는 것. 정 하겠다면 3월 개강 이후로 미루라는 요구도 나왔다.
그러나 학생회에서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바로 구조 조정 등에 관해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여론을 조성하는 것을 막으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들은 "최근 교지인 <중앙문화>와 <녹지>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언론 탄압이 이뤄지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고 지적했다.
새터 폐지가 논란이 되자 지난 20일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재학생들에게 보내는 글을 통해 "대학 본부의 결정 사항을 총학생회와 충분한 협의 없이 통고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생지원처장이 사과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학생들은 21일 비민주적이고 '톱-다운' 방식으로 일관하는 학교에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다.
총학생회는 학교가 구조 정과 관련해 계속 '이런 식'이었다고 주장했다. 중앙대가 본격적으로 구조 조정 구상을 짜기 시작한 때는 지난해 4월경이었다. 이후 학교 측이 지난달 29일 언론에 구조 조정안을 전격 공개하기 전까지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절차는 없었다.
발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는 "대학을 대표할 '명품 학과'를 6개 정도 육성하겠다"며 학과별 평가를 바탕으로 경영학과를 포함한 육성 학과를 발표했다. 학생과 교수 모두 '이해되지 않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김일건 중앙대 부총학생회장은 "그토록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학과 평가 지표를 학교에서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학생들은 자신의 학과가 어떻게 평가받고 왜 바뀌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구조 조정에 대한 공감대도 학내에 형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김일건 부총학생회장은 "변화는 필요하지만 지금의 구조 조정은 누구를 위한 변화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 최근 중앙대에는 정문을 대신해 약학대학 건설 현장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프레시안 |
"반박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논의'한다고?"
학교가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는 주장은 학생들만 하는 게 아니었다. 중앙대 계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의과대학 방효원 교수는 "우리가 계속 학교에 던진 질문도 '구조 조정을 하는 목적과 방향이 도대체 뭐냐'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그러나 학교 측은 '우리는 이렇게 할 테니 쫓아오라'는 식으로 일관할 뿐 논의하고 타협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며 "논리적으로 구조 조정안에 반박해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 내 구조 조정대책위원회를 맡고 있는 이준혁 집행위원장은 "학교가 단과대 교수들로 구성된 계열위원회에 구조 조정안을 제출하라고 한 것도 '요식 행위'라고 여겨진다"며 "지난달 29일 학교 본부와 계열위원회 교수들이 서로의 초안을 공개해 토론하는 워크숍이 열리긴 했지만 결국 학교 본부에서 정한 구조 조정안대로 밀어붙이려는 의도가 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일이 이렇게 진행되기까지 정황은 충분했다. 지난해 8월, 박용성 이사장은 한 언론 기고를 통해 "대학 사회에 경계를 넘어서는 과도한 '주인의식'이 퍼져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며 "대학의 의사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대학의 특수성이 있긴 하지만 기업에 견준다면 학교법인이 주주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자신의 '소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앞으로 잘하자는 건지, 지금 보여줄 거리를 만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학교 측이 제시한 구조 조정에 따르면 중앙대가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학생과 교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효원 교수는 "학교 계획안을 보면 앞으로 잘 살겠다는 건지, 지금 당장 뭘 보여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중앙대의 미래를 위한 구조 조정이라면 당연히 발전 방향부터 나와야 하는 게 순서인데 지금 구조 조정은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학교 측이 유일하게 공개한 평가 지표는 취업률이다. 박범훈 중앙대 총장은 지난 12일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사회에 나가서 (학생이) 쓸모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학교가 죄를 짓는 일"이라며 "최근의 흐름을 놓쳐서는 안 된다. 솔직하게 말해서 경영대, 의대, 신문방송학과, 예술 관련 학과, 자연과학대 등에 가고 싶은 학생들이 몰린다"고 밝혔다.
이런 박 총장의 '주장'은 박용성 이사장의 '신념'과 일치한다. 2008년 8월, 취임 직후 박용성 이사장은 "내가 대학(서울대 경제학과 59학번) 들어갈 때 최고 인기학과는 광산학과였지만, 지금은 광산학과 자체가 없다"면서 "시대 흐름과 글로벌 경쟁력을 생각하지 않는 교육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상은 곧 이번 구조 조정안에 반영됐다. 10개의 단과대를 크게 △인문·사회·사범 △자연·공학 △의·약학 △경영·경제 △예·체능 등 5개 계열로 묶고 경영·경제계열과 자연·공학계열에 새로운 학과를 대폭 신설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방효원 교수는 "이런 구조 조정에 대한 평가는 당장 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학부에서 기술을 중심으로 가르치는 경영학을 강화하겠다는 건 잘못된 방향"이라고 지적했다. 방 교수는 "중앙대를 슬림화하는 데에는 일부 동의하는 부분도 있지만, 특정 학문, 특히 응용 학문을 집중 육성하는 건 위험하다"며 "중앙대 정도의 규모있는 대학에서는 기초 학문을 감당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준혁 집행위원장 역시 "대학은 이미 오래 전부터 기업의 연수원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학문의 전당으로서 역할도 맡아 왔다"며 "학생들 가운데서도 취업하기 위해서 오기도 했지만 학교가 뭔데 우리 과를 이렇게 평가하고 없애려 하느냐는 불만도 높다"고 전했다.
방효원 교수는 "결국 학교 측 구조 조정의 방향 자체가 학문을 근간으로 해서 이뤄지는게 아니라 이사장이 생각하는 대학의 상, 기업 논리를 쫓아가고 있다"며 "뚜렷한 근거 없이 조직이 크고 방대하니까 줄여야 한다는 단순한 논리 외에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 중앙대 서울 캠퍼스 곳곳에서 '학생 참여없는 구조 조정 반대'라고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다. ⓒ프레시안 |
"비전도 없이 바꾸라니"…학교 "이사장님 충정 존중해야"
두산그룹이 중앙대를 인수한 때는 지난 2008년이었다. 이후 이듬해 2월 총장 임명제가 실시됐고, 3월에는 교수 연봉제가 도입됐다. 이번 중앙대의 구조 조정을 언론이 주목하는 이유도 '기업이 주도하는 대학 개혁'이라는 점에 있다.
그러나 정작 중앙대 구성원들이 두산의 인수 이후 느낀 변화는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대학 본부와 재단의 초조함이었다. 구조 조정 역시 중앙대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기 보다는 '획기적인 개혁'을 통해 개교 100주년이 되는 2018년에 국내 5대, 세계 100대 대학이 되겠다는 '홍보' 뿐이었다.
방효원 교수는 "사실 전임 재단이 거의 식물 재단이었고, 20여 년간 학교에 투자도 거의 하지 않았다"며 "지금 재단을 맡은 두산이 가장 먼저 해줘야할 것은 비전과 그에 따른 투자 계획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수들이 단순히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구조 조정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의견이 엇갈리는 교수들과 충분히 지혜를 모아 나가는 게 맞다고 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늦어도 1월 말까지' 구조 조정에 대한 의견을 이메일 접수 창구로 제시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이후 계열위원회와 검토를 거쳐 3월 초까지 최종안을 확정한다는 계획이다. 학교 구조 조정 위원회 총괄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국신 부총장은 최종안 결정 시한을 연기하라는 총학생회의 요구에 "필요한 것은 충분한 기간이 아니라 충분한 시간"이라며 "이번 겨울과 3월은 최종적인 토론을 할 충분한 시간"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3월까지 학생과 교수들이 부단히 의견을 제시해도 이것이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안국신 부총장이 지난 12일 총학생회에 보낸 답변서의 마지막 문단은 중앙대 구조 조정이 무엇 때문에 시작됐으며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한 궁금증에 대한 답을 이미 압축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 이사장님은 큰 그림이 나오면 당장 2011학년도부터 가능한 구조 조정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비효율적인 학교 행정의 틀을 먼저 개혁하고 난 후에야 본격적인 투자를 하고 싶다는 이사장님의 뜻이 확고합니다. 학교 발전을 위한 이사장님의 충정을 학내 구성원들이 넉넉한 마음으로 존중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끝."
대학, 구조 조정으로 '경쟁력' 향상할까? 최근 중앙대의 구조 조정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는 '기업 주도형 개혁'이라는 점 외에도 또 있다. 요즘 대학가의 화제가 바로 '구조 조정'이기 때문. 중앙대처럼 개별 사립대가 구조 조정을 내세우는가 하면, 국·공립대 법인화, 사립대 구조 조정 등 정부가 주도하는 정책도 추진되고 있다. 지난달 30일 정부는 실태 조사를 통해 12개 사립대가 경영 부실 또는 경영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개선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통·폐합 등 강도높은 구조 조정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학이 자체 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데에는 여러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주도하는 구조 조정을 올해부터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립대를 국가로부터 독립된 특수법인으로 전환하는 '국립대 법인화'도 본격 추진되고 있다. 특히 지난달 서울대 법인화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국립대 법인화 문제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또 지난해 정부는 동일 권역에 있는 3개 이상의 대학을 연합체 형태로 구성하면서 캠퍼스별 특성화를 추진하는 국·공립대 구조 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부작용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구조 조정과 법인화에 따른 경영 평가를 앞두고 국·공립대학들이 기존 등록금을 터무니없이 높게 올리는 사례도 등장했다. 최근 일부 교육대에서는 50퍼센트(%) 가까이 등록금을 올리겠다는 입장을 밝혀 학생들이 반발하고 있다. 부실하고 방만한 국내 대학 구조에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그러나 부실한 대학들이 생겨난 까닭은 "대학에 가야 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우리나라의 풍토와 무관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대학 이름'과 '서울 소재 여부'가 다른 모든 평가를 압도하는 학벌 사회 구조가 지속되는 한,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 학교는 학생과 교수, 그리고 투자 유치에 고전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개별 대학에 경영 개선과 취업률 고취를 압박해 한국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부의 발상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학과를 시대 조류에 맞게 바꿔 세계적인 대학으로 거듭나겠다는 '중앙대식 구조 조정'이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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