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대한민국 명예를 훼손한 장본인은 국정원"

국정원 공개 비판…"소송 접하고 노 전 대통령 떠올렸다"

"너무나 슬프고 부끄럽고 한탄스럽다. 아직도 우리가 이런 사회에 살아야 한다는 게 가슴 아프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에게 "굉장히 어색하다"며 "이런 식의 기자회견을 해본 지도 오래된 듯하다"고 웃었지만 얼굴은 어두웠다. 국가정보원으로부터 2억 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박원순 상임이사가 공개 반박에 나섰다. (☞관련 기사 : [전문] 박원순 "진실은 이렇습니다")

박 상임이사는 17일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명예 훼손은 국정원이 아니라 국민이 당하고 있다"며 "국가가 국민을 고발한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반박했다. 국정원은 박 상임이사를 고발하면서 원고를 '국가'로 명시했다.

"국가가 명예 훼손으로 국민 소송한 건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는 일"

그는 "원고 대한민국으로부터 명예 훼손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당했다"며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 훼손으로 손해 소송을 제기한 경우는 처음"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박 상임이사는 국정원장 개인의 이름으로 소송을 걸지 않고 국정원이라는 기관의 이름으로 소송한 것을 두고 "법리적으로나 형식 논리로 보더라도 이 소송은 성립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국가는 주권자인 국민을 상대로 명예 훼손을 제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는 현재의 소송을 "결국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부인하는 소송"이라고 표현했다. 박 상임이사는 "국가는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실체로서 인격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정말 소송을 하겠다면 국정원장 개인이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정원의 불법 사찰을 문제 삼은 것은 그런 불법 사찰을 벌인 국정원장이나 그 직원을 비판한 것이지 결코 국정원 그 자체나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정으로 대한민국 명예를 훼손시킨 장본인은 국정원"이라며 "국민을 사찰한 것이야말로, 국민의 세금으로 그런 불법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야말로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라고 덧붙였다.

▲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명예 훼손에 따른 2억 원의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당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17일 오전 서울 평창동 희망제작소에서 국정원 개입 관련 소송에 관련해 기자회견을 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명예 훼손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이라며 세계적으로도 선례가 없을것라고 말했다. ⓒ뉴시스

그는 자신이 발언한 내용의 진실 여부를 두고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며 "사찰이 행해지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모든 양심을 걸고 증언하건대 모두가 진실"이라며 "어떻게 대한민국 최고 국가권력의 상징인 국정원을 상대로 허위주장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그럼에도 이와 같은 소송이 제기된 이유는 주권자의 비판과 감시, 통제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안타깝고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렇게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비판의 목소리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며 "이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송은 수모를 안겨 정부 비판 목소리에 재갈 물리려는 행위"

박원순 상임이사의 법적 대리인인 백승헌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도 "비판을 잠재우기 위한 소송"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PD수첩> 등을 통해 나타난 바에 의하면 국가 시책에 대한, 행동에 대한 비판을 지금과 같은 소송으로 재갈 물리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국가는 형사 소송이 아닌 민사 소송을 선택했다"며 "국가가 이긴다면 2억 원의 돈은 국고로 들어가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대체로 소송은 형사 소송 뒤 민사 소송을 추가로 제기하는 순으로 진행된다.

백 회장은 "이 부분만 보더라도 정부는 박원순 상임이사 개인뿐만 아니라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위화감을 조성하고, 비판을 하면 욕 본다는 수모를 안겨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일종의 본보기라는 주장이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서 정부를 향한 비판 의욕을 꺾으려는 의도"라며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국가의 책무는 박 이사의 비판이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 혹시 조직적으로 기관이 개입했는데 다른 기관이 미처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알아봐야지 개인에게 민사 소송을 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백 회장은 "국가는 이 소송의 타당성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소송을 취하할 것을 권유한다"며 "만약 소송이 진행된다면 민변뿐만 아니라 전국 많은 변호사들이 나서서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박원순 상임이사도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기에 차라리 재판에 불출석하는 게 비이성적인 소송에 합당한 대응이 아닐까 싶다"며 "뿐만 아니라 이 일에 관계된 사람들이 국정원을 의식하지 않고 진실한 증언을 법정에서 해줄지도 걱정"이라고 설명했다.

박 상임이사는 "외국에서 이 소식을 접하고 너무 힘들고 불안했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게 머리에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는 "하물며 나 못지않은 공포와 두려움이 여기 관계된 많은 사람들에게도 있을 것"이라며 "그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도 걱정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법정에 두 번 불출석할 경우 국가가 제기한 2억 원의 돈이 확정된다"며 "내 통장은 마이너스고 월급도 많지 않으니 차라리 그렇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 문제는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좀 더 논의한 뒤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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