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박멸 대상으로 분류되는 것 같다"

[고성국의 정치in]<9>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박원순 변호사와의 인터뷰 약속은 한 달 전에 잡혔다. 통상 1주일 전 늦어도 2주일 전에 일정이 잡히는 정치인들 보다 2배 이상 시간 여유를 뒀다. 그만큼 바쁘다는 뜻도 되겠고 그만큼 여유있다는 뜻도 되겠다. 오랜만의 반가운 인사 끝에 질문부터 던졌다.

"'정치를 할 것인가?', 이것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 같다."
"그 질문을 자주 받았지만 안 하겠다는 대답은 늘 같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사실 지금 정치를 하고 있다. 운동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 운동을 해왔는데 이게 정치 아니면 뭔가."
"현실 정치 권유를 많이 받지 않나?"
"많이 받는다. 하지만 정치판이라는 곳이 워낙 쉽지 않은 곳 같다. 생각해 본 적도 별로 없고,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 시민사회와 다른 논리가 있으니까."
"시민운동 보다 정치가 더 어려울 것 같나? 어느 점이 그런가?"
"안 해봐서 모르지만 제도권 정치는 굉장한 투쟁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우리도 투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싸우는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같은 더 거대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는 적이 딱 있는 것 아니냐. 공동선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정치판)는 정당이라고 하는 파르티잔 조직을 중심으로 그 정당이 정권을 잡고자 하는 운동인데, 우리도 수단으로서 조직이 있지만 우리는 훨씬 넓은 의미에서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일을 한다. 시민운동은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데 정치는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점에서 많이 다른 것 같다."
"정치권과 연대는 할 수 있나"
"정책적 과제를 놓고 연대할 수는 있다. 지금까지 쭉 해 왔었다.
"지금 정치가 실종된 상태인데 어떻게 풀어야 할까?"
"집권여당의 책임이 크다. 정부여당이 다 갖고 있지 않나.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우리가 가야할 길, 비전, 이걸 제시해야 한다. '7.4.7 공약'은 수단이지 비전과 꿈이 아니다. 경제보다 더 상위에 있는 공동체의 꿈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정치가 되야 한다. 마틴 루터 킹도 김구 선생도 '나의 소원' 같은 꿈이 있었다."
"그동안 우리 정치판에는 양김씨가 우뚝 서 있었다. 어떻게 평가하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간적 매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통령으로는 준비가 별로 없었던 분 같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준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돼있는 분이었던 것 같다. 현명한 분이었고. 첫 통일부 장관을 강인덕 장관을 시켰는데, 이 분이 굉장히 우파였기 때문에 반대를 했지만 지나고 보니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보수층의 우려를 씻어내면서 자기 정책을 폈고 진전이 있었다. 합리적이고 지혜롭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87년, 두 분이 분열했을 때 온 민족이 존경할 수 있는 리더로서의 결격사유를 두 분 다 가지게 됐다. 민주화를 앞당길 절호의 기회였는데 아쉬웠다."
▲ 박원순 변호사. ⓒ프레시안

"기계적 중립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계절"

박 변호사는 정치와 선을 분명하게 그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 정치를 하고 있다'는 말에서, 현실 정치가 간단치 않을 것 같다는 얘기에서, 양김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와 특히 '정치는 꿈을 주어야 한다'는 대목에서 필자는 현실 '정치'에 대한 의지를 읽었다.

"지금 정국을 어떻게 보나?"
"그 동안 정치적 중립을 강조해왔고 실제로 그렇게 해 왔다. 하지만 지금은 기계적 균형과 중립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선문답 같은 답변이었지만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좀 뜸을 들이다 얘기를 이어갔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지금까지 쌓아왔던 원칙과 상식과 제도가 하루아침에 엎어지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바로 서야 하겠구나' 생각 하는 것은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심각하게 느끼나?"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것이 민주주의와 공동선을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을 반대하는 것과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모순되지 않는 상황이다. 군사 독재 시절, 민정당과 신민당 사이에 중립이라는 게 있을 수 없지 않았나. 지금 그런 판국이 돼 가는 것 같다."
"어떤 점에서 특히 문제를 느끼나?"
"10년, 20년 쌓아온 것들, 이를테면 표현의 자유와 같은 부분이 상당히 무너지고 있다. 위기다. 공무원도 그런 것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줄을 선다'는 것들 말이다. 또 21세기 가치보다 과거 20세기적 토목 사업이 다시 복원되고 남북문제도 완전히 냉전적 회귀를 하고 있다. 그렇지 않은 분야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모든 분야가 후퇴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때문일까?"
"꼭 그렇다고 할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때문인가?"
"'정치세력의 퇴행적 성격' 때문에 그렇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라고 하는데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거리가 굉장히 먼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 이런 식이면 기업인들도 이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좋아할 것 같지 않다. 세상에 기업에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정부가 어디에 있나. 투자는 어디까지나 민간이 기업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포스코 인사 개입 같은 게 '비즈니스 프렌들리'일까? 신자유주의라는 철학적 흐름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측에 온건 보수가 많았는데"

▲ ⓒ프레시안
포스코 사외이사였던 박 변호사의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일들이, 신자유주의에도 미치지 못하고, '비즈니스 프렌들리'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면 최근의 '중도 실용, 서민 행보'는 어떨까? 이 질문에 박 변호사는 웃기부터 했다.

"웃어서 미안하다. 모든 일에는 신뢰라는 게 중요하다. 어떤 사람이 얘기할 때 적어도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그 정책에 따라 움직이고 지지한다. 그냥 해보는 소리라고 느낀다면 사람들은 따라가지 않는다. 서민 행보, 중도 행보라고 하지만 권력은 이미 극우적으로 다 짜여있다. 믿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이미 그렇게 해놓고 중도, 서민이라고 하면서 재래시장 가서 떡볶이 사먹고 뻥튀기 사 먹는다고 국민들이 갑자기 믿지는 않을 것이다. 실용문제도 그렇다. 남북문제만 해도 실용적으로 따져보자. 경제적 이익을 버리고 이념적으로 접근해서 남북 관계가 경색돼 버렸다.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보고 있다."
"왜 잘 안 되는 것 같나?"
"잘 모르겠다. 이런 얘기가 있더라.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대통령을 놓고 보면 박 전 대표가 훨씬 극우적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이 많았다. 이명박 대통령 후보 측에는 온건한 보수가 많았다. 그런데 촛불 시위 때문에 너무 흔들리면서 이 상태로 가면 5년 내내 흔들리기만 하겠다고 생각해서인지 집토끼(보수파) 잘 지키고, 대신 촛불 시위나 진보적 시민사회나 진보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팔다리 끊고 견제하겠다, 이런 쪽으로 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너무 몰아붙여서 그렇게 된 측면은 없나? 퇴로도 좀 터주고 몰아야 하는 거 아닌가?"
"좋은 지적이다. 촛불시위 때 마지막에 '그 정도면 됐다' 적절할 때 후퇴해야 한다고 원로그룹과 종교계가 권했던 것으로 안다. 이명박 정부를 포지티브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필요할 것이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가 방어 기제를 과잉 작동시켰다는 얘긴데,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 인물들이 그런 것을 이해하고 있을까?"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미디어법 강행 하고 그러는 것 아닌가. 요즘 세상에 언론 장악이 되겠나? 굉장한 시대착오다. 집권 후반기가 되면 조선일보가 제일 먼저 등을 돌릴 것이다. 난파선에서 쥐가 제일 먼저 도망간다고 하지 않나. 그런 언론을 정권에 우호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정치를 잘해서 취재를 잘 하도록 만들어야지, 정치는 엉터리로 하면서 이해관계 때문에 언론이 자신을 지지하도록 하는 것은 옛날 발상이다."
"정부가 최근 이른바 공안사건을 다루면서 '배후가 어디다' 이런 식으로 규정하는데 상대를 진압 대상으로 보는 느낌이다."
"민주주의는 지난한 과정이 필요하다. 상대가 너무 달라서 물리적으로 진압하고 싶어도, 그런 것을 꾹 참고 대화하고 소통하고 합의를 이끌어내고 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원순 변호사는 작지 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기부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청계 재단'을 만들 당시 청와대 쪽에서는 '아름다운 재단에 맡기는 방안도 고려중'이라는 말까지 나왔을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친하나?"
"개인적으로 친했다. '아름다운 가게'를 하고 있을 때 이명박 당시 시장이 '아름다운 가게는 지상최대 벼룩시장'이라고 하면서 격찬한 적도 있다. 그래서 식사를 같이 했는데, 그 자리에서 '이것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데를 찾아보라'고 해서 지금껏 영동 대교 밑 뚝섬에서 벼룩시장을 매주 한 번씩 열고 있다. 이명박 시장 때문에 된 것이다. 그래서 명예 고문으로도 모셨고, 행사도 여러 차례 참석했다."
"대통령이 재산을 기부했는데...?"
"좀 더 확실히, 세상에 확실히 내던지는 방식이 됐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많은 기업이 재산을 기부한다면서 재단을 만들고 계열사처럼 움직여왔지 않느냐. 이번에도 그런 것 같다. 자기 영향권에 있는 사람이 다 이사진이라면 그것은 진정으로 기부했다고 보기 힘들다. 나중에 자기 아들이라도 들어가면 어떻게 하겠나. 그 동안 사학재단이 그런 것 때문에 불신 받아온 것 아닌가."
"이명박 시장에게 정책적 조언도 했나?"
"한 달에 한번 꼴로 만났는데 그때는 시민 사회 단체 등이 낸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들였다. 서울 숲이 그렇다. 상암동 골프 연습장을 없애는 일도 같이 했다. 이명박 시장은 '좋은 아이디어'라고 판단하면 바로 실천하는 그런 분이었다. 그래서 실용정부를 내세웠을 때 관료의 비효율을 개혁하면 좋은 대통령 될 수 있지 않겠나 생각했었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도 더 철저히 반성하고, 새로운 비전과 콘텐츠를 갖추지 않으면 집권할 수 없으니까 더 노력할 것 아니냐. 그래서 좋은 정부들이 계속 등장하는 좋은 선례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걸 보니 지금은 민주당이 조금만 더 잘하면 선전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됐나? 사람이 바뀐 것인가?"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해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이념, 정부 성향을 떠나 실용적으로 아이디어를 내 실천해온 사람이다. 참여정부 때는 몇 개 프로젝트를 지방정부, 중앙정부와 해왔는데 그게 이 정부 들어오면서 전부 무산됐다. 나도 아마 이제 '박멸해야 하는 대상'으로 분류된 것 같은데, 이해가 안 된다."
"촛불시위에 참가했나?"
"촛불시위는 우리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 ⓒ프레시안
"국정원 감시 사례 수십 가지 수집 중"

박 변호사는 지난 6월 18일자 <위클리 경향>과의 인터뷰를 통해 '국정원의 시민단체 사찰' 의혹을 제기했고,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적이 있다.

"요즘도 국정원이나 정보기관이 시민 단체를 감시하나? 어떤 형태로 감시하나?"
"너무 다양하다. 지금 그런 사례를 수십 가지 모으고 있다."
"도청도 하나?"
"그것은 알 수 없다. 여하간 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묻고 다니거나 방문해서 하는 일들이 많다."
"기부나 후원하는 기업을 조사하거나 협박하나?"
"그런 일이 많이 있었다. 협박이라기보다는 '왜 그런데 협력하느냐' 하는 전화를 걸어오거나, 직접 와서 얘기하는 사례도 있다. 내가 아는 것만 수십 건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압박감을 느끼나?"
"당연히 느낀다. 그러니까 기부와 후원이 다 끊어지고 있지 않나. 지난 정부 시절과 비교하면 완전히 썰물이다. 희망제작소나 참여연대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여성 단체, 시민 단체 등에 대한 지원이나, 기업과 하던 협력사업 등이 거의 다 정리 됐다."
"후원, 기부가 뉴라이트 쪽으로 옮겨 가나?"
"모르겠다. 뉴라이트는 시민단체가 아니다. 북한 인권 사업을 한 것 외에는 뉴라이트 중 희망제작소와 같은 일을 하는 곳이 없다. 최근에는 만들고 있는 것 같지만."
"사찰이나 압박 등의 문제를 누구한테 제기했나? 직접 대통령에게 중단시켜달라고 하는 게 확실하지 않나?"
"시민단체들이 그럴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 이미 그런 기조가 짜여져 있다고 보기 때문에 그렇다. 막상 만나자고 해도 걱정이다. 얘기는 하고 싶은데, 이명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변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용당할 수도 있다."


▲ ⓒ프레시안
"힘과 돈을 줘서 뉴라이트 키운다"

불신이 상당하다. 박 변호사의 말대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 시민단체의 활동이 위축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촛불 집회 참가 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금 삭감 문제까지 있었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이같은 현상을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성'을 기를 수 있는 기회, 일종의 담금질이라고 할까?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에 적대적인가, 배제적인가?"
"둘 다다."
"정도가 심각한가? 현장에서 느끼기에 어떻나?"
"시민사회는 국정의 파트너다. 때로는 국가 기능을 보완하기도 하고 국가 기능을 비판하기도 한다. 비판하는 쪽도 파트너다. 그런 비판을 잘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정말 잘하는 것이다. 조선 시대 사간은 왕을 비판하는 것이 '기능'이었다. 촛불 시위 이후 한 쪽(뉴라이트)은 진영화하고 한쪽은 배제되고 있다. 힘을 주고 돈을 줘서 뉴라이트 같은 우호적인 세력을 키운다는 기본 포맷 위에서 시민사회 정책이 이뤄지는 것 같다."
"뉴라이트가 새로운 축으로 설 수 있을까?"
"글쎄 결과를 봐야겠는데 내년 쯤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크레딧(소액 대출 운동)을 잘 하는 「사회연대 은행」 같은 곳이 있는데 이런 쪽은 (지원이) 다 배제되고 수십억원이 어제 오늘 만들어진 뉴라이트 쪽으로 간다. 경험도 없고 이념 투쟁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곳에 (지원을) 주면 잘 될 리가 있겠나."
"뉴라이트 쪽 사람들과 대화는 하나?"
"그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이제 만나려고 한다. 지난번에 안병직 선생님하고 얘기해 봤는데 그분들의 심정을 이해 못하지는 않겠더라. 이 분들이 '박정희가 독재는 했지만 이만큼이라도 경제성장한 것은 잘한 것 아니냐. 그런데 왜 대한민국 전체를 부정하려 하느냐'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 같다. 우리 선배세대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 아니냐. 우리가 비판하는 것은 과거에 연연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미래 때문인데 그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그러나 이정도 차이는 마음을 열고 대화하면 다 풀릴 것들이다."

"촛불 정국 이후 정부는 '정부 예산을 반정부 단체에게 줄 수는 없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친정부 단체에는 주면 되는 것인가? 예컨대 여성단체는 정부 기능을 대신하는 부분이 있다. 정부를 위해서 주는 거지 단체를 위해서 주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훌륭한 정부는 시민사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삼고 있는데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 시민단체를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참여정부 때는 어땠나?"
"우리가 참여정부 비판을 많이 했지만 역대 정부에 비하면 참여정부가 시민사회 단체와 일을 가장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역으로 정부에 '포섭'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가 그런 케이스인가?"
"아니다. 최열 대표는 그렇지 않았다. 최 대표에 대해 불구속 기소를 했지만 그렇게 부도덕하거나 드러난 것은 없지 않나. 일종의 정치적 보복이다. 물론 재판이 끝나봐야 알 일이지만."

"시민사회와 정부의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인가?"
"21세기 행정의 요체는 '참여 거버넌스(통치), '협력적 모델'이다. 정부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시민단체는 훨씬 적은 돈으로 잘할 수 있는 게 많다. 농업 예를 들자. 정부는 YS 시절부터 190조 원 정도를 썼다고 하는데 농민들은 빚더미에 앉았다. 농민들의 삶과 농업 활성화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중간 조직들이 없었기 때문에 가뭄에 물 한번 흘러내려 보내는 격이 된 것이다. 저수지 만들고 관개시설 만들고 신경 기관 혈관 계통 만드는 것은 다 NGO들이다. UN도 NGO가 없으면 기능이 완전히 축소된다.

세계은행 사람들도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단체를 다 안다. 빈곤 퇴치나 경제 발전이 정부의 힘만으로 안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민사회 단체는 정부의 굉장히 중요한 파트너의 한 축이다. 그런데 이 정부에서 파트너의 한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 이래서는 정책이 잘 될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시민단체들의 '내성 기르기'가 가능할까?"
"시민들의 자발적 기부를 유도하고 모금을 잘 하는 것이다. 희망제작소에서 '모금 전문가 학교'를 만들었다. 3개월에 100만 원 받고, 매주 토요일마다 5시간씩 실습도 하는 프로그램인데, 50명이 왔다. 처음에는 '100만 원이 너무 비싸다'고 했는데 지금은 만족도가 아주 높다. 이 학교 2기를 10월 중에 하기로 준비 중이다. 시민사회단체 사람들이 많이 와야 한다. 오면 싹 바뀐다. 서울대가 모금팀을 만들어 상당한 액수를 모금한 케이스도 있다."

희망제작소와 같은 시민단체들은 사회적 의제설정에 강하다. 새로운 '어젠더 셋팅'은 박 변호사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그에게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어젠더 세 가지를 물었다. 정책이슈를 기대했는데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첫째는 헌신과 희생의 리더십, 둘째는 창조성, 셋째는 통합과 시너지다. 무엇보다도 헌신과 희생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전경련이'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말한다. 국민들에게 '우리 기업을 존경해 달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스스로 존경 받을 수 있는 노력을 긴 세월 동안 해 신뢰를 쌓으면 존경하지 말라고 해도 존경한다.

둘째 창조성이다. 아이디어 하나에 세상이 바뀌는 사례가 많다.

마지막으로는 통합과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문제, 대기업 소기업, 농촌과 도시, 영호남 문제 이렇게 나뉘고 분열하고 갈등하는 것들을 모아내고 협력하고 상생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


▲ ⓒ프레시안

리더십 얘기를 더 듣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인터뷰 팀이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어서 서둘러 일어섰다. 계단을 내려오는데 아무래도 미진했던지 박 변호사가 다시 우리를 불러 세웠다. 박 변호사의 배려로 필자와 프레시안 박인규 대표, 그리고 정리를 맡고 있는 박세열 기자 이렇게 세 사람이 희망제작소 한순웅 회원재정팀장으로부터 30분 남짓 희망제작소의 조직와 사업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설명을 들으면서 떠오른 건 역시 "희망"과 "어젠더"란 단어였다. 살아있는 조직이 주는 신선한 감동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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