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보다 더 큰 위기…극복 전망이 안 보인다"

[인터뷰] 장하준 "보호무역 배격? 수요 창출이 더 중요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1년에 한두번 꼴로 한국을 찾는다고 한다. 지난해 국방부가 그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을 불온도서로 지정한 탓도 있겠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 유독 그를 찾는 곳이 많았다.

2008년 가을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한국경제에도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경제위기의 1막이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6일 오전 한나라당이 장하준 교수를 초청해 마련한 강연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정두언 의원이 "국가 전략으로 채택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되돌아볼 때가 됐다"고 말한 것은 현재 한국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충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은 '선언적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미 루스벨트 대통령도 대공황 초기에는 휴가를 즐기는 등 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다가 1933년에 가서야 뉴딜 정책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사태가 좀 더 심각해져야 근본적인 개혁이 일어날 것 같다."

장하준 교수는 6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세계경제가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졌지만 근본적인 위기 극복을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 결과에 대해서도 "이럴 때일수록 자유무역을 더 하고, IMF를 통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자금지원을 미끼로 선진국이 개도국을 수탈해 왔던) 기존 체제를 더 강화하자는 얘기다. 기본 틀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번 경제위기가 무서운 원인 중 하나가 파생상품이다. 부실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복잡하게 설계된 파생상품은 위기의 '끝'을 가늠하기 힘들게 한다. 따라서 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빠진 대응책은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장 교수는 주장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금융위기의 주범들을 금융위기를 해결해야 하는 자리에 앉힌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상대적으로 금융규제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갖고 있지만 파생상품 금지를 요구할 배짱이나 안목이 없는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 독일 메르켈 총리 모두 현재 한계에 부딪힌 신자유주의 체제의 개혁을 주도할 리더는 아니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중국에 대해서도 선진국이 소비하는 값싼 물품의 생산기지로서 누리는 이득을 당분간은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발언권은 더 늘어가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을 대변하려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또 중국의 위안화가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을 위협할 수 있지 않겠냐고 전망하는 이들도 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봤다.

장 교수와 인터뷰는 6일 오후 서울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박인규 대표가 진행했다. 인터뷰를 두 번에 나눠 게재한다.

현 글로벌 경제위기, 대공황 때보다 심각하다

프레시안 : 현재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은 모두가 동의하지만, 위기가 어느 정도 심각한지, 얼마나 오래갈지에 대해선 의견이 다양한 것 같다. 먼저 이번 위기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

장하준 : 기본적으로 영미식 금융자본주의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한계가 드러난 것으로 본다. '몰락이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쉽게 몰락하진 않을 것 같다. 이 체제에서 덕 보는 사람이 워낙 많으니, 이들이 끝까지 저항할 것이다. 또 제도가 한번 생기면 관성이 있어서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유럽 봉건제도를 이미 14, 15세기부터 없애자고 했지만 없어지는 데 300-400년 걸렸다. 근본적인 체제 변화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다만 19세기부터 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세계를 지배했던 고전적 자유주의가 대공황을 통해서 붕괴되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케인즈주의로 대표되는 수정자본주의가 나왔다. 이 체제가 유지되다가 1970년대 말에 신자유주의가 나왔다. 이 신자유주의 체제가 30여년 계속되다가 이제 무너지기 시작하는 상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대공황의 경험 때문에 정부가 적자 재정 감수하며 돈을 풀고, 금융기관에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버티고 있어서 그렇지, 문제 자체만 놓고 보면 이번 위기가 대공황보다 더 크면 더 컸지 덜하지 않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 ⓒ프레시안
최근 일부 금융지표가 좋아지면서 '새싹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낙관론을 말하기도 하는데 아주 성급한 얘기다. 지금 일시적으로 나아진 것 같지만 두어달 있다가 예를 들어 GM의 부분파산,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협상 결렬 등 얘기가 나오면 또 폭락할 수 있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경제위기는 1막, 2막, 3막을 거쳐 진행되는데, 1막은 금융부문의 경색, 2막은 그 타격으로 실물이 영향을 받아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 2막이 진행 중인데, 이게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빨라야 내년 초나 돼야 마무리 될 것이다. 미국은 지난달만 실업자가 66만 명 나왔다. 이는 공식적으로 실업수당 받는 사람만 얘기한 것이다. 구직포기자까지 포함하면 얼마가 될지 모른다. 어쨌든 실업자만 따져도 1인당 가족을 3명으로 치면 200만 명이 생계를 잃었다는 엄청난 얘기다.

이 여파가 또 금융섹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게 3막이다.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대출금을 못 갚고, 신용카드가 부도 나고, 주택담보대출이 부도 나고, 이런 식으로 금융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제는 1막과 2막은 끝이 있지만, 3막은 끝이 없다. 대공황 때도 일시적으로 회복된 뒤에 다시 경기가 가라앉는 일이 반복됐다. 일본도 90년대 거품붕괴 후 '잃어버린 10년'을 보냈다.

특히 이번 위기는 파생상품이 많아서 끝을 짐작하기가 더 어렵다. 처음에 서브프라임 부실 얘기가 나왔을 때 미국 정부는 부실규모를 500억 내지 1000억 달러라고 했는데, 2007년 여름 2000-3000억을 얘기했다. 2008년 가을 리먼 파산 이후 7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안을 마련했다. AIG, 프레디맥, 패니매 등 지원까지 포함하면 당시 이미 부실이 1조 달러에 달한 것이다. 지금 뉴욕대 루비니 교수는 부실규모로 3조5000억 달러를 얘기할 정도다. 이렇게 부실규모가 불확실해서 위기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근본적 개혁을 주도할 리더가 없다

프레시안 : 1970년대부터 계속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한계에 부딪힌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대안들은 그 정도 인식에 기반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 2차 G20정상회의가 열렸다. 지난해 11월 1차 회의에 비해 진전된 성과를 냈다고 자평하던데, 이번 회의 결과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장하준 : 걱정스러운 것은 이번 위기를 계기로 근본적 개혁이 이뤄져야 하는데 그런 기미가 별로 없다. G20회의를 통해 대단한 합의를 도출한 것처럼 발표했지만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금융규제도 유럽 쪽에서 강화해야 한다고 우겨서 강화하는 방향으로 갔지만, 애매한 조세도피처 몇 개 때려잡고, 헤지펀드 큰 거 몇 개 관리한다는 정도에 그쳤다. 근본적으로 파생상품 관리를 안 하면 헤지펀드 관리하는 게 무슨 소용인가.

또 경기부양을 위해 5조 달러를 푼다고 하지만, 각국에서 발표한 경기부양책을 모은 것에 불과하다. IMF를 통해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의 지원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 돈은 기본적으로 나라가 부도 위기에 처해야 받는 돈이다. 그리고 IMF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수용해야 이 돈을 받을 수 있고, 이런 전제조건들이 후진국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선진국들은 다 적자 재정 하면서 후진국보고는 '이자율 올리고 흑자 재정하라'고 요구한다. 또 무역자유화, 민영화를 요구해 결과적으로 후진국의 경제 활력을 떨어뜨린다.

이럴 때일수록 자유무역을 더 하고, IMF를 통한 지원을 늘리겠다는 것은 기존 체제를 더 강화하자는 애기다. 기본틀을 바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 장하준 교수는 오바마 미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국 리더들 중에 현 위기에 맞서는 근본적인 대응책을 밀고 나갈 이들이 없다는 점을 우려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미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될 때만 해도 경제위기의 근본적 해법을 모색하지 않겠냐는 기대감이 있었다. 장 교수의 G20회의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면,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은 완전히 접은 것처럼 보인다.

장하준 : 오마바 정부가 단기적 대책은 대공황 때보다 훨씬 잘하고 있다. 하지만 뉴딜에 맞먹을 만한 근본적 변화는 없다.

사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안 했다. 현재 경제위기 대응책을 마련한 게 누구냐. 옛날 미국 통화주의 할아버지라 할 수 있는 폴 볼커(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장), 월드뱅크에 있으면서 금융자유화를 주장한 로렌스 서머스(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이 아닌가. 위기를 만든 주범들이다. 또 오바마 대통령의 제일 가까운 경제조언가가 굴스비 시카고대 교수로,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다. 대통령 비서실장인 람 이메뉴얼은 공식적으로 미국 월가에서 정치헌금을 제일 많이 받은 정치인이다.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월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의 딘 베이커 공동소장은 "이들에게 경제정책을 맡기는 건 오사마 빈 라덴한테 테러범을 잡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프레시안 : 상대적으로 독일, 프랑스 등은 영국과 미국에 비해 위기의 정도가 덜 심각하다. 미국이 아니라면 이런 나라들이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리더십을 발휘할 가능성은 없나?

장하준 : 기본적으로 유럽 국가들이 금융규제에 대해서는 미국보다 훨씬 강경파다. 프랑스에서는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도 영미에 비하면 훨씬 금융규제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프랑스, 독일도 과거에 비해 금융권의 힘이 많이 세졌다. 프랑스도 적대적 M&A를 굉장히 공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사르코지, 독일의 메르켈 같은 지도자들이 최소한 파생상품을 규제하자는 정도의 얘기를 할 배짱과 안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지금 세계 각국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은 없다고 본다.

국유화를 'N워드'라 하는 미국, 자국의 실리만 챙기는 중국

프레시안 : 결국 현재로서는 근본적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다소 비관적 전망인데, 근본적인 개혁을 바라는 사람 입장에서 보자면 어떤 처방이 필요한가? 오바마 정부가 발표한 민관합동투자프로그램(PIPP)을 비판하는 이들은 부실 금융기관의 경우 국유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하준 : 국유화에도 시장원리가 작동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부실 채권을 정부가 사서 대주주가 되면 정부가 의결권을 행사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이게 시장주의지 않나. 영국도 최소한 그 정도 한다. 그런데 미국은 국유화를 안 하려고 정부가 기업의 지분을 소유하더라도 40% 이하로 제한하는 규정을 마련해 놓을 정도다. 국유화에 대한 엄청난 거부감이 있어서 국유화(Nationalization)를 'N워드'라며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할 정도다.

프레시안 : 파생상품의 규제를 장 교수가 제시한 근본적 개혁 중 하나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장하준 : 물론 힘들다. 하지만 나는 정치인이 아니니까 현실성 없는 얘기라도 해야 된다. 불가능한 소리라도 자꾸 요구해야 세상이 바뀌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이 근본적 변화를 주도할 만한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이 점차 세계에서 발언권 강화되고 있는데, 중국이 새 체제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은 없나?

장하준 : 중국은 워낙 자기 실리추구가 강하다. '우리가 돈 낼 테니 IMF 투표권을 더 달라'는 식의 요구는 하지만 후진국들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미국에 계속 수출해서 잘 살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새로운 이니셔티브 주도할 리더십은 없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중국은 현 신자유주의 질서 내에서 값싼 노동력을 주무기로 내세운 생산기지로 고도성장을 이뤘다. 그렇지만 미국, 유럽 등 주요 수출시장이 침체에 빠지면서 이런 전략이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하는 '불평등한 균형'을 중국이 계속 유지하는 노선을 당분간 계속 가져갈 것이라고 보는 입장인가?

장하준 : 중국 내부 역학 문제가 있다. 중국은 양극화가 심각해서 세계경제 변화의 주도권을 쥘 여력이 안 된다. 중국의 지니계수(불평등 계수)를 보면 이미 남미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 남미는 500년 전부터 불평등하게 살아온 나라들이지만, 중국은 30년 전만 해도 모두가 다 인민복 입고 자전거 타고 다니던 나라다. 그만큼 빈부 격차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중국도 내수지향으로 돌리려고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덩치가 워낙 커서 하루아침에 돌리기는 힘들다. 아직은 어떻게 될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어쨌든 중국의 전략은 일단 앞으로 30년은 가만히 있자는 쪽이다. 그래서 WTO에서도 별로 목소리 안 낸다. 오히려 브라질, 인도 등이 앞에 나가서 떠든다.

프레시안 : 중국경제에 관심이 쏟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기축통화' 문제다. 이번 금융위기로 미국이 달러를 많이 찍어내면서 달러 가치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100년 전 영국 파운드화의 몰락과 비슷한 과정을 밟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런 달러 가치에 2조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갖고 있는 중국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래서 양국간 '화폐 전쟁'이 일어나지 않겠냐는 시나리오도 제기되고 있다.

장하준 : 겨우 2조 달러 갖고는 경쟁 못 한다. 이번에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 세계 외환거래량이 하루에 2조 달러였다. 하루치 외환거래량으로 뭘 하겠냐. 지금 당장 달러에 대한 도전은 유로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 영향력이 커졌다고 하더라도 아직 1인당 국민소득 2000달러 나라다.

▲ 장하준 교수는 대공황 당시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위기가 심화됐다는 주장에 대해 '일종의 신화'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무역붕괴는 수요붕괴의 탓이 가장 컸다고 반박했다. ⓒ프레시안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번 금융위기가 유로존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장하준 : 예전에는 달러가 기울어도 마땅히 갈 데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중동국가들에서 '석유를 유로로 결제하자'고 하면 확 쏠릴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급변하지는 않는다. 영국의 몰락은 제국주의가 피크였던 1870년대부터 시작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영국이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1956년 수에즈 사태 이후였다. 거의 100년이 걸린 것이다. 미국 달러도 지금 60년대부터 위협을 받기 시작해서 71년 금태환 정지 조치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80년대 쌍둥이적자 등으로 크게 흔들리다가 90년대 다시 부활했다지만 지금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고 보여진다.

결국 수요 창출의 문제다

프레시안 : 지금 위기 대응 방식을 놓고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있었던 세계경제의 블록화가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위기는 공유하지만 대처는 각자 알아서 식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하준 : 보호무역주의 때문에 대공황이 심화되고 세계경제가 붕괴됐다는 주장은 일종의 '신화'다. 첫째 당시 관세가 그렇게 많이 오르지 않았다. 미국이 40%에서 50%로 올라간 정도다. 둘째, 당시 무역 붕괴는 수요 붕괴, 금융 붕괴 때문이지 관세 때문이 아니다.

지금 보호무역의 위험을 따질 게 아니라 수요 창출이 더 중요하다. 블록화가 되는 것인지 예측은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그때와 다른 게 지금은 WTO도 있고, EU도 있다. 그때만큼 보호무역 수위를 높이는 게 어렵다. 결국 '보호무역은 안 된다, 블록화는 안 된다'는 얘기는 자유무역 이데올로기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말로는 그러면서 미국은 지금 당장 자동차 산업에 170억 달러 집어 넣고 보호무역이 아니라고 우긴다. 결국 힘센 나라들은 자기들은 보호무역하면서 후진국만 못하게 한다.

프레시안 : 수요 창출이 중요하다는 지적을 했는데, 최근 동유럽이 흔들리는 걸 놓고 동유럽이 개방될 때 '제2의 마셜플랜'(2차 대전 직후 서유럽 지원 방안)을 했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미나 동남아시아에 다시 이런 방식이 쓰일 수 있다고 보나?

장하준 : IMF나 월드뱅크는 2차 세계대전 후 마셜플랜을 위해 만든 기구다. 그때는 정말 서유럽을 키우려고 한 것이었는데, 지금(80년대 이후) IMF는 막말로 (선진국 금융자본을 위해)빚 받아오는 대행업체다. 그리고 그들이 구사하는 정책은 후진국을 더 약화시키는 정책이다.

물론 진행되는 상황을 더 봐야 한다. 대공황 때도 루즈벨트가 처음에 준비기간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줄 모르고 요트 타고 놀러 다니다가 1933년에 가서야 뉴딜 정책을 내놓았다. 현재도 일이 더 심각해지면 더 강력한 조치 나오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돈 풀어서 경기부양하는 데 그칠 것이다. 경기부양 한다고 돈 푸는 건 좋은데 국유화 절대 안 되고, 은행 간섭은 안 된다고 하다가 국민들만 빚더미에 앉고 나중에는 국채가 많아서 국유화 못 한다는 식으로 나올까봐 걱정이다. 하면 안 되는 얘기지만 사태가 좀 더 심각해져야 근본적 개혁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또 어떻게 미봉책으로 나가면 어디 가서 또 거품이 낄지 모른다. 오바마 정부가 녹색 뉴딜을 얘기하던데 녹색거품이 생길 수도 있다.

프레시안 : 오바마 정부가 녹색 산업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금융자본주의 이후 새 체제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장기적 전략으로 보고 있다. 앞선 기술력과 자본력으로 녹색산업을 주도하면서 새로운 산업 기준을 만들면 후발 주자들은 그 기준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장하준 : 녹색산업에 지금 당장 거품이 낀다는 거는 아니고 미래에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사실 후진국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대부분을(약 80%) 선진국들이 뿜어 내놓고 '지구가 망하게 됐으니 너희는 성장하지 말라'는 식이다. 선진국이 기본적으로 기술력 있기 때문에 자기들이 기술 스탠다드를 정하기 시작하면 뒤에 따라가는 나라는 그만큼 불리하게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후진국에 대한 비대칭적 보호주의가 필요하다. WTO 체제를 통해 보조금이 금지됐는데 환경관련 보조금은 거의 다 허용돼 있다. 미국이 자동차 보조금 주면서 환경친화 기술개발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게 다 WTO에 안 걸리려고 하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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