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 부활'이 '사이코패스' 때문이라고?"

[기고] 다시 야만의 세레모니를 허락할텐가

사형 집행 부활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2007년,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에 부여하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 지위를 한국에 부여했다. 그러나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사형제 존치와 집행 부활을 들고 나왔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연쇄 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이상 상태를 일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서강대 법대 이호중 교수가 최근 사태를 우려하며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최근의 연쇄 살인 사건으로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여론이 매우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한국사회여론연구소)를 보면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69.2%로 나타났으며, 이는 작년 안양 초등학생 살해 사건 당시의 사형 찬성 의견보다 10%포인트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흉악한 범죄 사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여론은 사형제 찬성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다.

정치권의 대응도 매우 기민하다. 사형 찬성론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사형 집행 논의를 시작하라고 지시한 후 한나라당은 지난 12년간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 확정자의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12일에는 사형 집행의 부활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사형 집행이 정말 목전에 임박했다는 위기감이 싸늘하게 온몸을 휘감는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올해 12년째이다. 빠른 걸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인권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뚜벅뚜벅 진전시켜 왔다. 그 자부심과 인권선진국의 성과를 무위로 되돌릴 만큼 절박한 사정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형 집행의 잔혹한 의식을 치르지 못해 안달인가?

사형이 강력 범죄를 예방한다는 건 '환상'

▲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지 올해 12년째이다. 빠른 걸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인권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뚜벅뚜벅 진전시켜 왔다. ⓒ프레시안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해 '악마'니 '짐승'이니 하는 표현을 써가면서 인간으로 대우해 줄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고 극단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울분의 격한 심정을 토로하다 보니 다소 거친 표현을 쓴 것이리라 믿고 싶다. 감정적 분노와 흥분에 휩싸여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어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삼가야 마땅하다. 국가정책으로서 사형의 존폐를 논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형의 엄중한 집행을 촉구하는 여러 의견 중에 그래도 가장 논리적인 주장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강력범죄를 예방하는데 사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12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흉악범죄가 증가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는 통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허구이며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무책임한 주장에 불과하다.

실제 사형이 선고되는 범죄는 대개 살인범죄이므로, 살인죄를 중심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1998~2007년과 그 직전 10년간의 통계를 잠시 비교해 보자. 법무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지난 10년간(1998~2007년) 살인범죄의 건수는 1998년 966건에서 2007년 1124건으로 약 1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사형의 집행이 손쉬웠던 시절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범죄 건수는 무려 31% 증가했다. 사형 집행이 비일비재했던 과거에 살인범죄의 증가율이 더 높았음을 통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인범죄 다음으로 흉악한 범죄인 강도범죄는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므로 사형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그 효과가 전혀 입증되지 않는 환상일 뿐이다.

모든 강력범죄에 사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연쇄살인범 같은 위험한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사형 부활의 타겟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주장도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위험한 욕망을 꺾기 위해서는 사형 집행을 통해 강력한 응징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만드는 사회

'사이코패스'란 이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로, 흔히 타인과의 정상적인 사회적 교류와 소통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컫는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 동정심 따위는 전혀 없이 자신의 삐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흉악한 범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곤 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자는 재범의 위험이 매우 높고 교정과 치료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한 대책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그런데 사형이 과연 꼭 필요한 그리고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감정적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울분에 찬 덧글을 다는 심정으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관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의 양상과 그 사회적 맥락에 대해 몇가지 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매우 위험한 인물'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다. 흉악한 범죄를 지속적으로 저질렀다고 하여 섣불리 사이코패스로 진단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꼬리표를 부착하여 '도무지 치료도 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고 그 위험성 때문에 무조건 사회에서 배척해야 한다는 생각은 범죄 정책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사회공동체의 유대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부정하는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비난과 낙인을 가하는 데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렇진 않았을 터인데, 한번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잔인하고 끔직한 연쇄 살인 사건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많은 범죄학자들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출현시키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만이 끊임없이 강조되는 가운데 건전한 공동체 문화의 기틀이 되는 유대와 소통의 통로는 현저하게 약화된 것이 오늘날 첨단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각박한 각개전투식의 경쟁이 사회를 지배할수록 그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낙오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인격적·정신적 고통의 하나가 바로 사이코패스이다. 치열한 경쟁사회가 사회적응에 실패한 사람을 소외시키고 그 소외가 사이코패스라는 인간형을 낳는 사회문화적 원인이 된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짐승', '악마' 같은 극한 표현으로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사이코패스라는 인격장애의 유발을 감소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정책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이코패스 공포증' 확산시키는 정부·언론

또한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 정부와 언론이 대국민 '사이코패스 공포증'을 은연중에 확신시키고 또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적으로 주목할 대목이다.

일부 언론들은 평범한 시민 '누구라도' '언제든지'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무고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실제 이상으로 과도하게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산된 사이코패스 공포증은 정치 권력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공권력 강화의 호재로 활용된다. 흉악한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뒷전에 감춘 채로, 그 원인을 오로지 개인의 폭력적 위험성이라든가 정신적 결함 때문으로 쉽사리 치부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법질서 강화'를 내세워 사형 집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응징 정책과 살벌한 통제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한나라당은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추진함은 물론이고, 그것으로도 성이 안 차는지 가석방이나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추가로 도입하겠다고 하고, 현재 25년인 징역형의 상한을 50년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흉악범죄자의 신상공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나, 가발이나 마스크를 쓰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등 전방위적 감시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결국에는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감시 및 통제권한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려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이 유포한 사이코패스 공포증은 치안부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희석시키기도 한다.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은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순간부터 경찰이 보다 철저하게 수사에 임했더라면 제2, 제3의 추가 범행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다. 사건 초기 그저 그런 실종 사건 정도로 취급했던 경찰이었다. 경찰이 이처럼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에 추가 범행이 잇달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치안부재와 부실한 초동수사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형 집행을 안 해서 혹은 공권력이 지나치게 물러서 흉악범죄가 판치는 양 여론을 호도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잡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을 주목하라

이런 상황 진단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할 때, 사형 집행의 부활이 흉악 범죄를 방지하는데 정말로 유용하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인지, 아니면 별반 범죄 예방효과도 없이 그저 한풀이식의 야만적인 세레모니의 부활 내지는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로 귀결될런지, 합리적 안목을 갖춘 시민들의 냉정한 판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몇 가지만 간단히 짚어보자.

첫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연쇄 살인 등 흉악범죄자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사형 존치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사형이 흉악범의 사회적 격리를 위한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연쇄 살인 사건 등 흉악범의 위험성이 크다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으로도 흉악범의 사회적 격리와 재범방지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둘째, 사형 집행의 부활을 외치는 여론의 한켠에는 사형 집행으로 흉악한 범죄의 욕망을 가진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섞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형 등 가혹한 형벌을 부과하더라도 위험한 범죄자의 잠재적 충동을 억제할 만한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학계의 연구결과이다.

셋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자신은 잡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말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국내외 범죄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형과 같은 가혹한 형벌 정책은 범죄 예방 효과가 없는 반면에, 검거의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은 범죄 예방 효과가 매우 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은 자신이 검거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형의 가능성은 체포된 뒤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붙잡힐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범죄자에게 사형은 아무런 억제 효과를 지니지 못한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는 피의자의 그 말에 너무나도 잘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우리는 사형 집행의 부활로, 그리고 사형제의 존속으로 흉악범죄의 예방과 시민의 안전이 담보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간간히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이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사형 집행을 다시금 부활시킨다고 해서 그와 같은 흉악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히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곧바로 검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정책이 훨씬 현명한 정책이다.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이 두렵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정치권에도 한 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분노하는 여론에 일방적으로 편승해 사형 집행 등 응징과 보복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태도는 합리적 정책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취할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의 분노와 울분에 눈을 감으라는 것이 아니다. 여론에 귀기울이면서도 그것을 합리적인 정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정부의 본연의 책무일 것이다.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그저 인터넷에서 흉악범에 대한 분노의 덧글을 다는 수준에서 국가 정책을 급조하는 태도는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2008년 현재 59개국에 불과하고, '실질적 사형 폐지국'인 우리나라를 포함한 사형 폐지국은 138개국에 달한다. 우리보다 앞서 사형제를 폐지한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도 당시 여론은 사형 폐지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위한 용기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잔혹하고 야만적인 세레모니를 그만둘 수 있었다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형 폐지라는 국가적 결단에는 생명과 인권의 소중한 가치 앞에서 국가권력의 겸손함을 약속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사형 집행의 잔혹한 의식을 재개하여 한풀이 굿을 치르도록 시민을 부추기는 사이에 겸손을 저버린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이 정말이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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