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언제까지 '테러'에만 기댈 건가"

[기고] 정몽준 의원에게 현대미포조선 노동자가 보내는 편지

현대미포조선에 다니는 노동자, 김석진입니다. 현대미포조선 내 3개 현장조직이 구성한 현장대책위 공동대표이며 소집권자입니다. 또 지난 1월 17일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저지른 테러로 죽을 뻔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공장굴뚝에서 벌이던 고공농성이 설 직전인 지난 23일 극적으로 합의돼 농성하던 노동자들이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했던 두 노동자들이 건강에 크게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노동자 테러에 대해서만큼은 반드시 해결해야한다고 봅니다. 노동자 테러는 이제 저 한 사람이 마지막이 되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이렇게 공개 서한을 보냅니다.

1월 17일 자정, 현대중공업 굴뚝 아래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김석진. ⓒ현대미포조선 현장대책위
지난 1월 17일 현대미포조선 서문 앞, 즉 고공농성 중인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아래에서는 영남 노동자 대회가 열렸습니다.

당일 집회에서는 전국에서 2000여 명의 노동자가 집결했고 고공농성 동지들에게 음식물과 방한용품을 굴뚝으로 전달하려고 했습니다. 이에 현대중공업 경비대는 물대포를 쏘아가며 이를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고공농성 이후 지난 한달 동안 굴뚝으로 물품을 보내는 것이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폭력으로 모두 실패했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모인 노동자 모두가 결사적으로 물품을 보내려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고공농성 이후 거의 한달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식물과 방한용품이 굴뚝으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 자정이 가까워졌을 때, 고공농성 중인 굴뚝 아래 민주노총, 진보신당의 노숙농성장에 대한 경비대의 폭력 침탈이 일어났습니다. 물론 경비대의 폭력 침탈은 고공농성 동지들에게 물품이 올라간 것에 대한 보복 성격이 짙었습니다. 침탈 결과, 노숙농성장은 아수라장이 됐고 민주노총과 진보신당 차량은 유리창이 다 부셔졌으며 노숙농성장 물품은 경비대가 빼앗아 모두 다 불태워버렸습니다.

당시 농성장에는 10명도 안되는 인원이 있었고, 각목과 쇠파이프, 소화기로 무장한 경비대는 60명이 넘어보였습니다.

"경비대의 테러는 현장 활동가를 겨냥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농성장을 공격하면서 경비대는 농성자들에 대해서 단지 위협용이 아닌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특히 당시 농성장에서 유일한 현장 활동가였던 저에게 살인적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경비대들은 노숙 농성장을 폭력적으로 쳐들어 왔다가 저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각목으로 뒷통수를 때렸고 이어 바로 소화기로 내리찍어 저는 의식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농성장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제가 쓰러진 후 경비대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소화기와 각목으로 찍어내리고 온몸을 발로 밟으면서 저를 집중적으로 구타했다고 합니다.

그나마 노숙농성장에 있었던 진보신당 당원들이 저를 둘러싸고 있던 경비대를 결사적으로 뚫고 들어와 온몸을 던져 저를 에워싼 채, 제 대신 맞으면서 119구급차가 올 때까지 저를 보호했습니다. 병원 후송 후에야 응급처치를 받고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후송 전까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구토 증상까지 보였습니다.

▲ 김석진 대표가 병원에 실려가는 장면. ⓒ울산노동뉴스

"경찰은 테러를 방치했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다행히도 뇌에 직접적인 손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직 머리 뒤에서부터 오른쪽 어깨를 따라 오른팔까지 통증이 있고 오른팔은 사용하기가 매우 불편하며 지속적으로 근육 경련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현재는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회사에 출근도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 밤 만약에 농성장에 있던 사람들이 저를 목숨 걸고 지켜주었기에 망정이지 그들이 없었다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1월 17일 밤 사건은 이처럼 농성장 폭력 침탈만이 아니었습니다. 경비대는 현장 활동가를 겨냥해서 살인적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경비대는 노동자를 테러하고 살인미수한 범죄자들입니다.

현장 활동가에 대한 테러를 겪으면서, 이제 언젠가 누가 새로운 테러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중공업그룹 내 사업장에서 민주노조운동을 하려면 이제 목숨을 걸고 해야하는가 봅니다.

게다가 이번 테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버젓이 저질러졌습니다. 경찰이 있었지만 폭력 침탈 중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하지도 않았습니다.

▲ 노동자들을 향해 돌진하는 경비대 (출처 : 울산노동뉴스)

현대중공업 경비대장이 울산 경찰서장보다 높다?

하긴 이전에 고공농성 동지들에게 물품을 공수하려다 경비대가 폭력적으로 방해했을 당시, 경비대의 폭력은 지역의 노동자뿐만이 아니라 집회 주변을 경계하는 경찰에까지 무차별적으로 휘둘러졌습니다.

그래서 울산에서는 현대중공업 경비대장이 울산 경찰서장보다 지위가 높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그만큼 경찰은 경비대 앞에서 무기력합니다.

현대중공업 사유지 밖에 있는 도로에서 경찰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노동자에 대한 살인적 테러를 저지르는 현대중공업 경비대. 이제 울산은 노동자의 도시가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살인 테러의 도시가 됐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데 민주노조운동 하면 울산에서는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88년 식칼테러'의 악몽은 현재 진행형

현대중공업의 노동자에 대한 테러는 역사적으로 뿌리가 깊습니다. 유명한 '88년 식칼테러'가 일어난 곳이 바로 현대중공업입니다. 1988년 현대그룹 노동조합수련회에서 노조 활동가에 대한 식칼테러가 벌어졌었습니다. 그 다음해인 1989년에는 공장 안에서 노동자들에게 식칼을 휘둘러 길이10cm가 넘는 중상을 입혔습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서도 노동자에 테러는 여전합니다. 그것도 이제는 '경비대'라는 현대중공업의 공식 부서가 되어 직접 폭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하청 노동자가 절반이 넘는 현대중공업 그룹에서 경비대는 총무과 소속 정규직으로서, 한때는 300여 명에 육박했습니다. 해병대나 공수부대 출신들, 그래서 유단자 우대라는 조건으로 모집된 경비대는, 2000년 현대중공업 해고자들의 천막농성 당시 해고자들에게 면도칼을 휘두르며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테러는 더 큰 투쟁을 낳는다

특히 2004년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고 박일수 열사가 분신했을 당시에도 현대중공업 경비대는 자본의 사설 조직폭력배로 그 악명이 자자했습니다. 고공농성 중인 하청노동자들은 직접 폭력적으로 강제진압을 했었고, 노동자대회가 열렸을 때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 경찰들을 뚫고나와 물대포를 쏘고 소화기를 얼굴에 뿌리면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룹 산하 현대미포조선 노동자에게마저도 경비대는 폭력침탈과 노동자 테러를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세계 1위 기업의 노무관리는 노동자 테러였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를 테러한다고 해서 사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미 정몽준 의원이 현대중공업에서 사장을 하고 정주영 회장이 현대그룹의 회장이었던 당시 식칼테러는 노동자들의 더 큰 분노를 불러일으켜 1988년 128일 파업투쟁과 1989년 골리앗 투쟁으로 이어지는 더 큰 투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세계 1위 기업의 노무관리가 노동자 테러?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노동자 테러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현대중공업 경비대의 노동자 테러가 이번에 나한테 자행된 것이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정몽준 의원, 전국에서 유일무이한 자본의 사설 조직폭력배인 현대중공업 경비대를 즉각 해체하십시오! 경비대는 경비가 목적이지 노동자 테러가 목적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경비대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높다 하더라고 독자적으로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경비대가 노동자에 대해 폭력을 행사하고 테러를 자행하는 것은 현대중공업의 실질적인 책임 하에 이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정몽준 의원, 현대중공업 경비대를 해체하십시오. 이제 정몽준 의원이 결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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