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노조 간부 12명의 '아름다운 희생'

파업 510일만에 비정규직 2000명 고용 안정 확보

지난해 여름을 뜨겁게 달궜던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13일로 끝났다. 이랜드일반노조와 홈플러스테스코는 이날 오전 조인식을 갖고 이틀 전 마련한 합의서에 최종 서명을 했다. '아줌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꼭 510일째 날이었다.

극적인 타결은 정규직이었던 노조 간부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이랜드그룹이 홈에버를 소유하던 시절 징계 해고된 28명의 거취 문제가 막판까지 쟁점이 됐지만, 노조가 과감히 이들 중 일부의 복직을 포기했다. 이랜드 사태의 시작이 비정규직 문제를 걸고 정규직 조합원들이 함께 나서 싸운 '아름다운 연대'였기에 가능했던 결론이었다.

대신 애초 불씨가 됐던 외주화 철회 및 16개월 이상 근무한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회사로부터 얻어냈다. 당장 2000여 명의 비정규직이 이 조항의 혜택을 볼 것으로 노조는 내다봤다.

이번 합의 과정에서 희생양 1순위로 꼽힌 김경욱 이랜드일반노조 위원장은 "다 복직하지 못해 가슴 한 구석에 오랫동안 응어리가 남을 것 같다"면서 "이름 없이 싸웠던 간부들이 조합원들을 위해 선선히 복직을 포기해줘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 극적인 타결은 정규직이었던 노조 간부들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이랜드 그룹이 홈에버를 소유하던 시절 징계 해고된 28명의 거취 문제가 막판까지 쟁점이 됐지만, 노조가 과감히 이들 중 일부의 복직을 포기했다. ⓒ프레시안

기존 단협보다 현행법보다 나아간 '16개월 이상 비정규직 무기계약직화'

이날 노사가 공개한 합의서의 핵심은 비정규직의 고용 보장이다. 홈에버 단체협약에는 비정규직이라도 18개월 이상 근무했을 경우 해고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하지만 노사는 이번 합의에서 기준을 16개월로 낮췄다. (☞관련 기사 : '이랜드 사태', 1년6개월 만에 드디어 종지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고용 의무 조항 대신 '전환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고용 의제 조항이 들어갔다. 고용 의무는 사용자가 그 책임을 회피할 경우 별도의 소송 등을 통해 정규직 전환 인정을 받아야 한다. 24개월 후 정규직 전환 의무를 규정한 현행 비정규직법도 고용 의무 조항이다.

홈플러스테스코는 이번 합의에서 현행 법보다 한 단계 더 노동계의 요구를 들어준 것. 또 입사 시점이나 노조 가입 시점에 관계없이 조합원이면 누구나 이 조항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주차, 카트, 미화, 시설 등 일부 업무를 제외하고 추가 외주화도 하지 않기로 못 박았다. 김경욱 위원장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이 이번 합의의 가장 큰 성과"라고 의미 부여했다.

또 비정규직에게도 법정 공휴일을 유급으로 적용하기로 했다. 김경욱 위원장은 "이 조항이 바뀌면 사실상 임금 외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금은 정규직-비정규직 모두 10% 인상하는 대신 2009년과 2010년도 임금 인상은 회사에 전적으로 맡기기로 했다. 노조는 "회사가 홈플러스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입장을 밝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민노당 소송 취하, 회사가 정치적 부담 심하다 했다"

다만 노조는 김경욱 위원장 등 간부 12명의 해고라는 상처를 껴안게 됐다. 홈에버 소속으로 파업 도중 징계해고된 간부는 모두 28명. 회사는 교섭 내내 이들 가운데 12명의 복직은 어렵다는 주장을 폈다. 하지만 노조는 5명을 고집했고, 끝내 최종적으로는 9명에서 마무리됐다. 여기에 자진 퇴사자 3명을 더해 모두 12명이 파업 후 돌아갈 일터를 잃은 셈이다.

나머지 16명의 간부들은 퇴사 후 신규 채용하는 형식으로 복직하기로 했다. 근속 연수 등의 불이익은 있으나 대신 징계 기록을 없애고, 임금 및 근로 조건은 동일하게 하기로 합의했다.

250억 원에 달하는 파업 도중 발생한 손해 배상 소송에 대해서도 양 측은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상대로 진행되는 것만 제외하고 모든 민·형사상 소송을 취하하기로 했다. 김경욱 위원장은 "끝까지 민주노총과 민노당에 대한 소송 취하를 요구했으나 회사 측이 정치적 부담이 너무 심하다고 거부했다"고 설명했다.

비록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뉴코아 노사의 최근 합의에 비하면 이 역시 '최선'이었다 평가할 만하다. 뉴코아 노사는 노조 간부 등 개인에게 걸린 손·배소만 취하하고 노조 등 기타 단체들에 대한 것은 전혀 풀지 못했다.

노사는 입점업체 점주들이 제기한 각종 민·형사상 소송에 대해서도 취하를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기로 했다.

이날 노사는 향후 3년 간 파업을 하지 않는 '무파업 선언'도 발표했다. "회사는 노동조합을 인정하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보장한다"는 문구도 들어가 있긴 하지만, 노조로서는 향후 활동에 제약이 따르는 선언에 도장을 찍은 셈이다.

"비정규직 투쟁, 그 현장 정규직이 함께 싸워야 승산 있다"

▲ 김경욱 위원장은 "비정규직 투쟁은 당사자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반드시 그 현장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프레시안

비록 상처 하나 없는 마무리는 아니었지만, 이로써 이랜드 비정규직 갈등은 일단 마무리된 셈이다. 이랜드와 달리 해고된 후 복직 투쟁을 벌이는 것이 대부분인 기륭전자, KTX 승무원 등 현재 비정규직의 투쟁은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장기화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이랜드가 합의를 통한 파업 철회라는 '마침표 찍기'에 성공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김경욱 위원장은 "510일 파업하고 180명의 조합원이 파업 대오에 남아 있는 것은 대단한 숫자"라며 그 공을 오랜 시간 모든 어려움을 참고 버텨 준 '아줌마 조합원'들에게 돌렸다.

김경욱 위원장은 또 "비정규직 투쟁은 당사자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반드시 그 현장 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해야만 승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 싸우는 비정규직을 코스콤처럼 내치는 정규직도 있고, 비정규직을 자기 조합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세 번이나 거부한 현대차지부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신뢰할 수 있을까."

회사 측의 복직 거부로 최종 퇴사자 명단에 오른 '과장 출신' 김경욱 위원장의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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