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IMF', 그들은 두렵지 않다"

[기자의 눈]경제관료들이 '위기'를 두려워할까

극단적 질문을 던져보자. 경제관료들이 과연 '위기설'에 대해 위기감을 갖고 있을까?

3일 <조선일보> 3면에 실린 "경제 어렵지만 제2 외환위기는 없다" 기사를 접하면서 든 생각이다.

<조선일보>는 이날 IMF 당시 경제관료들의 말을 빌어 "제2 외환위기는 없다"고 보도했다. 현 '9월 위기설'에 대해 IMF 당시 관료들은 입을 모아 '루머'라고 진단했다.

이날 <조선>에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현 '위기설'에 대해 코웃음을 치는 IMF 당시 경제관료가 하나 더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당시 재경원 차관이었던 강 장관은 1일 국회 9월 위기설과 관련한 질문을 받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IMF주범들 "'9월 위기설'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
▲ 3일 <조선일보>는 외환위기를 경험했던 전직 관료들의 '9월 위기설' 진단을 보도했다. ⓒ프레시안

김인호 당시 청와대 수석은 '9월 위기설'에 대해 "경제규모, 외환규모로 볼 때 위기 아니다"고 평가했다.

윤증현 당시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9월 위기설은 쓸데 없는 루머다"고 말했다.

윤진식 당시 청와대 금융비서관은 "현 금융시장 불안이 외환위기나 경제위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연종 당시 한국은행 부총재는 "근거 없는 위기를 부추기면 해외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영욱 당시 재경원 국제금융담당관은 "외환보유액이 많고, 외채 구성이나 질 면에서 지금이 훨씬 좋다"며 위기는 없다고 봤다.

김석동 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은 "기업.금융기관의 재무구조 등이 세계적 수준으로 개선돼 위기에 대한 내성이 강해졌다"고 평가했다.

다들 '9월 위기설'에 큰 무게를 두고 있지 않았다.

다만 이들도 현재 한국경제가 어려운 상황인 것을 사실이라고 진단했으나, 그 원인이 일차적으로 글로벌 경기침체에 있다고 봤다. 이 역시 강만수 장관과 똑같은 평가다.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대응했는가

외환위기를 겪은 관료들이 자신들의 경험에 기반해 내린 분석과 평가는 한번쯤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9월 위기설'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이들의 평가도 전문가들의 인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이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다시 되짚어보면 과연 경제관료들을 믿어도 되는지 근본적인 회의가 든다.

1997년 1월 한보철강 부도사태가 위기의 신호탄이었지만 경제관료들은 IMF 구제금융을 받기 직전까지도 "위기는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IMF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한 11월21일을 불과 열흘 앞둔 시점에도 "내 재임기간에는 창피해서 IMF에 못 간다"고 버텼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1월 10일 홍재형 전 경제부총리가 전화를 걸어 국가 부도 위험에 대해 얘기할 때까지 경제관료들을 통해 아무 것도 보고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윤진식 당시 금융비서관이 YS에게 공식 보고한 것은 11월 12일이었다. 당연히 YS는 "왜 이런 급박한 상황을 이제야 알리냐"며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YS의 진노로 끝까지 IMF 구제금융만은 피해가려던 경제관료들은 11월13일 IMF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11월19일 강경식 경제부총리가 경질되고 '구원투수'로 임창열 부총리가 투입됐다. 임 전 부총리는 지난해 11월 <주간조선>과 인터뷰에서 "1997년 3월부터 위기 경보가 계속 울렸는데 그걸 뒤담아 듣지 못했다. 그러다 상황이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기 닷새 전인) 11월 16일 캉드쉬 IMF 총재가 비밀리에 입국했다. 그런데 전임 경제팀은 그 뒤에도 'IMF 구제금융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고 전임인 강경식 경제팀의 안이한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현재의 '9월 위기설'도 마찬가지다. 9월에 위기가 터지느냐, 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제주체들이 위기설에 대해 심각하게 반응할 만큼 경제 체질이 허약해져 있는 게 문제다. 따라서 지금 경제관료들이 할 일은 "위기는 없다"고 똑같은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게 아니라 신음하고 있는 한국경제를 근본적으로 치유할 수 있는 대응책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 지점이 10년 전 '그때 그 사람들'로부터 강만수 경제팀이 진짜 배워야할 교훈이 아닐까. 강만수 장관은 본인이 직접 겪어 봤으니까 누구보다도 잘 알텐데 말이다.

책임질 필요 없는 경제관료들이 과연 '경제위기'를 두려워할까
▲ 외환위기 이후에도 외환위기 당시 경제관료들은 이후에도 주요 요직에 있었다. 당시 재경원 차관이었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뉴시스

또 이날 <조선일보>는 10년 전 '그때 그사람들'이 여전히 '잘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확인시켜줬다.

경제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강 장관 뿐 아니라 윤진식 당시 청와대 금융비서관은 현재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이다. 윤 회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산자부 장관까지 지냈으나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캠프로 합류해 노무현 정부에 큰 충격을 안겨줬었다.

윤증현 당시 재경원 금융정책실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냈다. 윤 전 금감원장 역시 지난 1월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현재 공직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지난 7월 강만수 장관 경질론이 비등할 때 후임 1순위로 거론됐었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는 것이다.

김석동 당시 재경원 외화자금과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재경부 차관,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쳐 현재는 농협경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진영욱 당시 재경원 국제금융담당관은 현재 한국투자공사 사장이다.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는 현재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IMF로 대다수의 국민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이 사태를 불러온 상당수의 경제관료들이 10년 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잘 나가고 있었다. 경제관료들이 느끼는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과연 일반 국민들보다 클지 의문을 갖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IMF 직후인 98년 5월 강경식 전 부총리와 김인호 전 청와대 수석은 직무유기와 직권 남용 혐의로 구속됐으나 99년 8월 재판을 받고 풀려났다. 법원은 "정책적 판단은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런 전례 역시 강만수 경제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테니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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