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 영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불교의 역사를 더듬으며 분신의 미학을 탐구하곤 했다"(143쪽), "불행한 최후를 맞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자고 말해 주변의 빈축과 경탄을 동시에 사기도 한 조영래"(448쪽) 등 고인에 대한 '재해석'이 아니라 '사실 왜곡'이 많다는 것이다.
또 '고 조영래 추모사업회'(대표 홍성우)와 유족 측은 지난해 이 평전의 초고를 보고 안 교수에게 "'조영래 평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한다.
***"유족 및 주변인물들 거의 인터뷰하지 않아"**
권인숙 명지대 교수는 최근 발간된 〈인물과 사상〉 4월호에 "〈조영래 평전〉에는 조영래가 없다-안경환 교수의 심각한 사실 왜곡을 비판한다"라는 글을 기고해 안 교수의 평전을 비판했다. "안경환의 〈조영래 평전〉은 '조영래 평전'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없을 정도로 형식과 내용 면에서 평전으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다"는 것.
권 교수는 조영래 변호사와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계기로 처음 만나 조 변호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해 왔다.
권 교수는 이 책의 저자인 안경환 교수가 서울대 법대 교수이며, 이 책이 조영래 변호사 사후에 나온 첫 평전이라는 점 때문에 중요한 사료로 인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이 책이 잘못 전달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자는 조영래와 함께 일했고, 조영래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거의 인터뷰 하지 않았다"며 "평전의 한 장을 할애해서 쓴 '부천서 성고문 사건'의 경우 그 사건 변호를 담당했던 변호사들 누구와도 인터뷰하지 않았으며, 그 사건의 당사자인 나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없었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가족 중에는 조영래 변호사 큰누님과 1시간, 사모님과 2시간 정도 인터뷰한 게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전에는 "동생 중래의 기억에 의하면 수사기관의 수색에 대비하여 영래는 자신의 자필 기록을 몇 차례 불태운 적이 있었는데 그 중에 포함돼 있었는지도 모르겠다는 것이다"(198쪽) 등 동생 조중래 명지대 교수를 인터뷰한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이 있다.
***"추모사업회와 유족은 이책의 출판을 반대했다"**
권인숙 교수는 "이 책의 초고를 읽어본 사람들은 저자와 가까웠던 사람이든 면식이 없던 사람이든 '조영래 평전'으로 출판돼서는 안 된다는 일치된 의견을 냈었다"며 이 책이 유족들의 의사에 반하여 출간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런 의견은 조영래추모사업회 측의 정영일 변호사와 유가족 측의 이옥경 선생(고 조영래 변호사의 부인)을 통해 분명하게 안경환 교수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출판사는 이 책이 추모사업회의 사업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해 이 책이 추모사업회에서 펴낸 평전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권 교수는 지적했다.
***"조영래는 노동계급을 인정하지 않은 박애주의자"?**
권인숙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책의 내용에도 언급, 기초 취재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 변호사의 사상까지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재해석'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근거 없이 조 변호사를 '노동계급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민주주의자'로 규정짓고 있다는 것.
권 교수는 "성장기부터 시작해서 학생운동을 거치고 수배생활 이후 인권운동가로서 활동하면서 조영래가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삶을 구성하려 노력했는지, 갈등요소는 무엇인지 저자는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조영래와 관련된 부분은 조영래의 이름을 내건 평론으로서 의아할 정도로 적은 반면 서울대 법대와 관련된 분량은 대략 훑어보아도 150쪽(책 전체의 3분의 1) 정도의 분량"이라며 "평소의 조영래를 알고, 그와 함께 일했던 주변 사람들을 조금만 인터뷰 했더라도 이러한 식의 내용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엘리트주의 또는 특권의식 등에 경계심을 많이 가졌던 조영래의 삶의 방식과 지향성에 어긋나는 방향"이라고 주장했다.
"후세인이 어떻게 재평가하고 재해석하건 조영래의 경우, 그가 몸담았던 민주화운동을 통해 적어도 한 가지 사실은 확인할 수 있다. 조영래는 사회주의 이념에 대한 경모, 북한정권에 대한 도덕적 신뢰도 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 본질적 가치의 확립, 그것이 조영래와 동료들의 믿음이었으며 투쟁목표였다. (…) 그는 대한민국 헌법이 부유층, 지식인, 권력자 등 그 어떤 이름의 특수한 계급도 인정하지 않듯이 노동자라는 특수한 계급 또한 인정하지 않았다. 그것이 조영래가 생을 바친 시대의 민주화운동의 한계라면 한계였다."(125쪽)
"실인즉 〈전태일 평전〉을 집필하면서도 조영래는 노동자를 사회 변혁의 주체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따금씩 익명으로 노동자의 투쟁을 촉구하는 시를 쓰고 전태일 정신의 확대 계승에 깊은 정성을 쏟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못 배우고 힘없는 노동자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누려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법적 상식과 인간으로서의 양심의 명령에 따랐던 것뿐이다."(219쪽)
"장기표가 청계천을 주무대로 한 노동 현장에서 전태일의 유지를 받들며 자신이 구상한대로 사회운동의 준비에 나설 때에도 영래는 아직 노동자의 문제를 사회 전체의 문제로 제기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222쪽)
권 교수는 "평전의 저자가, 평전의 주인공 인물의 삶에서 중요한 활동영역을 차지했던 부분의 사상을 얘기하는 것은 신중해야 하고 객관성, 타당성을 실으려 노력해야 한다"며 "조영래 자신이 어떤 글에서 이런 사상적 측면을 비추고 있는지, 주변 사람들은 뭐라고 증언하는지 등 다양하게 접근을 해서 내려야 하는 결론"이라고 안 교수의 단정적 태도를 비판했다.
***"조영래, 박정희 대통령 죽음에 조의 표하자고 주장"?**
권 교수는 1985년의 여성 조기정년제 사건,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등을 맡았던 조영래 변호사에 대해 "여성은 여성다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한국의 보통사내였다"(352쪽)고 규정한 것, 또 조 변호사가 "불행한 최후를 맞았던 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조의를 표하자고 말해 주변의 빈축과 경탄을 샀다"(448쪽)고 기술한 것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권 교수는 "내가 알았던 조 변호사는 사회활동을 하는 부인을 고려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아들을 평일이나 주말의 각종 행사나 모임에 자주 데리고 다니면서 종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며 "주변의 누구도 그를 가부장적으로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박정희 시해 당시 수배 중이던 조 변호사가 누구를 만나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도 불분명하고 누구에게 빈축과 경탄을 샀는지에 대해 아무런 근거도 밝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래가 분신의 미학을 탐구했다"?**
조 변호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작은 일화들 가운데에도 왜곡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권 교수는 주장했다.
특히 "후일 영래는 기회가 닿는 대로 불교의 역사를 더듬으며 분신의 미학을 탐구하곤 했다"(143쪽)는 대목에 대해 권 교수는 "이런 주장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가슴 아픈 형태의 투쟁방법에 대한 책임을 묻게 만들 수 있다"며 "내가 아는 조 변호사는 그런 죽음에 대해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고 그런 투쟁방법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허명(虛名)이 실명(實名)을 능가하는 사람은 단명(短命)한다. 이른바 '잘나가는' 사람에 이만큼 경종이 되는 경구는 드물다. 대학의 수석 입학자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엄청나다."(86쪽)
이에 대해 권 교수는 "실제로 단명한 사람을 앞에 놓고 이런 말을 하면서 인생 전체에 대한 평과 관련이 없다고 부인할 수 있냐"고 반문하면서 "짧은 인생이었지만 깊은 성찰과 실천적 삶으로 사회변화를 이끌었던 조 변호사의 삶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모독적 평가"라고 주장했다.
***안경환 "평전은 저자의 시각이 들어간 책"**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서울대 안경환 교수는 지난 17일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평전은 저자의 시각이 들어간 것"이라며 "조영래 변호사의 사상을 왜곡했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사실을 왜곡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그건 내가 할 말이 없고 저자로서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고 전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
또 '유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간했다'는 지적에 대해 그는 "그것은 그분들의 의견이지 그분들의 권한이 아니다"며 책을 출간한 것 자체는 개인의 권리라고 반박했다.
안 교수는 "책 서문에 이 책과 내 한계에 대해 밝혀 놓았다"며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내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책 서문에 "이 책은 조영래 일생의 공식적 기록도, 그가 남긴 업적과 기여에 대한 대표성이 있는 서술도 아니다"면서 "글의 형식이며 내용도 필자 자신의 편견과 무지, 성의와 무성의가 고스란히 담긴 결함투성이의 미완성품"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집필의 방법도 이미 공표된 문헌을 토대로 하여, 제한된 범위의 사적 인터뷰를 반영했을 뿐"이라며 "자료와 서술의 불균형이나 시대적 사건과 주인공의 역정이 직접 결합되지 않는 등, 이 책이 가지는 무수한 취약점은 후일 다른 분들이 바로잡아줄 것으로 믿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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