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新보도지침’ 사태에 마지못해 사과

한나라당내 강온대립 표면화, 강경기류 약화는 의문

한나라당이 지난달 27일 KBS, MBC, SBS, YTN 등 방송 4사에 보낸 ‘불공정보도 시정촉구’ 공문, 일명 '신보도 지침' 사태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등 파문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같은 태도변화는 한나라당의 언론침해 행위에 대한 비판여론이 거센 데 따라 마지 못해 하는 미봉책적 성격이 짙으며 이번 사태를 주도한 당내 강경파에 대한 문책 등 구체적 징계조치가 수반되지 않고 있어, 과연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번 사태의 중차대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가를 의심케 하고 있다.

***마지 못해 하는 해명**

5일 열린 한나라당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서청원 대표와 김영일 총장, 현경대 공정방송특위 위원장 등은 방송사 협조공문 사태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고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서청원 대표는 “지난번 공문에 일부 표현이 매끄럽지 못한 점이 있었던 것 같다”며 “당규를 개정해 당내 특위 등이 대외공문을 보낼 때 당3역과 대표의 결재를 받도록 할 것이며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일 사무총장도 “당의 직인이 찍혀 나가는 공문을 소홀히 관리한 데 대해 경위를 철저히 조사해 관련자를 문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주도한 현경대 공정방송특위위원장은 “방송보도와 관련해 우리 당이 피해를 입지 않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방송사에 간곡한 우리의 뜻을 담아 협조를 요청한 것인데 일부 표현이 매끄럽지 못하고 오해를 일으킨 데 대해 유감스럽고 죄송하다”면서도“협조공문에 대해 `신보도지침'이라고 표현하는 데 대해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현 위원장은 이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의 진의가 잘못 전달돼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면서 “앞으로 신중하면서도 단호하게 위원회를 운영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 위원장의 이같은 불만 섞인 태도는 아직 한나라당 지도부가 이번 파문의 중차대성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불끄기에 급급한 게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온건파, 이번 사태 계기로 강경파 주도에 제동**

MBC를 국감대상에 포함시키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정기국회에 상정하는 등 ‘병풍’ 보도를 계기로 방송사들과 대립각을 세워온 한나라당의 갑작스런 태도변화는 비판적 여론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한나라당의 신보도 지침을 언론장악 음모로 보는 시각이 70%로 나타나자 서둘러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또한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당내 강경파가 주도한 이번 파동을 계기로 강온대립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온건적 노선의 한 중진의원은 “강경대처만이 이회창 후보를 위하는 것처럼 잘못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이 후보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고있다”며 “이 후보가 귀국하면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당의 한 핵심관계자도 “사전홍보도 없이 감사원법 개정추진 입장이 발표되고 서 대표 등 지도부에 사전보고도 않고 불쑥 공문을 보내 역풍을 자초했다”며 “이번 사태에 대해 강경파가 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풍'을 계기로 강경파들이 이회창 후보 적극방어에 나서면서 초래된 한나라당내 강경일변도 기류에 적잖은 파란이 일 것임을 예고하는 징후들이다.

***이회창 후보가 직접 사과후 강경파 문책해야**

하지만 과연 이번 파동을 계기로 한나라당의 강경파 주도 흐름이 바뀔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현재의 당 지도부 자체가 강경파들로 구성돼 있고, 온건파는 외곽의 소수세력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예로 신보도 지침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달 30일 서청원 대표는“MBC 김중배 사장이 ‘대선 때까지 병풍 문제를 계속 크게 보도하라’고 했다”며 방송사와의 싸움의 전면에 나섰었다. 이처럼 강경대응을 선봉에 섰던 서 대표 등이 여론이 악화되자 태도를 바꿔 "당 지도부는 몰랐다"고 발뺌하고 나선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더욱이 서청원 대표등이 이번 파동의 원인을 ‘표현상의 문제’나 ‘보고체계의 문제’ 등으로 일축하고 앞으로도 방송사의 ‘편향보도’라고 판단되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은 아직까지도 한나라당 지도부가 민의를 정확히 읽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명쾌히 매듭짓기 위해선 이회창 대통령후보가 직접 나서 진지한 태도로 사과한 뒤, 이번 사태를 야기한 당내 강경파에 대한 분명한 문책을 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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