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말 각 방송사에 보낸 '신보도지침', 부산 아시안게임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대한 반대 입장 표명 등 일련의 여론과 어긋나는 행태에 대한 한나라당 당직자의 우려 섞인 반응이다. 대선 정국이 양당간의 치열한 공방으로 치달으면서 강경파들이 민주당과 싸움의 일선에 나서 발언권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 "한나라당이 다시 5공으로 회귀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나라당, '신보도지침' 일부 강경파 주도**
한나라당의 과거회귀적 행태의 대표적인 예로 꼽히는 것이 '병풍' 보도와 관련해 4개 방송사에 이정연씨 이름 앞에 이회창 후보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쓰지 말라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보낸 행위다. 비록 협조를 요청했다지만 5공 때의 '보도지침'과 마찬가지로 방송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전제된 것이라며 언론계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60%정도가 이같은 한나라당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나라당이 국회에 MBC를 국감대상에 포함시키는 감사원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물의를 빚고 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사안 모두가 일부 강경파 인사들이 당 지도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추진했다는 데 있다.
예컨대 한나라당의 '병풍' 관련 협조공문은 일부 강경파 인사들이 당 대표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보내진 것이라고 알려졌다. MBC를 국정감사에 포함시키는 감사원법 개정안도 한나라당 의원 1백37명의 이름으로 돼 있지만 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모르는 상태에서 국회에 제출됐다.
이밖에 편파방송대책특위(위원장 현경대)의 이원창 의원은 지난달 30일 의원총회에서 "김중배 MBC 사장이 병역비리 의혹 사건을 확대보도하라고 지시했다"는 미확인성 발언을 해 파문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는 등 강경파의 목소리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여론 80%이상 찬성하는 한반도기도 문제시**
이같이 여론과 충돌하는 행태는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한 예로 한나라당 이상배 정책위 의장은 지난달 28일 부산 아시안 게임 때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들고 함께 입장하기로 합의한데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혀 여론의 호된 뭇매를 맞았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는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대해 이 의장은 29일 주요당직자회의에서 "한반도기 사용은 남남갈등을 유발하고 북한의 전술전략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이 의장은 "한반도기 사용은 주권상실을 의미할 수도 있고 아시안 게임이 북한의 대남선전장으로 이용될 우려가 있는데 국민이 한반도기 사용을 너무 관대하게 보는 것이 문제"라며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여기는 듯한 발언까지 했다.
이같은 이상배 의장 발언은 다수 여론을 무시한 채 한반도기 공동입장에 비판적인 일부 보수언론의 사설 등에 영향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의장 발언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자 한나라당은 그 직후 있은 남북경협 성과를 극찬하는 정반대 성명을 내는 등 반발여론을 무마하려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밖에 한나라당은 현재 당론으로 추진중인 김정길 법부장관 해임 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론조사 결과가 부정적인 것으로 나오자, 수해를 이유로 해임 강행처리를 늦추기로 하는등 여론과의 '언밸런스(불일치)'를 해소하기 위해 크게 부심하는 분위기다.
***한나라당 보수모임 회원, 일년새 두배로 늘어**
인적 구성을 보면 한나라당은 극우성향에서 온건개혁세력까지 포괄하는 무지개 정당이다. 때문에 한나라당의 정치적 영향력에 따라 어느 때는 강경파 목소리가 높아지고, 어떤 때는 온건파 목소리가 높아지는 부침을 계속해왔다.
병풍으로 인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위태롭자, 병풍을 앞장서 방어하고 민주당에 대해 역공을 펴는 강경파들의 발언권이 급속히 당내에서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반면에 당내 견제세력의 발언권은 급속히 사그라들고 있다.
문제는 한나라당이 지난 8.8 재보선을 통해 단일 야당으로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과반 의석을 확보, 국회권을 장악했다는 데 있다. 국민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국회를 통해 다른 세력의 도움 없이 한나라당이 마음먹은대로 정국을 이끌어갈 수 있다.
현재 한나라당내 보수강경파 최대 모임은 김용갑 의원이 대표로 있는 '바른 통일과 튼튼한 안보를 생각하는 국회의원 모임' (의원 65명)이다. 작년 6월, 31명 의원들로 시작했던 모임은 일년 만에 두배로 세를 늘렸다. 한나라당이 얼마나 보수강경화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한 증거다.
이들은 지난달 31일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시안게임 한국 답방설에 대해 "과거 만행에 대한 사과 없는 답방에는 확고히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통일·안보 문제와 관련해 보수적 시각을 대변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 모임에는 신경식 대선기획단장, 이상배 정책위의장, 김영일 사무총장, 현경대 편파방송대책특위 위원장 등 주요 당직자들이 대거 포함돼 있다. 또 최병렬, 하순봉, 김진재, 김기춘, 김무성, 윤여준 의원 등 이후보 측근들도 이 모임 회원이다.
반면 당내 온건개혁세력은 독자적인 세력화마저 힘들 정도로 입지를 잃어가는 흐름이다. 이부영, 김원웅, 김홍신, 서상섭 의원 등 극소수가 때때로 개인적 소신 발언을 하는 정도다.
***병풍 계속되면 네가티브 대응에 강한 강경파들이 득세**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 문제로 당내 위기감이 감돌자 강경파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전투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당내 지도부에 건의조차 안된 '초강경 대응'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초강경기류는 병풍이 계속되는한 연말 대선때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게 지배적 관측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병풍이라는 네가티브 게임이 계속되는 한 네가티브 대응에 능한 구여권의 강경파들이 득세할 가능성이 높으며 어쩌면 이같은 것이 현재 민주당의 노림수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이같은 과정이 계속되다간 일반 국민의 정치적 혐오감이 증대하면서 참신한 이미지를 앞세운 제3세력이 어부지리를 얻게 되지 않을까 내심 우려된다"고 속내를 털어놓기도 했다.
한나라당 강경파가 앞으로도 계속해 민의를 거스르는 과거회귀적 행태를 보일 것인가. 어쩌면 이것이 병풍보다 이 후보 지지도에 더 큰 영향을 주는 변수일 수 있다는 게 한나라당 일각의 말못할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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