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침수' 괴담의 진실, <설국열차>에서 찾아라!

[편집국에서] 기후 변화와 핵발전소

"21세기 후반 평양의 기온이 현재 제주도 서귀포의 기온(연평균 16.6도)과 비슷해진다." "강원도 일부 산간 지역을 제외한 남한 대부분과 황해도 연안까지 아열대 기후가 된다." "뉴욕, 상하이는 물론이고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서해안의 몇몇 해안 도시도 해수면 상승으로 침수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9월 27일 유엔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다섯 번째 기후 변화 보고서 주요 내용이 공개되자, 국내 언론은 할리우드 재난 영화 뺨치는 이런 뉴스를 쏟아냈다. 2007년에 네 번째 보고서가 나온 지 6년 만에 또 다시 기후 변화를 둘러싼 언론의 호들갑이 재연된 것이다.

사실 이번 기후 변화 보고서는 앞서 네 번째 보고서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번 보고서는 현재 상태에서 인류가 온실 기체 배출량을 줄이지 못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금세기 말 지구 평균 기온이 최대 4.8도 오르고, 해수면은 최대 82센티미터 상승하리라고 전망했다. 네 번째 보고서의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평균 기온 6.4도 증가, 해수면 59센티미터 상승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도 있다. 지구 온난화 회의론을 겨냥한 대목이 그렇다. 온실 기체 배출량의 증가에도 지난 15년간 기온 상승이 둔화한 것을 놓고서, 이번 보고서는 "일시적 이상"일 뿐이라고 못 박았다. 지구 온난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를 초래하는 온실 기체 배출이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도 좀 더 강하게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기후 변화 시뮬레이션의 불확실성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번 기후 변화 보고서의 경고에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보도의 패턴이 앞서 네 차례(1991년, 1995년, 2001년, 2007년)와 똑같아서는 곤란하다. 할리우드 재난 영화 예고편처럼 그래픽까지 동원해 하루 이틀 호들갑을 떨다가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침묵하는 그런 태도 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엉뚱한 대응이다.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기후 변화가 화제가 될 때마다 핵발전을 옹호하는 이들은 얼굴에 화색이 돈다. 지구 온난화가 걱정이 된다면 온실 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 속에서 핵에너지는 갑자기 '청정에너지'로 둔갑한다.

하지만 조금만 머리를 써보면 이런 주장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 쉽게 알 수 있다. 석탄 화력 발전소와 비교했을 때, 핵발전소가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온실 기체를 배출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핵발전소가 과연 지구 온난화를 막는 구원 투수가 될 수 있을까? 하나씩 따져 보자.

10월 2일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핵발전소는 총 434기로, 발전량은 약 370기가와트 정도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한 '원자력 전도사'의 활약이 눈부셨지만, 전 세계 핵발전소 발전량은 지난 10년째 이 수준에서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반면에 온실 기체를 내놓는 석탄 화력 발전소의 발전량은 2010년 기준 약 1605기가와트다.

핵발전소가 지구 온난화를 막는 의미 있는 대안이 되려면 '최소한' 앞으로 30년간 석탄 화력 발전소 발전량의 절반 정도(약 800기가와트)를 대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간 핵발전소를 지금 수준의 두 배 정도 더 지어야 한다. 거칠게 계산하면, 앞으로 1000기 정도의 핵발전소를 더 지어야 한다는 것.

기존 434기 핵발전소의 상당수가 앞으로 30년 동안 폐쇄되어야 할 낡은 발전소라는 사실도 기억하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100기의 핵발전소를 가진 미국의 경우, 2013년 현재 모든 핵발전소가 20년 이상 가동한 낡은 것이다. 핵발전소 수명을 30년으로 간주하면, 앞으로 10년 후에는 100기 모두 폐쇄 대상이 된다.

그럼, 30년 동안 1000기의 핵발전소를 세계 곳곳에 짓는 일이 가능할까? 지금부터 3개월에 한 기씩 핵발전소를 지어야 하는데, 그런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핵발전을 찬양하기 바쁜 중·고등학교 교과서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핵발전소는) 발전소 입지 선정에 어려움을 겪는다."

3개월에 한 기씩 세계 곳곳에 핵발전소를 짓는 일이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핵발전소는 핵무기 확산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핵발전소가 세계 곳곳에 들어서는 걸 국제 사회가 용인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북한 이란 시리아 등에 수십 기의 핵발전소가 들어서는 게 가능할까?

이렇게 핵발전소를 지어서 지구 온난화를 막는다는 발상은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또 다른 문제만 낳을 가능성도 크다. 기후 변화 보고서의 예측대로라면, 해수면이 60센티미터 정도 상승하면 부산을 비롯한 남해안, 서해안의 몇몇 도시의 일부는 물에 잠긴다. 그런데 한국의 핵발전소 단지는 어디에 있는가? 부산이 침수되면, 바로 옆 부산시 기장군의 고리 핵발전소 단지는 무사할까?

당장 그곳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 등으로 옮기는 송전탑도 무용지물이 될 텐데, 지금 밀양에 송전탑 건설을 밀어붙이는 한국전력은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이런 상황을 조금이라도 고민하고 있을까? 더 나아가 해안가의 핵발전소가 제 구실을 못하면, 그곳에서 생산된 전기에 의존하는 수도권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산업 문명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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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가동 중인 18기 또 건설 중인 28기의 핵발전소 대부분이 해안을 끼고 놓여 있다. 해수면 상승으로 상하이가 물에 잠기는 상황이 온다면, 이 핵발전소들은 또 서해 바다는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과 세계 경제는? 이렇게 지구 온난화가 초래할 위험을 조금이라도 고려한다면 해안가에 마구잡이로 핵발전소를 짓는 이 무모한 모험을 맨 정신에 계속하기는 힘들다.

최근 인기를 끈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지구 온난화를 막는다며 대기 중에 'CW-7'이라는 화학 물질을 뿌렸다가 온 지구가 얼음으로 뒤덮이는 끔찍한 재앙을 그린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지만 정작 그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닿지 못하는 듯하다.

지구 온난화를 핵발전소든 혹은 더 기발한 어떤 것이든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또 다른 문제를 낳기가 십상이다. 세상에는 과학기술로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일은, 심지어 그것의 결과를 예측하는 일도, 단언컨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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