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호랑이'를 돼지 자궁? 한때 신화였던 황우석은…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현주소] '황우석의 덫'에서 탈출하라!

"그 후 8년, 그래도 줄기세포는 있다."

지난 7월 6일 이런 비장한 제목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이 공영 방송의 공중파를 탔습니다. 지난 5월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낸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 언론에서는 부쩍 이런 식의 보도가 늘었습니다.

조작 논문, 난자 매매 등 추문으로 얼룩진 '황우석 트라우마' 때문에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발이 묶인 틈에, 후발 주자였던 미국의 과학자가 추월했다는 것이죠. 여기에 황우석 사태 이후에 "신선한 난자"를 공급받을 수 없게 된 한국 줄기세포 연구자의 푸념도 뒤따릅니다.

그러고 보니, 이런 논조의 기사는 201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일본의 줄기세포 연구자 야마나카 신야 교토 대학 교수가 결정되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가 발목이 잡힌 사이에 일본은 저만치 앞서갔다는 지적이었죠. 야마나카 교수의 업적이 배아 줄기세포와는 전혀 다른 역분화 줄기세포라는 사실은 묻혔죠.

이런 상황에서 잊을 만하면 언론에 모습을 나타내는 황우석 박사도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한참 전에 멸종한 매머드입니다. 황 박사는 이 멸종 동물 매머드를 복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백두산 호랑이부터 시작한 그의 멸종 동물 사랑이 이젠 매머드에 미친 것입니다. 과연 그의 매머드 복제는 성공할까요?

그런데 우리나라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 최고였던 적이 있었을까요? 혹시 우리는 조작 논문과 과감한 언론 플레이로 한 시대를 풍미한 '황우석의 덫'에 여전히 갇혀 있는 게 아닐까요? "과학과 미래 그리고 인류를 위한 비전"을 찾는 <크로스로드>와 함께하는 '과학 수다'는 이번에 줄기세포를 둘러싼 이런 혼란스러운 질문에 답합니다.

이번 과학 수다에는 특별한 가이드 두 분이 나섰습니다. 8년 전 '황우석 사태'의 숨은 주인공인 최초 제보자 '닥터 K'와 을 묵묵히 지원한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과학사회학 박사)이 그 주인공입니다. 이들은 황우석 사태 이후에도 계속해서 줄기세포 연구를 꼼꼼히 모니터링해 왔습니다.

사회와 정리는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과 강양구 기자가 맡았습니다. 자, 여전히 한국 과학계를 옥죄고 있는 '황우석의 덫'을 확인해 보세요.

ⓒ오리건 대학교

세계 최초의 배아 줄기세포

이명현 : 이번 과학 수다 주제는 '줄기세포'죠?

강양구 : 먼저 이 시점에 줄기세포 얘기를 꺼낸 이유부터 말하죠. 작년(2012년)에 줄기세포 연구를 주도했던 한 과학자가 노벨상을 받고 나서부터 한 번쯤 줄기세포를 주제로 과학 수다를 해보려고 궁리를 했었어요. 그런데 섭외를 한 과학자들이 너도나도 손사래를 치는 거예요.

'바쁘다'는 핑계가 대부분이었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워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가다가 지난 5월에 미국에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냈죠. 그런데 그 뉴스가 한국 사회에서 소비되는 방식이 또 우스꽝스러운 거예요. 마치 애초 우리 몫의 업적이었는데 미국에 빼앗겼다는 식의 보도가 많았죠.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황우석의 덫'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2005~6년 이른바 '황우석 사태'가 한창일 때, 적지 않은 역할을 했던 저로서는 책임감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이번 과학 수다에서는 당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두 분을 모시고 줄기세포 얘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이명현 : 우선 두 분 소개가 필요하겠죠. 일단 '닥터 K'로 알려진 선생님부터 소개하죠. 과학 수다 최초로 익명으로 등장하는 분이시니. (웃음)

강양구 : 닥터 K는 애초 황우석 박사와 공동으로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하다 나중에는 황 박사의 생명 윤리(난자 매매), 연구 윤리(논문 조작) 등의 문제를 제기한 분이죠. 이 분의 제보와 도움이 없었다면 팀이 황 박사의 여러 문제를 파헤치지 못했을 거예요. 물론 저로서는 그 때 왜 <프레시안>이 아닌 을 찾아갔는지 불만이 있습니다만. (웃음)

이명현 : 그 일은 두 분이서 해결하시고요. (웃음) 스승의 치부를 드러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마음고생 몸 고생이 많았죠?

닥터 K : 황우석 사태 이후에 비록 가명이지만 이렇게 공개석상에서 얘기를 하려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고생을 많이 하다 지금은 한 국립 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로 일하고 있어요. 이렇게 학계에 정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저 같은 사람은 '조직의 배신자'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십상이고, 특히 의학계는 굉장히 폐쇄적인 조직이니까요.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한국 사회가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분명히 나은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앞으로 저처럼 가시밭길을 걷게 될 분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 분들에게 제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볼 생각입니다. 그간 알게 모르게 여러 가지로 도와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이명현 : 김병수 선생님도 소개를 해주시죠.

강양구 : 김병수 선생님은 생명과학을 공부하고 황우석 사태의 사회적 의미를 다룬 여러 편의 논문을 썼습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닥터 K가 가장 먼저 찾아가서 황우석 박사의 여러 문제를 털어놓았던 분이기도 합니다. 황우석 사태 내내 팀과 닥터 K를 지원하는 역할을 했고요.

김병수 시민과학센터 부소장. ⓒ프레시안(손문상)
김병수 :
그 때는 지금의 시민과학센터가 참여연대 산하에 있었어요. 당시 시민과학센터는 국내 생명공학 감시 운동을 이끄는 상황이었죠. 그 때(2004년) 닥터 K가 저를 찾아와서 황 박사의 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상담을 해왔었죠. 황 박사가 <사이언스>에 첫 논문을 게재하고 위세가 하늘을 찌르던 상황이어서 막막했던 기억이 나네요. (웃음)

강양구 : 저도 따져 보면 시민과학센터 출신이거든요. 서운한 건 그 난리 통에도 김병수 박사가 저를 포함한 대다수 지인들에게 그런 제보 사실을 비밀에 붙인 거예요. 나중에, 그러니까 2005년 12월 말이 되어서 사건의 전모가 어느 정도 밝혀지고 나서야, 김 박사가 처음부터 제보를 받았단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때의 배신감은 얼마나 컸던지…. (웃음)

김병수 : 그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강 기자에게 미안하죠.

이명현 : 네, 그 일도 두 분이서 해결하시고요. (웃음)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해 보죠. 단순한 질문을 하나 던지죠. 도대체 줄기세포가 뭔가요?

김병수 : 인체를 비롯한 생명의 기본 단위는 '세포'입니다. 우리 몸속에 들어있는 대부분의 세포의 핵 안에는 유전자가 한 벌이 들어 있어요. 그런 세포를 '체세포'라고 하죠. 단, 정자와 난자 같은 '생식세포'는 유전자를 2분의 1씩 가지고 있죠. 그런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새로운 한 벌을 만드는 과정이 바로 생식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만들어진 수정란이 또 다른 새로운 개체로 성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단계가 '배아'예요. 우리말로는 '아기씨'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더 와 닿나요? 이 배아가 엄마 자궁에서 세포 분열을 해서 아기가 되는 거죠. 이 배아를 인간으로 볼지 말지도 골치 아픈 윤리 문제 중 하나입니다만, 그건 다음 기회에 얘기하고요.

강양구 : 그 배아가 분화하는 초기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게 줄기세포죠?

닥터 K : 그렇죠. 배아는 1개→2개→4개…, 이렇게 나뉘면서 분열을 합니다. 그러다 세포가 약 200개 정도로 나뉘는 단계가 되면(배반포기) 배아는 우리 몸의 여러 부분으로 발달할 준비를 끝내게 되죠. 이 상태의 세포는 이론적으로는 뼈, 혈액, 장기 등 우리 몸의 대부분의 구성 요소로도 발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런 세포를 줄기세포라고 부르고, 배아에서 추출하였다고 특별히 배아 줄기세포라고 하는 것입니다.

강양구 : 배아 줄기세포 얘기가 나왔으니, 자연스럽게 지난 5월, 미국에서 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낸 일부터 얘기해보죠. 애초 황 박사가 2004년, 2005년 <사이언스>에 기고했던 논문의 핵심이 바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였었죠. 그 논문은 모두 조작으로 확인돼 취소되었지만요.

닥터 K : 지난 5월에 미국 오리건보건과학대학의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박사가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줄기세포 연구자에게 미탈리포프 박사는 갑자기 등장한 사람이 아니에요. 꾸준히 그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축적해온 과학자고요. 오리건보건과학대학도 유명한 영장류 연구 센터를 가지고 있는 줄기세포 연구에 강한 곳이죠.

그 곳 영장류 연구 센터에서 미탈리포프 박사가 수년 동안 고생을 하면서 원숭이 배아 복제 연구를 해왔고, 여러 가지 성과를 냈어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가 다음 연구 단계로 인간 복제 배아 연구를 하리라고 생각했었죠. 예상과 같이 이번에 그가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죠.

강양구 : 이번에 미탈리포프 박사가 인간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수립한 건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게 아니군요.

ⓒ프레시안(손문상)

이명현 : 여기서 복제 배아가 무엇인지 한 번 짚죠.

김병수 : 아까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전자 한 벌을 가진 배아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얘기했었죠? 그런데 이런 상황은 어떨까요?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고 그곳에다가 이미 유전자 한 벌을 가지고 있는 체세포의 핵을 이식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지 않았는데도, 유전자 한 벌을 가지고 있는 배아가 만들어질 수 있겠죠.

바로 이런 과정(체세포 핵 이식)을 통해서 만들어진 배아를 복제 배아라고 합니다. 이론상 이 복제 배아는 유전자의 구성이 원본과 똑같죠. 이 복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 그대로 키우면 이론적으로는 원본과 똑같은 개체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복제 인간이죠. 이 얘기는 나중에 다시 하기로 하고요.

닥터 K : 네, 방금 체세포 핵 이식 얘기가 나왔으니 거기서부터 얘기를 다시 해보죠. 복제 배아를 만드는 첫 단계는 난자에서 기존의 핵을 제거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단계에서 크게 두 가지 기술이 대립 중이죠. 하나는 1996년 복제 양 돌리를 탄생시킨 이언 윌머트 박사부터 미탈리포프 박사까지 사용한 방식입니다.

이들은 난자에 아주 가는 빨대(피펫)를 넣어서 핵을 빨아내는 방법을 선호합니다. 반면에 황우석 박사는 이 방법 대신에 난자를 눌러서 핵을 짜내는 방법을 사용했죠. 바로 여기서 그 유명한 '젓가락 신공' 얘기가 나왔죠. 한국인은 젓가락을 사용해서 줄기세포 연구에 유리하다고 가져다 붙였지요.

강양구 : 그럼, 이번에 미탈리포프 박사가 성공한 건 둘 중에 전자가 더 나은 방법이라는 걸 보인 거네요.

닥터 K : 저는 그 부분이 기술적으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이거죠. 미탈리포프 박사의 방법은 황우석 박사의 짜내는 방법에 비해서 난자의 손상이 적습니다. 즉,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게 가능하려면 난자의 손상을 최소화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미탈리포프 박사가 보여준 거예요. 저는 이 부분이 그의 첫 번째 성공 요인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김병수 : 논문을 읽어 보니, 세포 배양을 할 때 카페인 성분을 넣었더군요.

닥터 K : 그게 두 번째 성공 요인인 것 같아요. 우리한테 카페인은 각성제잖아요. 그런데 그게 세포의 상태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것을 인간 복제 배아에 사용한 것은 미탈리포프 박사의 온전한 기여죠.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세포를 가장 안정적인 상태로 만드는 환경을 만들어서 결국 줄기세포를 추출하는데 성공한 거니까요.

강양구 : 미탈리포프 박사의 논문이 <셀>에 실리고 나서, 사진 조작 얘기가 나왔었죠. 그래서 잠시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었습니다.

닥터 K : 그 부분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걸로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단순한 실수라기보다도 불가피한 결정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탈리포프 박사를 두둔하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인간 난자를 실험하면서 사진까지 잘 찍는 게 정말로 어려워요. 왜냐하면, 사진을 찍으려면 난자를 자외선에 오랜 시간 노출을 시켜야 하고 외부에 나와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세포에 미세한 손상이나 안 좋은 영향이 미치거든요. 그래서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얻기가 실제로 어렵습니다.

짐작해 보자면, (있어선 안 될 일이지만) 몇 장 안 되는 사진으로 논문의 구색을 맞추다 보니 생긴 해프닝일 수 있어요. 황 박사의 논문 조작이 밝혀질 때, 중복 사진이 문제가 되었잖아요? 그게 대중의 뇌리에 워낙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 보니, 이번에 일부 기자들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요. 제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논문의 사진은 중복이 되었지만 미탈리포프 박사가 만든 줄기세포는 실재한다고 가닥이 잡히고 잇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양구 : 따져 보면, 황 박사의 <사이언스> 논문의 경우에도 사진 조작은 결정적인 부분은 아니었어요. 그 때도 황 박사 측에서는 '실수'라고 얘기했고, 또 국내 언론의 대다수가 그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고서 썼으니까요. 오히려 결정적인 부분은 줄기세포가 진짜 '복제' 배아에서 나온 것인지를 증명하는 DNA 지문 분석을 조작한 부분이었죠.

그런데 미탈리포프 박사는 연구에 필요한 난자를 구매한 것 같더군요.

닥터 K : 논문에는 기증(donation)이라고 표현되긴 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실험에 필요한 난자의 구매가 합법적으로 가능하죠. (웃음)

김병수 : 미국 같은 경우에는 부시 행정부가 인간 배아를 이용한 이런 연구를 연방정부 기금으로는 할 수 없도록 금지를 시켰어요. 그래서 미탈리포프 박사가 어떤 식으로 했냐면, 실험실을 두 개 운영했어요. 한 곳에서는 연방정부 기금을 받을 수 있는 연구를 진행하고, 다른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연구비를 마련해서 인간 배아 연구를 했더군요.

그 과정에서 난자도 구매했던 모양이에요. <네이처>를 기사를 보면, 3000~7000달러 정도를 줬더군요. 광고를 해서 난자를 팔 여성을 모집한 거죠. 우리나라 돈으로 350~800만 원 정도 되니 적지 않은 돈이죠. 그러니 미탈리포프 박사도 난자를 얻는 과정만 놓고 보면 논란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강양구 : 그런데 연구에 쓰인 난자의 숫자가 언론 보도마다 달라요. 난자 숫자는 사실 아주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왜냐하면, 얼마나 많은 난자를 사용해서 줄기세포를 뽑아냈는지가(효율) 복제 배아 줄기세포가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는지를 결정하니까요. 황 박사처럼 2200개를 사용하고도 줄기세포를 얻어내지 못하면 그건 꽝이죠.

닥터 K : 그러니까 여기 강 기자도 있지만, 기자들이 공부를 좀 해야 해요. (웃음) 한 곳에서 틀린 뉴스를 쓰면, 다른 곳에서 교정이 되어야 하는데 똑같이 받아쓰니…. 아홉 명의 여성이 난자를 제공했잖아요? 그런데 그 난자를 다 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일단 난자의 상태가 체세포 핵 이식을 하기에 좋지 않은 것도 있고, 성숙이 되지 않아 탈핵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어요.

미탈리포프 박사가 이 대목에서 머리를 썼더라고요. 황우석 박사의 경우에는 <사이언스> 논문을 투고할 때, (물론 나중에는 다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최초로 기증 받은 난자(N) 중에서 줄기세포를 수립한 숫자(n)를 따져서 효율(n/N)을 계산했어요. 당연히 효율이 낮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미탈리포프 박사는 기증 받은 난자 중에서 체세포 핵 이식을 한 다음에 배반포기(약 200개 정도의 세포로 분열된 상태)까지 간 것을 기준으로 삼아 효율이 높은 것처럼 논문에 기술했어요. 다시 말해, 배반포기까지 가지 못한 것은 계산을 하지 않고 간 것만 계산에 넣어 효율이 높은 것처럼 포장을 한 것이지요. 이런 배반포기 복제 배아 중에서 몇 개의 줄기세포를 얻었는지를 따져서 효율을 계산했더군요.

강양구 : 효율이 50퍼센트나 된다더니, 그런 꼼수를 썼군요. (웃음)

닥터 K : 맞습니다. 분모가 달라지면서 효율이 상당히 높은 것처럼 느껴지게 논문을 쓴 거죠. 제가 계산을 해봤더니 실제로는 23~31살 여성 아홉 명이 기증한 냉동하지 않은 난자 126개를 이용해서 4개의 배아 줄기세포를 만들어냈더군요. 126분의 4니까, 효율을 따져보면 3퍼센트 정도죠. 50퍼센트와 3퍼센트, 차이가 굉장히 크죠. (웃음)

ⓒ프레시안(손문상)

신선한 난자

이명현 : 그런데 미탈리포프 박사의 성과를 보도하는 국내 언론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죠. 당시 <조선일보> 기사의 제목이 "'황우석 트라우마'에 갇혀…복제 배아 줄기세포 손 놓은 한국"이었죠. 실제로 황우석 사태 이후에 우리나라 복제 배아 연구 규제가 엄격해졌나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못할 정도로요.

김병수 : 참으로 뻔뻔한 반응이죠. 우리나라는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배아 연구 규제가 가장 느슨한 나라 중 한 곳이에요. 아까 미국도 연방정부 기금으로 인간 배아 연구를 하는 건 금지하고 있다고 얘기했었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공식적으로는 복제 배아, 잔여 배아 등 모든 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어요.

게다가 황우석 사태를 겪고 나서 규제가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약화됐죠.

이명현 : 정말이요?

닥터 K : 그 대목은 줄기세포에 대한 한국적 정서를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죠. 상식적으로 보면, 황우석 사태 같은 일을 겪고 나서 배아 연구 규제가 강화되어야 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오히려 느슨해졌으니까요.

김병수 : 그러니까, 아직 황우석 사태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2006년 봄에 줄기세포 육성 계획을 정부가 내놓아요. 그러면서 법으로 실비 보상을 하고 난자를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어요. 그 전까지는 난자를 기증만 받을 수 있었거든요.

불임 치료로 유명한 차병원은 대표적인 예죠. 2009년에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차병원에 복제 배아를 만들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처음에 차병원이 신청한 난자가 1500개예요. 너무 많다 싶었는지 국가생명윤리위원회에서 800개를 허용해줬어요. 냉동 보관 난자 500개, 체외 수정 후 잔여 배아 200개, 비정상 난자 100개…. 그런데 실패했죠.

황우석 박사가 2200개, 차병원이 800개. 난자를 3000개 정도나 쓰면서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할 수 있었던 나라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와서 미국의 경쟁자가 성공하니까 차병원의 한 인사가 그랬더군요. "우리는 신선한 난자가 없어서 성공을 못했다." 이건 너무 속 보이는 거죠.

닥터 K : 저는 이 대목에서 생각이 좀 달라요. (웃음) 차병원의 "신선한 난자" 타령이 이해가 가기 때문이죠. 미탈리포프 박사가 이번에 확인시켜준 또 다른 진실은 신선한 난자가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성공의 핵심 전제라는 거예요. 미탈리포프도 신선한 난자가 없었으면 아마 복제 배아 줄기세포를 얻는 데 실패했을 겁니다.

강양구 : 자꾸 신선한 난자를 언급해서 독자 중에는 불편한 이들도 있을 텐데요. (웃음) 도대체 신선한 난자의 기준이 뭡니까?

닥터 K : 거북해도 어쩔 수 없어요. 현실이 이러니까요. 신선한 난자는 젊은 여성에게서 이제 막 채취한 난자죠. 아까 사진 얘기를 하면서도 잠시 언급을 했지만, 난자는 조금만 외부 환경에 노출되어도 바로 조직이 망가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니 해본 사람은 아는 거예요. 냉동 난자로는 안 된다는 걸.

차병원이 "신선한 난자" 타령을 한 것도, 미탈리포프 박사가 돈 주고 난자를 구매한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강양구 : 여기서 난자 문제를 한 번 짚고 넘어가죠.

김병수 : 저는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효율을 높이더라도 결국은 난자가 필요하거든요. 방금 닥터 K도 언급했지만 신선한 난자가 복제 배아 줄기세포의 전제 조건이라면서요. 그러니까 젊은 여성에게서 바로 기증 받은 그런 난자 말이죠.

황우석 박사나 미탈리포프 박사가 그랬듯이 이런 난자를 구하려면 젊은 여성에게 과배란제를 투여해서 난자를 채취할 수밖에 없어요. 그 과정에서 돈이 오가면 그건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난자 매매죠. 돈 주고 자기 난자를 파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미탈리포프 박사가 여성에게 준 350~80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젊은 여성이 타깃이 되는 겁니다.

자국에서 신선한 난자를 구하는 게 어려워지면 탈북 여성이나 제3세계 여성이 그 타깃이 되겠죠. 실제로 유럽의 루마니아가 난자 매매의 천국이었어요. 서유럽에서는 난자 매매가 불법이니까 루마니아의 20대 여성들이 생계형 난자 매매에 나서서 생긴 일이죠. 결국 유엔에서 권고안을 낼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닥터 K : 애초 그 분야의 연구를 해서 그런지 인간 복제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원천적으로 막을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김병수 박사가 지적한 대로 난자를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막막한 건 사실이에요. 난자 매매를 금지시켜도 신선한 난자를 구하러 외국으로 갈 테고, 그럼 또 루마니아와 같은 문제가 생기겠죠.

김병수 : 그러니까 복제 배아 줄기세포는 현실적으로 지속 가능성이 없어요.

강양구 : 그래서 난자나 인간 배아를 파괴하지 않는 이른바 역분화 줄기세포(Induced Pluripotent Stem Cell, iPSC)가 나왔잖아요. 야마나카 신야 일본 교토 대학 교수가 역분화 줄기세포로 작년에 노벨상을 받았죠. 여기서 역분화 줄기세포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한국 줄기세포 연구의 수준을 짚어보면 어떨까요?

닥터 K : 배아 줄기세포에 초점을 맞춰서 그림을 한 번 그려볼게요. 최초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뽑아낸 과학자는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의 제임스 톰슨입니다. 1998년 11월 <사이언스>에 이런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톰슨은 "나는 내 삶이 끝나기 전에 이 치료법으로 질병이 치료되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며 배아 줄기세포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는 아무도 없었어요. 서울대학교 의과 대학 문신용 교수와 당시 마리아의료재단 생명공학연구소의 박세필 박사(제주대학교 교수)가 관심을 가지는 정도였죠. 그러다 2000년대가 되면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뽑아내는 노하우가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됩니다. 여기저기 실험실에서 후속 연구 결과가 나오던 때였죠.

그 즈음에 문신용 교수가 선도하면서 차병원이나 마리아의료재단 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박사 등이 본격적으로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들었죠. 실제로 박세필 박사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인간 배아 줄기세포 수립에 성공합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그 때도 황우석 박사는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이에요. 오히려 황 박사가 이 판에서는 후발 주자였던 셈이죠.

김병수 : 그렇게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뛰어든 곳이 모두 불임 치료 병원이라는 데 주목해야죠. 불임 치료 병원이 수십 년 동안 성장하는 동안 난자 등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었어요. 그러니까, 배아 줄기세포 연구라는 최신의 흐름을 좇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던 셈이죠. 눈치 보지 않고 실험 재료로 쓸 수 있는 풍부한 난자를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닥터 K : 초반에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이 와중에 우리나라가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선두 그룹에 들어갔어요. 문신용 교수, 박세필 교수, 차병원 등이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유리한 한국의 상황을 디딤돌로 삼아 바짝 선두 그룹을 쫓아간 거예요. 돌이켜 보면, 바로 이때가 한국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선두 그룹을 한창 쫓아갈 때였어요. 한 5위권 정도나 될까요?

강양구 : 성체 줄기세포 연구의 상황은 어땠나요?

닥터 K : 성체 줄기세포 연구는 백혈병 치료에 강한 병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죠. 즉, 골수 이식에 사용하는 조혈모세포가 이후 줄기세포로 이어진 것이지요. 처음 시작부터 초점 자체가 '연구'보다는 '치료'에 맞춰져 있다 보니, 임상에서 연구로 전환한 것도 우리가 아닌 외국이었죠. 외국에서 성과가 나오면 그걸 확인하거나 응용하는 수준에서 머물렀죠. 그래서 성체 줄기세포 연구는, 가톨릭 대학교를 중심으로 인프라를 만들어 선두권을 쫓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가 열세죠.

반면에 배아 줄기세포 연구는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였고, 세계적으로 큰 불임 치료 병원이 우리나라에 많아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연구했죠. 그래서 선두 그룹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 때도 세계 최고 수준은 아니었어요. 반복하지만 선두권 정도였죠. 그런데 황우석 박사가 착각을 불러일으킨 거죠. 우리나라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최고 수준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마치 최고였던 것처럼 말이죠.

강양구 : 그러니까 앞서 이명현 선생님이 인용한 <조선일보> 기사 같은 경우는 애초에 허구에 근거한 논평이었군요.

닥터 K : 그렇죠. 우리는 한 번도 세계 최고인 적이 없었으니까요. 다만 황우석 사태 이후에 한국의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위축된 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애초 배아 줄기세포는 성체 줄기세포 등과 비교했을 때 판이 크지 않았어요. 그런데 황우석 사태 이후에 그나마 있던 판마저 뒤집어지면서 기존의 연구자가 동력을 잃은 건 사실이죠.

ⓒ프레시안(손문상)

줄기세포의 패러다임이 바뀌다

이명현 : 노벨상을 받은 역분화 줄기세포는 어떻습니까?

닥터 K : 저는 2012년도 노벨상은 일본 정부 노력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웃음) 존 고든과 함께 노벨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되던 과학자는 야마나카 신야가 아니라 제임스 톰슨이거든요. 톰슨이야말로 줄기세포 연구의 '구루'죠. 아까 톰슨이 1998년에 인간 배아 줄기세포를 최초로 수립해 냈다고 얘기했죠?

그뿐만이 아니에요. 톰슨은 2007년 7월에 야마나카보다 먼저 <사이언스>에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든 사실을 발표했어요. 야마나카가 <셀>에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든 사실을 발표하기 1주일 전이었죠. 그러니 톰슨이 받지 못하고 야마나카가 노벨상을 받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어요. 톰슨은 배아 줄기세포와 역분화 줄기세포를 모두 최초로 해낸 과학자인데요.

김병수 : 야마나카가 2006년에 쥐에서 역분화 줄기세포를 먼저 뽑아내긴 했죠. 작년 노벨상 결과는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노벨상위원회의 정치적 메시지가 들어간 거로 봐야죠. 톰슨이 인간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활짝 연 당사자이기 때문에 노벨상위원회로서는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강양구 : 존 고든도 같이 받았잖아요?

닥터 K : 존 고든은 줄기세포 연구의 가능성(역분화 또는 분화능 획득)을 최초로 선보인 사람이죠. 고든은 1950년대 후반에 아프리카발톱개구리의 올챙이 창자 세포(체세포)를 핵이 제거된 난자에 집어넣어 온전한 성체로 발달하는 걸 최초로 보여줬어요. 줄기세포, 동물 복제의 가능성을 동시에 제시한 셈이죠. 고든에서 줄기세포 또 동물 복제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명현 : 여기서 역분화 줄기세포가 뭔지도 간단히 알아보죠.

닥터 K : 세포에는 생체 시계가 있어요. 지금 강 기자의 피부는 10년 전의 피부가 아니죠. 그런데 지금 그 피부 세포에다 난자의 세포질에서나 가능했던 역분화 요소 몇 가지를 처리해주면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려서 그 피부 세포가 줄기세포로 바뀌는 거예요. 바로 이게 역분화 줄기세포예요. 얼마나 획기적이에요. 우선 난자도 필요 없죠.

김병수 : 자기 세포로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드니 복제 없이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도 만들 수 있죠.

강양구 : 문제는 없나요?

닥터 K : 일단 아직까지 안정성과 안전성, 또 체내 이식 후 효율성 모두 증명되지 않은 상태예요.

김병수 : 요즘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핵심 관심사가 배아 줄기세포와 역분화 줄기세포를 비교해 보는 거예요. 그러니까 똑같은 사람의 세포로 배아 줄기세포와 역분화 줄기세포를 만든 다음에 둘을 비교하는 거죠. 뭐가 같고, 뭐가 다른지. 아직 줄기세포 치료 이런 건 먼 얘기고요.

▲ 이명현 '프레시안 books' 기획위원(천문학자). ⓒ프레시안(손문상)

황우석, 매머드와 함께 부활하나?

강양구 : 줄기세포 연구가 차분히 진행되기보다는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데는 황우석 박사의 책임이 크죠. 그런데 황 박사가 최근에 매머드를 복제한다고 해서 또 논란의 중심에 섰죠?

닥터 K : 우선 학문적으로 매머드 복제 가능성은 '제로(0)'에 가까운 시도입니다. 매머드를 복제하려면 얼음 속에서 냉동되어 있던 매머드 혈액에서 온전한 체세포를 추출하는 게 최우선 과제죠. 그런데 그런 온전한 체세포가 냉동 매머드 혈액에 남아 있을 확률도 극히 낮고, 또 냉동 해동 분야에 비전문가인 황우석 박사 본인이 할 능력도 없어요.

이명현 : 만약에 온전한 매머드 체세포에서 핵을 뽑아낸다고 하더라도 도대체 어디에 이식을 하겠다는 거예요?

강양구 : 그러니까 매머드의 핵을 아시아코끼리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한 다음에 집어넣겠다는 건데요. 이건 이종 교배 아닌가요? 왜냐하면, 아무리 매머드가 몇 천 년, 몇 만 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시아코끼리의 조상이라지만 사실은 다른 종이잖아요. 이건 원숭이 난자에다 사람의 핵을 집어넣는 거랑 뭐가 달라요?

닥터 K : 정확한 지적인데요. 황우석 박사의 입장에서는 매머드와 아시아코끼리 간 이종 핵 이식이 불가능한 일이 아닐 겁니다. 혹시 백두산 호랑이 프로젝트를 할 때, 호랑이의 핵을 어느 난자에 집어넣었는지 아세요?

강양구 : 고양이?

닥터 K : 처음에는 고양이에 하는 것이 맞다 싶었는지 고양이를 구하러 다녔어요. 나중에는 선배들이 관악산 고양이까지 잡으러 다녔다고 해요. 고양이가 얼마나 사나워요. 절대로 안 잡혀요. 또 고양이의 생리상 배란은 발정기 때나 하니 성숙한 난자를 구하기도 어렵죠. 그래서 도저히 고양이 난자 확보가 안 되는 거예요. 나중에는 모란 시장도 가고 그랬다는데, 그 많은 고양이 난자를 무슨 수로 구해요. 그래서 결국에는 호랑이 핵을 돼지 난자에 집어넣었어요. 절대 발표 때는 돼지라고 하지 않고 극비라고 하면서 말이죠.

강양구 : 이거 관악산 고양이 괴담이네요. (웃음)

닥터 K : 이뿐만이 아니에요. 호랑이 핵을 돼지 난자에 집어넣었더라도 최소한 호랑이 자궁에 넣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황 박사는 그냥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를 그냥 돼지 자궁에 넣었어요. 호랑이와 돼지가 생리학적으로 너무나 다르잖아요. 그러면서 슬쩍 돼지 수정란도 같이 넣었죠. 나중에 초음파 사진이 착상이 된 걸로 나오면, 그게 도대체 호랑이 핵이 든 돼지 난자인지, 돼지 수정란인지 구분할 수 없잖아요. 그럼에도 공개 강연에 이런 사진을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호랑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죠.

강양구 : 그걸 노린 거죠.

닥터 K : 맞아요. 초음파 사진에 뭔가 착상된 걸로 나오면 백두산 호랑이 세포를 복제한 난자가 착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다녔죠. (웃음) 아무튼 이렇게 동물 복제를 한 황 박사 입장에서는 코끼리와 매머드는 너무나 가깝죠. 그런데 코끼리 난자를 구하는 일은 쉬울까요? 어려울 것 같은데….

강양구 : 쉽지 않죠. 또 코끼리는 임신 기간도 길어요. 24개월인가 그렇죠.

김병수 : 설사 매머드 복제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남죠. 멸종 동물을 복제하는 게 과연 지금 할 일인지 따져봐야 하는 거죠. 매머드를 복원하면 뭐해요? 매머드가 생존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아닌데요. 차라리 그러 노력과 비용이면 지금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보호하는데 신경을 쓰는 게 더 낫지 않겠어요?

이명현 : 복제 얘기가 나왔으니, 인간 복제 가능성은 어떤가요?

강양구 : 미탈리포프 박사는 인간 복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더군요.

닥터 K : 아니요. 의지, 시간, 비용의 문제죠.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를 뽑아내기가 어렵지, 그런 복제 배아를 자궁에 착상시켜서 사람으로 키우는 일은 쉬워요. 자궁은 그 자체로 최적의 환경이거든요. 그러니까 줄기세포를 밖에서 키우는 게 어렵지, 복제 배아가 자궁에서 자라는 일은 훨씬 쉬울 거예요.

김병수 : 동감합니다. 충분히 가능하죠. 이미 어디선가 하고 있을지도 모르고요.

ⓒ프레시안(손문상)

강양구 : 수박 겉핥기지만 최근의 줄기세포 현황을 간단히 살펴봤는데요.

닥터 K :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으니,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할게요. 이젠 황우석 박사를 잊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그는 이미 줄기세포 연구 분야의 과학자로서 이력이 끝난 사람이거든요. 실제로 정부의 연구비를 받아서 연구를 주도하는 과학자들은 따로 있어요. 그런데 자꾸 줄기세포가 화제가 될 때마다 언론에서 그에게 미련을 두는 건 정말로 제대로 관심을 두어야 하는 곳을 보지 못하는 오류 같아요. 더구나 황 박사가 예전에 했던 언론 플레이를 마치 정전처럼 여기면서요.

저는 지금 실제로 줄기세포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한테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한국은 배아 줄기세포, 성체 줄기세포, 역분화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모두 있어요. 그런데 그들이 도대체 무엇을 하는지, 또 세계 수준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시민들은 알 도리가 없죠. 이젠 황우석을 잊고 그들에게 주목해야죠.

김병수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정부는 연방 정부와는 다르게 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합니다. 그래서 차병원이 캘리포니아 주에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죠. 그런데 캘리포니아 주 정부 사이트를 가보면, 캘리포니아에서 진행 중인 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모든 걸 파악할 수 있도록 정보가 공개되어 있어요.

또 과학자뿐만 아니라 환자, 일반 시민 또 여러 이해당사자가 연구의 내용을 감시하고 조언을 할 수 있는 시민 참여 장치를 만들어 놓았어요. 왜 미국이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한다, 이런 얘기만 화제가 되고 정작 이런 투명한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인프라를 한국에 마련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장치가 없을 때의 최악의 결과가 황우석 사태였잖아요.

강양구 : 두 분 오랜만에 나오셔서 솔직한 얘기 고맙습니다. 닥터 K는 다음에는 꼭 실명으로 이런 자리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닥터 K : 네, 그런 날이 오겠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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