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불행한 이유, "돈 없어서"가 아니라…

[아까운 책]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행복의 경제학>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여기서 소개하는 책 <행복의 경제학>(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홍승아 옮김, 중앙북스 펴냄)은 <오래된 미래>(양희승 옮김, 중앙북스 펴냄)의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직접 제작한 다큐멘터리 <행복의 경제학>을 토대로 집필한 책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하여 만들어진 책이라 그런지 상당히 쉽게 읽힌다. 내 경우 책을 다 읽은 다음에야 다큐멘터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그 영화는 쉽게 구해 볼 수 없고, 환경재단이 주최하여 그 영화의 상영회가 열린바 있다고 알려져 있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의 1부 제목은 '행복의 경제학'이다. 영화 <행복의 경제학>의 시놉시스를 기반으로 한 것이 1부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1부의 분량은 40쪽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그에 반해 책 분량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2부이다. 2부의 제목은 '회복의 경제학'이다. 여기서는 기후 변화와 테러의 공포, 금융위기처럼 서로 무관하게 보이는 사건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밀접하게 서로 연관되어 있는지를 강조한다. 자연생태 파괴와 인간성 파괴는 하나로 밀접하게 엮여 있는 사건들이라는 점이다.

행복은 주관적 착각인가?

▲ <행복의 경제학>(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영욱·홍승아 옮김, 중앙북스 펴냄). ⓒ중앙북스
이 책의 제목이 '행복의 경제학'이라는 점을 곰씹어보자. 행복이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가 '국민행복 시대'를 내건 이래, 여기저기서 행복이란 단어가 어지럽게 들린다. 그렇지만 별 감동이 없다.

흔히 행복이란 주관적 심리 상태이기 때문에 객관적 기준이 끼어들 여지가 별로 없다고들 말한다. 일인당 국민소득(GNP) 기준으로 보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방글라데시의 국민들이 행복 조사에서는 높은 수치를 보이며, 거꾸로 일인당 국민소득에서 준선진국에 도달한 우리나라 국민들이 행복 조사에서는 세계 최하위 수치를 보인다. 이것이 행복의 주관성을 보여준다고 한다.

과연 행복은 주관적 착각에 불과할까? 그렇지 않다. 행복을 주관적 착각으로 간주하는 주류 경제학자들이야말로 주관적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간 행복(효용)이 '돈으로 측정된 소득(일인당 국민소득)'에 비례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 하에 행복함수(효용함수)를 설계했기 때문이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돈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행복의 객관적 요소들, 경제적 요소들을 알고 있다. 시간과 공간으로 이루어진 객관적 자연이다.

행복해지려면 더 많은 여가 시간이, 더 여유 있는 삶의 공간(주택과 도시 디자인)이 필요하다. 안정된 일자리와 함께 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오염된 공기와 하천 앞에 서게 되면 누구나 불쾌감과 불행을 느낀다. 사람만이 아니라 소, 돼지도 마찬가지다. 이렇듯 파괴된 시공간과 생태환경을 회복하는 일은 인간 행복을 위한 절대적인 객관적 요소이다.

무엇이 행복을 파괴하는가?

저자 호지 여사는 본래 스웨덴 출신의 학자로, 본래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오지 마을인 라다크에 25년간 살면서 현지 주민들의 생활과 언어를 기록하고 연구한 지역학 학자였다. 그녀가 본 라다크의 삶은 이랬다.

"라다크의 물질적 생활수준은 높았다. 크고 넓은 집에 여가 시간도 많았으며, 실업이라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굶주리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서구 사회와 같은 편의시설이나 사치품은 없었다. 하지만 이들에는 훨씬 더 지속 가능하고 훨씬 더 즐겁고 훨씬 더 풍족한 삶의 방식이 있었다." (12쪽)

히말라야 산맥의 오지에 고립되어 수천 년간 옛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풍족했다니? 당연히 주류 경제학자들은 분개하며 '경제학에 관해 무식한 호지 여사'에 대해 비난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무튼, 행복했던 라다크가 1970년대부터 외부 세계와 관광객들에게 노출되면서 불과 10여년만에 크게 변했다. 호지 여사가 처음 라다크에 왔던 시기, 마을의 한 청년에게 여기서 가장 가난한 집을 보여 달라고 하자 그는 "여기에는 그런 가난한 집이 없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불과 10년 뒤에 그 청년은 변했고, 히말라야 오지를 여행하는 부유한 해외여행자들에게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는 너무 가난해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호지는 라다크에서 일어난 삶의 변화를 직접 목격했다. 순식간에 공기와 물이 오염되고 실업자가 발생하고 빈부격차가 나타났다. 그리고 경쟁심과 함께 테러와 폭력 현상도 나타났다. 정신적 가치와 자연과의 합일,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온 사람들에게 불화와 우울함, 불행감이 생겨났고 '불행의 경제학'이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50년간의 근대화와 대외 개방(식민지화를 포함한) 과정에서 비슷하게 일어났던 일이다.

"지금 이 지구에서는 라다크에서 일어난 일과 똑같은 일들이 과거 수없이 일어났으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인간이 태생적으로 (유적적으로) 이기적이냐 이타적이냐를 놓고 논쟁을 벌이는 생물학자들과 경제학자들이 있다. 그렇지만 라다크에서 일어난 급격한 변화는 그런 논쟁을 모두 무의미하게 만든다. 호지 여사가 라다크에서 목격했듯이, 그것은 "세계화에 진입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세계화는 그냥 세계화가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시장으로의 편입이었다. 겉으로는 '자유 무역'이지만, 실제로는 '강요된 무역', 강요된 개방이었다. 우리 역시 1870년대에 강화도 조약을 통해 대외 시장개방을 강요당한 이래, 본격적으로 이기심에 충만한 삶, 자본주의 세계 시장 질서에 편입되었다. 일본 제국주의의 경제적 노예가 된 것이다.

생태환경의 파괴, 인간성의 파괴

<행복의 경제학>의 장점 중 하나는 생태환경의 위기만을 강조해온 생태환경 운동가들과는 달리, 생태환경 파괴와 인간성 파괴는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그 모든 사태의 원인은 경제적 세계화 즉 경제적 식민지화(신식민지화)라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놓인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학 논리에 대해서도 독자들이 알기 쉬운 서술로 비판한다.

이 점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생태환경 보호 운동을 펴는 많은 이들이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 세계 체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하다. 우리도 비슷하지만 선진국의 경우에도 녹색당 등 생태환경주의자들은 잘 먹고 잘사는 도시 중산층 운동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으로 독일 녹색당은 독일 사회민주당과 함께 연립정권을 구성하여 1990년대 말에 집권했는데, 당시 슈뢰더 총리와 함께 '제3의 길'을 주창하면서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경제를 미국 월가의 논리에 따라 금융 자본주의화시켰으며, 그리하여 경제의 신자유주의화에 앞장섰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론 그렇지 않은 녹색당원들과 생태주의자들도 많다.

그에 반해 호지 여사는 이 책에서 "(경제적) 세계화는 생태계와 인류에게 똑같이 중요한 어젠다이다"라고 말한다. 석유에너지 고갈과 1인당 생태 발자국의 증가, 빈부 격차의 심화와 삶의 질 하락, 독립국가의 주권 침해 등이 모두 하나의 총체적 사건, 즉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글로벌 거버넌스를 바꾸자!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경제적 세계화의 여러 가지 면모에 대해 백과사전적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이런 백과사전직 지식 덕택에 이 책에서 많이 배웠다. 예를 들어 주류 경제학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이후 증가한 무역, 한국과 대만, 오늘날 중국 등 '아시아의 용'의 등장과 경제성장을 마치 무조건적 대외개방의 덕택인양 거짓말하는 것이야 이미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녹색 혁명'(150쪽)과 '뉴질랜드의 기적'(152쪽) 등도 그런 거짓말의 일종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생태환경과 인간성의 동시 회복을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그런데 그 체제를 관리하면서 각국 정부에 강요하는 글로벌 조직들이 있다. IMF와 WTO, FTA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은 IMF와 WTO 등의 역사와 특징, 통치구조 등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손에 잡힐 정도로 쉽게 서술한다. 왜냐하면 히말라야의 라다크에서, 아마존의 밀림에서 벌어지는 생태계와 인간 삶의 비극은 모두 그 국제기구들의 활동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IMF와 WTO에 대해 대략은 알고 있지만 구체적으로는 잘 모르는 나 자신 역시 이 책에서 많이 배웠다.

대안은 있다!

우리나라는 1994년 WTO, 1996년 OECD에 가입했으며, 1997년 이후부터 IMF의 구제금융 과 더불어 자발적인 '구조조정' 즉 시장주의 구조개혁에 참가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 및 유럽과 자발적인 FTA(자유무역) 협정을 맺었다. WTO와 OECD 가입, IMF 신탁통치와 FTA 협정 때마다 반복되어 온 일인데, 과연 국회의원들 중에 그런 국제협정을 주의 깊게 읽어본 이들이 몇 명이나 될까? 그런데 호지 여사의 이 책을 읽어보니, 국제적 경제협정에 대한 국회의원과 정치지도자들의 무식과 무책임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대다수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하물며 미국에서도 비슷했다. 그만큼 정치지도자들은 주류 미디어와 주류 경제학자들의 거짓말에 쉽게 넘어간다.

마가렛 대처 영국 수상의 별명이 티나(TINA)였다고 한다. 시장만능주의와 무조건적 대외개방을 외치면서, "그 길 이외에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라고 줄기차게 외쳐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했다. 국내에서도 보수 세력이건 개혁 세력이건 모두가 "시장개혁 이외에 대안은 없다"고 1990년대 초반부터 20년간 외쳐댔다. 그리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국회의원 등 정치지도자들이 별다른 의문 없이 WTO, OECD 가입을 비준했다.

그렇지만 호지 여사의 <행복의 경제학>은 "대안은 분명히 있다"고 말한다. 현실성이 없는 거짓말을 일삼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경제학, 생태계에 적합한 경제학이 이미 성장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보다 더 훌륭하게 인간 삶의 진보를 측정하는 여러 기법과 지표들이 개발되고 있다. 사실 이런 기법과 지표의 개발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WTO와 IMF, 세계은행을 대체할 새로운 글로벌 거번넌스를 창출하지 않고서는 백약이 무효하다고 판단하는 호지 여사는 WTO를 대체할 WEO(World Environment Organization)을 창설하자고 제안한다(제9장). 그리고 WEO의 주요 운영 원칙으로 10여 가지를 제시한다(262쪽). 그 원칙들 하나하나가 모두 구체적이며 매우 설득력 있다. 게다가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 몰라도, 우리나라의 시민사회와 정치권에서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들이다. 호지 여사가 제시하는 대안적 경제체제는 전체적으로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니다. 그 중간에 있는 입장이다.

희망적인 사실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 성공하는 것, 최신 유행의 전도사가 되는 것"보다는 "인간의 가치와 환경, 공동체를 소중히 여기고, 책을 더 많이 읽고, 텔레비전을 덜 보며, 시선은 세계로 돌리는 사람들", 그리하여 "신의와 언행일치를 중시하는" 그런 사람들이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호지 여사가 말하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시민들이 꽤 많다. 이 책이 그런 시민들에게 두루 읽히기를 기대한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경제저격수의 고백>(존 퍼킨스 지음, 김현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
세계 경제의 뒷무대에서 미국이 벌여온 은밀한 경제전쟁의 기록이다. <행복의 경제학>에서도 호지 여사가 부분적으로 지적하는 바이지만, WTO와 IMF, 세계은행 같은 신자유주의 세계 질서는 모두 미국의 세계 지배 전략의 일부분이다. 그리고 미국인들 역시 그 희생양이다.

2. <세계화의 덫>(한스 피터 마르틴 지음, 강수돌 옮김, 영림카디널 펴냄)
지구촌을 하나의 세계 시장으로 통합하는데 성공한 세계화의 실상과 그 위험성을 경고한 책. 세계화가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배자로, 20:80의 사회로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고 비판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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