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같이 '386-진보'의 몰락을 축복하라!

[프레시안 books] <사회민주주의의 기초> 외

새 대통령? 당신이 내게 해줄게 뭐있어?

2년 전 "나를 술 푸게 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개그 코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 코너에서 박성광은 "일등만 기억하는 이 더러운 세상에 국가가 내게 해 준 게 뭐 있어?"라며 술주정을 부리곤 했다. 그의 술주정은 '국가' 즉 집권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미움을 받았고, 그 개그 코너는 얼마 못가 중단되어버렸다.

이제 불과 12일 뒤면 차기 대통령이 선출된다. 그런데 선거판을 대하는 주변의 보통 사람들의 반응이 조용하다. 흥이 나지 않고 신바람도 나지 않는다. 아예 관심 없는 사람들도 많다. 왜 그럴까?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문재인이 된다고, 아니면 설령 박근혜가 된다고 해서 내 인생이 뭐 달라지겠어?" 하는 의구심이 있다. 그리고 "새 대통령이 등장한다고 해서 이 더러운 세상이 뭐 달라지겠어?"라고 체념하는 보통의 시민들이 많다.

보통 서민들의 이런 정치적 무관심에 진보 정치인과 진보 언론, 진보 지식인들은 오만하게도 그들의 무지를 꾸짖는다. 마치 박정희 시대와 박근혜 후보의 실체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기라도 한 양, 1960~70년대에 벌어진 장준하의 죽음과 정수장학회 사건 같은 과거의 폭정과 비리를 폭로하는데 열을 올린다. 그렇지만 보통의 서민들은 30~40년 전 과거사에는 별 관심이 없다. 왜냐고? 계몽이 덜 된 무지렁이라서가 아니라, 당장 목구멍이 포도청인 '저열한 욕망의 덩어리', 즉 이른바 '민중'이기 때문이다.

5000만 국민 중 4000만 명의 인생살이가 쉽지 않다. 1000만 명은 가난한 빈곤층이고, 나머지 3000만 명도 이른바 "중산층 붕괴" 속에서 어렵사리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무식한 바보도, '덜떨어진 계몽의 대상'도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팍팍한 인생살이를 과연 어떤 대통령 후보가 해결해줄지 직관적으로 느낀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나?

5년 전인 2007년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는 말이 유행했다. 많은 국민들, 특히 젊은 2030 세대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출범과 함께 개인적으로도 더 행복한 세상이 되리라고 나름 기대가 컸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비정규직과 미취업 청년들이 민주 정부 하에서 크게 늘었고 가난한 이들의 숫자도 늘었다. 명예 퇴직, 희망 퇴직당한 후 음식점과 통닭집 등을 창업하는 자영업자들이 크게 늘고 그중 상당수가 파산하여 노숙자로,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40~50대에 명퇴당한 '사오정'과 취업, 연애, 결혼 포기의 '3포 세대'도 민주 정부 하에서 시작되었다.

그에 반해 주식 투자와 부동산 투자 등 재테크에 밝은 부자들과 고소득 월급쟁이들의 형편은 민주 정부 하에서 크게 좋아졌고 게다가 과거에는 없던 외국 자본, 투기 자본이 판치기 시작했다. 그래서 노무현 정부 말기에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더냐"는 빈정거림이 유행한 것이다.

현재의 선거판에 흐르는 밑바닥 정서 역시 '과연 어느 후보가 밥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줄 수 있냐'의 의문이다. 대통령 후보에 대한 서민들의 직관적 평가는 그가 어떤 경제 사회 정책들을 앞으로 펼칠지에 따라 달라진다. 경제 사회 정책들이야말로 보통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통령 후보가 공언하는 정책들, 그 후보 주변에서 중요 경제 사회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의 성향에 대해 보통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잘 모른다. 그렇지만 그들은 뭔가를 직관적으로 느낀다.

그런데 바로 보통 사람들의 직관적 느낌에서 문재인과 박근혜의 경제 사회 정책은 서로 별 차이가 없다. 두 후보 모두 반값 대학 등록금과 고등학교 무상 급식을 하겠다고 하고, 모두 골목 상권 보호를 약속하고 있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노무현 정부는 총체적으로 보면 성공한 정부였다"고 말한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된들 과연 자신들의 인생살이가 나아질까 라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면서 여전히 의심한다.

청년 사회민주주의자, '정의란 무엇인가'를 논하다

▲ <사회민주주의의 기초>(토비아스 곰베르트 외 지음, 한상익 옮김, 한울 펴냄). ⓒ한울
여기 한 명의 저자가 있다. 그는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청년사회주의자(독일 사회민주당의 청년·대학생 조직)'의 지도부에 있었으며 청년사회주의자 학교를 설립하는 일에 참여했다. 2007년부터는 사회민주주의 아카데미의 강사로 활동하면서 샌델과 마르크스, 롤스와 루소 등이 말한 도덕 철학을 연구하고 있다. 즉 그의 관심사는 바로 우리 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한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이란 무엇인가?'이다. 그리고 그가 발간한 책이 바로 오늘 소개하는 3권의 '사회민주주의 총서' 중 제1권인 <사회민주주의의 기초>(토비아스 곰베르트 외 지음, 한울 펴냄)이다.

<사회민주주의의 기초>에서 논의되는 내용이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즉 정의가 자유, 평등, 연대와 같은 기본 개념과 그리고 그것들이 보통 서민들의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와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에 관한 것이다. 그리고 정의와 자유의 관점에서 이 책은 사회민주주의가 자유주의 및 보수주의와 어떻게 다른지를 상세하게 설명한다. 또 본질적 가치관이 서로 다른 정당 중에 누가 장기 집권하느냐에 따라 미국, 영국과 독일, 스웨덴 등의 경제 사회 체제가 달라졌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자유(liberte), 평등(egalite), 박애/연대(fraternite)는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였으며,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민주주의 정당의 핵심 가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자유, 평등, 연대는 어떤 나라와 사회를 평가하는 핵심적 기준이기도 하다. 사회민주주의의 핵심 가치 역시 자유, 평등, 박애(연대)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주목되는 점은 진보 정당들의 특허처럼 쓰이는 평등에 대해 저자들이 상당히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 평등보다 더 소중한 현대적 가치로 '정의'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실제 요즘 독일 사회민주당이 제시하는 3대 기본 가치는 자유, 정의, 연대이다. 즉 평등이 빠지고 그 자리를 정의가 꿰차고 들어와 있다. 한국의 좌파들은 "어쩌다 이런 '불상사'가 벌어졌을까?" 하고 대단히 의아해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국의 좌파들은 (적어도 '자주'를 '평등'보다 앞세우는 자주파가 아닌 한) '평등' 그 자체가 정의나 공정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왜 그렇게 정의가 평등보다 앞서게 되었는지에 관해 1990년대부터 벌어진 유럽과 독일, 미국에서의 논쟁과 논의를 상세하게 다룬다. (이 논쟁이 시작된 계기의 하나가 존 롤스의 <정의론>이었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이 책은 또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독일과 유럽, 미국 등에서 벌어진 복지국가의 축소, 재편 과정에서 제기된 무수한 정치경제적, 사회적 논쟁들의 한 복판에 있었다는 점도 보여준다. 그리고 흔히 '정의'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와 논쟁(장하준이 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 펴냄) 역시 부분적으로 그 논쟁의 맥락 속에 있는데) 역시 최근 20년간 서구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문재인 후보는 왜 홀로 약진할 수 없나?

문재인 후보가 왜 박근혜 후보에게 밀리는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문 후보를 비롯한 민주통합당 인사들이 마치 자신들만이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주통합당이 생각하는 정의와 세상 사람들이 느끼는 정의가 다르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물어야 할 때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문재인 후보는 "복지보다 더 우선적이며 소중한 가치는 특권과 특혜의 철폐이며, 따라서 공정과 공평의 회복"이라고 여러 차례 발언하였다. 즉 문재인 후보와 민주통합당은 선거를 맞아 말로는 복지 국가를 입에 올리지만, 내심 복지 국가는 그 자체 사회 정의와 공정 사회 구현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의와 공정·공평의 의미는 사회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공산주의 등 서로 다른 세계관과 정치경제 사상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실질적 평등(실질적 공평·공정)보다는 형식적, 절차적 평등(절차상의 공정·공평)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자들은 (여기에 문재인 후보도 포함되는데) 흔히 '복지보다 더 소중한 것은 공정·공평'이며, '복지 국가보다 더 소중하며 우선적인 것은 특권과 특혜의 철폐'라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캠프는 (안철수 캠프도 마찬가지) 재벌 개혁으로 상징되는 특권 세력의 해체를 늘 가장 우선시되는 소중한 가치로, 선거 슬로건으로 제시한다.

그렇지만 실질적 민주주의,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를 더욱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의 관점에서는 보편적 복지야말로 정의·공정을 달성하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이며, 더구나 재벌의 특권과 특혜를 철폐(완전 경쟁 시장 창출을 위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특권과 특혜를 실질적으로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 국가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직 문재인 후보만이 정의(正義)를 대변한다고 하는 것은 억지이다. 정말로 중요한 화두는 그 '정의'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아마도 내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의 서민들의 직관적 느낌 역시 이와 비슷할 것이다.

정의로운 경제와 민주주의에 대해 이야기하자

대통령 선거가 2주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삼스레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다는 것은 맥 빠진 일이다. 박근혜의 보수주의와 문재인의 자유주의는 모두 보통 사람들의 밥 먹고 사는 민주주의, '밥 먹여주는 사회 정의'에 집중하는 이념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즈음하여, 그리고 그 이후에, 사회민주주의 총서 세 권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야말로 '밥 먹여주는 민주주의', 즉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총서 세 권은 독일의 사회민주당이 2009년에 발간한 것이며, 두 달 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 사회민주주의 총서는 본래 모두 다섯 권으로,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이 독일에서 민주 시민 교육을 위해 사용하는 책이고 사회민주주의의 기본 원칙과 경제 정책, 사회복지 정책을 소개하고 있다. 다섯 권의 총서 가운데 첫 세 권이 먼저 번역되어 발간되었다.

세 권으로 구성된 총서의 제1권인 <사회민주주의의 기초>에서 논의된 자유, 정의, 연대의 3대 기본 가치는 제2권인 <경제와 사회민주주의>, 제3권 <복지 국가와 사회민주주의>에서도 반복되어 더 심화되면서 제시된다. 즉 제1권에서는 사회철학,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추상적 일반 원칙으로 제시된 자유, 정의, 연대의 3대 가치가 '경제 민주화'(제2권)와 '복지 국가'(제3권)의 이슈에서 어떻게 사회민주주의의 경제 사상 및 사회복지 사상으로, 그 기본 테제들로 응용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빈부 격차 심화와 양극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유럽에서도 비슷하게 지난 20년간 전개되어 왔다. 유럽 역시 비정규직과 청년 실업, 영세 자영업자 증가의 문제를 경험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금융 위기와 금융 투기성을 경험했다. 2009년부터는 그리스 재정 위기에서 시작된 최악의 경제 위기를 겪고 있다.

그 과정에서, 지난 1990년대 초반 이래 유행한 이른바 '제3의 길' 노선은 파산했다. 그래서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은 제3의 길을 넘어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총서 세 권은 독일에서의 새로운 모색을 위한 기초 서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국 모방하기는 그만두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말하자

대통령 선거를 맞아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논쟁의 중심에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라는 화두가 있다. 그런데 그 논쟁에서 빠진 점이 있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가 왜 그렇듯 소중한지, 그 궁극적 논거가 무엇인지에 관한 질문이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는 그 자체 목적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두 자유와 정의, 평등, 연대와 같은 가장 소중한 인간적 가치들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다.

보통의 서민들이 직관적으로 느끼는 의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문재인과 박근혜 같은 대통령 후보들이 쏟아내는 경제 민주화나 복지 국가 이야기들이 자신과 가족들의 인생살이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게 만들어 줄 것인지, 그리하여 사회 정의와 연대적 삶을 달성해줄 것인지에 관해 질문하고 싶어한다.

그런데도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에 관한 우리의 논의는 자유와 정의, 평등, 연대 같은 인간 존엄성의 궁극적 가치를 논거로 하여 진행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걸핏하면 "미국에는, 선진국에는 재벌이 없다"거나, "OECD 선진국들은 저런 복지를 하는데 우리에겐 없다"는 것을 논거로 자기주장을 펼친다.

전형적인 개발도상국 논의 수준이다. 만약 선진국에 복지 국가가 없다면 우리도 복지 국가를 하지 않겠다는 건가? 선진국이 아니라 궁극적인 인간적 가치,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정의, 평등 등이 경제 민주화와 복지 국가 논의의 중심에 서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총서 3권을 읽으면서 부러운 점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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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민주주의 선언>(조원희·정승일 지음, 홍진북스 펴냄). ⓒ홍진북스
그간 사회민주주의와 관련한 책들은 드문드문 나왔지만,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대답하는 책들은 거의 없다. 2009년에 번역된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잉그바 카를손·안네마리 린드그렌 지음, 윤도현 옮김, 논형 출판사)가 그나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한 달 전에야 비로소 번역서가 아닌 책으로는 유일하게 그 질문에 답하는 <사회민주주의 선언>(조원희·정승일 지음, 홍진북스 펴냄)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위에서 소개한 총서 3권이 소개되었다.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이들 여러 책들은 바야흐로 이 땅에서도 사회민주주의의 시대가 곧 열릴 것임을 예고한다. 그 책들은 사회민주주의를 단지 추상적인 사상과 가치관으로 고찰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 인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꾸어놓으려 하는지를 밝혀준다.

꿈과 이상(理想), 즉 시대정신의 집약체가 바로 이념이다. 이념의 과잉이 아니라 이념의 빈곤이 얼치기 영웅들의 등장과 소멸을 낳는다. 위력을 잃은 안철수 열풍과 여러 진보 정당들의 몰락-이 모든 것은 하나의 시대가 종말을 고했음을 보여준다. 즉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에 386 세대의 등장과 함께 출현했던 제반 사상과 정신의 종말이요, 그것들과 결합되었던 정치의 종말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사상과 정신, 새로운 정치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혼란과 어지러움은 계속된다. 이제는 새로운 시대정신, 새로운 꿈과 이상(理想)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복지 국가와 경제 민주화 등등, 서로 따로 가는 개념들과 이상들을 하나의 단단한 정신으로 즉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정의, 연대의 근본 개념으로 묶어내는 정신, 북유럽식 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 말이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몰락해 가는 자는 자신을 축복할 것이다"라고 하면서, 깊고 깊은 밤의 끝에 솟아오르는 아침의 태양과 함께 새 시대가 열린다고 노래했다. 우리가 낡은 시대, 낡은 시대정신의 몰락을 축복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그 몰락을 통해서만이 진정으로 새로운 정신과 사고방식이 탄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꿈과 이상을 모두 잃어버린 암울한 이 시대에, 이제부터 "꿈을 가진" 사회 운동과 시민 운동, 노동 운동이, 사회민주주의의 아침이 시작될 것이다. 여기 소개한 책들이 그 꿈과 이상을 만들어 나가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새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라도 이번 선거에서는 그나마 조금 더 휴머니즘에 가까운 대통령을 뽑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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