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카라에게 있고 '인디' 카우치에게 없던 것은?

[토론회] "한국 인디 음악의 미래는 있는가"

"<문화방송>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잘릴 뻔했다. 음악 프로그램 PD가 진보적인 사장이라고 안심하고 '카우치'를 섭외했는데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2005년 여름의 아찔한 기억을 떠올리며 "인디 밴드에 대해 약간의 상처를 갖고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 사건을 놓고 "인디 밴드가 제도권과의 관계 설정에서 취하는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제도권을 활용하자'는 입장과 '제도권에 대한 분노'다.

연일 포털사이트를 뒤덮고 있는 걸그룹 '카라'의 일부 멤버는 '계약 해지'라는 수단으로 불공정한 구조에 반기를 들 수 있었지만, '카우치'의 방법은 달랐다. "문화방송(MBC)에 불을 지르"거나 "보아에게 해코지를 하자"는 계획에서 겨우 톤을 낮춰 성기를 보였다는 게 최 의원의 설명이다.

이렇게 인디 밴드에 대한 상처를 안고 있는 최문순 의원이 역으로 인디 음악인들의 생존 모색을 위해 두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11월 원맨 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씨의 사망을 계기로 인디 음악인들의 생존과 자립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더 이상 제2, 제3의 '달빛요정'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공통의 현실 인식 하에 문화연대와 최문순 의원실이 인디 음악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상상마당 아카데미' 대강의실에서 '한국 인디 음악의 미래는 있는가' 토론회가 열렸다.

▲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뉴시스

이번 토론회에서는 △디지털 음원의 불공정한 분배 구조 △포털사이트, 대중매체의 '아이돌' 편중으로 인한 인디 밴드의 노출 반경 축소 △독립 예술에 대한 예산 부족 등 인디 음악의 자생을 가로막는 다양한 문제들이 지적됐다.

그러나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인디 음악도 하나의 시장으로 경쟁력을 갖춰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과 "'경쟁 시장'이라는 접근은 대중음악계의 모순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의견이 부딪치는 양상을 보였다.

"홍대, 활동 터는 될 수 있어도 '생활' 터 아니다"

발제자로 나선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 씨는 먼저 인디 뮤지션들이 처한 상황을 조명했다. 그는 "인디 뮤지션이라 통칭하지만 그들 안에서도 다양한 층위가 존재한다"면서도 "'장기하와 얼굴들' 등 극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음악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해 레슨, 행사, 일용직 노동, 가게 운영을 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절룩거리네' 등 히트곡도 적지 않았던 고(故) 이진원 씨도 2008년 3집 앨범 발매 당시 연 수입이 간신히 1000만 원 정도라고 밝혔다면서 "이는 한국에서 전업뮤지션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김 씨는 많은 이들이 생활고로 음악 자체를 포기하거나, 회사 생활에 쫓겨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일들이 누적되면 전체적인 음악의 질이 낮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밖에도 정책적 지원 미비를 꼬집었다. "시장에서나 정부에서나 인디 음악을 대중음악의 다양성이란 측면에서 얘기는 많이들 하지만, 그것을 보완해 줄 실질적인 이행 방침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인디 뮤지션들은 삶의 최소 조건도 보장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홍대 앞은 활동의 터는 될 수 있어도 생활의 터는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민주당 최문순 의원. ⓒ프레시안(안은별)
최문순 의원은 이진원 씨 사망 당시 가장 큰 이슈가 됐던 디지털 음원 수익의 분배 구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최 의원은 "저작권 분배율이 복잡한 유통 구조로 인해 (이동 통신사 등) 서비스 업체에 편중돼 있다"면서 "결국 콘텐츠의 창작자인 작사가, 작곡가에게는 음원 판매가의 1%만 지급된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소비자가 500원을 내고 디지털 음원을 구입했을 경우 서비스 사업자(통신사·음원 사이트 등)에 275원, 신탁관리단체(음악저작권협회, 한국음악실연자연합회, 한국음원제작자협회)에 45원이 가게 되며 결국 작사·작곡가 각 5원, 편곡자 3원 등 창작자들은 적은 몫을 가져간다.

최 의원은 "유통 과정을 단순화해 창작자 몫을 늘려야 한다"며 유럽의 '자멘도'와 같은 오픈 마켓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자멘도는 뮤지션들이 음원 공개, 홍보, 상업적 사용 및 재판매 가능 여부 등에 대한 계약 내용을 직접 작성하고 방문객들은 게재된 음원을 무료로 내려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동연 "인디 생협 모색해야"

또 다른 발제자인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대안으로 '인디 생활협동조합'을 제안했다. 그는 "인디 음악은 아마추어 리그, 혹은 오버그라운드의 2류가 아닌 엄연한 시장"이라면서 소수 시장·대안적 시장으로서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인디 음악이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소비되는 차원을 넘어 대중과의 접점을 늘리도록 프로모션과 홍보가 고민되어야 할 시점"이라면서 "공중파를 타거나 광고 프로모션을 따지 않아도 생산자가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직거래 장'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디 뮤지션의 생활이 어려운 것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지금은 활동 클럽과 레이블이 수 배나 늘고 인디 음악을 소개할 수 있는 공간도 다소 형성돼 있다"면서 "대안적 시장을 모색하기에는 지금이 적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의 잠재력을 잘 활용해 인디 음악 종사자들과 인터넷 기업, NGO가 합심하는 생협 시스템을 만든다면 뮤지션이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고도 대중과의 접점을 넓힐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패널로 참석한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 씨는 이 교수가 말한 인디 생협에 대해 "철저히 그들만의 리그가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아이쿱, 한살림 등) 기존 생협의 경우 상품 가치에 대한 운동적 인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가능한 것"이라면서 "음악계 내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그 이념에 합의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정민갑 씨는 "획일화되어가는 주류 대중음악 시장의 문제들을 그대로 둔 채 우리끼리만 대안적 시장 만들겠다고 할 때 현재 레이블들이 하고 있는 정도의 성과 이상을 바라긴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레시안(안은별)

"국가 지원 절실…'방법'이 중요!"

서정민갑 씨는 인디 음악계에도 시장 논리가 투영되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드러내며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예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보편화되지 않는 한 경쟁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논리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면서 "<한국방송>에서 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공익적 프로그램의 제작·방영이 강제되어있는 것처럼 인디 음악에 대한 지원도 제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장기하와 얼굴들'은 홍대 앞 클럽에서 출발해 오버 그라운드로 진입한 인디 밴드의 전형으로 꼽힌다. 그러나 토론자들은 "장기하와 같은 케이스는 극소수이며 모두 그것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뉴시스
인디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의 김민규 대표도 이동연 교수가 제안한 생협에 대해 "개별 뮤지션들이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기본적인 생활 보장이 먼저일 것"이라고 말한 뒤, 현장에서 필요한 공적 지원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음악 교육·앨범 녹음 지원을 담당하는 지역 단위의 창작의 거점 마련 △기존의 '하향' 방식이 아닌 인디 음악인들 사이에서 나온 기획을 행정부처로 전달 가능하게 하는 관련 재단 등 루트 마련 △인디 음악을 더 많이 노출시킬 수 있는 매체 인프라 마련 등이다.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이재영 의장도 "독립 문화를 지원하는 예산 자체의 확충"과 "인디 뮤지션과 같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실업 급여 조건을 완화해주는 제도" 두 가지를 들며 국가가 문화적 다양성을 진작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인디 밴드 '와이낫'의 리더 전상규 씨는 "인디 음악이니까(인디 음악이 규모가 작고 힘이 약하니까) 지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인디 음악이 지원을 받아서 그들(제도권, 미디어 등)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변한다면 그건 더 이상 인디 음악이 아니다"라면서 "인디 음악이 인디 음악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예산? "아이돌 홍보비 수준"

지원 방법과 방향을 두고 '바람'들은 다양하지만 실제 예산 현실은 어떨까? 현재 인디 음악 창작 기반사업을 위해 책정되어 있는 액수는 3억 5000만 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육성 지원 사업'으로 연간 20개의 인디 레이블에 1000만원씩 직접 지급하던 과거에 비해 규모 자체가 준 것은 아니다.

문화관광부 문화콘텐츠산업실 영상콘텐츠산업과 최진 사무관은 "정부 지원이 직접 방식에서 간접 방식으로 바뀌어가는 경향이 있을 뿐 절대 규모를 줄인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인디 내에서도 다양한 층위가 있는데 (그 안에서 또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식으로 지원할지 구상 단계"라며 "뮤지션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패널들은 지원 방식과 관계없이 예산 자체가 너무 적다고 입을 모았다. 박권일 한국방송(KBS) '음악창고' 음악 감독은 "(3억 5000원은) 아이돌 가수의 3개월 홍보 비용밖에 안 된다"고 비난했으며 서정민갑 씨는 "비난하고 싶은 액수"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문학에서 '연희문학창작촌'이 있듯 국가에서 여러 예술 지원을 하는데, 음악은 대중적 파급력이 큼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과제 남겨

'홍대 앞'의 문제들을 펼쳐 보인 이번 토론회 말미엔 당사자인 음악인들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제언도 따라왔다. 최문순 의원은 "오늘 제기된 문제들은 음악인들의 활동력을 기반으로 해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적극적으로 뒷바라지할 테니 음악인 여러분들도 일종의 '정치 행위'를 해 달라"고 당부했다.

서정민갑 씨는 음악인들 각자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공통으로 겪고 있는 부조리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단일한 통로'로 발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민규 대표는 "문제 제기는 오히려 많은 갈래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담당 공무원이든 기자·평론가든 더 귀찮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단일한 통로로 의견이 전달되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 의견은 취합되는 과정에서 이미 죽어서 딱딱해진 것들"이라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은 이날 토론회에서 다뤄진 문제들을 다시 각론 수준에서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김작가 씨는 "오늘 나왔던 얘기들이 동어반복으로 끝나면 아무 의미 없다"면서 "영화진흥위원회·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은 상설 기구가 음악계에도 만들어져서 논의를 쌓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 뮤지션들이 자립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만든 '자립음악가생산자모임'의 멤버이기도 한 음악가 단편선 씨는 이번 토론회에 대해 다소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뮤지션들마다 자생의 지향점이 다르다"며 "대중 앞에 어떻게 설 것인가, 시장을 어떻게 확대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이들도 있지만 경쟁이 아닌 방식으로 살아가는 밴드들도 이들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갈 지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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