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존 재무장관 회의 "합의 같지 않은 합의"에 그쳐

[분석]'사실상 거짓 합의'에 프랑스 국채 마이너스 금리 등 기현상

유럽연합(EU) 재무장관 회의가 밤샘 끝에 10일(현지시간) 끝나 유로존 위기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내용이 발표됐지만, 달러는 유로화에 대해 2년래 최고치로 치솟는 강세에 뉴욕증시는 하락하고 11일 코스피 지수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말 EU정상회의의 실무회담격인 이번 EU재무장관 회의는 예상대로 "합의 같지 않은 합의"들을 내놓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우선 합의됐다는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보자.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과 관련된 것이다. 스페인은 부동산 거품 붕괴로 금융위기가 심각해, 특이하게 구제금융도 은행권에만 투입하기로 용도가 정해진 방식이다. 1000억 유로를 주기로 했는데, 이달말까지 1차로 300억 유로(약 42조 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1차분 지급 등 여러 가지 합의가 EU재무장관 회의에서 발표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AP=연합
스페인 재정적자 목표 시한, 유로존 사상 첫 연기

또한 스페인 정부가 금융위기뿐 아니라 심각한 경기침체로 경제성장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스페인의 재정 적자 감축 목표도 완화해주기로 했다. 스페인은 내년까지 국내총생산 대비 재정 적자를 3%로 줄여야 했는데, 2014년으로 기한을 연기했다.

그런데 이런 합의가 공식적 문서로 된 게 아니다. 오는 20일 다시 재무장관 회의를 열어 논의해봐야 한다. 그만큼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진통 끝에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다.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1차 분도 정상회의 때 약속했던 것처럼 정부의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이 아니고, 정부에 부담을 주는 방식이다. 나머지는 지켜지지 않을 것 같은 조건을 전제로, 이런 조건이 충족되면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독일 "스페인 구제금융, 결국 정부 책임될 수도"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은 "구제금융을 받은 은행이 돈 못갚으면 정부가 책임져야 할 가능성도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다.

재무장관 회의 발표 후 달러가 유로화 대비 2년래 최고치를 기록하는 강세를 보인 것도 이러한 시장의 불신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긴축목표를 연기해주는 것은 스페인의 경우가 유로존 사상 처음이다. 그만큼 스페인 문제는 유로존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고, 그만큼 스페인의 문제가 심각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재정 적자를 일정 범위 내로 통제하는 것은 유럽연합 회원국들에게 가장 엄격히 적용되는 조건이다. 통제 범위를 벗어난 회원국에게 감축 목표 시한을 스페인에게 연기해 준 것은, 국가부도 사태로 치닫고 있는 그리스에게도 적용되지 않는 특별한 조치다.

정말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달말 정상회의에서 유로존 위기 사상 이례적으로 주목할만한 합의가 나왔는데도, 스페인의 국채금리는 지속불가능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스페인 정부에 대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도 정부를 거치는 방식이 아니라, 유럽 구제기금에서 스페인 은행에 직접 주기로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왔는데도 스페인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마의 7%'라는 수준을 넘었고, 재무장관 회의 발표로 일단 7% 아래로 떨어졌다지만 6.78%로 여전히 지속불가능한 수준이다.

유로존 합의, 왜 "사실상 거짓말"로 평가받나

이러한 시장의 반응은 스페인 구제금융 등 유로존에 대한 해법이 사실은 합의된 것도 아니며, 근본적 해법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원래 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정말 급하면 거짓말을 일삼는 법인이다. 요즘 유로존에 대한 정상회의나 재무장관 회의에서 발표한 내용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공식 발표 위주로 전달하는 보도들과 그 이면을 들춰보는 보도들이 서로 섞이면서 혼란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간판 금융 칼럼니스트 볼프강 뮌초는 이런 비유를 들었다. 유로존의 합의라는 것을 알콜중독자에 비유하고, 알콜중독자가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려운 조건을 전제로 단기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알콜중독자에게 생활비를 주겠다고 합의를 했는데, 그 전제조건이 올해말까지 술을 끊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했다면, 제3자가 볼 때, 이행될 수 있는 합의라고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유로존 위기는 회원국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로 다루는 체제가 확립되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 '체제의 위기'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모든 중요한 합의라는 것도, 알고보면 근본적인 해법이 이행되면, 단기적으로 지원을 해주겠다는 식이다.

유럽의 돈줄인 독일은 근본적인 해법을 성사되는 결정권을 쥐고 있는 유로존 최대 경제대국이다. 그러나 독일은 완전한 금융동맹 체제가 구축되기 전까지 공동으로 은행 자본을 확충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금융동맹보다 더 어려운 정치적 동맹이 확립되지 않고는 금융동맹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뮌초는 "이런 합의의 논리적 귀결은 유로존 위기는 향후 20년 동안 풀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유로존은 급격히 해체되거나 서서히 해체되는 길만 남았다"고 단언했다.

'불안한 프랑스' 단기국채도 안전자산 취급

EU재무장관 회의가 열린 9일 프랑스의 1년 이하 단기국채물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한 것은 충격적인 현상이다. 프랑스는 그리스 문제라도 잘못되면 스페인과 이탈리아처럼 휘청거릴 나라로 지목받고 있다.

그런데 유럽 최대 안전자산이라는 독일 국채도 아니고, 유로존 위기 이전에도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된 적도 없는 프랑스의 단기 국채가 마이너스 금리로 발행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의 마이너스 금리 국채'에 대해 "투자자들이 안심하고 투자할 곳이 얼마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지적한다. 프랑스가 불안하기는 하지만, 일단 1년 정도 안에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으니, 독일보다는 못하지만 단기적으로 안전자산으로 취급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마리오 몬티 이탈리아 총리는 스페인처럼 EU에 구제금융을 요청할 필요성을 시사하고 나섰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어차피 전면적인 구제금융으로 갈 '양대 후보;로 꼽히는 유로존 대형 위기국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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