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 유력 후보 "15억원 이상 벌면 최고세율 75%"

[분석] 극소수 겨냥한 '부자증세' 왜?

오는 4월 22일 예정된 프랑스 대선이 50여일 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야당 후보가 일정 소득 이상의 고소득자에 대한 '세금 폭탄'을 공언하고 나서 부자증세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 쟁점이 되고 있다.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는 28일 공식 공약보다 한층 더 수위를 올린 '부자증세'를 공언했다. 그것도 금융 고소득자들이 많은 영국 런던에 거주하는 프랑스 유권자에 대한 유세를 하기 위해 떠나기 전날에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 17년만에 사회당의 정권 탈환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올랑드 후보가 강도 높은 '부자증세' 공약을 내걸었다. ⓒAP연합
"연간 100만 유로 이상 고소득에 최고세율 75%"

<파이낸셜타임스>는 "올랑드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연봉 100만 유로(약 15억1000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들에 대해 최고세율을 75%로 격상할 것이라며 고소득자를 겨냥한 충격적인 공세를 펼쳤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번 발언은 올랑드 후보의 공약집에 나온 증세안보다 훨씬 센 것"이라면서 "공약집에서는 연봉 15만 유로(2억3000만 원) 이상 소득에 대해 최고세율을 현행 41%에서 45%로 높이고, 자본소득세율을 소득세와 균형을 맞추도록 세율을 높이고, 부자에 대한 감면을 제한하겠다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올랑드 후보는 자신의 발언 취지에 대해 "대기업 경영진의 보수가 연평균 200만 유로(30억2000만 원)가 될 정도로 많아지고 있는데,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면서 "연간 100만 유로가 넘는 소득에는 75%의 최고세율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올랑드 후보는 지난달 금융권을 가리켜 '자신의 진정한 적'이라고 선언하더니, 29일 런던에 사는 30만 명의 프랑스 유권자를 상대로 유세를 하기에 앞서 이런 발언을 했다"면서 "런던에 사는 프랑스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금융권에서 일한다"고 지적했다.

"스웨덴보다 높은 세율, 부자들만 떠나게 한다"

재선을 노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즉각 올랑드의 발언에 대해 "즉흥적이며, 아마추어 같은 발상"이라면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과도 동떨어진 공약이라고 비난했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최고세율이 가장 높은 곳은 스웨덴으로 56.5%다. 이어 독일이 47.5%, 프랑스가 41%다. 여기에 프랑스는 지금도 재정난 해소를 위해 임시로 25만 유로 이상과 50만 유로 이상에 대해서는 각각 3%와 4%의 한시적 증세율을 도입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올랑드가 고소득자에 대한 최고세율을 75%까지 높이겠다고 하자 일각에서는 정치적 목적이 강한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연 100만 유로가 넘는 고소득자의 비율이 극소수로 실제 세수 증가는 얼마 되지 않고 부자들만 프랑스를 떠나게 만들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981년 사회당의 프랑수아 미테랑이 집권했을 때 '부자증세'에 반발한 부자들이 대거 국외로 떠나버렸다. 이번에 95년 미테랑이 퇴임한 이후 17년만에 사회당이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커지자 '부자 탈출'이 재연되고 있다.

프랑스의 보수 성향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사회당이 집권하면 있는 돈도 거덜나겠다면서 이웃나라로 이민을 가는 부자들이 늘고 있다. 마침 주변에 훨씬 세금부담이 적으면서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살기 좋은 나라들이 있어 주로 이런 나라들로 이민을 간다고 한다. 벨기에나 스위스가 대표적이다.

70년대 '프랑스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리던 조니 홀리데이나, 자동차업체 푸조의 설립자 가족도 최근 스위스로 거처를 옮겼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대기업들도 노골적으로 반감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 항공기 제작사 다소그룹의 세르주 다소 회장은 "올랑드의 공약은 수천 명의 자산가와 부자들을 해외로 내보내 경제적 파국을 초래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보수 성향의 젊은 세대들은 그러나 사르코지의 우파가 정권을 잡는다 해도 '좌클릭'으로 가는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불만을 품고 있다. 사르코지는 자신이 집권 초기에 도입했던 세금상한제(세금 규모가 연 소득 50%를 넘지 않도록 한 규정)를 폐지하는 등 올랑드보다는 수위가 약하지만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르피가로>는 이에 대해 "연간 1200가구가 넘는 부유층이 '세금이 부담된다'며 프랑스를 떠나 이민을 가고 있다"면서 "이미 벨기에에 20만 명, 스위스에 16만 명 등 수십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이민을 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일부 보수 언론들도 "부자 증세 드라이브는 경기침체, 실업률 악화로 부유층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재계와 가까운 사르코지를 겨냥한 것"이라면서 "올랑드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높아졌지만 재계를 완전히 적으로 만들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1차 투표 지지율 격차 좁혀지자 발언 수위 높인 것"

지금까지의 각종 여론조사 동향을 보면 지난 15일 사르코지가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면서 1차 투표에서의 지지율 격차는 1~4%p 차이로 급격히 좁아졌다. 이에 따라 5월 6일로 예정된 결선투표가 불가피할 전망인데, 결선투표에서 양자 대결에서는 올랑드가 오차 범위를 넘어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당 내부에서는 올랑드가 '부자증세'의 수위를 높인 배경에 대해 사르코지가 1차 투표의 지지율 격차를 급격히 좁혀오자 좌파 진영의 지지를 결집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그가 금융권을 적으로 돌린 것은 '선동전술'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지난 81년 미테랑이 집권했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다르다. 올랑드도 집권하면 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상황과 맞닥뜨릴 텐데, 멋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주역이자 녹색당 창립자인 다니엘 콩방디는 "올랑드의 발언 수위는 높지만, 독단적인 스타일의 사르코지와 달리 보다 민주적이고 신중한 모습을 보여왔다"면서 "하지만 위기의 시대에 그의 리더십 스타일이 바람직한 것이냐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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