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악마의 연쇄반응'…도쿄 포기도 고려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민간조사위 보고서 '파문'

지난해 3월 후쿠시마(福島) 사태 당시 일본 정부는 최악의 경우 수도 도쿄(東京)을 버릴 수밖에 없다는 생각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다. 30명의 일본 대학 교수와 변호사, 언론인 등이 참여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독립검증위원회'(검증위)는 27일 지난 6개월 간의 조사 결과를 종합한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국민들에게는 위험 수위를 과소평가해 안심시키면서도 최악의 경우 도쿄를 포기하는 가능성까지 고려했다. 도쿄 일대의 인구는 3500만 명에 달한다.

일본 총리실은 지난해 3월 14~15일 후쿠시마 원전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나자 '최악의 사태'를 논의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통제불능 사태가 되면 방사능 물질이 대량 유출돼 인근의 다른 핵발전소에서도 작업원들이 철수해야 하는 사태까지 빚어질 수 있고, 이렇게 되면 추가 멜트다운 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당시 관방장관은 이같은 "악마의 연쇄반응"이 일어날 경우 도쿄를 비워야 할 것이라면서 "후쿠시마를 잃을 경우 (이바라키현의) 토카이 원전도 잃게 되며, 이 경우 유일한 논리적 결론은 도쿄마저 잃게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검증위의 조사를 주도한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전 <아사히신문> 주필은 "대중들은 모르고 있었지만 우리는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면서 정부가 혼란을 야기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국민들과 미국 등 동맹국에 사고의 진정한 위험성을 숨겨 왔다고 비판했다.

▲일본 <교도> 통신이 26일 촬영한 후쿠시마 원전 내부의 모습. ⓒ로이터=뉴시스

"'실수투성이' 간 나오토의 유일한 '수훈'이 일본 구했다"

검증위는 정부의 실수로 인한 불신 때문에 국민들에게 정확한 위험을 알릴 필요성이 있어 독립적인 민간 조사를 시작했다. 이들에 따르면 내각과 도쿄전력 사이에 빚어진 불협화음은 사태 초기부터 혼란을 야기했다. 한 예로, 일본 정부는 원자로 격납용기의 압력을 낮추기 위해 방사성 물질을 함유한 수증기를 배출시키라고 도쿄전력에 지시했으나 도쿄전력은 주민 대피 등의 이유로 지시에 제때 응하지 않았다.

또 도쿄전력의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 후쿠시마 원전 현장소장은 정부와 본사의 지시를 거부하고 자신의 판단만으로 바닷물을 원자로 냉각에 계속 사용했다. 결과적으로는 요시다 소장의 판단이 옳았다는 면에서 이 또한 정부와 도쿄전력의 실책이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4호기 인근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방사능이 유출될 위험성 때문에 패닉 상태에 빠졌다가 지진 5일 후에야 상황을 확인하고 안심하는 등 무능한 모습도 보였다.

보고서는 또 간 총리가 직접 세부사항까지 챙기는 식의 대응을 했지만 별 도움은 안 됐다고 지적했다. 간 총리는 체계에 따른 보고를 불신하고 개인적 보좌진의 조언에 의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보고서는 이같은 '실수투성이' 간 총리가 현장 작업원들의 전원 철수를 막아 결과적으로 큰 공을 세운 점은 인정했다. 그는 지난해 3월 15일 이른 아침 도쿄전력 본사로 쳐들어가 호통을 치면서 후쿠시마 현장에서 직원들을 철수시키려는 도쿄전력의 결정을 막았다는 것이다.

검증위의 조사 결과, 도쿄전력은 정부 공식 조사 결과와는 달리 전면적 철수를 실제로 추진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철수가 이뤄졌다면 재앙 규모는 더 커졌을 것이라는 것이 검증위의 결론이다.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사태로 지난달 그린피스인터내셔널(GPI) 등이 발표한 '무책임한 기업' 2위에 오르는 불명예를 안기도 했다. 1위는 브라질 광산업체 발리, 3위는 삼성이었다.

기타자와 고이치(北宏一) 검증위 위원장은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간 총리의 행동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니 이해되기 시작했다"면서 그를 일부 감쌌고, 후나바시 전 주필도 "간 총리는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만 도쿄전력으로 쳐들어가 포기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 일본을 살렸다"며 수훈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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