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사퇴로 이탈리아 위기 못 막아"

[진단] "유로존 함께 못가면, 글로벌 경제 붕괴"

이탈리아가 그리스와는 차원이 다른 메가톤급 부채위기로 유로존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떨게 하고 있다.

8일(현지시각)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8일 의회 예산 지출 승인 안건과 관련해 우파 연정의 분열이 확인되고, 위기를 악화하는 주범으로 낙인찍히자 결국 사퇴 의사를 표명했지만, 반짝 호재로 그치는 분위기다.

9일 유로화 가치는 달러 대비 개장 초 강세를 보였으나 하락 반전했으며, 사상 최고치로 치솟은 이탈리아 국채 금리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있다.

▲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사의 표명에 "당신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라면서 기뻐하는 이탈리아 시민들. 하지만 이탈리아 부채 위기는 총리 퇴진으로 해결될 위기가 아니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AP=연합
"이탈리아 부채 상환, GDP 대비 4% 재정흑자 무한 달성해야"

이탈리아의 위기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사퇴한다고 본질적을 달라질 성격은 아니라는 점에서 여전히 위기감은 가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FT)>도 "베를루스코니 체제에서 위기 극복에 필요한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지만, 지도자가 바뀐다고 달라진다고 보기 어렵다"고 진단해 주목된다.

이탈리아의 국가부채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부채는 유로존 전체 부채의 23%를 차지하며, 우리 돈으로 3000조원에 달한다. 이것은 유로존 주변국 3인방(그리스,포르투갈, 아일랜드)에 유로존 4위 경제국 스페인의 부채를 합친 것과 맞먹는다.

이 신문의 저명한 경제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시장의 불안감이 여전한 이유에 대해 "이탈리아가 부채를 갚으려면 무기한 GDP의 4%에 달하는 재정 흑자를 기록해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위기를 통제가능한 수준으로 묶어두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유로존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FT>는 회의적으로 진단했다. 유로존의 버팀목인 독일과 프랑스의 지도자들은 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를 보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만일 지금 알게 된 사실을 20년전에 알았다면 유로 단일 통화동맹을 출범시키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유로화 동맹, 두려움으로 간신히 버티는 형국"

<FT>에 따르면 현재 유로존을 유지하는 유일한 원동력은 유로존 붕괴가 초래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뿐이다. 하지만 두려움만으로 언제까지 유로존을 지탱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유로존 주변국 그리스를 넘어 유로존 중심국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부채위기가 심각한 양상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울프는 "유로존 위기의 본질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복잡해지고 있다"면서 "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누가 도와주기도 어렵기 때문에, 국가 자체의 경제성장과 대외 경쟁력이 회복되지 않는 한 부채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유로존 위기의 해법으로 4가지 선택지를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유로존 전체 차원에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독일 같은 중심국이 주도해 통화 증발과 경기부양책을 동시에 시행하는 방법으로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려 유로존의 성장과 대외경쟁력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때 주변국들은 긴축과 개혁조치들을 감수해야 한다.

두번째, 주변국 자체적으로 경제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명목 임금 수준을 떨어뜨리는 디플레이션 유도 정책을 쓰는 것이다. 세번째 중심국이 주변국에게 무한정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네번째, 채무 탕감과 함께 일부 회원국을 유로존에서 탈퇴시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울프는 "어떤 방법이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난관이 너무 크다"면서 "시행한다고 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다"고 분석했다.

"독일 주도로 유로존 함께 갈 수밖에 없어"

예를 들어 두번째 방법은 시간이 너무 걸리고, 세번째 방법은 중심국마저 부도 위기에 몰릴 수 있다. 또한 4가지 모두 중심국이나 주변국 어느 쪽에서는 정치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운 방법들뿐이다.

울프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은 두 번째와 세번째의 불행한 조합"이라면서 "주변국은 긴축을 하고, 지원은 인색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울프는 "장기적으로 볼 때 첫번째와 네번째 방안으로 갈 가능성이 가장 크다"면서 "유로존 전체가 유로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쪽으로 가거나 유로존에서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번째 방법이 시행되려면 독일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울프는 "독일은 1923년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악몽처럼 기억하고 있지만, 1930~32년 가혹한 긴축 정책으로 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잡게 된 것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번째 방법의 문제는 글로벌 경제를 붕괴시키지 않고 유로존 해체가 가능하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해 '뉴 드라크마'라는 독자적인 화폐를 쓰고 기존의 계약은 유로화 표시로 유지할 경우 '뉴 드라크마'의 환율은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의 물가는 폭등할 것이다.

외부의 지원과 함께, 그동안 공급 과잉 체제라는 점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닫는 것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유로화 표시 부채에 대한 디폴트는 상당한 규모에 달할 것이다. 유로존의 은행이나 국가들은 이런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재무적으로 취약하다. 연쇄 파산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이것을 피하려고 한다면 유로존은 첫번째 방안을 쓸 수밖에 없다. 자신들의 손해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부채 위기에 허덕이는 회원국이 자체적으로 디플레이션으로 가는 방법에 의지한다면 실패는 자명하다.

울프는 "유로존의 지도자들이 이런 방안을 고수한다면, 그 결과를 감수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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