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해부: 제주 해군기지와 한국의 국익(3)

[정욱식의 '오, 평화'] 제주해군기지와 중국

당연한 말이지만 군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존재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해군기지도 마찬가지이다. "이어도에서 석유가 터졌다고 생각해보라. 중국·일본이 가만 있겠나." 해군 전력기획 참모부장 구옥희 소장이 <중앙선데이>와의 인터뷰에서 강정 해군기지의 안보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어도 인근에서 경제성 있는 석유가 터져 나오는 것도, 그래서 중국과 일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가정에 기반을 둔 '만일의 사태'다.

이러한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책으로 반드시 대규모의 해군기지 건설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따져보기로 하고,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인해 초래될 다른 유형의 '만일의 사태'를 거론해보자. 이미 필자는 앞선 글들을 통해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할 경우 한국은 미사일방어체제(MD)를 포함해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 전략에 더욱 깊숙이 포섭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홈페이지를 통해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과 협의하여 건설하는 것"이 아니고, "미 군함 출입항 기지와 시설은 부산과 진해에 있으며", "현 사업에는 미군을 위한 예산이 일체 없다"는 점들을 들어 필자의 주장을 반박했다. 그러나 앞선 글들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미국과의 협의나 미국 예산의 투입 여부는 본질적인 문제가 될 수 없다. 부산항 건설에 미국 예산의 투입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이 수시로 드나드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더구나 육지에 있는 해군기지는 "포화 상태라" 제주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한국 해군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아시아에 기지나 기항지로 사용할 기지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하여 지난 수 년 동안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바로 아시아 지역에 추가적인 기지와 기항지의 확보이다. 이러한 입장과 제주도가 지낸 전략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미국이 제주해군기지를 최소한 기항지로 사용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초래할 '만일의 사태'

제주해군기지가 건설되어 미국이 어떠한 형태로든 이용하게 된다면, 미-중간의 무력 갈등시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 치명적인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주장도 가정에 기반을 둔 '만일의 사태'이다. 물론 미국과 중국이 핵전쟁까지 초래할 수 있는 '전면전'을 벌일 가능성은 극히 낮다. 그러나 동아시아 해양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국지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전략적 자산'이 아니라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상황'을 초래할 '전략적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이와 관련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반론은 "그렇다면 왜 중국이 제주해군기지를 문제 삼지 않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중국이 공개적으로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 언급한 것은 없으며, 비공개적으로 언급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된 바가 없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이용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경우 반대 운동에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판단해 발언을 자제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내정 불간섭 원칙을 견지하고 있으며, 타국의 정책이 자국에 대해 가시적인 위협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공개 발언을 자제하는 경향이 강하다.

최근 수 년간 몇 가지 사례는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2006년 3월 하순 닝푸쿠이(寧賦魁) 당시 주한 중국대사는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은 한국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함이다. 계속 쌍무적인 틀 안에서 행동하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지만 만약 제3국을 대상으로 해 행동하게 되면 우리는 관심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 발언은 한미간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가 나온 지 한 달 뒤에 나왔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의 방중 기간이었던 2008년 5월 하순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미 군사동맹은 지나간 역사의 유물"이라며 "시대가 많이 변하고 동북아 각국의 상황도 크게 변한 만큼 낡은 사고로 세계 또는 각 지역이 당면한 문제를 다루고 처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이명박-부시가 한미 전략동맹을 천명한 지 한 달 뒤에 나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논의가 2003년부터 시작되었고, 한미간의 전략동맹 논의 역시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작되었는데, 수 년 혹은 수 개월 뒤에 공개적으로 경고 섞인 불만을 토로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은 중국 정부가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문제삼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것이 곧 제주해군기지에 대해 중국의 경계심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전략적 유연성과 MD에 강한 경계감

이와 관련해 2004년 11월 29일 라오스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예정에 없던 한중 정상회담을 중국 측이 제안해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한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미국은 2003년 들어 수원-오산, 평택-군산 등 한국의 서남부에 패트리어트 최신형인 PAC-3를 집중적으로 배치했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도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원자바오는 "최근 한국의 서해상에 미군 패트리어트 요격 미사일이 배치되고 있는데, 이것은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이 중국의 적국이 아닌데 이와 같은 시도에 대해 중국은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한미군이 양안 문제에 개입하는 군으로 전환되는데, 이렇게 되면 중국과 한국 관계도 문제가 된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이러한 사실은 6년 뒤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김종대 <디앤디포커스> 편집장이 쓴 <노무현, 시대의 문턱을 넘다>를 통해서 알려졌다.

이처럼 중국은 양자동맹이었던 한미동맹이 '지역 동맹'으로 변화해온 것과 한국이 미국 MD 체제로 편입될 가능성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다. 특히 중국은 MD를 21세기 최대의 전략적 위협 요소로 간주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한 연구자가 중국의 정부 관리, 군관계자, 민간 전문가 등 60여명을 인터뷰해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중국이 미국 주도의 MD를 21세기 최대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러한 분석은 중국의 공식 문서에서도 확인된다. 2011년 3월에 발표된 <2010년 국방백서>에서는 "MD는 국제사회의 전략적 균형과 안정에 해롭고, 국제·지역 안정을 해칠 것이며, 핵 군축 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중국은 어떤 나라도 해외에 MD를 배치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해 미국 주도의 MD가 중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국은 한국이 미국 MD에 편입되는 것을 한중관계의 마지노선으로 간주한다. 주펑(朱鋒)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은 전략적 안정을 대단히 중요시한다.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MD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아갈 것이므로 중국은 분명히 한국에 대한 전략을 바꿀 것이다.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원자바오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중국은 하층 방어이자 지점 방어(point defense)인 패트리어트 시스템이 한국의 서남부에 배치된 것을 두고도 한국이 미국 MD에 편입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미국과의 전략동맹을 추구해온 이명박 정부는 공동연구, 합동 실험,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와 MD와의 상호운용성 강화, 오키나와와 괌 방어에 한국의 기여 모색 등 미국과의 MD 협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제주해군기지에 미국의 MD용 이지스함과 핵잠수함 등이 들락날락거리는 등 미 해군의 기항지로 이용되게 되면 중국의 반발 수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 지난 2005년 칭다오 근해에서 러시아와의 합동훈련에 참가한 중국 잠수함. ⓒ로이터=뉴시스

평택기지 겨냥한 중국의 군비증강, 제주도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및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중국의 외교적 경고에 뒤이은 군사적 대응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시사해준다. 미국 <UPI> 통신의 2008년 6월 20, 24,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중국은 한반도와 가장 인접한 산둥반도에 전략 핵잠수함, 전투기, 방공 부대를 배치했다.

특히 이러한 전력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사정거리에 두고 있어, 양안간의 무력 충돌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의 개입을 억제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고 <UPI>는 전했다. 실제로 칭다오(靑島) 기지에 배치된 두 척의 핵추진 잠수함은 한국과 일본 전체를 사거리 안에 두고 있는 탄도미사일 발사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에 대응하는 핵심 전력인 중국인민해방군의 북해 함대를 공중지원하기 위해 한국 전체와 일본 일부를 사정거리에 둔 최신예 전투기 및 방공 미사일 전력증강도 대대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전력증강이 이뤄진 시점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다. 중국의 외교적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합의 및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과 PAC-3 배치 등 미군의 전력증강이 이뤄진 것에 대한 군사적 대응 조치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에 비춰볼 때, 제주해군기지를 미국도 이용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중국은 제주도를 겨냥한 군사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예상할 수 있는 군사적 조치로는 상하이 해군기지에 방공 미사일 배치, 제주해군기지를 겨냥한 미사일 배치, 공군 및 해군 작전 범위에 제주도 포함, 제주도 인근 수역에서 군사 훈련 실시와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중국이 이러한 조치를 취한다면 '중국위협론'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고, 이에 대응해 한국, 혹은 한미동맹은 제주도나 그 인근 지역에 공군기지 건설과 같은 군사적 맞대응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이 이미 진행 중인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격화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휘말림과 버림받음의 딜레마

'수출로 먹고 산다'는 한국의 무역 의존도에서 중국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미국 및 일본과 합친 것보다 높은 20%대에 달하기 때문이다. 또한 "해양수송로가 한 달만 막혀도, 한국은 망할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동아시아 해양 수송로에 대한 의존도도 대단히 높다. 6자회담 의장국이자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과의 외교안보 관계도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미-일 3각관계가 강화될수록 북-중-러 3각관계도 강화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특성을 고려할 때, MD를 고리로 한 미국의 동아시아 동맹체제의 강화는 평화적 통일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속성이 있다.

제주해군기지가 미-중간의 갈등시 미국 해군의 기항지나 중간기지로 이용되면, 한국의 안보와 경제는 직격탄을 맞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중국은 외교적 항의에서부터 여행 금지, 무역 보복, 한국 해양수송로 차단 등 다양한 경제제재,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보복 공격과 같은 군사적 조치까지 취할 수도 있다.

동맹 이론에 '휘말림(연루)'와 '버림받음(방기)'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제3자와 무력 갈등에 있는 동맹국이 군사 지원을 요청할 경우에 이러한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런데 동맹국의 요구를 수용하자니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 반대로 동맹국의 요구를 뿌리칠 경우 동맹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우려가 있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이러한 딜레마를 고스란히 안고 있다. 미-중 간의 군사 충돌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미군의 제주해군기지 사용을 불허한다면, 한국은 한미동맹의 파기까지 각오해야 한다. 미국 정부는 한국이 상호방위조약을 위반했다고 할 것이고, 미국 국내에서는 '배은망덕'이라는 단어가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기지 사용을 용인하면 중국과의 갈등에 따른 막대한 국익 손실을 감수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이 안보에 보다 현명해져야 할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유사시'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했다가 진짜 '유사시'가 오면 '휘말림과 버림받음의 딜레마'에 봉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청난 딜레마를 사전에 예방하는 방법은 더 늦기 전에 해군기지 건설을 중단하는 것밖에 없다.

* 다음에 이어질 글은 "'윈-윈'의 해법을 찾자"입니다.

필자 정욱식 블로그 '정욱식의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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