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아일랜드 구제금융은 왜 허구인가?

크루그먼 "유럽 재정위기는 지급불능의 문제"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게 되면서 유럽의 재정위기가 또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아일랜드의 사례가 보여주듯 유럽의 재정위기는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가 아니라 빚은 많은 데 갚을 능력은 없는 '지급불능의 문제'라는 진단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재정위기가 유동성 문제라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거나 자체 해결이 안되면 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이라도 받으면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유럽의 재정위기는 근본적으로 부채 위기이며, 한 나라가 부실해지면 다른 곳도 취약해지는 연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해결이 쉽지 않다.

▲브라이언 코언 아일랜드 총리가 25일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재정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미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과 스페인, 그리고 이탈리아 등의 재정위기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스페인의 경제규모는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을 합친 것보다 두 배이기에 유럽재정 위기의 분수령은 스페인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문제는 포르투갈이 수출을 통해 수입을 올려야할 상황에서 포르투갈의 최대 교역 상대국인 스페인도 경기침체에 빠져있고, 포르투갈의 국채를 780억 유로나 보유한 최대 채권국이라는 점이다. 포르투갈의 위기와 스페인의 위기가 서로를 부실을 증가시키는 관계라는 것이다.

이때문에 <뉴욕타임스(NYT)>는 24일 유로존이 아일랜드에 이어 포르투갈까지 구제금융에 나설 수는 있어도,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페인은 총 부채의 5분의 1가량인 1920억 유로를 상환하는 내년에 부채위기의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크루그먼 "구제금융이 어떻게 해결책이 된다는 건지 이해 못해"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8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 아일랜드 정부는 그 대가로 이날 향후 4년 동안 추진할 긴축 재정안을 발표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150억 유로를 줄인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국제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전날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오히려 재정 부담이 한층 가중될 것이라며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종전의 'AA-'에서 'A'로 강등했다.

또한 아일랜드 정부의 긴축재정안이 이 기간 동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평균 2.75%로 예상한 것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S&P는 아일랜드의 향후 2년간 경제성장률은 '제로'에 가까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결국 S&P는 아일랜드가 부채를 갚기 위해 재정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본 것이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근본적으로 지급불능의 문제라고 지적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일랜드가 구제금융을 받게 된 사태에 대해서 시장의 반응이 그다지 충격을 받은 모습이 아니라는 점을 놀라워 하면서, "유럽의 정책당국자들도 여전히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크루그먼 교수는 아일랜드를 비롯한 유럽의 재정위기를 이렇게 비유했다.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사람이 대출금을 상환할 능력이 없을 때 은행이 이 사람에게 금리를 조금 낮춰주거나 상환만기를 연장해주면, 갚아야 할 대출금이 없어지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오바마 정부가 지난해 2월 대출금리 인하 등 대출상환 조건을 완화시켜주는 HAMP(모기지 대출 조정프로그램)를 서브프라임모기지 부실로 주택을 빼앗기는 서민들을 위한 특단의 대책으로 내놓았으나, 결국 시간만 연장했을 뿐 최근 주택압류 사태가 급증하면서 처절한 실패작으로 드러났다.

구제금융 역시 시중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문제는 시장에서는 아일랜드가 스스로 돈을 갚을 능력에 대해 의심하기 때문에 여전히 시중금리는 높다는 것이다. 스스로 갚을 능력이 없다면 돈을 빌려서 갚아야 하는데, 이때는 시중금리로 빌려야 한다.

아일랜드가 결국 시장에서 돈을 조달하게 되면 다시 시장금리는 더욱 높아지는 자기충족적인 악순환이 가동된다. 구제금융은 이런 위기를 단순히 지연시키는 역할에 불과하다.

이때문에 크루그먼 교수는 "나로서는 구제금융이 어떻게 재정위기의 해결책으로 기능한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구제금융은 성공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면서 "아일랜드는 그리스처럼 구제금융으로 당장 시장에서 돈을 빌려야할 처지를 모면했을 뿐, 디플레이션과 스테그네이션으로 더욱 악화된 엄청난 부채의 짐은 여전한 문제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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