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니 "글로벌 금융위기 2단계에 들어섰다"

"유럽 재정위기가 바로 2단계…새롭고 보다 위험한 상황"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난 것일까? 금융위기 전문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루비니 교수는 최근 '혼돈으로의 회귀(Return to the Abyss)'라는 칼럼을 통해 "그리스, 포루트갈, 아일랜드,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2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지난 금융위기가 주로 민간부채 문제로 발생했다면,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부채를 구제금융을 통해 '사회화'하고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막대한 재정투입을 한 결과 위험한 수준의 공공부채와 재정적자로 전환되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 유로존 구제금융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에서 조제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이 연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글로벌 금융위기, 끝난 게 아니라 보다 위험한 단계로 전환됐을 뿐"

루비니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롭고 보다 위험한 단계로 나아갔다"고 경고했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금융위기 사태는, 예를 들어 월요일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는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당국자들이 주말에 구제금융 방안을 긴급히 마련하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베어스턴스, 패니매와 프래디맥, 리먼브라더스, AIG, 월가의 대형은행들 등 민간업체들을 구제하기 위해 이런 상황들이 반복됐다.

금융위기를 이런 상황적 정의로 판단한다면, 지금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유럽연합(EU)와 유로존 정책당국자들은 그리스뿐 아니라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을 위한 구제금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주말을 꼬박 지새우는 마라톤 회의를 한 바 있다.

17일에도 유로존 재무장관들이 모여 구제금융 방안의 세부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였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해 21일 다시 모이기로 하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는 사이 유로화 가치는 달러 대비 4년래 최저치인 1.2 달러 초반대까지 하락했다.

이런 상황전개는 처음에는 민간업체를 구제하는 금융위기 사태가 벌어졌는데, 이제는 민간업체를 구제했던 정부들이 구제대상이 된 것임을 보여준다.

구제금융은 중독성 약물 투입, 갈수록 규모 커진다

금융위기를 구제금융으로 일단 넘길 경우 그 규모는 갈수록 커져간다. 1997~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신흥경제였던 한국은 당시로서는 규모가 매우 큰 IMF 구제금융(100억 달러)을 받았다.

하지만 베어스턴스는 400억 달러, 패니매와 프레디맥은 2000억 달러, AIG는 2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다. 또한 부실자산구제금융(TARP)의 규모는 7000억 달러에 달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이런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일단락된 이후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EU와 IMF가 연합해 내놓은 구제금융 규모는 물경 1조 달러에 달한다.

예전에는 100억 달러 단위만 되어도 막대한 규모라고 했는데, 이제는 1조 달러 단위가 '뉴 노멀'이 된 것이다.

더 이상 구제금융 제공할 수 없는 상황 온다

민간업체들을 구제하던 정부들이 이제 스스로가 구제금융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취약한 정부들에게 구제금융을 제공해주던 나라들도 더 이상 자금을 제공할 정치적 상황이 되지 못할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런 상황이 오면 그때는 누가 자금을 제공할 것인가?

루비니 교수는 "이러한 글로벌 부채의 전개과정은 점점 폰지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재정파탄을 방지할 방법은 세금 인상과 재정지출 축소, 구조개혁 등 긴축정책 뿐이다. 이 방법은 고통스러울 뿐 아니라 단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위축시킬 위험이 있지만,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해 더 큰 위기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다.

문제는 취약한 정부일수록 긴축정책을 추진할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유로존 못지 않게 부채 문제가 심각한 미국과 영국에서도 긴축정책을 위한 정치적 합의는 교착 상태에 빠져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그리스 지원을 결정한 이후 주요 지방선거에서 패배했으며, 일본은 부채 문제의 심각성 자체를 부인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도 위기에 몰린 그리스에서는 대대적인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른바 PIIGS로 불리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긴축정책은 고통스러운 문제가 될 것이다.

이에 따라 루비니 교수는 "위기가 반복되는 경제는 오랫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부채 위기를 구제금융을 투입해 해결하는 방법은 환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약하게 만드는 중독성 약물을 투입하는 것과 같다"고 우려했다.

나아가 그는 "이런 치료 방법은 궁극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바이러스 감염에 더욱 취약하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루비니 교수는 "재정위기는 지출삭감과 세수 증가를 통해 해결할 수밖에 없다"면서 "만일 그렇지 않으면 두 가지 길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처럼 자국 화폐로 부채를 계속해서 불려나갈 수 있는 나라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 그렇지 못한 나라는 부도를 맞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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