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해서 방에 들어가신다."
라고 말할 것을, 그녀는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 저녁 퇴근 괜찮아?"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왜 <괜찮아?>를 넣느냐 하면 자기가 한 말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여간 단어 배열이 엉망인데다 말하는 속도까지 빨라서, 아핀야가 급하게 말하면 나같이 숙달된 조교가 아니면 알아들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엉망인 사람이 굉장히 소극적인데 더 문제가 있다. 좋게 말하면 소극적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겁쟁이라 결정적인 순간에 꽁무니를 뺀다.
아핀야가 다니던 회사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퇴직금을 주지 않는 문제 회사였다. 그 당시는 노동자의 월급에서 매달 얼마씩 공제하여 퇴직금을 적립하는 방식을 썼다.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은 제 돈 내고 제 돈 찾아가는 꼴이었다.
재작년 가을 아핀야를 포함, 퇴직 노동자 3명이 찾아와서 진정서를 써주었다. 그러나 막상 노동부에 출두하는 날에 아핀야는 빠지고 오지 않았다. 나는 바쁘니까 그럴 수 있지, 나머지 두 사람이 있으니까 하나쯤 빠져도 괜찮겠지 하고 문제 삼지 않았다.
어쨌든 회사에서 돈을 안 주고 시간을 질질 끌어 사건은 노동부에서 법원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사장의 재산을 가압류해야 할 단계에도 아핀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가 오지 않으면 가압류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나는 몸이 달아서 전화했다.
"아핀야, 내일 안 오면 <안 괜찮아!> 돈 못 받아! 꼭 와야 돼. 알았지?"
"네."
그녀는 떡 먹듯이 대답했지만 다음날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괴상한 전화를 해왔다.
"나 일 못하면 목사님 당장 겁나 괜찮아? 내일 한국 일하고 싶어. 태국 싫어 가기 괜찮아?"
해석해 보니 이런 뜻이었다.
"목사님, 나 한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지금 당장 태국 가기 싫어요. 나 내일부터 일 못하면 어떡해요?"
아마도 누군가 겁을 주었으리라. "너 한국에서 일 다 하고 싶냐? 까불면 당장 태국으로 보내버린다!"고.
기가 막혔지만 내 말주변으론 그녀를 설득할 수 없었기에 결국 가압류를 포기했다. 덕분에 난 유효한 수단 하나를 잃었고, 그저 세월아 네월아 하며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11개월이 흘렀을 때 회사에서 백기를 들었고 노동자의 통장으로 체불금을 입금시켰다. 태국에 간 노동자들은 고맙다는 전화를 해왔다. 그러나 아핀야는 달다 쓰다 말이 없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흐른 지난 일요일. 상담을 하다가 얼핏 아핀야의 모습이 비친 것 같아 고개를 들어보니 온풍기 옆 오목한 곳에 아핀야가 수줍은 듯 앉아 있었다. 얄밉다기보다는 반가운 마음이 더해서,
"아핀야, 이리 와요."
무려 1년 4개월 만에 보는 그녀. 어색한 미소를 띄고 내 옆에 다소곳이 앉아 있더니 또 괴상한 소리를 했다.
"태국 부아크아 돈 많이 받아 한국 나 쪼금 왜 같이 퇴직 괜찮아?"
해석해보니, 지금 태국에 가있는 부아크아나 나나 비슷한 날짜에 퇴직했는데 왜 태국에 있는 부아크아는 많이 받고 한국에 있는 나는 쪼금 받았느냐는 뜻이었다. 그 말이 그럴듯하여 회사에서 보낸 체불금품 지급내역서를 꺼내 꼼꼼히 살펴보았다.
기가 막혔다.
부아크아는 *2007년 8월 30일 이후에 퇴직하여서 산업연수생 시절도 포함한 퇴직금을 받은 것이고,
아핀야는 2007년 8월 29일에 퇴직하여서 산업연수생 시절의 퇴직금이 없을 뿐 아니라 정식 노동자 시절도 1년이 되지 않아 퇴직금을 전혀 받지 못하고, 그저 월급에서 공제한 퇴직보험료만 돌려 받은 것이었다.
단 하루 차이로 희비가 갈린 셈이다.
쓸쓸히 돌아서는 그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하루만 더 싸우다 나오지!"
*2007년 8월 30일 : 산업연수생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날. 따라서 이날 이후에 퇴직한 노동자는 산업연수생 시절을 포함한 퇴직금 전액을 받았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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