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옛날 못먹을 당시의 방글라데시 같은 사내가 찾아왔다. 비쩍 마른 몸에 커다란 눈이 기묘한 대조를 이루어서 보기만 해도 저절로 동정이 가는 그런 얼굴이었다. 이름은 라조.
그는 불법체류자로 한달치 월급을 못 받았다고 했다. H주임이 말했다.
"불법이면 받기 힘든데. 방글라데시 갈 각오가 되어 있으면 몰라도."
"나 방글라데시 안 가요. 안 가고 받게 해주세요."
"그럼 갈 때 받으세요."
"돈 없어요. 지금 받아야 해요."
"그러면 진정서 써야 하는데."
"진정서 쓰면 노동부 가야 하잖아요. 노동부에 안 가고 받아주세요."
라조와 H주임은 팽팽히 맞서다가 결국 H주임이 손을 들고 말았다. H주임은 발안고등학교 시절에 선도부장을 지내서 누구보다도 선도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라조를 선도하지 못했다. 라조의 고집이 너무나 셌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안강최>라고 해서 안고집, 강고집, 최고집을 치지만 방글라데시 방고집은 좀 더 센 것 같았다.
결국 H주임은 직속상관인 U실장에게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고 비번인 U실장은 짬뽕을 기막히게 잘해서 짬뽕 국물까지 다 먹는다는 유명한 중국음식점에서 남편과 함께 느긋한 점심을 즐기는 중이었다. H주임을 패퇴시킨 라조는 이제 전화로 U실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방글라데시 안 가고 돈 받게 해주세요."
U실장은 같이 식사하는 남편에게 미안해서 중국집 자동문 밖으로 나가서 상담에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물었다. 그러나 라조는 묻는 말에는 전혀 대꾸도 하지 않은 채 20분 동안 자기주장만 되풀이했다.
"나 안가고 돈 받게 해주세요."
지친 U실장도 무릎을 꿇었다.
"알았어요. 내일 와보세요."
전화 통화가 끝났을 때는 먹던 짬뽕이 다 불어서 떡이 되어 있었다. U실장은 평택에서 미군과 한국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 분쟁을 해결해준 유능한 협상 전문가였지만 라조에게는 한 수 접을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라조는 외부의 지원세력을 적절히 활용할 줄도 알았다. 다음날 전혀 모르는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으니까.
"저 라조를 도와주는 교회 목사입니다. 라조 좀 잘 부탁합니다. 아니면 제가 직접 센터로 찾아뵐까요?"
나는 기겁을 하고 말렸다.
"천만에요. 오실 필요 없습니다.
결국 U실장은 별별 곡절을 다 겪으며 라조의 돈을 받아주었다.
먹을수록 냠냠이라고 재미가 났는지 며칠 후 라조가 또 왔다. 이번에는 비자 문제였다. 그는 점점 대담하게 나왔다. 해묵은 숙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는 듯이.
"비자 연장 해주세요."
여권을 보니 그는 3개월짜리 단기 상용(C-2) 비자로 입국해서 눌러앉은 케이스였다. 그는 고집만 잘 부리고 약간의 돈만 쓰면 단기 비자로 대한민국 국적까지 취득할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고집이 자기 것은 하나도 희생하지 않은 채 상대방으로부터 모든 것을 얻어내려는 욕심에서 나오는 것임을 눈치 챘다. 그래서 조용히 물었다.
"비자 기한이 얼마나 지났죠?"
"1년."
"며칠이면 몰라도 1년씩이나? 그건 연장 안되요."
그러나 그 정도로 물러날 방고집이 아니었다.
"벌금 물고 연장한 친구도 있는데요."
옳지! 나는 그 말을 물고 늘어졌다.
"그럼 그 친구한테 연장해달라고 하세요."
방고집은 당황했다.
"아니, 여기선 안되요?"
"친구한테 부탁하라니까."
고집은 우물거렸다.
"정말 안되요?"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안돼!"
그 날로 방고집은 사라졌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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