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병이 나서 야위면 돌아가신 아버지 얼굴이 나온다.
그래서 아버지가 보고 싶을 때는
병이 나기를 기다린 적도 있다.
그러나 적당히 아파야지
너무 아프면 아버지 얼굴은커녕
병원에 갈 생각도 안 난다.
그래도 곧 죽을 거 같자
나에게도 아는 의사가 있다는 생각이 났다.
참사랑의원 김수용 원장!
원래 그는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노동자들을 자상하게 치료해주는 의사다.
그런데 지난 6년 동안 외국인을 하도 많이 데려가서 친하다 보니
나 혼자 멋대로 주치의라고 생각하는 거다.
너무 죽겠어서
"의사가 위대해 보이네요."
하고 아첨을 떨자
"그런 얘기 하실 건 없구요."
무뚝뚝하게 받더니
"샤워기에 온수가 안 나와서."
하고 감기 걸린 이유를 설명하자
"감기가 아니라 과로로 인한 몸살입니다."
하고 잘라 말한다.
하긴 나는 나를 몰라도
그는 나를 알고 있으니까.
이 답답한 세상에 연극 대사라도 소리 높여 읊어야 속이 풀리는 내 못된 성격 때문에 매일 새벽 엄동설한의 산길을 미친놈처럼 쏘다니랴, 말도 안통하고 법도 모르는 애들과 씨름하며 떼인 돈 받아주랴, 꼬박꼬박 주 3회 칼럼 쓰랴, 여기저기 쫓아다니며 직원들 월급 맞춰주랴, 열두 가지로 모양내서 속 끓이는 무작스러운 내 인생을!
주사 맞고, 링거 꽂고, 약 타다 먹었는데
하룻밤 자고나니
씻은 듯 부신 듯 나았다.
진짜 주치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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