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강산사건' 강경 모드

"우리 요구대로 진상조사단 받아야"…과연 통할까?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적당히 해결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천명하자 정부가 곧바로 발을 맞추고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강경한 입장과 북한의 침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건 해결은 더욱 멀어지는 양상이다. 또한 '금강산 사건과 별개'라던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경색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의 심각성 행동으로 보여주겠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24일 "때가 되고 상황이 되면 행동으로 보여줄 것"이라며 북한이 공식적인 유감 표명을 하지 않으면 압박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음을 강한 톤으로 말했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사태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라며 "우리의 요구대로 진상조사단을 받고 그 기회에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현재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면 절대로 (남측이 먼저) 얘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한을 압박할) 여러 가지 방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충분히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되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시간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의 경고는 '미래형'이지만 정부는 이미 강공모드로 돌아섰다. 개성관광 중단 가능성을 시사하고, 대북 물자 제공을 보류했으며, 전교조·민주노총 등 3~4개 민간단체들에 대규모 방북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했다. 한 정부소식통은 "일반적인 협력사업은 몰라도 놀러 가는 게 뻔한 방북은 허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하고 있다"…누가?

정부가 이처럼 서서히 강경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여론은 우리 편'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고위당국자는 "우리 국민 모두 충격을 받고 많은 사람들이 분노한다"라고 거듭 강조, 민심도 정부의 대응을 지지할 것이라는 자신감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이 당국자는 또 "외국 언론들도 정말 충격을 받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놀라고 있다"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국제공조를 할 생각이 없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이 문제를 먼저 꺼내서 '국제공조'가 저절로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그는 최근 북측 인사들이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인사들에게 '금강산 사건에 대해 인민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그러면서 "북한 내부에서 이야기되는 것을 상당히 꺼려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도 관광객에게 총을 쏜 자신들의 행동이 명분 없는 것이었음을 인정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태도가 이러하다면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고, 금강산 사건 역시 해결이 요원해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국내외 여론이 자신들의 편이라고 여기는 정부는 남북관계 파탄의 책임을 북한에 떠넘기며 부담 없이 갈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한 전문가는 "남북관계가 파탄 나도 좋다는 식으로 정부의 입장이 바뀌었다"라며 "처음부터 현장조사 같은 불가능한 요구를 내놓았는데, 그건 우리 정부가 오히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게 하는 것이다"고 평했다.

그는 또 "이번 사건은 남북관계가 좋든 나쁘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서 남북관계를 경색시킨 이명박 정부 때문에 일어났다고 할 수 없다"면서도 "그러나 관계가 좋았다면 해결 과정도 수월했을 텐데, 그런 점에서 사태가 길어지는 데에는 이명박 정부의 책임도 있다"고 지적했다.
▲ 6자 외교장관 회담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장관들. 왼쪽부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 박의춘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외톨이 한국' 가능성 증명한 싱가포르 회담

남북관계의 장기간 단절이 가져올 가장 큰 문제는 변화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이 배제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북한 핵문제가 진전되고 북미·북일관계가 호전되면 한국은 동북아의 외톨이가 되는 반면, 북한 비핵화에 드는 비용만 떠맡게 된다는 '고전적인' 지적은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6자 외교장관회담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은 그같은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자리였다. 정부는 많은 나라들이 금강산 문제에 대한 한국의 노력에 공감을 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외교무대에서 의례적으로 나오는 '공감 표명'을 국제공조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박의춘 북한 외무상을 만나 금강산 문제를 제기했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 대표단은 "그건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외면해 버렸다.

반면 박 외무상과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상은 납북자 문제 등 양자간 현안을 해결하고 관계를 증진하기로 합의했다. 양국관계의 훈풍을 예고한 것이다. 특히 이같은 약속은 박 외무상이 고무라 외상에게 먼저 말을 걸면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남북 접촉과는 분위기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처음으로 북한 외무상을 만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도 "훌륭한 회담이었고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금강산 문제에 대해서는 공감을 표해도 6자회담 프로세스는 그대로 간다는 걸 암시한 것이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비핵화 2단계가 마무리되는 상황에서 큰 틀의 정세를 못 보고 금강산 문제에 집착하면 논의에서 배제되는 건 당연하다"라며 "누구도 한국의 그런 사정을 배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대화 하며 금강산 문제 풀자'…출구론적 해법 우세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명박 정부의 강경 일변도 정책을 우려 섞인 눈으로 바라보는 전문가들은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한 각종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문제를 담당했던 한 전직 당국자는 "강경 발언을 자제하고 당분간 사태를 관망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뾰족한 해법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북-남-현대아산 3자가 책임을 나눠 갖는 식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관광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현대아산이 우선 책임을 져야 하고, 과잉대응을 한 북한도 위상이 높은 당국에서 유감 표명을 한 번 더 해야 한다"라며 "우리 정부도 관리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므로 북과 현대아산이 그 정도의 액션을 취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연철 소장은 "금강산 문제가 풀려야 남북대화를 하겠다는 건 현실성이 없는 얘기"라며 "반대로 남북관계를 진행하면서 금강산 문제를 푸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종의 '출구론'이다.

김 소장은 "남북관계를 잘 해보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입장과 의지가 남북대화 재개의 핵심"이라며 "그것만 있으면 대화 과정에서 금강산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다"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전문가는 "관광객이 금지구역에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는점에서 1차적인 책임은 현대아산에 있고, 과잉대응을 한 것은 북한에 책임이 있으며, 문제가 안 풀리는 것은 현장조사 같은 무리한 요구를 한 남측의 책임도 있다"라며 "이렇게 문제를 국면별로 쪼개서 냉정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존중 입장을 천명할 수 없을 테니 선언 내용을 사실상 이행하면서 특사 같은 걸 보내 상황을 설명하는 방법이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이 역시 '남북관계를 통한 금강산 해결'이라는 출구론적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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