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프로세스'의 페리, 이번엔 '전령사'로 활약

뉴욕필 평양 공연 계기 북-미 물밑 외교전 치열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계기로 교착 상태에 놓인 6자회담 합의 이행에도 훈풍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북미 양국의 전현직 고위 지도자들은 이번 공연을 계기로 서로의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타진하며 치열한 물밑 외교전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

라이스·힐, 페리·그레그 통해 대북 메시지

미국 정부는 뉴욕필의 평양 공연을 계기로 "부시 대통령의 임기중에 북핵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하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북한에 전달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27일 보도했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는 공연이 있던 26일 북한 김계관 외무성 부상, 리근 미국국장 등과 오찬을 함께 하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이같은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VOA>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한은 페리 전 장관과 그레그 전 대사가 전한 메시지를 진지하게 경청했고 진의를 인정했다고 그레그 전 대사는 전했다.

그레그 전 대사에 따르면, 페리 전 장관은 방북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후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장에서 라이스 장관을 만나 협의했고, 그레그 전 대사는 며칠 전 로스앤젤레스에서 힐 차관보를 만나 이 문제를 협의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북한에 미국의 차기 행정부를 상대하는 것은 아마 지금보다 어려울 것이라는 점과 왜 이번 기회가 북한에 최선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설명했다"라며 "(그러나)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과 시리아에 대한 핵기술 지원 의혹 등 몇가지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6일 오찬 모임과 관련해 에번스 리비어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은 "김계관 부상 등과 우리 일행이 만나 북미 문화교류와 양자관계, 6자회담 재개, 핵 신고 방안 등을 논의했다"며 "이번 오찬 모임에서 양측이 눈에 띄는 결론을 내려고 했던 자리는 아니며 북미간 모든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또한 송석환 북한 문화성 부상 겸 조선예술교류협회 회장은 이날 동평양극장에서 페리 전 장관에게 "6자회담이 빨리 타결되도록 노력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 뉴욕필의 공연을 나란히 앉아 관람하고 있는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 ⓒ연합뉴스

北, 뉴욕필 공연 적극적으로 평가

하지만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결국 이것(뉴욕필 공연)은 공연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공연의 정치적 의미와 핵협상과의 관련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러나 톰 케이시 국무부 부대변인은 "우리는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를 지지하며 앞으로도 비슷한 종류의 활동들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혀 문화 공연을 관계정상화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북한의 분위기도 나쁘지 않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이날 "조(북)·미 두 나라 정부의 관심 속에 이루어진 공연은 6자회담의 진전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정세발전의 흐름을 보여주는 사변"이라고 말했다.

<조선신보>는 다른 기사에서도 "공연의 의미는 일반 문화예술행사의 범주를 벗어난다"며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국제정세의 질서재편을 예고하는 사변"이라고 말하는 등 북미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 신문은 페리 전 장관의 참석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6자회담에서 일련의 합의가 이뤄지고 조선반도 핵문제의 직접 당사국인 조·미 쌍방은 적대관계 청산을 위한 실천적 조치를 위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핵논의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 경제, 문화 등 보다 넓은 분야의 양자간 교류의 증대와 상호신뢰의 촉진을 공통과제로 상정했다"고 전했다.

강능수 북한 문화상은 평양에 온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정식으로 초청한다면 북한의 오케스트라가 미국을 방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공개 협연도 예정…'김정일 오나' 촉각

한편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7일 오전 9시 30분부터 1시간 동안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북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실내악을 협연한다.

그러나 북한은 그 후 오전 11시부터 1시간 15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열리는 조선국립교향악단의 공연에 대해 해외 취재진의 접근을 봉쇄할 방침이다.

이 자리는 뉴욕필의 수석 지휘자인 로린 마젤이 지휘를 하고 북한 악단이 연주하기로 되어 있는데, 북한의 취재 제한 조치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문과 관련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뉴욕필 단원과 세계 각국 취재진은 서울 공연을 위해 27일 오후 1시 30분 아시아나항공 특별기편으로 평양을 출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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