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치닫는 北-시리아 핵협조 의혹

"시리아에 특수부대 투입시켜 북한산 핵물질 확보"?

북한 핵시설 불능화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북한-시리아 핵협력 의혹이 북한과의 협상을 못마땅히 여긴 미국 내 강경파들의 음모라는 시각이 우세한 가운데, 이스라엘 공군의 시리아 공습설에 대한 미확인 정보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전쟁소설을 방불케 하는 이런 보도들은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 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확대재생산되면서 오는 26일부터 시작되는 북핵 6자회담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선데이 타임스> "이스라엘 폭격에 북한인들도 숨져"

영국의 <더 타임스> 일요판인 <선데이 타임스>는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지난 6일 시리아 북부지역을 폭격하기에 앞서 이스라엘의 정예부대가 미리 이 지역의 비밀 군기지에 침투해 북한산 핵물질을 확보했다고 23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지휘를 받는 최정예 부대인 '사예레트 마트칼'이 시리아 북부 다이르 아즈 즈와르 근교의 한 부대를 기습해 핵물질을 입수했으며, 자체 정밀조사를 통해 이 물질의 원산지가 북한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그러나 이스라엘 요원들의 침투 시기나 이들이 입수한 물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이에 앞서 이스라엘 정보당국은 수개월의 첩보활동을 통해 다이르 아즈 즈와르에 북한인들과 북한산 핵물질이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이 내용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까지 보고됐지만, 미 정부는 명확한 증거를 요구하는 입장이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사예레트 마트칼 부대의 침투 작전으로 확보한 물질이 북한산인 것으로 밝혀졌고 미국은 그제서야 이스라엘의 폭격을 허락, 결국 시리아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북한과 중국의 외교관들은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자들과 군 과학자들이 상당기간 시리아인들과 함께 일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번 폭격으로 북한인 여럿이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문은 이어 지난주 시리아 관리들이 평양을 방문한 것도 이 사태에 대한 두 나라의 대응책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시리아 집권 바트당의 고위 관료인 사이드 엘리아스 다우드)가 22일 평양에서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났다고 전했다.
▲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 전 특수부대를 투입시켜 핵물질을 입수하는 작전을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가운데)이 지난 19일 예루살렘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오른쪽) 및 이스라엘 군 사령관(왼쪽)과 함께 담소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그러나 이 신문은 이 같은 정황에도 불구하고 더욱 중요한 점은 이스라엘이 입수한 물질의 정확한 특질이나 시리아의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점들이 남아있다고 강조해, 소식통들의 전언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우선, 북한이 6자회담에 나선 상황에서 시리아가 북한 핵장비들을 숨겨주는 것인지, 또는 시리아가 핵탄두를 장착한 스커드 미사일 무장을 원했는지, 아니면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 대사의 주장처럼 이 물질들의 최종 목적지가 이란인지 등에 대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신문은 또 시리아와 북한의 핵협력이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도 분명치 않다고 지적했다.

<선데이 타임스> 스스로도 신빙성에 의구심

북한-시리아 핵협력설은 <뉴욕타임스>가 지난 12일 "이스라엘 관리들은 북한이 핵물질 일부를 시리아에 판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에, 이들 국가에 거의 남지 않은 핵물질을 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는 미 국방부 관리들이 말을 보도한데서부터 시작됐다.

이어 미 언론들의 후속 보도가 잇따랐는데, 지난 3일 북한 선박이 시리아에 입항해 핵 관련 물질이나 장비를 시리아에 넘겨줬고 그에 따라 지난 6일 이스라엘 공군기가 시리아의 핵시설로 의심되는 곳을 공습했다는 게 요지였다.

이에 대해 앤드류 셈멜 미 국무부 핵확산방지 담당 부차관보 직무대행은 지난 14일 시리아가 "비밀 공급자들"로부터 핵 장비를 "획득했을 것"이라며 "(시리아에) 북한 사람들이 있고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말해 의혹을 키웠다.

그러나 이후 이 의혹에 대한 보도들은 애초의 보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과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관련 발언을 내놨지만 의혹 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뿐 의혹의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했다.

"보도 사실이라면 시리아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겠나"

이처럼 신빙성이 의심되는 보도에 대해 미국 내 전문가들은 깊은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 (☞관련 기사 : 北-이란-시리아 '3중살' 노리는 네오콘의 음모)

대표적으로 미국의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의 조지프 시린시온 선임연구원은 지난 17일 미 외교정책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의 인터뷰에서 "근거없는 얘기(nonsense)"라며 "이번 의혹은 (미국) 정부 내 일부 관리들이 미국 주류언론 유력기자들에게 이미 존재해온 정치적 의제를 부각시키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선별적으로 제공한 데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시리아 전문가로 웹사이트 <시리아코멘트>를 운영하고 있는 조슈아 랜디스 오클라호마 대학 교수는 "볼턴은 미국이 북한 사람들을 믿음으로써 북한에 패배했다고 선언한 것에 불만을 품은 이들을 대표하고 있다. 그들은 북한과의 협정을 폐기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볼턴 전 유엔 대사는 지난달 31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북한-시리아-이란 핵·미사일 협력설을 주장했었다.

조슈아 교수는 이스라엘이 시리아 핵시설 공습 전에 특수부대를 투입해 북한산 핵물질을 확보했다는 <선데이 타임스>의 보도에 대해서도 "시리아의 지인들은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아사드(시리아 대통령)가 즉시 최고위급 사령관들을 파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논평하며 보도가 터무니없는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2004년부터 나온 레퍼토리"

시리아의 정치분석가인 사미 모우바예드는 21일 <아시아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북한 얘기는 새로운 게 아니다. 그것은 볼턴이 미 국무부 군비통제 차관이었던 2004년 시리아가 핵무기를 들여왔다고 주장하던 때부터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모우바예드에 따르면 당시 볼턴 대사의 주장이 이어지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시리아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으나 시리아가 핵개발을 하고 있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은 2004년 6월 26일 "우리는 왜 우리가 시리아에 대해 우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어떤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모우바예드는 또 과거 유엔 이라크 사찰단의 일원이었던 데이비드 올브라이트는 시리아에 대한 볼턴의 주장에 대해 "실체가 없다"는 것을 IAEA가 확인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올브라이트는 현재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으로 과거 북한에 수차례 방문하면서 영변 핵시설을 직접 시찰하기도 한 인물이다.

시리아 공습을 전후해 보여주고 있는 이스라엘의 태도도 이스라엘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는 공습이 있은지 2주도 지나지 않았던 지난주, 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아무 조건 없이 평화 협상을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양국의 갈등이 되고 있는 골란고원 문제에 대해 협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시몬 페레스 대통령도 18일 "우리는 시리아와 대화할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또 공습이 있기 직전 골란고원에 있는 군대를 네게브 사막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이해 못할 행동도 보였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 대표는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시리아 국경을 넘기 몇시간 전 시리아와의 전쟁이 촉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국경에 배치된 병사를 줄일 것이라는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메시지를 전달했었다.

모우바예드는 이에 대해 "이스라엘 공군기들이 시리아에서 무엇을 했는지 설명하기 어렵다"고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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