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님, 차라리 국회를 없애지요

[손호철 칼럼] 국회의원수 축소가 한국정치의 해답인가?

진부한 표현이지만,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그렇다. 안철수 후보가 정치참여를 선언하고 나섰을 때, 개인적으로 여러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민심과 이반된 한국정치의 문제점, 이에 대비되는 그의 공익적 리더십 등을 이유로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국회의원 정원 축소, 중앙당 폐지 등을 골자로 며칠 전 발표한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듣는 순간 "혹시나"했던 기대감은 "역시나"였다는 실망감으로 변하고 말았다.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한마디로 한국정치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는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무지의 결과이다. 이 점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후보가 안 후보의 개혁안에 대해 "좀 더 깊은 고민이 있으면 좋겠다"고 지적한 것은 정곡을 찌른 것이다. 아니 안 후보 주변에 몰려 있는 학자들의 수준, 그리고 안 후보의 지적 능력을 고려할 때, 안후보가 자신의 개혁안이 문제가 있는 무지한 안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은 단순히 국민들의 반정치 정서에 영합하기 위한 극단적인 포퓰리즘, 즉 '극표퓰리즘'의 표현이라고 밖에는 판단되지 않는다.

ⓒ연합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국회의원 수문제로 국한시켜 논의해보자. 안 후보는 미국과 일본을 예로 들어 한국의 국회의원 수가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이는 세종대왕과 장면 정부를 예를 들어 왕정이 민주정부보다 유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연방제에 양원제 국가로 우리와 단순비교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왜 하필 비교대상이 미국과 일본인가?

정치학계에는 인구 등 여러 변수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우리의 국회의원수가 적정 수준보다 적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 예로, 인구, 국내총생산, 정부예산, 공무원 수 등을 기준으로 우리가 속해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들의 수준으로 평균을 내면 국회의원수를 379명으로 늘려야 한다는 연구가 나와 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안 후보가 국회의원 수의 축소를 경제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즉 안 후보는 국회의원을 100명 줄이면 2000억-400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안 후보식의 경제논리를 받아들이더라도, 국회의원이 제 기능을 해 불필요한 사업을 막고 국고낭비를 막으면 수조원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이지, 2000억-4000억을 절약하자고 국회의원수를 줄이자니 충격적인 주장이다.

안 후보에게 다음 기자회견을 위해 좋은 아이디어를 빌려주고 싶다. "안 후보님, 뭐 하러 국회위원수를 줄입니까. 아예 국회를 없애지요. 그러면 1조원 이상 절약해 복지재원이 크게 늘어날 텐데요. 그리고 국회대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씨가 여론조사를 해 그 지지율만큼 국회의원 의석수에 해당하는 투표권을 가지고 국정을 결정하면 예산을 대폭 절약하고 얼마나 경제적인가요."

심상정 진보정의당 대통령 후보가 잘 지적했듯이 "정치가 민심과 유리된 채 동맥경화 상태가 된 것은 국회의원 수의 문제가 아니라,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거대 양당 중심의 닫힌 정당체제 탓"이며 "이런 폐쇄된 독식 구조의 정당체제를 그대로 두고, 의원 수를 아무리 늘리고 줄여봐야 정치의 병목현상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 주목할 것은 안 후보가 문재인 후보와 마찬가지로 비례대표의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맞다. 안후보가 지적했듯이, 한국정치개혁의 핵심과제중 하나는 비례대표를 확대하는 것이다. 나아가 사표를 줄일 수 있는 독일식 선거제도로 나가는 것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수를 200석으로 줄이면서 동시에 비례대표를 늘리는 것이 가능하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안 후보식의 주장대로 라면 국회의원수를 300석에서 200석으로 줄이고 200석 중 비례대표를 예를 들어 100석으로 늘려야 하는데, 이처럼 지역구의원수를 현재의 40% 수준으로 줄이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

이와 관련, 우리의 국회의원수의 변화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국회의원 수는 원래 299명이었는데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적 고통분담 분위기에서 그 수를 273명으로 줄였다. 그러나 이를 2004년 다시 시민사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한 정치개혁특위를 통해 299석으로 늘렸다.

당시 시민단체들과 학계는 독일식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강력하게 주장했고 정치권은 비례대표 확대에 동의하면서도 그럴 경우 지역구 의석이 줄어들어 정치개혁안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어렵다는 난색을 표명했다. 결국 우리의 국회의원수가 OECD 기준에 따르면 적다는 사실과 관련해, 국회의원수를 다시 늘려 299명으로 원상복귀하되 증가하는 의석을 비례대표로 한다는 타협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리고 전국구에 대한 위헌판결까지 더해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고려하면, 국회의원수를 줄이자는 것이 좋은 득표 전략일지는 모르지만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여러 객관적 변수들을 고려할 때, 오히려 우리는 국회의원수를 늘려야 하며 늘리는 만큼을 비례대표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정서상 그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국회의원수를 현 수준으로 유지하며 비례대표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

정작 걱정은 두 가지이다. 우선 앞에서 지적했듯이 아니 안 후보 주변에 몰려 있는 학자들의 수준을 고려할 때, 이들이 국회의원 수를 줄이자는 무지한 안을 건의했으리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안 후보가 참모들과 상의없이 독단적으로 그 같은 안을 발표했거나 아니면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를 묵살하고 국회의원수 축소안을 발표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따라다니는 '불통'이미지가 박 후보만이 아니라 안 후보에게도 적용된다는 불길한 징후이다.

뿐만 아니라 안 후보의 정치개혁안에 대해 문재인 진영만이 아니라 시민단체, 학계 등 사방에서 터져나온 비판에 대해 안후보측이 보여준 반응이다. 이에 대해 "기득권층의 반발"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국민과 기성정치의 괴리를 다시 느꼈다"고 날을 세우고 나서는 데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섬뜩함을 느낀다.

안 후보는 정치초년생이다. 따라서 한 문제에 대해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러 비판들에 귀를 열고 잘못 생각했던 것이 있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정정해 나가는 열린태도를 가질 것인가 아니면 민심을 내세워 비판에 귀를 닫고 '안불통'으로 나갈 것이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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