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군부, 1930년대 입헌군주제 확립 이래 최대 정치실세"

박인규의 집중인터뷰[09/25] 외국어대 태국어과 이병도 교수

안녕하십까? 박인귭니다. 지난 19일 밤 태국 군부가 주도한 무혈 쿠데타를 푸미폰 국왕이 공식승인하면서 태국정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습니다. 부정부패와 권력남용 등으로 지난 4월 국왕에게 사임을 약속했던 탁신 친나왓 총리... 그러나, 한달 만에 다시 복귀하면서 국민적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결국 쿠데타에 의해 몰락하게 됐습니다.

한편, 표면적으로는 국왕의 승인까지 얻으면서 성공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태국 군부의 쿠데타... 그러나 현재 태국은 탁신세력에 대한 숙정작업이 한창인데다 정권전복으로 어수선하다고 하는데요 오늘 박인규의 집중인터뷰에서는 한국 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이병도 교수를 초대했습니다. 쿠데타의 원인을 제공한 탁신은 누구이며, 그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가? 1932년 근대화 이후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난 태국의 정치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앞으로 과도정부를 이끌 새 총리 선출을 앞두고 태국의 정치일정은 어떻게 될 것인가? 오늘 박인규가 주목한 이 사람은 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이병도 교숩니다.

이병도 교수는 1960년 충북 영동 출신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아주지역 연구로 정치학 석사, 국제관계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태국 국립 쏭클라 대학교 한국어과 교환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태국어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박인규 : 19일 밤에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가 놀랐는데요, 아무래도 태국에 아는 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 아직도 많이 어수선한가요?

이병도 :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쿠데타가 발생한지 며칠이 지났고, 또 쿠데타를 일으킨 세력들이 차기 정부 구성을 위한 준비단계로 새 과도총리를 아마 금주 내로 임명하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박인규 : 예상보다는 빨리 정리돼 가는 분위기군요.

이병도 : 네. 이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직후에 2주 내에 약속한 사항이라 이렇게 빨리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박인규 : 2001년도에 집권했던 탁신 총리는, 제가 알기로는 선거를 통해 연임에 성공한 태국 최초의 지도자고 굉장히 인기가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우선 탁신 총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이병도 : 전직 경찰 출신입니다. 경찰을 은퇴하고 1980년대에 컴퓨터 부품을 하다가 친그룹을 세우면서 태국의 이동통신이나 케이블TV 시장을 차례로 석권하면서 급성장해서 태국 최대의 정보통신 재벌로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그 이후 1998년에 타이락타이당을 창당하면서 정계에 뛰어들었죠. 그리고 창당한지 3년이 지난 총선에서 선거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과반수에 근접하는 의석을 차지했고, 또 4년 동안 운영하면서 태국 최초로 임기를 채운 총리입니다. 그 이전에는 임기를 제대로 채운 총리가 없었죠.

박인규 : 집권 당시에 태국의 하층민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높았다고 하던데 어떤 정책으로 인기를 얻었죠?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이병도 : 이건 탁신이 선거 전부터 선거 유세에서 주장한 것들인데요, 탁신은 소위 포퓰리즘.. 즉 대중영합주의와, 자신이 기업에 있었을 때의 기업경영철학을 정치에 접목해서 외환위기에 빠졌던 태국의 경제를 2년 앞당겨서 2003년도에 졸업했고 집권 1기에 경제성장률을 약 6.5% 올린 상당히 업적이 많은 분이죠.

박인규 : 그랬는데 갑자기 몰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부정부패입니까?

이병도 : 탁신이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의 리더십이 점차 독단적인 권위주의로 흘렀다는 데에 문제가 있었죠. 특히 중산층과 언론, 의회 등 보수세력들이 식상해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언론탄압을 가했고, 이것은 국민..심지어 국왕의 분노까지 삽니다. 또 2004년 초부터 시작된 남부 무슬림 지역에서 빈번히 발생된 유혈사태도 아주 초강경대응으로 응수함으로써 국민적 불안감을 조성했고, 또 역대 어느 정권도 손대지 못한 마약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과정에서 약 2천여 명이 처형당하면서 인권과 관련한 국제문제가 대두된 적이 있었죠. 이런 것들은 간접적인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직접적으로는 탁신의 부정부패를 들 수 있습니다. 이미 집권한 2001년 8월 태국의 반부패위원회로부터 재산공개 누락혐의로 헌법재판소에 고소를 당해서 벌써 그때 순수성과 권위에 손상을 받은 경험이 있거든요. 그리고 2005년에 들어서 측근들, 특히 보건장관의 수뢰혐의로 인한 구속, 부인의 소득세 탈루의혹, 신공항 검색대 폭발물탐지장치 도입 수뢰의혹, 그리고 여러 가지 부정부패가 많이 터지면서 탁신을 위기로 몰아갔습니다.

박인규 : 정치를 좀 독선적으로 운영하고 본인과 측근의 부정부패가 말하자면 몰락을 불러온 요인이군요. 사실 물러나야 한다는 국민들의 데모도 있었고 4월에 국왕에게 물러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이병도 : 약속했었죠. 직접적인 계기는 2006년 1월에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고, 이때부터 국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탁신에 대해 반감을 갖기 시작했거든요. 주식매각 액수가 상당히 컸죠. 소득세의 약 30%를 내지 않았으니까.. 그러다 태국의 정정이 반탁신세력과 탁신세력으로 나뉘어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니까 국왕이 결국 개입해서 탁신을 불러다 사퇴를 종용했죠. 국왕과의 면담에서는 분명히 사퇴한다고 약속했는데 한 달 지난 이후에.. 소위 말해서 올해가 국왕 즉위 60주년 기념이거든요. 이걸 계기로 탁신 본인이 주도해야겠다고 국무회의를 주도한다는 명분하에 5월에 복귀하면서 다시 총리의 직무를 수행해 나갔죠. 이런 것들이 바로 국민들의 원한을 사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아닐까 합니다.

박인규 : 4월에 국왕에게 사임을 약속했으면 지켜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안 지켰으면 다른 야당에서 지키라고 압박을 가할 것 같은데, 그런 것도 없이 복귀를 하고. 물러나는 것도 정치세력에 의한 합법적인 몰락도 아니고 왜 군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는가.. 나름대로 특수한 이유가 있었겠죠?

이병도 : 탁신이 사임하지 않고 정계에 슬그머니 복귀하면서 이때부터 사실 태국 정치권에서는 쿠데타 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4개월 만에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결국은 탁신이 사임하지 않았다는 것에 국민들이.. 소위 말해 이건 국왕에 대해서 불경죄 아니냐. 이런 것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탁신의 이러한 행동이 태국 정치권의 도덕성, 왕에 대한 불경죄, 또 이런 것들이 군부의 반감을 사지 않았는가. 이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4월에 약속한 대로 물러났다면 탁신은 태국 정치사에서 새로운 뭔가를 시도한 사람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겠네요.

이병도 : 그렇죠. 아주 명예롭게 남아있을 수 있었고, 태국은 올 10월 15일로 예정돼 있던 총선을 무사히 치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마 민주주의가 한 단계 더 발전될 수 있는 기반이 됐을 텐데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맞고 말았습니다.

박인규 : 외국의 언론보도를 보면, 그런 부정부패와 독단도 중요한 원인이지만 탁신의 독주가 말하자면 태국의 전통적인 엘리트들의 심기를 거슬렸을 뿐 아니라 이해관계까지도 좀 침해했다는 분석도 있는 것 같아요.

이병도 : 그건 아까 말씀드렸듯이 서민들을 위한 대중영합주의 정책을 펴오면서 군부와 의회, 야당, 언론, 국왕.. 태국의 리더십이 발휘될 때는 다섯 가지 기둥에 의존한다고 합니다. 국왕, 국민, 야당, 언론, 군부까지. 그런데 탁신이 집권하면서 어느 기둥 하나에도 의지하지 못했거든요. 가장 의지한 게 국민들인데 2006년 5월 초 부정부패 사건이 터지면서 국민들도 등을 돌리기 시작하고 탁신은 어느 기둥 하나에도 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아마 이런 것도 쿠데타가 일어나게 된 배경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인규 : 다섯 개의 기둥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렇다면 제가 보기에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국민이나 야당의 요구에 의해서 탁신이 물러났을 때 가장 좋은 전통이 세워지는 건데.. 왜 군부가 또.. 이번 군부쿠데타는 91년도 이후에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해요. 군부가 태국에서는 아직 엄청난 영향력이 있나보죠?

이병도 : 군부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사실 태국이 1932년도에 정치제도가 바뀐 이후 약 60여 년 동안 군사정부 전통을 갖고 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법이나 제도적으로 군부가 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차단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현실정치에 있어서 이 군부의 영향력을 무시 못하고 있죠.

박인규 : 1932년부터 1992년까지는 말하자면 군부가 정치를 좌지우지했던 시기라는 말씀이신데, 그건 나름대로 특수한 배경이 있는 모양이죠?

이병도 : 1932년도 입헌혁명 자체가 군부, 소위 엘리트 주도 하에서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그 이후 정치체제가 국민의 손아귀로 가지 못하고 권력의 주체가 당연히 소수 엘리트.. 군부의 손아귀로 넘어갔죠.

박인규 : 전제군주제를 무너뜨리고 입헌군주제로 가는 변화를 일으킨 주역이 바로 군부다.

이병도 : 군부와 민간관료인데, 처음에는 그 둘이 관계를 유지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갈등을 일으켜서 결국은 군부가 민간을 축출해내면서 정권을 잡는 행태가 계속돼 왔죠.

박인규 : 군부와 함께 지금 태국정치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으로 국왕을 꼽는 것 같아요. 국왕의 정치적 역할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병도 : 태국은 1932년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면서 국왕은 명목상 군주로서 통치는 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국가통합의 구심점으로 존재하고, 다만 헌법 제 7조를 보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왕이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애매모호한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왕의 정치개입 근거로 활용할 수 있는 소지는 있습니다. 즉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국가의 안보상황이나 국가가 위기해 처했다고 판단될 때 국왕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도 국왕이 현실정치에 개입할 수 있는 소지는 많습니다.

박인규 : 사실 동남아지역은 90년대 이후로는 모든 정치가 상당히 안정돼서 쿠데타가 별로 안 일어났는데,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이번 쿠데타를 인정할 수 없다. 계속 가면 경제원조를 끊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미국의 그런 태도가 앞으로 태국의 정치에 영향을 미칠까요?

이병도 : 지금 15년 만에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는데, 지금 21세기 아닙니까? 아직도 군사쿠데타에 의해서 헌정질서가 중단되는 나라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태국은 미국과 굉장히 우방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그래서 아마 미국의 반응도,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주역들이 약속대로 2주 내에 새로운 과도총리에게 모든 정치일정을 넘기지 않고 계속 정권을 잡는다면 미국으로서도 아마 다른 조치를 취하게 되겠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마 2주 내에, 약속한 대로.. 이건 또 국왕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새 과도 총리에게 일정을 넘기면 미국도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는 않을 거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인규 : 지금 실권을 쥐고 있는 군부가 앞으로의 정치일정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말씀이시죠? 지금부터는 태국에서는 왜 이렇게 군부쿠데타 많이 일어나며 앞으로 군부쿠데타 이후 태국의 정치일정은 어떻게 전개될지 말씀 나눠보겠습니다. 32년도에 태국이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이후에 모두 19번의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평균 3,4년에 한 번씩인 셈인데..

이병도 : 평균 3.5년에 한 번 꼴로 일어났습니다.

박인규 : 아까 입헌군주제를 도입한 주도세력이 군부다 보니 그렇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래도 쿠데타가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도대체 왜 그렇습니까?

이병도 :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1932년 입헌군주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주도세력이 군이었거든요. 그리고 태국은 그 이후 형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였지만 태국 정치에서 군부세력은 약 60년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두 개의 TV방송국을 육군이 소유하거나 통제를 하고 있죠. 민간방송을.. 이 외에 기업에 대한 영향력도 막강합니다. 일례로 태국의 전기나 철도공사, 항공사도 군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태국의 육군사령관이 수도권 일대의 육군, 해군, 공군, 경찰 등 모든 부대를 지휘할 권한을 가진 지휘체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든지 쿠데타를 쉽게 모의할 수 있는 요인이 되고 있죠.

박인규 : 태국 군부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정치나 사회 전체에서 많은 힘을 갖고 있군요?

이병도 : 그리고 1997년 이전까지는 상원의원의 약 3분의 2가 전직 군 출신이거나 현직 군인이었습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그 정도로 군의 정치개입이 아주 컸습니다.

박인규 : 우리도 쿠데타를 두어 번 경험했지만 한국과는 쿠데타의 양상이 좀 다른 것 같아요.

이병도 : 쉽게 말씀드리면, 쿠데타가 일어나면 태국 국민들은 '아 또 일어났구나..' 하죠. 우리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그런 차이가 있죠.

박인규 : 지금 2주 안에 현 군부는 손을 떼겠다고 했는데, 2주 안에 가능합니까?

이병도 : 쿠데타가 일어난 이후 군 수뇌부가 탁신의 측근세력을 연금시켰고, 이 중에서 일부 탁신의 추종자들이 해외로 많이 도피했습니다. 또, 아마 오늘로 압니다만 탁신에 대한 부정축재조사 특별위원회가 가동돼서 그 동안의 부정부패를 조사하니까 곧 드러나게 되겠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무래도 빨리 과도총리를 임명해서 국왕의 재가를 받는 거겠죠. 그래서 새 과도총리가 임명되면 군부는 본연의 업무로 돌아가고 모든 국정운영은 새 과도총리가 중심이 돼서 다시 선거날짜를 잡고, 또 선거를 치루면 새로운 정부가 구성돼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인규 : 군부에서 네 명의 후보를 제시한 걸로 아는데 어떤 분들이죠?

이병도 : 대법원장도 있고, WTO 사무총장이었던 스파차이 등 네 분이 있는데, 지금 태국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해 보면 대법원장 쪽에 무게가 많이 실리고 있습니다.

박인규 : 총선을 거치지 않고 군부가 추천하는 사람 중에서 국왕이 지명하는 겁니까?

이병도 : 그렇죠. 그래서 국왕의 인준을 받고, 이 사람은 과도총리로서 새 총선이 실시될 때까지만 임무를 수행하죠.

박인규 : 말하자면 정부의 권력을 합법적으로 넘기기 위한 과정을 관리하는... 총선 날짜가 잡혀 있나요?

이병도 : 쿠데타세력들이 1년 이내에 하겠다고 하는데, 지금 태국에서 반대세력 측에서는 1년이 너무 길다. 6개월로라도 해라. 빨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만 어쨌든 정부도 안정되고 경제도.. 과도총리가 국정을 계속 운영하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거든요. 제 개인적인 의견도 빨리 총선을 치러서 새로운 민간정부가 구성되는 게 태국의 정치나 경제발전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을까.

박인규 : 쿠데타가 일어나고 나서, 아주 소수긴 하지만 이 쿠데타는 불법적이다.. 그런 시위도 있었던 걸로 아는데 그런 국민들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반영이 안 되는 모양이죠?

이병도 : 그렇죠. 그리고 쿠데타가 발생되고 이틀 후 학생들이나 일부 지식층 사이에서 쿠데타가 비합법적이라고 시위를 벌인 걸로 아는데, 이에 대해서 군이 모든 정치활동을 중지하라고 전국적으로 공표했습니다. 그래서 향후 새 총리가 들어설 때까지 반대집회 같은 것은 금지돼 있기 때문에..

박인규 : 탁신 전 총리가 굉장히 부자였는데, 이른바 재산환수도 가능할까요?

이병도 : 이건 아까 말씀드린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사실들이 밝혀지면 바로 환수되겠죠.

박인규 : 실제로 그런 전례가 있습니까?

이병도 : 그런 전례는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인규 : 탁신총리의 지난 5년간의 정치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문제가 있으니까 쫓겨났겠지만 그래도 공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겁니까?
▲ ⓒkbs 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

이병도 : 나름대로 공적은 있었죠. 말씀드렸듯이 역대 총리와는 달리 하층민들에 대한 여러 가지 복지정책을 폈고, 기업마인드를 정치에 접목해서 국가의 경제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것은 상당히 평가받을 만하죠. 다만 이 과정에서 야당이나 언론, 국민, 중산층, 국왕 등의 세력들을 어우르지 못하고 독선적으로 흘렀다는 데서 아무래도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박인규 : 탁신 전 총리가 문제가 많았다고 해도, 그 사람의 권력을 빼앗는 과정이 쿠데타라는 무력을 동원한 건 사실 좀 문제가 있는 거 아닙니까?

이병도 : 저도 동의하는데요, 일단 방식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 전 세계에서 쿠데타를 법으로 용인하는 나라는 없습니다. 설사 쿠데타가 성공했다고 해도 불법이 합법이 되지는 않습니다. 이때문에 민주주의 후퇴라는 서방의 비판에 일부 학자들은 태국식 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 이건 태국식이다라고 하는데 이것도 제가 생각하기에는 설득력이 없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또 온 국민의 존경을 받는 국왕이 쿠데타를 추인했으므로 현실을 좀 더 너그럽게 인정해야 된다는 논리를 펴지만 이것도 역시 태국식이니까 가능한 거 아닌가 생각되구요. 우리가 과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쓴 적이 있었는데 이 한국식이라는 글자를 떼는 데에도 굉장히 오랜 시일이 걸렸거든요. 아마 이런 차원에서 볼 때 태국도 태국식, 태국적이라는 말을 떼는 데에 좀 시일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건 군부가 헌정질서를 무력을 파괴시키고 중단시킨 것은 어쨌든 태국의 민주주의 발전에 크게 역행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박인규 : 혹시 이번 태국의 무혈쿠데타가 다른 동남아국가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없습니까?

이병도 :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빨리 수습되고 안정이 되면, 과도총리가 맡아서 국정운영을 하게 되면 곧바로 정상화될 수 있는 게 또 아까 말씀드린대로 태국식 방식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박인규 : 탁신이라는 정치가도 나름대로 태국을 위해서 뭔가를 했지만 독단적으로 흐른 게 문제였고, 그걸 또다시 군사력으로 몰아낸 것도 문제가 있었고. 태국으로서도 어떤 국민들의 힘, 피플파워를 키워가는 게 과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오랫동안 외세의 침입을 받지 않은 나라로서 태국이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안정되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박인규의 집중인터뷰〉는 매주 월-금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3시까지 KBS 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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