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황우석-박기영 '황금박쥐'들에 대한 추억

[기자의 눈] 학문적 '불감증'과 독특한 '명예회복'

정부 내의 비공식적인 황우석 박사 지원모임이었던 '황금박쥐' 클럽 멤버 중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학자로서의 연구윤리 논란에 시달리다 낙마했다는 점이다. 우여곡절 끝에 2일 사의를 표명한 김병준 교육부총리는 황우석 박사, 박기영 전 정보과학기술보좌관에 이어 자신의 논문에 발이 걸려 넘어진 세 번째 '황금박쥐' 멤버가 됐다.

황금박쥐 세 멤버의 공통점

박기영 전 보좌관과 김 부총리의 낙마 과정은 놀랍도록 흡사하다. 박 전 보좌관은 사이언스 논문의 연구 내용에 별달리 기여한 바 없이 공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드러나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김 부총리는 논문 표절 의혹에 이어 2년 전에 등재학술지에 올렸던 논문을 다시 교내학술지에 올린 중복 게재 문제가 논란이 됐다. 모두 연구 윤리, 학자적 양심의 마지노선을 넘어선 것이 발단이었다.

여론은 이를 용인하지 않았지만 청와대가 끝까지 감싸기로 버틴 것도 유사하다. 지난해 말 박 전 보좌관을 경질하라는 비등한 여론 앞에서도 청와대는 계속 그를 감쌌고 해를 넘긴 1월 23일에야 그의 사표를 수리했다.

'학자로서의 양심'에 주목해 경질하라는 여론을 외면하고 끝까지 제 식구를 감싼 청와대의 태도는 김병준 파동에서 고스란히 반복됐다. 청와대는 야4당을 비롯해 여당 내에서까지 사퇴론이 나올 때조차 '김병준 구하기'에 전념했다.

국정의 한 영역에 적지 않은 누를 끼치고 이들이 물러났음에도, 청와대와 여당의 '우군'들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는 것 역시 판박이다. 청와대는 박 보좌관의 사표를 수리하면서 "박 보좌관이 공식 업무 수행에 지장을 느껴 사표를 제출해와 본인의 뜻을 존중해서 처리하게 됐다"며 '박 전 보좌관이 잘못한 것도 없고 청와대도 책임을 물을 의사가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전 교육부총리의 자진사퇴 표명을 대하는 열린우리당의 반응은 박 전 보좌관이 사퇴할 때의 청와대보다 한걸음 더 나아갔다. 여당은 2일 김 부총리가 사퇴 표명을 하자 즉각 "어제 있었던 교육위에서 학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한 후에 대통령과 당에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용단을 내린 것"이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긴 것은 김병준 부총리와 황우석 박사의 공통점이다.

황 박사는 지난 1월 "유영준 연구원이나 미즈메디에서 파견된 박종혁 김선종 연구원이 나와 강성근 교수를 완벽하게 속이고 실험결과를 제출한 것으로 확신한다"며 사실상 논문 조작 책임을 연구원들에게 전가했다. 김 부총리도 실무를 맡은 박사과정 연구원이 실수를 한 것 같다며 중복게재의 책임을 어물쩍 넘어갔다.

김 부총리가 "전문가들에 의해 평가돼야 할 하나하나가 사회부 기자들에 의해 폭로되고 사실 규명이 될 틈도 없이 여기까지 몰려왔다"며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과 황우석 교수가 "전문가도 아닌 언론의 문제제기는 믿을 수 없다"고 했던 것도 꼭 닮은 꼴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와대가 '황우석 사태'와 '김병준 사태'를 타개하는 방식에서 논란의 초점을 은근슬쩍 개인화했다는 것이다. 사태가 한창 전개되는 동안 청와대가 보여준 어정쩡한 태도는 황우석 박사 연구에 들어간 막대한 정부지원금의 적절성 논란, 김병준 부총리를 통해 드러난 인사정책의 난맥상 등을 모두 곁가지 얘기로 치부하고자 하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반면 이렇게 떠밀려 물러난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퇴진을 '영웅적 용단'으로 미화했다. 황 박사는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면서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는 대한민국의 기술임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국민 여러분께서 반드시 이를 확인하실 것"이라고 했다. 김 부총리는 사임 직전 노 대통령을 직접 만나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고 싶지 않다"고 '정치적 결단'을 부각시켰다. 모두 '억울하지만 물러난다'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청와대의 개인화와 두 사람의 책임회피, 그리고 뒤얽힌 진실공방 속에 엄밀히 따지자면 문제의 시발이자 본질인 '학자로서의 양심'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물론 '국민적 사기꾼'이 된 황 박사에 비해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일말의 동정을 받고 있는 김 부총리는 성공한 편이다. 하기에 김 부총리가 자기 정당화를 위해 대학 사회 전반을 왜곡시킨 부분은 비록 그가 물러난 후라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으로 남아 있다.

학자적 양심을 저버리고 명예회복?

김 부총리는 지난 18일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초중고 교육은 몰라도 대학교육은 잘 안다"고 자신했다. 국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민대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활발한 활동을 벌인 경력을 말한 것이었다. 교육위 의원들도 초중고 교육에 대해서는 "현장으로 들어가 보시라"며 우려를 표하면서도 대학교육에 대해서는 김 부총리를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이번 논문 파동을 거치며 유추해 보건대, 김 전 부총리는 대학사회를 상당히 왜곡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에게 대학이란 어떤 곳일까? 2년 전에 학술지에 올렸던 논문을 다시 교내학술지에 올려도 되고, bk21사업 판단의 기준이 되는 연구실적은 채택이 되건 안되건 최대한 많이 올리고 보면 된다. 제자의 연구실적을 공저자 표시 없이 인용하는 것도 일반화된 관례일 뿐이다. 또 숱한 행정적 처리 업무들을 조교들에게 떠넘기고는 정작 책임자인 교수는 문제가 생기면 '아랫사람 탓'으로 떠넘기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 대학 사회의 일각에 그런 관행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것은 아무래도 꼴불견이고 품위 있는 학자로서 할 일이 못된다.

교수노조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강남훈 교수는 "김 전 부총리 외에 다른 교수들 중에도 이러한 행동을 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아무도 이를 정당하다고 우기지는 않는다"며 "이는 마약을 피워놓고 많은 이들이 피우니까 나는 정당하다고 우기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연구논문 중복게재를 두고서도 "어떤 학술지든 중복게재를 허용하는 곳은 있을 수 없다"면서 "학술지는 대학이나 연구소의 연구 실적을 알리기 위한 것인데 중복게재를 허용하면 다른 이들이 이 연구결과가 새로운 것인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알 수 없게 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만약 중복게재를 허용하는 학술지가 있다면 그것은 쓰레기 학술지일 뿐"이라고까지 단언했다.

강 교수는 "일부 교수들이 교내에 중복게재를 하는 것은 이것이 걸리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죄책감을 갖고 하는 것이지 김 전 부총리처럼 대놓고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요컨대 김 부총리는 '학자의 양심'을 저버리고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모순을 범했다는 얘기다. 나아가 청와대와 여당의 공멸을 막기 위한 '정치적 봉사'의 의미로 '자진사퇴'를 택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신의 억울함을 강변하고 여권의 안녕을 수호하기 위해 그같은 처신을 하는 가운데 한국의 대학사회를 통째로 매도하면서 결과적으로 '개떡'으로 만들어버린 책임은 누가 어떻게 져야 하는 것일까? 그의 부총리직 사직서 한 장으로 그 죄까지 사해지는 것일까? 오히려 그가 앞으로 대학사회로 돌아가고자 할 때 영원히 벗을 수 없는 짐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김 부총리를 13일 동안이나 교육부 수장 자리에 앉혀둔 채 끼고 돌았던 노무현 정부의 한없는 가벼움도 당사자의 자진사퇴로 면책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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