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사무처장이자 평택 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 정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영재 씨는 '평화로운 해결은 가능하며 그것은 바로 미국과의 재협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영재 사무처장은 <프레시안>에 보내온 글에서 '현재 재협상을 시작할 조건은 충분히 갖춰져 있는 상태'라고 지적하면서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이전 비용이나 환경 복구 비용의 문제, 시설 과잉의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재협상은 주민과 정부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의 대규모 조기 추가 감축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면서 재협상이 갖추어야 할 경로와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편집자>
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이 한미간 합의이고 국회 비준동의를 거친 국책사업이라서 이 사업에 대한 재협상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하고 있다. '진정한 대화'를 하겠다는 한명숙 총리도 재협상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지 확장이 국책사업이라는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한미간 재협상은 불가능한 것이 결코 아니다.
재협상 요구할 법적 근거 충분
평택미군기지 확장문제를 '조정'하거나 '종료'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한미양국이 합의한 2개의 관련 협정에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용산기지이전협정 제2조 제5항에 따르면 "양 당사국은 이전의 시행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에는 상호 협의하고 이전계획에 필요한 조정을 가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또 제7조 제2항에는 "이 협정은 양 당사국의 상호동의에 의하여 서면으로 개정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제8조에는 "이 협정은 일방 당사국이 타방 당사국에 대하여 1년 앞서 서면으로 이를 종료할 의사를 통보하지 아니하는 한, 용산기지이전계획이 완료될 때까지 유효하다"고 되어 있어 협정의 합법적 중단의 길을 열고 있다. 미 2사단 이전이 포함된 연합토지관리계획(LPP)개정협정에도 이와 같은 내용의 조항들이 있다.
"주한미군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 발생"
이처럼 재협상의 법적 근거가 분명하다면 재협상 사유가 될 "주한미군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현저한 변화가 발생한 경우"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주한미군 시설과 구역의 소요에 대한 현저한 변화는 현재 발생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용산기지의 경우 한미 양국은 2005년 제37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주한미군 전력구조 조정 등 한미 안보현안'이라는 의제로 주한미군사령부와 미8군사령부의 하와이 이전 또는 해체·축소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그린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 보좌관은 지난 5월 1일 "이 시점 이후 동북아 전반에 걸쳐 미국의 군사 지휘구조가 재정립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2사단이 대상이 되는 주한미군 추가감축의 경우 지난 3월 7일 윌리엄 팰런 미태평양사령관은 미 의회 증언 등을 통해 주한미군 추가감축 방침을 분명히 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도 3월 23일 기자회견에서 "한국군이 더 많은 임무를 맡게 되면 주한 미군을 그만큼 줄여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의 발언은 "한국군이 더 많은 임무를 맡게 되면"이라는 전제가 있고, 한미 양국이 공식 합의한 계획이 아니며, 규모와 시기도 분명히 밝힌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변성이 있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미국 국방 최고위 당국자들의 공식적인 발언이고, 미군이 맡고 있던 10대 군사임무를 한국군에 넘기는 작업이 완료 단계이며, 지휘통제문제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는 등 '전제'가 충족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에서 규모와 시기가 문제일 뿐 주한 미 지상군의 추가감축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린 전 보좌관은 "한반도 주둔 미군은 (고정주둔 지상군은 철수하고) 사령부 요소와 해·공군 및 한국군과 합동·연합 군사훈련을 하기 위한 연대규모의 순환배치군으로 구성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근년에 제기된 것이 아니라 1990년의 '동아시아 전략구상(EASI)'에 따른 3단계 미군 감축계획 때부터 제기된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주한미군 감축과 지휘구조 조정은 오래 전부터 제기된 문제로서, 최근 미국의 군사전략 변화와 군구조의 전면적인 재편에 따라 미뤄졌던 계획이 이제 본격화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2월 초에 발표된 미국방부의 <4개년 국방개혁검토보고>(QDR)도 미국 본토 방어를 중심으로 한 추가적인 해외 미군기지 조정과 재편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주한미군 추가감축 규모는 얼마나 될까?
2004년에 발표된 미 의회예산국(CBO) 연구보고서 '육군의 해외기지 변화를 위한 대안'에서는 향후 주한 미 지상군 규모에 대해 ▲1000명의 수용부대만 남기는 안 ▲1000명의 수용부대를 남기고 4000여 명의 여단전투부대를 순환 배치하는 안 등이 검토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 육군은 사상 처음으로 '501증원지원여단'을 올 여름에 창설하고 3000명 규모의 순환배치여단을 둘 계획이다.
이처럼 주한미군이 추가 감축되면 미군기지 재배치계획에 따라 주둔하기로 되어 있는 1만4491명의 평택 주둔 병력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병력 수가 대폭 줄어든다면 그에 상응하여 기지 규모를 줄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위한 기지 확장, 국회와 국민에 숨겨
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국회 동의과정에서 제대로 밝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부인하는 태도까지 보였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관련 책임 논란의 당사자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조차 인정했듯 "한반도 안보환경의 지형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중차대한 내용"이다. 그러나 정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의 본질적 문제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국회에 충분히 제공하지 않음으로써 중대한 안보 현안에 대한 국회의 비준 동의권을 실질적으로 침해했다. 이는 절차상 중대한 하자다.
5월 22일 발표한 참여연대-<한겨레21>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88.8%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국민이 자신의 생명과 재산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문제에 대한 결정권에서 배제되어 있음을 뜻한다. 이는 참정권의 본질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전 비용
정부는 국회 비준동의 과정에서 주한미군재배치 비용으로 총 5조5000억여 원이 소요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추가비용 부담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비용은 대폭 늘어날 것이 확실시 된다. 미국에 백지수표를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미2사단 재배치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 재배치계획에 따른 것임에 비해 용산기지 이전은 우리가 요구한 것이므로 우리가 이전비용을 전액 부담하는 것이 국제관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도 미국의 방침에 따른 것이다. 이는 미국이 한미 양국의 기지이전 재추진 합의(2001년 12월) 이전에 발표한 4개년 국방개혁검토(QDR, 2001년 9월)에서 세계 각지의 미군기지를 조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제기했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 또 1990년 용산기지 이전협상 당시 우리 정부의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공동부담원칙 관철' 방침을 정한 바 있는데 이는 이전을 요구한 측이 비용을 부담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근거와 설득력이 없는 것임을 보여준다.
미국이 요구한 캠프 님블과 캠프 홀링워터 이전비용을 한국이 부담하기로 한 것이나, 독일이 요구한 라인마인 미공군기지 이전비용 일부를 미국이 부담한 것은 '요구한 측이 돈을 낸다'는 정부의 주장을 기각하는 사례다. 현재 추진되고 있는 유엔사·한미연합사 이전은 미국이 요구한 것인데도 그 비용을 한국이 부담키로 했다는 점에서 정부 주장은 또한번 거짓임이 드러난다.
또 용산미군기지 이전이 미군재배치전략의 일환이라는 점은 당시 토마스 허바드 주한 미국 대사, 노무현 대통령, 리차드 롤리스 미국측 협상 대표, 주한미군 홈페이지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산기지 이전이 미군재배치와 관계없다고 부인하는 것은 협상책임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호도하고 회피하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이 낸다던 수조원의 환경비용도 우리가 부담
한편 반환미군기지 환경오염 정화비용 부담 주체와 관련해서는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서 미국이 부담키로 한 것은 협상의 대표적 성과라고 자랑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예상되는 5000억 원의 비용 중 20억 원을 제외한 모든 비용을 우리가 부담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것이 선례가 되면 용산, 미2사단 본부 등에 대한 정화비용 최소 수조 원도 우리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또 확장되는 평택 팽성 지역의 지대가 낮아 홍수 우려가 있다며 연병장은 2.6m, 건물부지는 3.3m 높이로 성토를 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문제다. 여기에는 5000억~6000억 원의 비용이 추가로 들고, 285만 평을 2.6m 높이로 성토한다고 하더라도 무려 3900만 톤(15톤 트럭 260만 대 분)의 점질토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럴 경우 50m 높이의 야산 180개를 모두 깎아 투입하는 재앙적 수준의 환경파괴는 물론 운반과정에서 교통대란과 심각한 도로 파괴가 불가피할 것이다.
재협상 사례 수두룩
미국 관련 기지와 건물의 재배치가 중단 또는 변경된 사례도 많다. 1990년 한미 양국은 용산 미군기지 이전 합의각서와 양해각서를 교환하고 일부를 시행하다가 비용 문제 때문에 사업을 중단한 바 있다. 또 한미 양국이 합의했던 덕수궁 터 미 대사관 신축계획도 2002년부터 시작된 3년여에 걸친 반대 운동으로 무산된 바 있다. 그리고 오키나와 후텐마 비행장의 헤노코 이전 문제도 주민들의 반대 등으로 8년을 끌다가 미일 양국이 합의했던 이전계획이 변경된 사례가 있다.
특히 현재 추진되고 있는 미2사단 재배치의 근거인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개정협정의 경우, 한미 간에 2002년에 합의되어 국회의 비준동의까지 거쳤지만 미국의 요구에 따라 재협상을 했던 직접적인 사례다.
미국과 관련된 사례는 아니지만 국방부는 기무사령부 과천 이전이 8년에 걸친 주민의 반대로 지연되자 다자간 협의체를 만들어 부지 규모를 당초 22만7000평에서 5만6000평으로 축소키로 한 사례도 있다.
정부, '시설과잉' 막으려면 재협상 나서야
이처럼 재협상의 근거와 사유가 분명하고, 국내외의 변경 사례도 있는 만큼 정부는 사업을 우선 중단하고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야 한다. 추가 감축이 기정사실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발이 두려워 확정된 계획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존의 사업을 그대로 강행한다면,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가 지적하는 대로 '시설과잉'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따라서 정부는 주한미군 추가감축이 한미 간에 협의된 것이 아니라는 등의 핑계를 대며 재협상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추가감축에 따른 기지규모 축소가 예견되므로 미국에 적극적으로 재협상을 요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야 할 정부의 기본 책무인 것이다.
만약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미국의 반발이 두려워 이를 은폐하고 회피해 평택의 주민공동체가 파괴되고 엄청난 사회적·재정적 낭비를 초래한다면 평택 주민뿐만 아니라 국민과 역사에 대해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 될 것이다.
기존기지로의 축소통폐합 가능
이제 정부는 북에 대한 남의 군사력 우위를 반영하고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으로 인한 정치·군사·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한미군의 대규모 조기 추가감축을 미국에 적극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정부는 또 용산기지 이전이 미국의 필요와 요구에 따른 것인 만큼 '우리측의 이전비용 전액부담' 방침도 당연히 재논의할 것도 요구해야 한다.
추가감축이 이뤄질 경우 그 규모와 그에 따른 대체부지 규모의 산정 과정이 주민과 평택범대위에 정확하고 충분하게 공유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전제에 기초하여 한미 양국은 다음과 같은 경로와 방식으로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에 대한 합의를 이뤄야 할 것이다.
- 용산에 있는 주한미군사령부 등은 "미국의 군사 지휘구조 재정립"을 반영해, 즉 축소 재편해 기존의 캠프 험프리 기지로 이전한다.
- 용산기지 이전의 일환으로 건설되는 28만 평의 골프장(18홀)은 한국군이 사용하는 기존의 다른 골프장을 미군이 공동으로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부지 소요를 축소한다.
- 미2사단은 추가감축이 완료될 때까지 현 기지에 그대로 주둔한다.
- 미지상군은 수용부대(증원지원여단)만 남기고 나머지 부대는 모두 감축한다.
- 한미 양국은 추가감축을 반영해 기지 규모를 다시 산정한다. 이 과정에서 위법·부당하게 제공된 20만 평 규모의 임대 방식의 미군가족주택 부지를 제외한다.
- 미지상군 증원지원여단을 기존 캠프험프리 기지 등으로 재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지 확장 없는 기존 캠프 험프리 기지로의 축소통폐합이 가능하다는 점을 제시하고 이를 요구할 것이다. 확장이 불가피할 경우라 하더라도 그 규모의 최소화를 요구할 것이다.
- 정부는 한미간 재협상과 주한미군 추가감축이 진행되는 동안 기지 확장사업을 중단하고 주민의 영농을 보장한다.
재협상, 주민-정부-미국 모두에 이익
이같은 방향으로 평택미군기지 확장 문제가 매듭 지어지면 주민을 비롯한 국민은 물론 나아가 정부의 이해관계도 어느 정도 충족될 수 있다. 주민들은 기본적으로는 현재 위치에서 자신들의 생활을 영위하면서 평화적 생존권을 보장받을 수 있고, 국민의 입장에서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일정하게 제약하여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 요인을 줄일 수 있다.
정부로서도 강제철거로 인한 대규모 충돌과 불상사, 그로 인한 민심이반을 피할 수 있고, 이 사업이 대선 국면까지 이어지면서 끼치게 될 정치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미국도 미군재배치계획을 이행하면서도, 반미감정의 확산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재협상은 필요하고, 가능하며, 그 대안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평택기지의 용도와 이전비용 변경시 재협상 동의 여부'에 대해 국민의 82.2%가 동의한 앞의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재협상은 국민적 요구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협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만 한미 양국은 움직일 것이다. 즉, 현장을 중심으로 한 완강하고 끈질긴 반대 운동을 기본으로 하면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행동이 결합되어 재협상 관철 운동이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져갈 때에만 재협상은 비로소 논의 테이블 위에 올려질 것이다.
평택 범대위는 재협상을 관철하겠다는 목표를 명확히 하고, 이의 달성을 위해 범국민적인 여론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군부대 및 철조망 철거,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 철회 등의 요구와 함께 평택기지 확장사업에 대한 전면 재협상을 핵심 과제로 범국민적인 캠페인을 벌여나갈 것이다.
이를 통해 10~12월로 예정된 주민들의 주택에 대한 강제철거를 막아내고 한미간 재협상을 통해 이 사업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 하도록 함으로써 주민의 평화적 생존권과 한반도 평화를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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