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겨레말큰사전' 한걸음 '성큼'

고은 "이제 절반의 길만 가면 된다"

남북의 언어학자들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시도되는 남북 공동 국어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의 편찬을 위한 세부요강에 합의했다.

***남북단일어문, 올림말 선정, 어휘 조사안 합의**

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 편찬위원회는 26일 북한 개성에서 사흘간 열린 4차 편찬회의를 마치면서 단일어문규범 작성요강과 올림말(사전 표제어) 선정요강, 어휘 조사요강 등에 대한 합의안을 발표했다.

단일어문규범은 남한의 '표준국어대사전'과 북한의 '조선말큰사전'에 적용된 규범을 원칙으로 하되, 공통된 부분은 그대로 반영하고, 차이 나는 것은 향후 회의를 통해 단일 규범을 작성하기로 합의했다. 통일 지향적 규범을 마련하되 남북의 현행 규범에 대해 어떤 구속력도 갖지 않도록 했다.

올림말 선정 역시 표준국어대사전과 조선말큰사전에서 공통된 올림말을 먼저 선정하되 20세기 초부터 쓰인 민족어 가운데 올림말로 가치가 있는 것을 각자 문헌·방언 조사사업을 통해 조사한 뒤 양측의 협의와 토론을 거쳐 이를 수록하기로 했다.

겨레말큰사전 사업은 올해 2월 금강산에서 남북 국어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공동편찬위원회를 출범시키면서 시작됐으며 7월 평양회의와 8월 서울회의를 거치면서 '공동편찬 요강'에 합의한 데 이어 세부요강까지 합의가 이뤄졌다.

***고은 "겨레말큰사전, 이제 절반의 길만 가면 된다"**

이번 합의는 겨레말큰사전 편찬을 위한 대강의 작업지침이지만 남북이 어문규범 통일방안에 처음으로 의견 일치를 보였다는 데에 의의가 크다.

공동편찬위 상임위원장인 고은 시인은 이날 인사말에서 "우리는 겨레말큰사전을 위한 기초를 마련하고 실질적 과제를 수행하기 시작했다"며 "(요강 합의로) 절반의 길을 왔으니 이제 절반의 길이 남았다"고 말했다.

북측 편찬위원장인 사회과학원의 문영호 언어학연구소장은 "4차 회의로 근본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면서 "언어규범 단일화 문제에 대해 겨레 앞에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있고 해야만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다" 강조했다.

또 공동편찬위의 어문규범위원장인 권재일 서울대 교수는 "양측이 허심탄회하게 입장을 털어놔 단일 언어규범을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했고, 북측 방린봉 사회과학원 실장도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는 신심을 얻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방 실장은 "겨레말큰사전의 어휘를 총 30만 개로 잡고 이 가운데 북남의 사전에 있는 어휘 20만 개, 문헌에서 찾은 새 어휘 6만 개, 현지조사를 통해 수집한 어휘 4만 개를 실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남북 편찬위원들은 5차 회의에서 자모(字母) 배열 순서, 띄어쓰기, 두음법칙 등 어문규범과 등재 용어 선정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남북, 한글 표기 얼마나 다른가**<박스기사>

실제 남북의 한글은 분단 60년을 겪으면서 표기, 어휘, 뜻, 발음 등에서 적지 않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상호 이질감을 느끼게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한국으로 온 탈북민들이 겪는 언어 차이로 인한 혼란만 봐도 이를 실감할 수 있다.

다음은 이번 회의에서 북측 편찬위원회가 발표한 '북남 언어표기 규범 차이 용례' 중 일부다.

표기의 경우 남북 모두 본디 형태를 적는 형태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지만 북한이 원칙에 상대적으로 충실한 데 비해 남한은 발음에 따른 표기(표음주의)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남북은 자모(字母)부터 된소리와 이중모음까지 포함 여부에 따라 각각 24개와 40개로 다르며 '기역/기윽', '디귿/디읃', '시옷/시읏', '쌍비읍/된비읍' 등 표기도 다르다.(남/북의 순서, 이하 동일)

◇맞춤법 차이 = 할까/할가, 오뚝이/오또기, 길쭉이/길죽이, 송곳니/송곳이, 겻불/겨불, 씌어/씌여, 섭섭지 않다/섭섭치 않다, 밀폐/밀페, 여자/녀자, 곤란/곤난, 손뼉/손벽, 안간힘/안깐힘

◇띄어쓰기 차이 = 웃을 뿐/웃을뿐, 한 마리/한마리, 이순신 장군/리순신장군, 우리말/우리 말, 아는 척하다/아는척하다, 할 만하다/할만하다

◇문장부호 차이 = 큰따옴표(" ")/인용표(≪ ≫), 작은따옴표(' ')/거듭인용표(< >), 3ㆍ1운동/3.1운동

◇외래어표기 차이 = 콩트/꽁뜨, 몽타주/몽따쥬, 스케이트/스케트, 뉘앙스/뉴앙스, 나트륨/나트리움, 펭귄/펭긴, 나일론/나이론, 리본/리봉, 해머/함마

◇어휘표기 차이 = 튀김/기름튀기, 자줏빛/자주빛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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