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이할매네 생선 가게엔 대체 뭐가 있길래…

[늪에 빠진 중소상인·<2>] 모르는 사람은 절대 모르는 재래시장의 매력

- 늪에 빠진 중소상인
☞<1> 공덕시장·망원시장에 나타난 '괴물', 상인들은…

"장보기 풍경이 달라진다."

1993년 이마트 창동점이 처음 문을 열자 다음날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그리고 이십 년이 지난 지금, 장보기 풍경이 달라졌다.

대형마트는 이제 도시 거주자에게 가장 친숙한 쇼핑 공간이다. 인기의 비결은 '편리성'이다. 넓고 깨끗한 매장, 편리한 계산 시스템은 안락함을 추구하는 도시 거주자들을 사로잡았다. 수요가 급증하자 마트 사업에 뛰어든 대기업들은 경쟁하듯 점포 수를 늘렸다. 대형마트가 우후죽순 격으로 늘어나는 사이, 재래시장은 조용히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10년 기준으로 7년 새 서울의 재래시장 178곳이 문을 닫았다. 서울에 제대로 된 시장이 몇 군데 안 남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러나 반대로, 적게나마 남아있다는 건 아직 재래시장의 '약발'이 다하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렇다면 재래시장의 매력은 무엇일까? 대형마트의 매력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지만, 재래시장의 매력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난 24일, 서울시 재래시장 가운데 성공사례로 뽑히는 서울시 마포구 망원시장을 다녀왔다. 망원시장의 사례를 통해 '알면 알고, 모르면 절대 모를' 재래시장의 매력을 짚어본다.

포인트 카드 대신 '눈도장'

한국 사회에서 인맥이란 말은 부정적 의미에서 쓰일 때가 많다. 그러나 재래시장에서 인맥은 '권장사항'이다. 단골집을 만들라는 얘기다. 일단 어떤 가게든 단골이 되면 두고두고 저렴하게 쇼핑할 수 있다. 망원시장에서 40년간 같은 자리를 지킨 '뚱이할매네생선' 가게의 손님은 칠 할이 단골이다. 가게 주인 박순정(75) 할머니는 단골에게 '깎아주기'를 많이 해주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 근방 사람들은 못사는 사람도 많다고. 그럼 다 깎아줘. 바지락이 원래 5000원어치인디 방금도 3000원으로 깎아줬어. 방금 온 손님이 내가 아는데, 애 엄마거든. 애 키울 때는 한 푼이라도 아깝단 말이지."

▲ 망원시장 '뚱이할매네생선가게'는 늘 단골손님들로 북적인다. ⓒ프레시안(서어리)
대형마트처럼 포인트 적립카드는 없지만, 대신 가게 주인의 눈도장을 많이 찍으면 된다. "아현동처럼 먼 데서도 우리 집 갈치 사러 찾아와. 국내산이라 맛이 좋거든. 멀리서도 자주 오는 손님한테는 더 깎아줘야지." 훈훈한 정은 덤이다. "단골한테 가끔 전화도 와. 내가 아파서 안 나오면 무슨 일 있으시냐고 꼭 전화로 물어보더라고." 서로 단골이 된 상인과 손님은 이웃사촌지간이나 다름없었다.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인근 주민에게 재래시장은 쇼핑지이자 놀이터다. '뚱이할매네생선' 가게에는 그냥 '놀러 오는' 손님도 많다. 생선은 안 사고 수다만 실컷 떠들고 가는 것이다. 손님 채진옥(52) 씨는 "시장에 와서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동네 사람들이랑 이야기하는 맛에 온다"고 말했다. 요즘은 지역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할 데를 찾기 쉽지 않다. 도시 규모가 커지면서 지역 공동체라는 개념조차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도 사람들이 몰리지만, 각자 볼일을 마치면 뿔뿔이 흩어진다. 반면 재래시장에선 쇼핑도 하고 주민들과 수다도 가능하다. 시장이 '동네 주민센터' 역할을 대체하는 셈이다.

특히 소일거리가 없는 지역 노인들에게 재래시장은 여가를 보내기 좋은 곳이다. 망원시장에 나가보면 골목 모퉁이마다 삼삼오오 모여 있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동네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노재희(75) 씨는 "망원동에서 30년째 사는데 망원시장에는 매일 산책 겸 나온다"고 했다. 젊은이들에게 '타임스퀘어'가 그렇듯, 어르신들에게 재래시장은 쇼핑과 여가가 어우러진 '복합 문화공간'인 셈이다.

지역경제 살찌우는 터전

▲ 홈플러스 합정점 설립을 반대하는 의미로 설치한 리본 나무. 맨 앞에 걸린 리본에는 '우리 소중한 망원시장을 지켜주세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프레시안(서어리)
소비자에게 쇼핑 장소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대형마트에서든 재래시장에서든 자신이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과 국가 차원에서는, 어디서 소비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특정 시장의 이익이 지역과 국가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망원시장에서 <엄마손왕두부> 가게를 운영하는 김진철(47) 씨는 "우리 같은 재래시장 상인들은 돈을 벌면 결국 또 이 지역에서 돈을 써요. 그런데 대형마트는 지역에서 번 돈을 본사로 보내니 지역경제에는 도움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소비가 또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깨뜨려 내수를 침체시킨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안진걸 민생경제팀장은 "특히 망원시장 주변에 밀집한 홈플러스는 본사가 영국(테스코)에 있다"며 "수익이 해당 지역에 투자되지 않고 국외로 유출돼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이 지역 자본을 흡수하는 대형마트를 견제해 지역과 국가 경제를 지킨다는 얘기다.

이러한 매력을 지니고도 결국 재래시장은 위기를 맞이했다. 재래시장이 지금처럼 하나둘 줄어들다 언젠가 다 사라진다면, 그때 거리 풍경은 어떨까. 매일 습관처럼 재래시장에서 장을 보던 사람들은, 시장길 모퉁이에서 담소를 나누던 어르신들은 모두 어디로 갈까? "저거(대형마트) 들어온다고 이거(재래시장) 없애면 여기 모이는 늙은이들 다 어디로 가라는 거야. 나가래도 못 나가지." 박 할머니 말대로, 재래시장은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의 공간이다. 그래서 사라짐이 아쉬운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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