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땅이 겹쳐 이루어내는 지점에서 태양은 하루의 노고를 접고 그날의 마지막 봉사를 합니다. 그래서 석양(夕陽)은 과격하지 않으며 또한 무력하지도 않습니다. 뒤를 이어 세상을 이윽고 덮게 될 밤과 조용히 포옹하는 몸짓으로 은은한 자취를 남겨놓는 것입니다. 하여 황혼(黃昏)은 성숙한 영혼을 드러내는 것만 같습니다.
서러운 날도 결국 기억에서 사라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아픈 마음도 마침내 새 살이 돋아 기운을 새롭게 차리는 때가 오기 마련입니다. 시름 깊은 밤도 동트는 기척에 물러나는 신비로움으로 우리는 위로를 받게 됩니다. 고단했던 육신도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깨어날 줄 모르는 잠에 취해 평화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니 시간이 흐르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애달픈 일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영혼은 그 시간의 강 속에서 때로 격동하기도 하고 때로 지치기도 하며 때로 격전의 피로를 풀기도 하는데, 여기서 눈여겨 마음에 새길 바는 그 어떤 것이든 “과정의 깊이”를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그걸 뛰어넘은 채 이룰 수 있는 것은 없거나 또는 있다 해도 조만간 쉽사리 무너지고 말 겁니다. 따라서 아예 없다 해도 좋을 겁니다.
세상만사가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은 그 마음이 배워야 할 기다림과 지혜를 익혀가는 절차가 “피할 수 없는 예절”처럼 있는 까닭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이 고되게 배운 것은 세월이 지난다 해도 가볍게 떠나가지 않으며, 엉겁결에도 고수의 초식처럼 그저 일상의 아무렇지도 않은 몸짓인 양 풀려나와 그 어느 경우에라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젠가, 바닷가에서 해가 지는 광경을 보면서 이런 느낌을 적어본 적이 있습니다. 제목은 “석양(夕陽)”입니다.
“한시도 잊은 적이 없는 뜨거움,/식지 않은 몸을 감출 길 없다// 그 하루의 치열한 기다림 끝에/태양은/투망에 몰입하는 어부의 몸짓으로/해심(海心)에 완벽하게 스며든다//보이지 않는 길이 열리고/격렬하게 출렁이는 순간들/해도(海圖)에 기록되지 않는 태고의 숨결이/여전히 새롭다//석양(夕陽)은 기우는 것이 아니라/바다와의 사랑에 그렇게 흠뻑 빠져 있는 것이다”
우리가 떠오른다, 진다, 일어난다, 기운다 하는 그 모든 것들의 정체는 어쩌면 보기에 달린 문제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시선의 차이에 따라 현실과 나와의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낮이라 할지라도 그 영혼이 밤인 경우도 있으며, 어두운 시각이 우리의 삶을 점령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마음의 속 중심에 빛나는 기운이 시작되는 순간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해서 그날 그 자리에서 본 것은 모든 기운을 다 쓰고 난 후 바다 속에 쓸쓸하게 침몰하는 태양이 아니라, 도리어 그 바다를 향해 온통 자신을 몰두하는 거대하고 위엄 있는 존재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한없이 기뻐하는 바다의 격정이었습니다. 결국 태양이 자신의 궤도를 돌면서 궁극적으로 목표했던 지점이 어디인지를 고백하는 비밀스러운 순간인 양 여겨진 것입니다.
그러기까지 우리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시간의 모험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목적지로 가는 길은 누가 미리 일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에 태양의 궤도가 그리는 열정과 깊이의 최종적 의미를 망각하지 않는다면, 그 여정은 우리를 결코 외롭거나 지치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기쁨일테니까 말입니다.
*이 글은 김민웅 박사가 교육방송 EBS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김민웅의 월드 센타"(오후 4시-6시/www.ebs.co.kr )에서 하는 5분 칼럼을 프레시안과 동시로 연재하는 것입니다. 구글에서 프레시안을 더 자주 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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