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스 할머니와 프리다 할머니는 사돈인데, 두 노부부가 친구처럼 지낸다. 함께 교회 오고 성가대도 같이 하고 음악회도 같이 가는 등 온갖 문화행사를 같이 하신다. 사돈의 서먹함이 전혀 없다.
이 일처럼 전혀 반대되는 반응을 보이신 적이 없었다. 에릭 할아버지는 손녀 본 것이 정말 기쁘지 않으신 것 같아 축하한다고 내가 말한 것이 미안할 정도였다. 친정 어머니가 늘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났다. 친 손주가 징징거리면 며느리가 왜 아이를 좀 더 잘 보아주지 못하는가 싶고 외손주가 징징거리면 저 녀석이 왜 엄마를 저렇게 괴롭히나 싶어 외손주가 이쁘게 보이지 않는다고 어쩌면 이렇게 며느리 생각하는 마음하고 딸 생각하는 마음이 다른지, 여고 동창회에 갔을 때 친구분들이랑 이야기했다고 하셨다. 딸이 또 아이를 낳은 것이 딸에게는 고생이다 싶은 마음이 한국 부모이나 마찬가지로 에릭 할아버지에게 있나 보다 생각했다.
얼마 뒤 할아버지 집에 갈 일이 있었다. 현관에서부터 벽마다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단연 딸의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 중 고등학교 때 전교생이 찍은 사진을 확대한 것이 있었다. 그 사진을 보라고 하시면서 고등학교 때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지 또 바이올린도 잘 켜서 고등학생 경연대회에 나가 일등했다고 자랑하시면서 그 상장 붙여놓은 것도 손으로 가리키셨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시면서 그런 게 다 소용없다고 너도 딸을 키우니까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의대에 들어가서 뉴질랜드에서 유학 온 남자랑 연애하더니 여기까지 와서 의사노릇도 몇 년 못하고는 아이 키운다고 집에 들어앉은 것도 한심한데 이제 아이를 넷이나 낳았으니 언제 의사 노릇을 다시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다.
할머니는 자기가 다 좋아서 아이를 넷 낳은 건데 우리가 뭐라고 할 것 뭐 있냐고 할아버지에게 말하는데도 할아버지는 딸 생각만 하시면 마음이 영 언짢으셨다. 아이가 셋일 때는 그래도 집에서라도 의사협회 회보 만드는 일을 했는데, 이제는 그나마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러나 내 느낌은 의사 일을 그만 둔 것보다는 거의 연년생으로 낳은 네 아이들 뒷바라지에 치일 딸이 가여워 그렇게 불평하시는 것 같았다.
딸 하나만 있는 나와 그래서 에릭 할아버지와 프리다 할머니는 무척 가까왔고 30년이 훨씬 넘는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말이 잘 통했다. 딸이 넷째 아이를 낳고 일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는 영국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할아버지가 우겨서. 그 다음 해에 딸과 손자 손녀 보고 싶어 다시 잠깐 들리신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 일년 사이에 눈에 띄게 늙으셨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사돈인 트루스 할머니가 전해 주는 말로는 프리다 할머니가 알쯔하이머 병(치매)에 걸리셔서 자기가 전화를 걸어도 누구인지 모른다고 안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여기 계실 때도 잘 잊어버리시고 한 이야기를 반복하시는 경향은 있었지만 가슴아픈 소식이었다.
그런데 다시 그 다음 해 그러니까 작년에 트루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소식은 지금도 간혹 생각이 나며 가슴이 무거워진다. 프리다 할머니의 외딸인 트루스 할머니의 며느리, 새러가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한 채 3개월 째 입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트루스 할머니의 말, 새러가 안 되었어, 여기에 아무 가족도 없고, 자기 어머니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요양원에 있고 아버지는 어머니 때문에 딸이 아파 누워 있어도 이곳에 와 보지도 못하고. 그리고 나서 덧붙이는 말, 내 아들이 참 안되었어. 마누라는 입원해 있고 아이를 넷이나 돌보아야 하고. 직장 일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얼마 뒤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을 때 트루스 할머니에게 새러가 아직도 입원해 있는지, 병명은 알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할머니는 아직도 입원해 있다는 이야기 끝에 다시 덧붙이셨다. 내 아들 불쌍해 라고, 이번에는 새러 불쌍하다는 말씀은 없이. 시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며느리보다 아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것이 동서양 차이가 없다. 딸 가진 부모가 억울해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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