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경제 공포' 조장하나

[정책쟁점 일문일답] <17> 대규모 추경, 명분도 근거도 없다

1. 최근 정부가 12조 원 이상, 최대 20조 원에 육박하는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 추경 규모는 다른 때와 비교해 볼 때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 1998년 외환위기 이후 모두 15차례의 추경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추경으로 그 규모가 28조4000억 원이었습니다. 그 다음으로 큰 것은 외환위기에 직면했던 1998년 추경으로 그 규모가 13조9000억 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5조 원 이하의 소규모 추경이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추경 규모 비율 순위를 보면 2009년이 2.7%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1998년으로 2.5%였습니다. 그 외 추경은 모두 0.8% 미만이었습니다. 이번에 새 정부가 12조 원 추경을 하게 되면 GDP 대비 0.9%로 외환위기 이후 15번의 추경 중에서 세 번째 규모가 될 겁니다.

ⓒ홍헌호

2. 상당수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도적으로 위기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대규모 추경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이런 비판,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3%에서 2.3%로 낮추고 대규모 추경을 밀어붙이고 있는데요, 대다수 경제 전문가들은 이것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해외 주요 기관들이 내놓은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국제통화기금(IMF)이 3.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1%, 글로벌 투자은행들이 2.9%입니다. 국내 주요 기관의 전망치도 이와 비슷한데요, 한국은행이 2.8%, 한국개발연구원(KDI)이 3.0%, 금융연구원이 2.8%를 전망치로 내놓고 있습니다. 대기업 연구소들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3.5%, LG경제연구원이 3.3%의 성장률 전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 정부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낮추고 대규모 추경을 밀어붙이자, 위기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경기 부양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들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3. 정부는 대규모 추경을 모색하면서 고용 사정이 좋지 못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고용 사정, 어떤 상황에 놓여 있습니까?
⇨ 정부에서는 평년처럼 일자리가 1년 전에 비해 30만 개 정도 늘어야 하는데 2월에는 20만 개밖에 늘지 않았기 때문에 대규모 추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매우 부족합니다. 최근 우리나라 경제 지표를 보면 2003년 노무현 정부 첫해와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당시처럼 소규모 추경을 추진할 명분도 약간은 있습니다. 그러나 고용 지표는 그때에 비해서는 상당히 좋습니다. 2003년경 일자리 수는 그 전해에 비해 10만 개 정도 줄어들었습니다. 반면 올해 2월 일자리는 지난해에 비해 20만 개 늘었습니다. 고용 지표만 보자면 지금은 위기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서 대규모 추경을 밀어붙일 때는 아닙니다.

ⓒ홍헌호

4. 정부는 올해 세입 부문에서 12조 원의 공백이 생길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가 가능합니까?
⇨ 정부는 올해 세외 수입에서 6조 원의 공백이 생기고, 국세 세입에서도 6조 원의 공백이 생긴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전자의 주장은 지난해 대다수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기 때문에 큰 오류는 없습니다. 문제는 후자인데요, 이 주장의 근거가 매우 불충분합니다. 정부는 올해 성장률이 당초 전망치 3%에서 2.3%로 추락하기 때문에 법인세와 소득세 세수가 당초 세입 예산보다 4조5000억 원 줄어들고 부가가치세 세수도 1조5000억 원 줄어들 것이라 주장하고 있는데요, 근거가 매우 불충분합니다.

5. 정부가 내놓은 세수 전망의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는데요, 세목별로 평가해 주세요.
⇨ 먼저 부가가치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부가가치세는 총 국세 중에서 27%를 차지합니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부가가치세 세수가 당초 정부 예산안보다 1조5000억 원 줄어든다는 주장을 했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근거가 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 본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부가가치세 세수가 지난해 실적치에 비해 9.1% 증가할 것이라 했는데요, 잘못된 추계였습니다. 최근 몇 년간의 부가가치세 세수 추계로 볼 때 올해 부가가치세 세수가 지난해에 비해 9.1% 증가할 수 없습니다. 정부가 이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부가가치세 세수 목표를 1조5000억 원 낮춘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6. 소득세와 법인세 세수가 4조5000억 원 줄어든다는 정부 주장은 근거가 있나요?
⇨ 다음으로 법인세를 살펴보겠습니다. 법인세는 총 국세 중에서 22%를 차지합니다. 정부의 올해 본 예산안을 보면 법인세 세입이 지난해 실적치보다 1% 증가한다고 해 놓았습니다. 법인세 세수 전망치가 지나치게 낮은데요, 이에 대해 지난해 정부는 법인세가 전년도 실적을 토대로 올해 징수되기 때문에 지난해 성장률이 2%였으므로 올해 법인세 증가율이 1%에 그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지나치게 낮은 전망치입니다. 최근 몇 년간 법인세 변화를 보면 2009년에 경제성장률이 0.3%였을 때 그 이듬해 세수 증가율은 5.7%였고, 2011년에는 경제성장률이 3.7%였을 때 그 이듬해 세수 증가율은 6%였습니다. 그렇다면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2%였을 때 올해 세수 증가율은 어느 정도 될까요? 저는 최근 추세에 비추어 볼 때 4%는 될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7. 그런데 더 어이없는 일이 최근에 일어났습니다. 정부가 1% 증가율도 너무 높다며 이것을 더 낮추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 최근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의 세수가 기존 전망치에 비해 4조5000억 원 더 줄어들 것이라 전망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억지입니다. 지난해 정부는 올해 본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법인세가 지난해 실적 47조5451억 원보다 4527억 원 더 걷힐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그래서 세수 증가율이 1%입니다. 그러나 만약 정부가 법인세 세수가 기존 전망치에 비해 3조 원 더 줄어든다고 가정한다면, 세수 증가율은 1%가 아니라 -6.3%가 될 겁니다. 저의 추정치 4%와는 무려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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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부가 법인세 세수 증가율을 현실보다 10%포인트 낮게 잡았다고 가정한다면 그 금액은 어느 정도 되나요?
⇨ 지난해 법인세 세수 실적이 47조5451억 원이었으므로 그것의 10%라면 4조7545억 원에 해당합니다. 정부는 5조 원에 가까운 세수가 현실보다 덜 걷히리라 가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정부가 1년 6개월 전에는 지난해의 법인세 세수 예측을 했는데요, 그 예측도 심하게 빗나갔지요?
⇨ 정부는 1년 6개월 전에 본 예산안을 제출하면서 2011년 경제성장률이 3.7%였다는 점을 근거로 작년 법인세 세수 증가율이 0.6%에 그칠 것이라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정부 전망은 크게 빗나갔습니다. 지난해 법인세 세수 증가율은 0.6%가 아니라 그것의 10배인 6%에 달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는 실제와 10배나 빗나간 그 황당한 예측 방식을 올해에도 그대로 활용하겠다며 고집을 피우고 있습니다.

10. 조만간 정부가 추경안을 제출하면 국회는 이것을 심의하게 될 텐데요, 국회에서 확정되는 추경 규모는 어느 정도가 될 것 같습니까?
⇨ 일부 언론사가 보도한 정부의 최대 추경 목표를 보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세외 수입 공백을 메우기 위한 6조 원. 둘째, 국세 세수 공백을 메우기 위한 6조 원. 셋째, 세출을 확대하기 위한 8조 원(최대). 이 중에서 첫째 목표에 대해서는 여야 정당이 별 무리 없이 동의해 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둘째 목표에는 세수 추계에 상당한 오류가 있기 때문에 극히 일부만 수용될 가능성이 높고, 셋째 목표 또한 과도한 저성장 전망을 토대로 한 것이므로 일부만 수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종합 대책을 1일 발표한다. 경기 부양책이 대거 담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규모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 부양책 중심의 부동산 정책을 내놓으리라 전망한다. 3월 31일 새벽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이매동 아파트 단지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뉴시스

11. 정부가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일주일 전에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일정을 잡은 이유가 뭔가요?
⇨ 부동산 종합 대책에 세제 지원 정책이 많이 포함되기 때문일 겁니다. 부동산 종합 대책이 추경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실효성이 없기 때문에 추경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에 부동산 종합 대책을 내놓는 것 같습니다.

12. 정부는 국민 부담을 줄이겠다고 하면서 후세대 부담은 늘리려 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이런 태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 정부는 현세대 증세 부담을 피하는 대신 후세대 부담을 유발하는 대규모 추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명분이 상당히 취약합니다. 따라서 이 추경은 정부의 목표와 달리 제한된 범위 내의 추경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13. 최근 기획재정부가 주세 등 서민 증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국민건강보험의 적자를 해소해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서민 증세로 국민건강보험을 지원할 경우, 각 계층에는 어떤 영향이 있나요?
⇨ 예를 들어 설명 드리겠습니다. 만약 정부가 5조 원의 담뱃세와 5조 원의 주세를 증세해서 국민건강보험을 지원할 경우 중하위 50% 계층은 연간 9만6000원의 손실을 입게 되고, 최상위 10% 계층은 연간 27만 원의 이익을 얻게 될 겁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난 원인은 최고소득층과 최저소득층의 담뱃세·주세 부담액 배율 차이는 2.5배인 반면, 국민건강보험 수혜액 배율은 3배에 달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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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다른 예로 정부가 10조 원의 소득세를 증세하고 동시에 10조 원의 교육 복지를 확대한다고 가정할 때 각 계층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나요?
⇨ 각종 통계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 보면, 10조 원의 소득세를 증세하고 동시에 10조 원의 교육 복지를 확대할 경우 중하위 50% 계층은 연간 45만 원의 순이익을 얻게 됩니다. 반면 최상위 10% 계층의 순부담은 연간 174만 원 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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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기획재정부가 서민 증세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부유층의 부담을 낮추어주려는 의도도 포함되어 있는 것 아닐까요?
⇨ 부유층과 대기업의 이익을 주로 대변하는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가장 애착을 가진 세금이 바로 담뱃세와 주세, 그리고 부가가치세입니다. 원칙적으로 증세에 반대하나 굳이 증세를 하겠다면 소비세 증세를 하라는 것이 전경련과 한국경제연구원의 입장입니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한국경제연구원 등이 서민 증세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부자 감세 철회나 부자 증세를 회피하기 위해서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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