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지구로…데이비드 보위 10년 만의 귀환

[화제의 음반] 데이비드 보위 [더 넥스트 데이]

46년간 카멜레온과 같은 모습을 보여온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나이 66살에 26번째 스튜디오 앨범 [더 넥스트 데이](The Next Day)를 갖고 돌아왔다. 그의 최고작 중 하나인 ["히어로즈"]("Heroes")의 표지에서 얼굴만 가린 재킷을 들고, 베를린 시절 이전과 이후를 떠올리게 하는 신곡을 가득 채운 채.

이 긴 시간 동안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과 영화, 패션, 그리고 (스스로 가공해 낸) 성적인 가십으로 항상 '이계에서 온 것 같은' 아이콘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젊은 시절 (오지 오스본이 심취했던 그) 알리스터 크로울리와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달라이 라마에 심취했던 데이비드 보위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에 맞춰 [스페이스 오디티](Space Oddity)를 만들었고, 스스로를 양성적 캐릭터로 만들어 (그 유명한 니르바나의 커버곡인) 으스스한 <더 맨 후 솔드 더 월드>(The Man Who Sold the World)와 <라이프 온 마르스?>(Life On Mars?)를 불렀다.

▲데이비드 보위 [더 넥스트 데이]. ⓒ소니뮤직
그가 한 시대를 규정짓기 시작한 건 1972년의 콘셉트 앨범 [더 라이즈 앤드 폴 오브 지기 스타더스트 앤드 더 스파이더즈 프롬 마르스](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에서부터다. 그는 티.렉스(T.Rex)와 함께 글램 록(Glam Rock)이라는 신조어로 불린 상업적 록의 상징이 됐고,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쓰디쓴 패배 이후 방향성을 잃고 헤매던 루 리드(Lou Reed)마저 동시대 유행의 최전선에 위치시켰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후에도 변신을 멈추지 않았다. 홀연 미국으로 건너가 블루 아이드 소울을 시도했고, '마약과의 동거'로 파산한 후에는 베를린 장벽 바로 인근 스튜디오에서 로버트 프립(Robert Fripp),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함께 대중음악의 미래를 그린 전자음반 석장을 냈다. 이른바 '베를린 삼부작'이라 불리는 이 석장의 시리즈 중 두 번째 앨범이 [더 넥스트 데이]의 커버에서 재활용된 ["히어로즈"]이며, 이 앨범에는 보위의 싱글 중 가장 크게 히트한 <"히어로즈">가 담겨 있다.

이후에도 주류 댄스음악, 인더스트리얼, 정글 등 동시대 최신 조류를 아무렇지 않은 듯 받아들인 데이비드 보위는, 그럼에도 보통의 싸구려 록스타와는 다른 이질적 정체성을 수십 년간 유지해왔다. 그 중요한 이유로 그가 캐릭터화를 멈추지 않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게이에서 외계인, 양성인간, 미국 서부의 록스타, 할리우드의 유명인은 물론, 탐정으로도 분하곤 하던 그의 다양한 행보는 그가 발매하는 곡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곡에서도 항상 데이비드 보위 특유의 분위기가 풍긴 데는 이와 같은 노력이 크게 일조했다.

데이비드 보위는 음악은 물론, 스스로를 캐릭터화해 세계적 성공을 거둔 아이돌의 가장 성공한 모델이다.

가장 근작이었던 2003년의 [리얼리티](Reality) 발매 후 심장 문제로 쓰러진 그는 이제 한 물 간 아이콘으로 인식됐다. 그랬던 그의 새 작업물은 사전에 전혀 공개되지 않은 채 '갑자기' 대중음악 시장에 등장했다. 그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프로듀서 토니 비스콘티(Toni Visconti)가 다시금 앨범 제작에 나섰고, [리얼리티] 녹음을 함께 했던 게리 레오날드(Gerry Leonard)와 얼 슬릭(Earl Slick, 이상 기타), 게일 앤 도시(Gail Ann Dorsey, 베이스), 잭 알포드(Zach Alford, 드럼)도 모두 재합류했다. 뮤직비디오 촬영을 거뜬해 해낼 정도로 그의 건강 상태는 좋아 보인다.

앨범은 대체로 그의 초기 시절과 후기 시절에 빚지고 있다. 힘차게 포문을 여는 <더 넥스트 데이>는 조지 오웰의 고전 <1984>에서 따온 콘셉트로 화제가 됐던 (그러나 비평가들에겐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던) [다이아몬드 도그즈](Diamond Dogs) 시절의 로큰롤을 떠올리게 한다.

매력적인 기타 인트로와 굴곡진 리듬감이 빛나는 <더 스타즈 (아 아웃 투나잇)>(The Stars (Are Out Tonight))은 [헝키 도리]의 신비로움과 [아웃사이드](Outside)의 불길함을 재생한다. 긍정적 기운이 넘치는 <댄싱 아웃 인 스페이스>(Dancing Out in Space)의 경우 <렛츠 댄스>(Let's Dance)를 부르던 80년대와 베를린 시절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드는 인상적인 트랙이다.

대중적 취향의 발라드 넘버인 <웨어 아 위 나우?>(Where Are We Now?>는 블루 아이드 소울 시절의 그를 떠올리게 할 법하고, <유 필 소 론니 유 쿠드 다이>(You Feel So Lonely You Could Die)는 풍부한 현악의 힘을 빌린 장대한 사운드로 완성한 곡이다. 앨범 후반부에 위치했다는 상징성까지 더해져, 여러 모로 [지기 스타더스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정규 앨범으로는 마지막 트랙인 <히트>(Heat)는 베를린 시절과 그의 후반기 사운드를 다시 가져왔다.

이처럼 다양한 색깔이 꾸려져 있지만, 대체로 기타가 주도하는 앨범이라는 점에서는 일정 정도의 완결성을 지닌다. 좀처럼 제 갈 길을 찾지 못하던 그의 후반기 작업물 중에서는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작품으로 꼽을 만하다. 한동안 록 스타를 찾지 못하던 영미권 비평계가 이 앨범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있다. 이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본 조비(Bon Jovi)의 신작을 제치고 빌보트 핫100 차트 1위에 오를 정도로 대중의 비상한 관심도 모으고 있다.

다만 앨범을 들을수록 어떤 서글픔도 느껴진다. 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긴 어렵다. 데이비드 보위는 90년대부터는 나이가 든 자신의 모습을 '특이한 중년 남성'과 '외계의 인물', 혹은 한 사건에 갇힌 가상의 인물로 만들며 신비로움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더 넥스트 데이]는 ["히어로즈"]를 재활용한 커버로 상징되듯, 과거로의 회귀 성격이 강하다.

데이비드 보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일부 작품을 제외하면 사운드 자체만으로는 두드러지는 혁신을 찾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그가 오랜 기간 비평계와 대중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었던 근원에는 앞서 확인한 스스로의 캐릭터화가 워낙 성공적으로 유지돼 왔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보위란 인물이 가진 상징성이 그의 곡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아쉽게도 [더 넥스트 데이]에서는 콘셉트 작업 과정이 눈에 띄지 않는다. 단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피하며 대중적으로 자신의 노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는 점만이 '상징화' 작업의 하나로 읽힌다.

평범한 로큰롤 곡을 갖고도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던 [히든] 시절의 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더 넥스트 데이]에 실린 곡은 분명 매력적이다. 앨범의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해외 평단의 의견 역시 경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 '스타처럼 연기한' 세계 최고의 록스타로서, 어떤 하나의 징표로서 흔들림이 없었던 데이비드 보위의 지위는 이 앨범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한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아련함이, 새삼 데이비드 보위의 나이를 되새기게 만든다.

ⓒ소니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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