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의 고백 "CT·MRI 엄청 찍는 이유? 윗선 지시"

[선택 아닌 선택진료 ③·끝] 의사 인센티브에 쓰이는 선택진료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4대 중증질환 100% 보장' 공약에서 선택진료비를 제외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환자 단체들은 허탈감을 금치 못했다. 가계 파탄의 원흉으로 꼽히는 비급여(비보험) 진료비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이 바로 선택진료비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은 선택진료제에 관한 환자들의 불만을 듣고, 이 제도가 현실에서 어떻게 왜곡돼 왔는지를 짚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 병원은 정형외과가 먹여 살린다는 소문이 있어요. (CT나 MRI 등을) 엄청나게 찍는 거죠. 한 사람당 10방 이상 시리즈로 쫙 찍는 거예요. 내가 봐도 이건 도대체 왜 찍는지 모르겠는데 다 찍어요. 환자가 심지어 질문할 정도예요. '왜 이렇게 많이 찍느냐, 나는 팔이 아픈데 전신은 왜 찍느냐?' 할 말이 없죠. 위에서 지시를 그렇게 내리니까."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의료인 A 씨의 고백이다. 그는 "과잉 진료가 의료인과 환자를 모두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불필요한 검사와 치료를 늘리면, 의료인의 업무 강도가 높아져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환자의 진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의료 기관의 과잉 진료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의 의료 체계에서는 진료량에 비례해 수익이 늘어나고, 병원으로서는 수익 증대를 위해 진료량이나 검사량을 늘리려는 동기가 생긴다. 하지만 병원에 고용된 의료인들 사이에서는 '더 빨리, 더 많이' 진료하라는 병원의 방침이 부당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선택 아닌 선택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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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차등 성과급제 지탱하는 선택진료 수당

이러한 간극 속에서 병원이 진료량을 늘리는 유인책으로 도입한 제도가 바로 '의사 차등 성과급제'다. 환자 진료 매출액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대형 병원에서 의사 성과급제에 쓰이는 재원의 상당 부분은 바로 선택진료(특진)비에서 나온다.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윤인순 의원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11년 서울대병원의 전체 선택진료비 591억 원 가운데 66.5%인 393억 원이 의사 성과급(선택진료 수당 274억 원, 선택진료 연구비 119억 원)으로 지급됐다. 다른 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을 포함한 10개 국립대병원의 전체 선택진료비 1851억 원은 대부분 선택진료 수당, 선택진료 연구비, 부서 운영비(의국비) 등으로 쓰였다.

성과급은 진료량에 비례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민주노총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의료연대본부(이하 의료연대)가 지난해 7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7개 국립대(서울대·경북대·전북대·충남대·전남대·경상대·충북대)병원에서 선택진료를 하는 의사 한 명당 성과급 총액은 2008년 3440만 원에서 2009년 3930만 원, 2010년 4170만 원으로 매년 늘었다.

선택진료를 하는 의사들이 각종 검사를 의뢰한 비용 또한 2008년 1인당 평균 4억5190만 원에서 2009년 5억103만 원, 2010년 5억1236만 원으로 꾸준히 늘었다.

"의료급여 환자에게까지 선택진료비 물려"

선택진료비 규모도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보건복지부가 2010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곽정숙 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의료 기관의 선택진료비 규모는 2007년 7959억 원, 2008년 8824억 원, 2009년 9961억 원으로 매년 10% 이상씩 늘었다. 이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 몫으로 돌아간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 준하는 의료급여 환자도 선택진료 징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의료급여 환자인 장정훈(가명·35) 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과 선택진료비로 이중고를 겪었다. 장 씨의 아버지는 시각 장애인이고 어머니는 몇 년간 지병을 앓다가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백혈병에 걸린 장 씨 또한 수입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장 씨는 "나는 차상위 1종 수급자라서 진료비를 대부분 나라에서 지원한다"고 말했다. 2008년 7월부터 한 달간 입원했을 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비 2200여만 원 가운데 장 씨가 낸 본인부담금은 15만 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비급여 진료비로 390만 원이 나왔고, 그 가운데 46%에 해당하는 180만 원이 선택진료비였다.

장 씨는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 경황이 없어서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서명하고 나중에 퇴원하고 영수증을 받고서야 선택진료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나는 차상위 계층이고 국가에서 이렇게까지 지원하는데, 의료급여 환자에게까지 선택진료비를 물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환자 단체들은 "건강보험에서 암이나 중증희귀질환 본인부담금을 5%로 낮춰도 선택진료비는 여전히 100% 환자에게 부과돼 사실상 정부의 의료비 감면 정책을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선택진료제가 건강보험 수가 체계를 왜곡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매달 과별 실적 통계치 내놓고 비교"

선택진료 실적을 내야 하는 의사들도 스트레스를 받기는 마찬가지다. 한 대학 병원에서 일하는 B 교수는 "모든 대학 병원에서 선택진료를 많이 하는 교수는 성과급을 많이 받는데, 같은 대학 병원에서 근무하는 교수들인데도 과별로 성과급이 5배 정도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그는 "매달 병원 과장실이 과별 실적 통계치를 내놓는다"며 "어떤 과는 올라갔고 어떤 과는 밑바닥을 긴다고 실적을 계속 비교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의료 상업화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에서 한 대형 병원 교수는 "병원이 교수들에게 매일 외래 진료 실적을 문자메시지로 제공한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하얀 정글>의 송윤희 감독은 "과별뿐만 아니라 병원들끼리도 진료 실적을 비교하고 경쟁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대형 병원에서 진료 실적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줄 세우는 관행은 교수들에게 무언의 압박이 된다. (☞ 관련 기사 : '돈독' 오른 병원의 속살, 현직 의사의 '카메라 고발')

▲ 한국의 의료 상업화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하얀 정글>에서 한 대형 병원 교수는 "병원이 교수들에게 매일 외래 진료 실적을 문자로 제공한다"고 폭로했다. 사진은 <하얀 정글>의 한 장면. ⓒ송윤희 감독

의사 성과급제는 의료인의 노동 강도를 높인다. 단적인 예가 심야 수술 건수다. 의료연대는 지난해 10월 보도 자료를 내고 "의사 차등 성과급제 때문에 서울대병원에서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하는 심야 수술이 2008년 2201건에서 2011년 3650건으로 3년 만에 65% 증가했다"며 "이는 총 수술건수 증가율인 20%의 3배가 넘는 수치"라고 꼬집었다.

의료연대는 "비응급수술이 야간과 주말, 공휴일에도 버젓이 시행되고 있고, 정작 응급 환자가 생기면 인력과 수술방이 배정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주 5일제는 말뿐이고, 직원들의 피로도는 한계에 달했다"고 지적했다. A 씨 또한 "예전에는 오후 6-8시면 정규 수술이 다 끝났고 그 이후부터는 응급 환자만 받았는데 지금은 새벽 2시까지 정규 수술이 이어진다"고 말했다.

의학정책연구소가 의대 교수 93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지난해 10월 발표한 결과를 보면, 의대 교수들은 일주일에 외래 환자 103.7명, 입원 환자 21.0명, 수술 환자 6.5명을 진료한다. 의대 교수의 직무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는 '근무 환경'이 59.2%로 1위를 차지했다. 의사 성과급제와 관련이 있는 '급여 수준'을 꼽은 응답은 4.1%로 꼴찌였다. 의사들도 업무 강도가 높다고 느끼고 있음을 방증한다.

▲ 서울대병원 차등 성과급과 의료 서비스의 관계(2010년 4월 서울대병원 조합원 설문 결과) ⓒ의료연대
▲ 차등 성과급 실시 이후 의료 현장의 변화(2010년 4월 동국대병원 조합원 설문 결과) ⓒ의료연대

"선택진료비 폐지해도 과잉 진료 사라지지 않지만…"

선택진료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대한병원협회는 "국민의 실질적인 의사 선택권 축소와 그에 따른 환자 불편, 병원 손실분에 대한 보전 대책이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도 지난해 11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선택진료제를 폐지하면) 대형 병원 환자 집중 문제가 가중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러나 임 장관의 주장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단순 감기 환자나 고혈압 환자가 1차(의원급), 2차(병원급) 의료 기관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3차 의료 기관(대형 병원)에서 외래 진료를 받은 경우에만 추가 비용을 내게 하면 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질병의 중한 정도에 따라 갈 수 있는 의료기관 규모가 정해져 있다"며 "그런데 암 환자는 대형 병원에 가기 위해 암에 걸리기를 선택한 것이 아닌데도, 상급 종합병원 44곳이 모두 선택진료비를 받는다"고 비판했다.

B 교수 또한 "교수들이 바쁜 이유는 대학 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리기 때문"이라며 "대학 병원에 맞는 고난도 진료를 하도록 환자를 구성하고, 대학 병원에서 교수가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전체 의료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송형곤 대한의사협회 대변인도 "대형 병원 외래 환자의 65-70%는 1차 의료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환자"라며 "고혈압 같은 쉬운 질환으로 대형 병원이 개원가와 경쟁하지 않도록 정부가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 전문가들은 선택진료제를 폐지해 건강보험에 포함하거나 의료 전달 체계를 합리화한다고 해서 과잉 진료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의료팀장은 "선택진료비를 폐지해 건강보험에 포함해도 병원 매출이 의사 성과급과 연동된다면 여전히 과잉 진료가 유발될 것"이라며 "선택진료비를 포함해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 선택진료제가 의사 성과급제의 매개는 될 수 있어도 과잉 진료의 근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 정책실장은 "과잉 진료를 통제하려면 선택진료비를 폐지하고 선진국과 같이 비급여 진료를 엄격하게 제한하며, 건강보험 수가 지급 방식을 사전 지불 제도(진료비 총액을 미리 예상해 수가를 정액으로 지급하는 방식)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동시에 못하게 한다(혼합 진료 금지)"면서 "필수 의료 항목을 다 급여화한 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만 하든지 아니면 환자의 동의를 받아 애초에 건강보험 밖에서 100% 비급여 진료를 하게끔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송형곤 대변인은 "선택진료비 급여화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만약 급여화한다면) 경력을 입증한 개원의에게도 추가로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택진료비를 건강보험에 포함하더라도 선택진료제는 존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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